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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다락방+개혁측 신학위원회의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한 신학적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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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다락방+개혁측 신학위원회의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한 신학적 검증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3.01.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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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측 보고서 중심으로 2011년 4월 연구 결과 발표, 위원장은 개신대 나용화 교수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다락방 류광수 목사를 사실상 이단에서 해제한 2012년 12월 28일부터 지금까지 본지는 지속적으로 류 목사와 관련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대다수가 류광수 목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자료들이었습니다.  

이렇다 할 반론 성격의 글을 올린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 4월에 공식 발표한 개혁측 신학위원회의 글이 비록 시기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반론 성격의 글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물론 이 글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습니다. 개혁측 신학위원회는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해 검증하면서 다락방을 문제시한 예장 고려측의 신학부의 보고서만을 기초로 했습니다.

류 목사에 대해 검증하면서도 그의 1차 자료인 설교, 테이프 등은 심도 있게 살펴보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 9곳에서 이단시한 단체를 단, 한 교단의 연구 보고서만을 기초로 변호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런 일입니다.

내용 또한 고려측이 개혁주의 신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 가운데 류광수 목사에 대해 자의적으로 평가했다고 폄하하는데 집중돼 있습니다. 적어도 다락방을 문제없다고 하려면 다른 무엇보다 류광수 목사의 원자료를 놓고 검증하는 데 집중했어야 합니다. 설령 류 목사의 원 자료가 아닌 교단의 연구 보고서를 기초 텍스트로 삼으려 했다면 적어도 고려측뿐 아니라 예장합동이나 통합, 기감 등 다른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내용을 다양하게 참고하고 참작해서 발표했어야 했습니다.

개혁측 신학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사탄배상설’(그나마 이것도 표현의 실수로 봤습니다)과 “한국교회 98%가 마귀 들렸다”는 주장에 대해서 정도만 부당성을 언급할 뿐 그것이 나오게 된 사상적 배경에 대해 깊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2천년만에 다락방이 복음을 회복했다” 등 다락방을 특수화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언반구의 지적도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내주와 성육신을 혼동하는 듯한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물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게 다락방 류광수 목사를 검증하는 텍스트로 ‘예장 고려측 신학부 연구 보고서’만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나오는 기현상이었습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후 예장 개혁측은 2011년 6월 21일 다락방과 통합합니다.

본지는 혹시라도 다락방측의 대표성을 담은 반론이 추가로 확보되거나 들어올 경우 더 게재할 용의가 있습니다. 더불어 다락방 류광수 목사의 이단성에 대해 비판한 글 또한 추가적으로 게재할 의향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종합적 판단과 더불어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들어가는 말>

신학의 사명은 성경의 진리들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튼튼하게 세워주고,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건실하게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성경적으로 연구하여 해답을 주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 교회는 지난 20여년 동안 전반적으로 침체 상태에 있는가 하면, 이단 사상들(예, 김기동의 귀신론, 구원파와 신천지 등)이 발호하고 있으며, 교단들의 분열과 대형교회들의 분쟁 등으로 전도의 문이 상당 부분 막혀 있다. 또한 분열주의적 신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인하여 개신교 내에서 신학적으로 이단 사이비로 정죄하는 일이 많아 평신도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락방 전도 총회의 류광수 목사를 이단성이 있다고 보고서 1991년 11월 예장합동 부산노회가 목사 면직을 결의하였고, 1995년 9월 예장 고신 총회가 다락방 전도운동 참여 금지를 결의하였으며, 같은 때에 예장 고려 총회는 다락방 전도 운동을 비복음적, 비개혁주의적인 것으로 판단하여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예장 개혁도 다락방 불참여를 결의하였으며, 1996년 9월 예장 통합이 사이비로, 예장 합동이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1998년 9월 기독교 대한 감리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 같은 다락방 전도총회의 사이비성 내지는 이단성에 대한 여러 교단의 판단에 대하여 2011년 2월 25일 우리 개혁총회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김송수 목사)는 “성경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볼 때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심의 결의하였다. 그리고 동년 2월 28일에 총회장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한 바 있어, 본 총회 신학위원회(위원장 나용화 목사)가 2011년 4월 6일과 16일에 모여 전도총회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성경과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647년) 및 유력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신학 사상에 근거하여 평가하고 심의 결의하게 되었다. 

I. 관련된 주요 자료들.

전도총회 류광수 목사의 신학을 이단성 있는 것으로 체계적으로 연구보고한 대표적 자료는 예장 고려 총회의 제45회 총회(1995년)의 신학부 연구보고서인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이다. 이 연구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예장 마산노회 하림교회가 1997년 1월에 류광수 목사의 신학을 비개혁주의적 축사 신학으로 규정하여 자료를 만들었다. 본 총회의 이단대책위원회는 예장 고려 총회의 신학부 연구보고서를 주요 자료로 채택하였다. 

예장 고려 총회가 검토한 자료들 가운데 가장 주요한 것은 다락방 훈련 교재인 복음편지와 평신도용 전도훈련교재 및 류 목사의 설교 등이다. 

본 신학위원회는 위의 자료들뿐만 아니라 류광수의 「복음편지」(도서출판 생명, 2002), 2011년에 발행된 “전도총회 전도운동에 관한 이론과 실제” 와 “다락방 전도운동 메시지 자료 모음” 등을 주요 자료로 채택하였다. 

Ⅱ. 류광수 목사의 신학에 대한 고려 총회의 평가의 요지

류광수 목사의 신학의 뿌리는 권신찬의 구원파 사상, 김기동의 귀신론, 한만영의 귀신론 및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의 신학이다. 이 같은 신학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류 목사는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구원파의 영향) “예수 영접했습니까?”(지방교회의 영향) “사탄 결박권”(김기동의 영향)등을 강조한다. 류 목사의 신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사탄신학 또는 축사신학이며, 하나님 중심이 아닌 비개혁주의 신학이다. 

Ⅲ. 류광수 목사의 신학에 대한 고려 총회의 비판에 대한 평가

예장 고려 총회의 신학부가 류광수 목사의 신학을 평가함에 있어서 계시와 성경관, 신론과 인죄론, 기독론, 구원론, 그리고 교회관 등 조직신학의 주제를 따라 했다. 그 신학부는 먼저 류 목사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에 대하여 비판하였는바, 본 개혁 총회 신학위원회는 그 비판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검토하였다. 

