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선교사로 불렸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가 주장했다. “하나님께서 이 거리를 찬미의 거리로 만들겠다고 제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빌딩을 하나 매입해서 찬미의 제사를 드리면 이 도시가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리는 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0억원을 융자 받아 그 거리에 위치한 어떤 건물을 매입했다. 그가 소속한 교회에서 이자도 일정 기간 감당해 주기로 약속까지 해줬다. 이 선교사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매주 한 날을 정해 이 건물에서 찬양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나님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첫 시도였다. 이 선교사의 ‘하나님의 음성’이란 것을 믿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에 헌신했다.
그러나 이 선교사의 사역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미약했다.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는 그 장소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매 회 줄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이 선교사는 많은 애를 먹어야 했다.
이자를 감당해 주던 후원교회도 지쳐갔다. 결국 100억원에 대한 이자를 대신 처리해 주다가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혹처럼 그에게 채무부담을 안겨 주던 빌딩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헐값에 매각됐다. 그의 주장을 현실화시켜줄 것만 같던 전초기지는 경매에 처분되는 등 수난의 빌딩이 돼 버렸다.
신실(信實). 믿을 신에 열매 실 자를 쓴다. 믿음직하고 착실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신실함’ 아닐까. 하나님의 음성이란 것을 들었다면 그런 주장에 걸맞게 그 행동과 태도 또한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그리고 그 열매도 애초에 말했던 그대로 실현돼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그가 들었다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자기 욕심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이란 절대성을 악용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귀의 속삭임에 훅 간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면, 그리고 음성을 들려준 분이 진정 하나님이셨다면 그렇게 쉽게 계획이 변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갖고 장난질하는 분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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