1. 계시와 성경관

1) 성경 외의 계시 주장

▷류광수 목사의 주장:

“성령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도록 기도하라. 어떻게든 성령은 인도하신다. 꿈을 좋아하는 사람은 꿈으로, 환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환상으로,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이해한 대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완전한 영이기 때문에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환상으로 인도하신다. 귀머거리에게는 꿈으로 인도하신다”(다락방 파급단계2).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성경을 계시의 종결로 본다(참고, 계 22:18-19). 따라서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서만 자신을 계시하신다. 성경에는 마귀의 말이 인용되어 있으나, 성경 자체는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일 뿐이다. 마귀도 계시한다는 주장은 성경의 완전성과 영감을 부인하는 것이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성령은 하나님을 계시함에 있어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5항). 그러므로 이 성경에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6항). 성경만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이다. 이 같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은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류 목사가 성경에 대해서와, 꿈과 환상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고려 총회 신학부는 간과하였다. 류 목사가 가르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기에 우리가 가감할 수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마귀를 이기는 무기이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 영생을 얻는다(평신도용 전도훈련교재, p.26-27). 

류 목사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과 관련하여 성령이 성경을 가지고 원칙적으로 인도하시지만, 우리의 상상과 생각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시기도 한다. 천사를 통해서 초자연적으로 음성을 들려주시는가 하면(행 8:26), 환상으로(행 10:3; 16:6-10)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성이나 환상이나 꿈은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기에는 위험하다는 점을 류 목사는 덧붙였다(전도훈련교재, p.29-30).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의 최종적 계시요 말씀임을 믿고 가르친다. 성령은 성경을 가지고 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 및 예수가 그리스도이시요 그를 믿음으로써만 죄사함과 의롭다함을 통해 구원을 얻어 영생한다는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만이 최종적이고 무오한 것이며, 그래서 성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성경에는 신적 권위가 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18)가 하나님의 최종적 완전한 계시요. 또한 그를 증거한 성경 역시 최종적 무오한 계시이기에, 기독론적으로 볼 때 더 이상의 다른 계시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심에 있어서 우리의 본성의 빛과 자연세계 그리고 그의 섭리 곧 역사(history)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계시를 지금도 여전히 주신다(롬 1:19-20).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외에 더 이상의 다른 최종적 절대적 계시는 없지만,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시고 일하시기에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자기 백성들에게 직접 생생하게 계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아는 의식(sense)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항상 살아남아 있으며(Ⅰ. ⅲ. 1-2), 우주의 전 창조 가운데서 하나님이 자신을 매일같이 항상 계시하고 있다(Ⅰ. ⅴ. 1-2)고 했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만나며 사랑의 아버지로 알게 된다고 하였다(Ⅰ. xvi. 1). 뿐만 아니라, 은혜의 외적 방편인 말씀과 기도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며 더 깊이 알게 된다고 하였다(Ⅲ. xx. 1-3; 참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대요리문답 190문답). 

성경뿐만 아니라 칼빈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가르치는 바대로,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최종적, 절대적, 무오한 지식을 얻지만(기독교강요, I. v.),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벧전 1:23)인 성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의 빛과 전 창조세계와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 및 선포된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성례를 통해서 오늘도 매일같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어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므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할 때, 선포된 말씀을 들을 때, 기도와 찬양을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때로는 특별한 사건들이나 꿈과 환상(vision)을 통해서 사랑의 아버지를 만나며 그의 뜻을 알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삶속에서 그리고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것이다. 

류광수 목사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영적 경험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참고, “메시지 자료 모음” 가운데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발견” 2011.1.15. p.6; 류광수 「복음편지」 도서출판 생명, 2010년, p. 20-21). 그러므로, 고려 총회 신학부가 주장하는 바, 성경 외에는 계시가 이제 없고 성령의 조명만 있다고 하는 것은 성경과 칼빈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가르치고 있는 바를 충분하게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류 목사에 대한 판단도 자의적이다. 칼빈주의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지평서원, 1994), 헨리 블랙가비와 클로드 킹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요단 출판사, 1997), 하워드 라이스의 「개혁주의 영성」(기독교문서선교회, 1995)등 영성신학과 관련된 글들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는 바 임마누엘의 경험과 관련하여, 극적인 회심의 경험, 하나님의 황홀한 임재의 경험, 시각적 청각적 경험, 직관적 경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경이로운 경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경험 등을 통해서 지금도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 개혁주의 계시관이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경우처럼 편협한 계시관에 의하면, 성도들의 생동감 넘치는 영적 경험 곧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와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의 내주를 통해서 피부로 알고 느끼는 영적 지식을 위축시킴으로써 신앙의 성장을 막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데 소극적이게 만든다. 

2) 사탄 계시 주장

▷류광수 목사에 의하면,

“마귀가 주는 계시를 알아야 합니다.··· 마귀 계시, 하나님만 계시하는 것 아닙니다”(다락방 파급단계 3). 

▷류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마귀가 계시한다고 하는 류 목사의 주장대로 생각해 보면, 성경에는 마귀의 말이 있다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류 목사의 마귀 계시에 대한 주장은 성경의 완전성과 무오성을 부인하는 것이 됨으로 이단적 사상이라고 규정되어야 한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류 목사가 한 설교, “그리스도께서 삶 속에”(마 17:22-27)(2011년 1월 22일 예원교회)에 보면, “아파트 사서 감사하고, 차를 사서 감사하고, 아들이(대학교에) 합격해서 감사하고, 남편이 승진해서 감사하고.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이런 큰 경제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면 재벌들이 듣고 웃습니다. ···정말로 그게 복음인가? 그건 복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로 보건대 류 목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바 ‘다른 복음’(갈 1:8) 이라는 용어처럼 ‘기복신앙적인 그릇된 계시와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총회 신학부는 마귀는 계시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류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마귀는 사실상 계시를 할 수가 없는가? 즉,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알지 못하는가? 

개혁주의 신학자인 R. C. 스프롤은 마태복음 8:28-33을 해설하는 가운데, 29절의 “때가 오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에서 ‘때’(카이로스)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귀신들은 하나님이 미래의 카이로스적인 순간, 즉 특정한 시간을 예비하셔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 처하게 되고 지옥 구덩이에 던져질 때가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귀신들은... 하나님에 의해 영원 가운데 확정된 미래의 사건을 위한 시간표를 변경시키지 않는 것도 알고 있었다”(「보이지 않는 손」RTS, 2011년, p.160). 이로 보건대,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작정된 미래의 시간표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마귀도 계시할 수 있음을 뜻한다. 마귀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두려워하며 떤다(마 8:29; 막 2:19). 

이상에서 본대로, 고려 총회 신학부가 “성경 외의 계시”와 “마귀 계시”를 류 목사가 주장한 것으로 보고서 이단으로 판단한 것은 성경과 개혁신학에 근거하여 정당하게 한 것으로 볼 수가 없다. 고려 총회 신학부가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하여 성경과 칼빈,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및 건전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을 충분하게 알지 못한 데서 류 목사를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2. 신론과 인죄론

1) 천사 동원권 주장

▷류광수 목사의 주장:
“기도는 과학입니다. 기도만 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보좌 문을 여시고 하늘의 군대(천사)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주의 천사를 보내셔서 응답하시며, 중요한 일을 이룰 때는 군대를 보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움직이는 곳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어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복음편지」 p.216-217). 

류 목사는 구원 받은 자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지켜 주시는 것을 강조한다(히 1:14; 계 8:3-5; 시 103:20-22). 류 목사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여 예수님의 권능으로 사단의 세력을 결박할 수 있게 하나님이 천군 천사들을 보내어 역사하신다고 주장했다(「복음편지」 p.207).

다시 말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게 되고(눅 11:13; 마 12:28), 성령이 역사하면 반드시 악령의 세력들이 결박 당하게 되고(마 12:28-29), 또 성령이 역사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천사들이 동원되어 주의 일을 하게 된다(히 1:14; 단 10:10)고 류 목사가 주장한 것이다(「복음편지」 도서출판 예수생명, 1995, p.22).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천사가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사상은 중세 스콜라 신학에서 연유한 것이고, 류 목사의 천사 동원권은 김기동의 베뢰아 귀신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참조, 김기동,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p.128;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므로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 New Age 사상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고려 총회 신학부가 판단하였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고려 총회 신학부의 주장대로 천사가 성도들을 도와주고 섬긴다는 사상은 반성경적이고 반칼빈주의적이며 반개혁주의적인가? 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 구원을 상속받을 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 구절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는 “천사들은 성도들에게 대하여 영적으로 수종들어 돕게 하려고 세움을 받았다”(「성경주석」 히브리서, 공동서신, p.20)고 주해하였다. 

칼빈은 주해하기를,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영예로운 섬김의 직분을 부여하셨다... 하늘의 천사들은 성도들을 섬기는 종들로 그들의 구원을 지키도록 세움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고려하여 우리를 도와 사탄을 대적하도록 천사들을 조력자로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것이다. 이 축복은 특별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어져 있다”(Calvin`s NT Commentaries: Hebrews & Ⅰand Ⅱ Peter, p. 16-17). 

존 오웬도 같은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사들의 하는 일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행할 준비를 하면서 시중드는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들에게 보냄을 받는다... 이 지상에서 땀흘려 수고하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보며 섬기도록 그의 보좌의 지극히 영광스러운 천사들을 보내신다.”(「히브리서 주석」 엠마오, 1986년, p.27).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천사들의 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천사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항상 깨어 있으며, 우리를 보호하는 책임을 맡고 있고 우리의 길을 지도하며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해를 당하지 않도록 한다(시 91:11-12; 창 16:9; 출 14:19; 삿 13:3-20). 둘째, 우리를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천사들은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대적하여 싸우며 우리를 해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보복을 시행한다.(I. xiv. 6-7). 

히브리서 1:14에 대한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주해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의하면, 이상에서 본 대로, 천사들이 성도들을 도와 마귀와 대적한다는 사상은 중세 스콜라 신학의 영향도 아니고, 김기동의 귀신론이나, New Age 사상에게서 영향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성경적이다. 류 목사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성도들이 기도할 때 천사들을 임의로 동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되어 마땅하다고 고려 총회 신학부는 주장하지만,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보내주신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천사 동원권”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2) 죄와 사탄 일체설

▷류광수 목사의 주장: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죄도 아닙니다. 죄가 사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단이 죄를 가지고 인류를 넘어뜨리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다락방 파급단계 2). 

“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와 사탄이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EBS 양육).

 

▷류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죄와 사탄의 일체를 주장하는 류광수 목사의 인죄론은 비개혁주의 사상이요,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위트니스 리의 이단 사상은 죄와 사탄을 동일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참고, 정동섭, 「그것이 궁금하다」 p. 249).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고려 총회 신학부는 류 목사가 “죄와 사탄이 딱 붙어 다닌다”는 말을 트집 잡아 죄와 사탄을 일체로 보았다고 하는가 하면,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단 사상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류 목사가 죄와 사탄이 딱 붙어 다닌다고 말한 것은 사탄에게서 죄가 시작되었고,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바 죄의 조성자임을 뜻할 뿐이다. (참고, 전도훈련교재, p. 27). 요한도 사탄 마귀를 죄의 아비 곧 조성자라고 한 바 있다(요 8:44). 칼빈도 사탄 마귀를 모든 사악과 불의의 창시자로 보았다.(「기독교강요」 Ⅰ. xiv. 15). 

류 목사는 어디에서도 죄와 사탄을 하나로 본 바 없고, 사탄을 죄의 실체요 조성자로 보고 있을 뿐이므로(류광수,「복음편지」 p.29-30), 이단으로 판단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3) 잘못된 삼위일체론 수용

▷류광수 목사의 주장:

“더 확실한 것은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 알지 못하느뇨?’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다. 우리 안에 누가 계신단 말이지요?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 보고 삼위일체, 그래 삼위일체 교리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EBS 양육 테이프 2).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류 목사의 이 같은 주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과의 연합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는 것은 전통적 삼위일체론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류 목사의 삼위일체론은 개혁주의가 아니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고린도전서 3:16에 대한 칼빈, 모리스, 박윤선, 이상근 등의 주해를 살펴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 교회 안에 내주하신다. 특별히,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바울이 밝혀 놓은 것이다.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하는 집이라는 사실로 비추어 볼 때, 교회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것이다. 

류 목사의 「복음편지」(현장메시지 1, p. 9-10)에 보면, 영이신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요 1:14; 고전 15:45),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된다. 류 목사가 성부 하나님 뿐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영으로 알고, 영이신 삼위 하나님이 다 같이 함께 성전된 우리 안에 계신다고 주장한 그의 삼위일체론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 개혁주의적이다(참고, 「복음편지」 p.77). 

칼빈의 기독교강요(Ⅰ. xⅲ, 19)에 보면, “성자는 성부와 함께 같은 성령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부와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전체로 성자 안에 내주하고, 성자는 전체로 성부 안에 상호 내주하신다(요 14:10-11).”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으로서 상호 내주하고 교통하시기에, 하나님의 성전에 함께 거하신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16에서 바울은 성령이 성부와 함께 교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혀 놓은 것이다. 예수님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의 경우, 성부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영원히 함께 계실뿐 아니라(요 14:16), 성자 예수 그리스도 또한 성부와 함께 자기를 사랑하는 자 안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요 14:23). 

요한복음 14:23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신바 “우리”는 전체 문맥으로 보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신다(요 1:1-2)는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삼위 하나님이 교회 안에 함께 동시에 항상 계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성경적 진리이다. 

이로 보건대, 고려 총회 신학부가 류광수 목사의 삼위일체론을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3. 기독론

1) 성육신의 목적 오해 

▷류광수 목사의 주장: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두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인데, 그 중에 한 가지는 요한일서 3:8에 말씀된 대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였다(복음편지 강의 테이프 3; 류광수「복음편지」 p.186). 예수님이 마귀의 일을 멸하러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알 때 창세기 3:1-6, 16-20에서 왜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는지를 제대로 알게 된다(평신도 기초전도이론 6). 

▷류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류 목사가 제시하는 복음은 요한일서 3:8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고(마 1:21),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요 3:16). 

류 목사가 유독히 요한일서 3:8을 고집하는 이유는 김기동과 한민영의 귀신론에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참고, 김기동 「마귀론 상권」 p. 23-24; 한만영 “그레이스 아카데미 강의록” p. 222-223). 성경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 보건대, 류 목사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마귀론적으로 왜곡한 이단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류 목사가 말한바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범한 원죄와 그 죄로 말미암은 자범죄를 해결하는 것이요(류광수, 「복음편지」p. 88, 99), 둘째는 그 원죄의 조성자인 사탄 마귀를 멸하여 사탄의 권세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유케하는 것이다(류광수, 「복음편지」 p. 89,99). 

성경적으로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살펴 보면, 첫째,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함께 하시기 위함이요(마 1:21, 23), 둘째, 성경을 성취하기 위함이며(마 5:17; 요 19:30), 셋째, 자기 목숨을 대속제물로 주기 위함이요(막 10:45), 넷째,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며(눅 19:10), 다섯째, 자기 백성이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요 10:10). 그리고, 여섯째, 죄인들의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며(막 1:38), 일곱째, 악령들을 쫓아내기 위함이었다(막 1:39).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며 구원 사역을 시작하시던 때 제일 먼저 행하신 일은 더러운 악한 영을 멸하여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었다(막 1:21-28). 

또한, 예수님의 삼중직 곧 선지자직, 왕직, 제사장직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살펴보면, 첫째, 선지자로서는 복음을 선포하여 가르치는 것이요, 둘째, 왕으로서는 교회를 보호하고 통치하되 자기 백성들이 영적 대적들 곧 악령들을 대항하여 이기게 하는 것이며, 셋째, 제사장으로서는 속죄제물로 자신의 몸을 드릴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기 위함이었다(참고, 칼빈, 「기독교강요」 Ⅱ. xv). 

이상에서 성경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통해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죄에서의 구원과, 그 구원을 위하여 마귀를 멸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죄에서의 구원에 대하여는 강조하여 왔으나, 악한 영 곧 마귀를 대적하고 멸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었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무관심을 염두에 두고 류 목사는 요한일서 3:8에 근거하여 마귀를 멸하는 일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류 목사가 요한일서 3:8을 근거로 삼아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마귀 멸하는 것과 관련지어 강조한 것에 대하여 김기동과 한만영의 이단 사상과 연결지어 판단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죄와 사탄의 나라가 멸망하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바 있다(대요리문답 191문답). 

2) 사탄 배상설

▷류광수 목사의 주장:

류 목사는 마가복음 10장 45절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대속물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것은 사탄에게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다 갚아버리기 위함인 것이라 하였다(평신도 기초 전도이론 강의 테이프 6).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류 목사가 말하는 바 사탄에게 죄의 댓가를 다 갚았다는 것은 소위 사탄 배상설로서 개혁주의의 속죄론과는 상반되는 이단 사상이다. 사탄 배상설에 의하면, 사탄이 정복의 권세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한 배상으로 사탄에게 속전을 헌납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이로써 사탄에게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석방하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탄 배상설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요, 결코 마귀에게 지불한 것이 아니라. 류 목사의 주장은 사탄을 성경 해석의 축으로 삼은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그가 사탄 배상설을 알고 했을리 없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대한 류 목사의 해설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사탄 배상설로 오해 받아 마땅하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사탄에게 죄의 값으로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주었다는 류 목사의 표현은 성경적으로 전혀 맞지 않고, 개혁주의의 속죄론과도 상반된다. 그러므로 류 목사의 이 같은 주장은 시비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렇지만, 고려 총회 신학부가 지적한 대로, 류 목사의 발언은 사탄 배상설을 의도적으로 주장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고, 사탄을 죄의 실체요 조성자로 보고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산노회 하림교회는 류 목사의 주장을 김기동의 귀신론과 연결짓고 있으나, 김기동 자신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께 지불된 대가로 주장하고 있는 까닭에(참고, 김기동, 「마귀론 상」 p.115), 사실상 관련이 없다. 

류 목사의 경우,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직무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단번에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셔서 인간의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한 것(류광수, 「전도총회 전도운동에 관한 이론과 실제」 p. 109)으로 미루어 보면, 사탄배상설을 주장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말은 고의성이 없는 실수인 듯하다. 

류 목사가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에 관하여 마귀를 멸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멸망시켜야 할 대상인 마귀에게 자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류 목사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사탄을 멸하여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죄의 대가로 죄 없는 몸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다(「복음편지」 p.100-101). 

4. 구원론

1) 사탄에게서의 해방을 구원으로 주장함

류광수 목사의 주장:
사탄에게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 있다. 살려줘야 되고 사탄에게서 풀어줘야 되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는 예수를 영접해야 한다. 사탄의 권세,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지금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마다 해방 받아야 한다”(서울 전도신학원 강의).

“그리스도 메시지만 계속 말하면... 사탄이 꺾이고 하늘의 군대(천사)들이 동원되고 그렇습니다”(아비멜렉이 본 여호와).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류 목사의 구원관은 인간의 죄와 불행의 원인을 철저히 사탄과 연관 짓고 있다. 류 목사에 의하면,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요, 그 원인 제공자가 사탄이므로 사탄에게서 해방되는 것,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구원이다. 사탄의 문제만 해결되면 구원을 얻는다고 보는 류 목사의 구원관은 종말론적인 미래적 구원보다는 현세적 능력과 은사 체험을 강조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개혁주의와 거리가 멀다. 

개혁주의 구원관에 의하면, 주님을 영접할 때 사탄이 쫓겨 나가는 것이지, 사탄을 쫓아내므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동참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구원을 사탄에게서 해방 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같은 개혁주의 구원에 비추어 볼 때 류 목사의 구원론은 개혁주의가 아니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류 목사의 「복음편지: 현장 메시지 1」(도서출판 예수생명, 1993년)과 「복음편지」(도서출판 생명, 2002년)에 나타나 있는 그의 구원론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원은 단순히 예수를 믿고(입으로 고백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게 잘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p.16). 

“하나님께서는 죽음에서 건져내신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빌 1:6) 친히 완성시켜 나가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p.17). 

“구원은 흑암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신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세계까지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p.18-20). 

“구원 받는데는 우리의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의 능력으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순간, 흑암과 지옥, 운명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 받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영혼이 해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적으로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죄에 매여 종노릇할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p.48-49). 

구원은 첫째, 죄인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둘째, 구원은 생명이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다. 셋째, 구원은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의 해방이다. 넷째, 구원은 율법의 저주에서의 해방이다.(p.121-123). 

구원 받은 자의 특권은 첫째,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 둘째, 복음전파의 특권, 셋째, 예수님의 권능으로 사탄의 권세를 결박하고 이길 특권(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꺾으셨고, 신자들에게 모든 흑암의 세력 곧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넷째, 기도 응답의 특권, 다섯째,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특권, 여섯째,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가 도움을 얻게 하는 특권, 일곱째, 천국시민권 등이다(p.121-125, 206-207).

이상에서 살펴본 류 목사의 구원관을 고려 총회 신학부의 개혁주의 구원관과 비교해 보면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고려 총회 신학부의 구원관이 류 목사를 판단하는 것에 국한된 까닭이겠지만, 성경적으로나 개혁주의적으로 빈약하다. 

류 목사의 구원관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을 살펴보면, 류 목사가 인간의 죄와 불행의 원인을 사탄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연관 짓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사탄 마귀가 모든 사악과 불의의 창시자로서(「기독교 강요」Ⅰ. xiv. 15) 아담을 미혹하여 타락케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떠나게 함으로 인류 전체가 저주를 받아 불행과 비참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했다(「기독교 강요」Ⅱ. i. 1). 칼빈의 주장대로, 죄는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인류가 모든 불행과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여 전투해야 하는 것이다(「기독교 강요」Ⅰ. xiv. 14). 

칼빈의 신학을 반영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은 제 1문답과 2문답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 가운데서 복되게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둘째로, 우리의 모든 죄와 비참함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로, 그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우리가 누리는 유일한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다 치루셨고 우리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 구해낸 것이다 라고 진술해 놓았다. 또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도 우리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을 받아 범죄하였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으며, 영적 육체적 그리고 영원한 모든 불행들을 당하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제 6장 1항, 2항, 6항). 

이 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가르침들에 비추어 보면, 류 목사가 인간의 죄와 비참함과 불행을 우선적으로 거론하고(참고, 「복음편지」의 첫마디, “왜 인간에게는 행복이 없는가?”), 그 원인을 사탄 마귀와 연결지은 것은 개혁주의 신학과 완전히 일치한다. 

고려 총회 신학부는 류 목사의 사탄 결박권과 관련하여 주님을 믿어 영접할 때 사탄이 쫓겨 나감으로 사탄 마귀를 구태여 쫓아내려고 마귀와 대적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밝히 말한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여 전투해야 하는 것이다.

구원과 관련하여 성경도 마귀와의 싸움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우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구원을 성취하는 사역을 하시던 때 먼저 유대 광야에서 사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던 중 마귀를 물리치셨고, 공생애의 첫 번째 사역으로 악한 영들을 쫓아내셨고(막 2:21-28, 32-34), 그의 제자들에게도 악령들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으며(막 3:15), 제자들은 예수의 권세로 많은 악령들을 전도 현장에서 쫓아냈다(막 6:13). 또한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악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으며(막 9:29), 믿는 자들에게는 그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다고 친히 말씀하셨다(막 16:17). 

가룟 유다에게 마귀가 들어가(눅 22:3; 요 13:2, 27) 예수를 배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하였을 때, 예수님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게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십자가에 매달려 온갖 수치와 멸시를 당하시며 마침내 죽으심으로 완전히 마귀에게 패배 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악한 통치들과 권세 잡은 영들을 무장해제하고 무력화시켜 밝히 드러내어 즉 만천하에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승리하셨던 것이다(골 2:15). 

이렇듯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마귀를 완전히 결박하여 무장해제하고 무력화시켰으나, 마귀는 여전히 활동하기 때문에(예,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마음에 사탄이 가득함; 행 5:3) 바울은 선교현장에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였고(행 19:12), 믿음을 배반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탄에게 넘겨주었으며(딤전 1:19-20), 바울 자신이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던 전도의 현장에서 악한 사자같은 마귀(참고, 벧전 5:8)의 입에서 주님에 의해 구출 되기도 하였다(딤후 4:17).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했고(딤전 6:12), 자신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 같은 싸움을 싸웠던 것이다(딤후 4:7). 이 같은 까닭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던 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우리를 악(또는, 악한 자)에서 구하소서(즉, 건지소서)” 하라고 하신 바 있다(마 6:13). 

마귀가 여전히 지금도 성난 사자처럼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거짓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였다(약 4:7-8), 베드로도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믿음의 시련이 있는 성도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할 뿐 아니라(벧전 4:7)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 하였다(벧전 5:8-9). 뿐만 아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라고 명령하였다(엡 6:10-17).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으로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엡 6:18)고 하였다. 바울은 또한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반대하는 자들로 하여금 회개하여 마귀에게 사로잡혀 마귀의 뜻을 좇던 데서 돌이켜 정신을 차리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도록 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딤후 2:22). 

고려 총회 신학부가 주장한 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마귀가 쫓겨나감으로 우리가 죄와 마귀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는 것이 사실이지만(롬 6:17-22), 죄의 실체인 마귀는 여전히 기회를 틈타 우리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발호하고 있다(롬 7:8,11). 그런 까닭에, 예수님 뿐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 등이 말씀하고 가르치신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무력화시키고 승리해야 한다.

이 같은 사실로 인하여, 루터를 비록하여 많은 찬송가 작사자들이 마귀와의 싸움을 주제로 노래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진리의 검을 앞세우고 힘차게 싸워보세” “힘차게 일어나 용감히 싸워라 저 마귀 물리친 옛 성도들같이” “주님의 강한 손 내 능력되시면 저 마귀 능히 물리쳐 승리하게 되리라” “천국에 있는 천군 천사 우리를 지키리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튼튼한 갑주 입고... 용맹스럽게 싸우세 승리는 내 것일세”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믿는 사람들은 군병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원수 마귀 모두 쫓겨 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마귀 권세 힘써 싸워 깨쳐 버리고...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온 인류 마귀 궤휼로 큰 죄에 빠지니 진리로 띠를 띠고서 늘 기도드리세” “악한 마귀 권세를 모두 깨쳐 버리고 승리하신 주님과 승전가를 부르세...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한국찬송가공회, 「찬송가」 384장-402장, “분투와 승리”). 

우리가 바울의 경우에서처럼, 특별히 전도의 현장에서 마귀와의 치열한 싸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 믿음에 굳게 서서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고 성령으로 기도와 말씀과 찬송으로 힘써 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친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하시고(롬 8:34) 성령께서도 친히 탄식으로 중보기도하시며(롬 8:26),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천군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돕게 하신다(히 1:14; 계 8:3-5; 참고,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유대 광야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가운데 마귀와 대적할 때 천사들을 보내어 도웁게 하신 바 있다. 막 1:13; 눅 22:43).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고려 총회 신학부가 판단한 대로 구원은 사탄에게서 해방되는 것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되지만, 구원을 위하여 사탄과 힘써 싸우는 일을 소흘하게 여겨서도 안된다. 고려 총회 신학부는 성경과 개혁주의의 구원론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류 목사의 구원론을 적절하게 평가했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류 목사가 즐겨 사용하는 “사탄결박권”이라는 용어는 마태복음 12:29에 근거한 것인바, “결박하다”는 말이 “쫓아내다”(마 12:28) 또는 “무장해제하여 무력화하다”(골 2:15)의 의미로 쓰인 점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권세를 주신 사실(막 3:15; 6:13; 16:17)을 고려하면, 성경적으로 부적절한 것이 결코 아니다. 

2) 궁극적 구원의 부인과 반구원설 주장

류광수 목사의 주장:

한번 구원을 받아도 넘어질 수 밖에 없고, 죄를 지을 수 있다. 죄를 반복적으로 짓게 되면, 고린도전서 5:5 대로,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이 멸하시고 영혼을 건져 주신다(서울전도신학원강의; 다락방 개요 8).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고린도전서 5:5에 대한 류 목사의 설명에 의하면 그의 구원론은 반쪽 구원론이다. 이 같은 반쪽 구원론은 김기동이 말하는바, 육체는 사탄에게 내어줌으로 멸하게 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자는 것(김기동, 「마귀론 상」 p.145)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요, 또한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바, 육신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여 영이 주님의 날에 구원 받을 수 있게 한다(「고린도전서」 p.9)는 해석을 받아들인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전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육체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혼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같은 반쪽 구원론은 성도들이 성화의 과정에서 넘어져 죄를 범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개혁주의 구원론과 상반되는 것이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고려 총회 신학부가 고린도전서 5:5에 대한 해석을 자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류 목사도 좀더 구체적으로 이 구절을 언급한 것이 그의 「복음편지」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글들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또 칼빈과 개혁주의자들의 주해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류 목사는 마귀에게 내어준 상태에 관하여, 미신에 빠져 살다보면 결국은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현실적으로 각종의 질병과 어려움과 실패를 맛보다가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복음편지」 p.99, 144, 165, 206). 

칼빈과 모리스와 박윤선과 이상근 등이 고린도전서 5:5을 주해한 것을 종합해 보면, ‘사탄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디모데전서 1:20에 비추어 볼 때 교회 밖으로 출교하는 징계를 의미하고, ‘육신은 멸망을 당한다’는 것은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과 고린도후서 12:7의 육체의 가시, 그리고 신명기 28:20-24에 나타나 있는 바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은 각종의 질병, 욥기 2:6-7에서 욥이 당한 바 사탄이 준 질병 등에 비추어 볼 때 출교의 결과로 당하는 질병의 고통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는 것은 교회의 징계가 일시적인 것으로 주 예수의 날에 그 범죄한 자가 회개하고 구원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개혁주의자들의 주해에 비추어 보면 류 목사의 말이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주해와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 총회 신학부는 류 목사가 고린도전서 5:5에 관하여 말한 것을 놓고서 궁극적 구원을 부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류 목사는 말하기를,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고(「복음편지」 p.81),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병까지도 친히 담당하셨기 때문에(사 53:4-5; 마 8:17)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질병에서의 치유도 가능하며(「복음편지」 p.231), 하나님은 그가 함께 하시는 자녀들이 실수를 범하여 넘어질지라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인도하시며 성화시켜(「복음편지」 p.148)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완성시켜 나가신다(「복음편지」 p.17)고 했다. 

아무도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를 결코 멸망시킬 수가 없다(롬 8:31-39)고도 말했다(「복음편지」 p.148). 실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였으며(마 26:69-75), 부활의 주님을 보고서도 원래대로 도망가기도 했지만(요 21:3),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먼저 찾아 주시고 사랑을 확인시키는 가운데 구원의 은혜를 끝까지 누리게 하셨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다.(다락방 전도운동 메시지 자료모음, 2011년 1월 15일자 설교,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발견”: 마 17:1-8). 

이로 보건대, 류 목사가 성도들의 궁극적 구원을 부인했다고 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은 적합하지 않다. 사실상, 류 목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예수의 생명을 가진 성도마다 마침내 내세에 천국 보좌에 앉게 된다(엡 2:6)는 사실을 인하여 구원의 확신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참고, 「복음편지」 현장메시지 1, p.12-13). 

3) 예수 재영접설

류광수 목사의 주장:

류광수 목사에 의하면, 구원을 얻는 데는 다섯 단계가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단계(요삼 1:2), 둘째, 믿는 단계(요 3:16), 셋째, 영접 단계, 넷째, 시인하는 단계(롬 10:9-10), 다섯째, 나타내는 단계이다(다락방 개요, 수영로 8-9; 「복음편지」 p.168).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류 목사가 말하는 영접은 요한일서 3장 8절의 말씀 곧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귀를 멸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능력이 오고 기도 응답을 받는다는 논리이다.

 

요한복음 1:12에서 “영접하다”와 “믿는다”는 단어들이 현재분사형으로서 믿음의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류 목사는 영접과 믿음을 별개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믿음의 단계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류 목사의 단계 구분은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바, 찬성하고 인정하고 영접하는 것이 믿음이다고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성경요도」 1권, p.105-106). 

사실상, 류 목사가 말하는 영접은 예수를 믿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에서의 은혜 체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류 목사가 말하는 것은 마귀론에 근거한 예수 재영접설로서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믿음에 관한 사상과 흡사하기 때문에 개혁주의가 아니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먼저 류 목사가 말하는 바 믿음의 다섯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류 목사가 말하는 믿음의 첫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깊이 아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성경 구절인 이사야 53:5, 요한삼서 1:2, 요한일서 3:8 등을 고려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육 간에 강건해지며,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로 마귀를 멸하고 승리하셨음을 지적으로 알 때 믿음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성경에 계시된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요한복음 3:16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그의 유일하신 아들을 보내어 주시고 그를 믿음으로 영생 얻게 하는 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알기 시작한 단계에서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단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중심 자리에 모시고 다녀야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계시어 우리의 삶을 어디에서든 주관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신뢰한다. 

넷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을 시인하고 간증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10:9-10, 마태복음 10:32-33, 16:13-18, 그리고 사도행전 2:21 등의 구절들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공개적인 신앙 고백과 간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면 성령의 능력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8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믿음의 최고의 단계는 성령의 능력을 얻어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참고, 「복음편지」 p.168). 

류 목사가 말한 바를 살펴보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에 영접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믿는 것이 곧 영접하는 것이다(참고, 「복음편지」 p.76). 그가 말하는 믿음의 단계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정확한 지식(notitia), 감정적 찬동(assensus), 신뢰(fiducia), 간증(confession), 그리고 능력의 증인(witness)이다. 이 같은 류 목사의 단계 구분은 칼빈이 말하는 신앙의 요소와 관련된 단계들과 일맥 상통한다(참고, 「기독교강요」 3권 2장). 그래서, 벌코프와 박형룡, 레이몬드 등의 신앙관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참고, 박형룡, 「교의신학:구원론」 p.249-254).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지속되는 것이지만, 시작이 있고 완성이 있으며(참고, 히12:2), 따라서 믿음의 성장 단계가 있는 것이다. 로마서1:17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문구에 대한 어거스틴과 칼빈 등의 주해에 의하면 믿음에는 초보적 단계로부터 성숙한 단계로의 발전이 있다(참고, 이상근,「신약주석 로마서」 p.48). 또한 성숙한 믿음은 순종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롬 1:5; 참고, 박형룡, 「교의신학: 구원론」 p.255).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류 목사의 신앙의 단계 구분은 개혁주의자들과 일맥 상통하고 있기 때문에, 위트니스 리와 연결지어 고려 총회 신학부가 류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5. 교회관

류광수 목사의 주장:
류광수 목사에 의하면, 전도에 관심이 없는 기성교회는 사탄의 교회로 간주된다. 

“한국교회 98%가 지금 시험에 들었습니다... 한국교회 90%가 싸움해서 쪼개져 생겼대요. 그것도 내가 낸 통계가 아니고... 책에 나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국교회 98%가 마귀에게 잡혔어요... 인기, 명예 따라 움직이면서 복음은 하나도 안 전하고 복음 전하는 것 다 막고... 너무 한국 교회가 컬컬해요”(다락방 개요 - 수영로 11).

류 목사의 주장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

류 목사는 기성교회를 사탄이 역사하는 종교로 간주하고 교회의 중직자들과 목회자들에 대하여 상당한 혐오감을 노출해 왔다. 그는 기성교회를 무시하고 자신의 전도 운동만 부각시키면서 균형과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덕목을 상실하였다. 이로써 성도간의 이간과 반목 질시, 심지어는 교회가 분열되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

2004년 2월 예장 전도 총회(당시 총회장 정은주 목사)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예장 합동 교단을 비롯하여 한국 교회 앞에 기성교회를 폄하하는 발언에 대하여 사과하고, 한국교회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전하는 일에 합력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이로써 2004년 9월 제 89회 예장 합동 총회에 복귀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기성교회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표현을 사용한 류 목사의 발언들을 고려 총회 신학부가 윤리적으로 부덕한 것으로 책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행 20:28)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며(고전 3:16),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고전 1:2; 엡 5:27)일 뿐 아니라, 칼빈의 말대로, 성도들의 어머니이자 학교(「기독교강요」 Ⅳ. i. 4)이기 때문에, 비록 지역교회가 고린도교회와 같은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 안에 허물과 분열과 부패함이 있을지라도, 바울이 교회를 사랑할 뿐 아니라 자랑했듯이(롬 1:8; 고전 1:4)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존중해야한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가 성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형제 사랑으로 연합하고 하나님의 복들을 서로 함께 나누어 갖기를 힘써야 한다고 가르쳤다(「기독교강요」Ⅳ. i. 3). 

어떤 반기독교적 인물들은 지구상에서 교회가 가장 타락한 제도요 하나님이 죽은 무덤이 되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복을 특별하게 많이 받아 누리고서도 부패 타락한 교회의 겉모습을 보면, 장미꽃이 시들면 꽃들 가운데 가장 추해 보이듯이, 지구상에서 교회가 가장 타락한 제도로 보일 것이다(참고, 스프롤, 「보이지 않는 손」 p.188-189). 그러나 교회는 복음으로 진격하는 힘이 지옥의 권세보다 더 강하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자신의 몸된 교회를 보호하시며 성령이 교통하시며 지키시고 각종의 은사들을 주시기 때문에, 교회가 비록 죄인들로 구성되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지구상에서 가장 거룩한 제도이다. 

칼빈이 말했듯이, 말씀 선포와 성례 집행이 교회 안에서 건전하고 순수하게 계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어떠한 도덕적 과실이나 병폐가 있더라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데에 문제가 전혀 없기 때문에(「기독교강요」Ⅳ. ii. 1), 우리는 교회를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교회를 폄하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기성교회 특히 보수적인 장로교회와 목회자들은 최근의 교회 성장의 정체 현상과 세상으로부터의 맹렬한 비난(예, 기독교를 개독교로 비하함)을 겸허히 받아들여 반성할 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적 은사 중지론으로 말미암아 순복음 계열의 교회들로 장로교 성도들이 상당수가 수평 이동하였고, 구원의 확신을 강조해 주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구원파 계열의 집단으로 이동하였으며, 복음의 진수를 밝히 가르치는데 소흘하다가 신천지 이단에게 성도들을 빼앗기고, 지역사회 봉사와 지역사회 안에서의 관계 전도를 소극적으로 함으로 말미암아 로마가톨릭교회에게 성도들을 빼앗기고 있는가 하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 보다는 교권 싸움하다가 교회가 분열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세상 마귀에게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전도 총회는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폄하하는 대신 존중하고 협력해야 하고, 기성교회는 전도하는 일에 더욱 힘쓸 뿐 아니라 교회의 침체 현상과 반기독교인들의 비난의 여론에 대하여 겸허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결론적 평가

고려 총회 신학부가 류광수 목사와 전도총회를 판단함에 있어서 권신찬의 구원파와 김기동의 귀신론과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예수 재영접설 등에 영향을 받은 사탄신학 또는 축사신학의 사이비 기독교 운동으로 결론지었다. 

고려 총회 신학부가 류광수 목사의 신학 사상을 판단하는 신학적 배경에는 계시종결론과 은사중지론이 있다. 계시종결론에 의하면 성경 외에는 계시가 없다는 것이고, 은사 중지론에 의하면 계시적 은사인 예언과 방언의 은사와, 계시를 확증하는 표적(sign)인 이적을 행하는 능력적 은사인 치유와 축사의 은사가 지금은 중지되고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계시종결론과 은사중지론은 워필드의 신학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은 박형룡의 신학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박형룡의 「교의신학: 서론」에 보면, 구원의 방도는 오직 성경에만 있고, 오직 성경만이 구원을 위한 계시이며, 성령은 진리의 새 계시를 주시지 않고, 이미 계시된 진리를 사용하여 조명하시는 까닭에 다른 계시가 불필요하다. 이제는 다른 복음이 없듯이(갈 1:8-9) 다른 계시도 없는 것이다(p.288, 289, 295).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절정으로서 최고의 최종적 계시로서 하나님을 확실하고도 충분하게 계시하셨기에(요 1:18) 다른 계시가 필요없다. 이 같은 박형룡의 글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는 진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종결되고, 이제는 성경 외에 계시가 없다고 보고서 계시 종결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박형룡의 「교의신학: 신론」에 보면, 계시의 증명에 필요한 이적은 정경의 완성과 함께 중지 되었고, 기도를 통한 섭리적 응답으로 치유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p.479, 488, 489). 이 같은 박형룡의 글에 근거하여 은사 중지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박형룡은 베르카우어의 주장과 피선교지에서의 많은 이적의 역사들을 인하여 이적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언제라도 이적은 있을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p.491-492). 또한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계시를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뜻을 알리신다(즉, 조명하신다)고 했다(「교의신학: 서론」p.295).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박형룡의 정의에 의하면, 계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거나 혹은 진리를 시달하는 행위와 그 행위로부터 얻어지는 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교의신학: 서론」p.189). 이 계시에는 자연계와 역사(history)와 양심을 통한 일반계시와, 신현(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예언과 이적을 통한 특별계시가 있다. 그런데 최고의 신현, 최종적 예언, 최고의 이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기독론적으로 볼 때 이제는 다른 새로운 특별 계시가 더 이상 필요없다. 

하나님의 계시와 이적에 대한 박형룡의 글을 정확하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새 계시와 관련해서 계시가 종결되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서 계시와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자신을 알리신다고 하였다(「교의신학: 신론」p.295). 그리고 칼빈도 말했듯이, 하나님은 전체 자연계와 역사와 양심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오늘도 여전히 항상 자신을 계시하신다. 일반계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 그 계시를 밝혀주는 특별계시도 계속되어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경 말씀이 항상 있고 살아있다고 하였다(벧전 1:23).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다(히 4:12). 즉, 지금도 성령은 은혜의 외형적 방편인 하나님의 말씀(말씀선포와 묵상), 기도와 찬송, 성례, 성도의 교제 뿐만 아니라 자연계와 섭리 및 이적 등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묵상하거나 선포할 때, 성경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과 자신의 뜻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신다. 또한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인 점을 고려해 보면,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박형룡의 신학을 오해하여 극단적인 계시 종결론과 은사중지론에 치우쳐 하나님의 계시활동과 계시적 은사와 능력적 은사를 제한하는 것은, 목회현장과 선교현장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곡해하게 만든다. 이 같은 곡해로 말미암아 고려 총회 신학부가 류광수 목사의 마귀결박론(축사론)을 사이비 기독교운동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전도 총회의 더 많은 자료들 및 목회 현장과 전도 현장에 대한 조사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되겠지만, 고려 총회 신학부가 연구하여 판단한 자료를 중심으로 볼 때 류목사에 대한 고려 총회 신학부의 판단은 적합하다고 볼 수가 없다. 

2011년 4월 16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신학위원회
위원장 나용화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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