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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영성과 기독교적 영성에 본질적 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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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영성과 기독교적 영성에 본질적 차이 있다”
  • 정윤석
  • 승인 2009.07.15 0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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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목사(<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인)

이상화 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인)가 CGN TV(www.cgntv.net)에 기고하는 정기 칼럼에서 ‘영성’이 종교적 영역에만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2009년 7월 9일 ‘영성의 오·남용 시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영성을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과거에는 분명히 종교적 영역에만 국한된 특화품이었다”며 “현재 영성은 사회의 중요한 주제가 되고 ‘영성 추구’가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쉽게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일례로 엘빈 토플러와 켄 블레차드를 들었다.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는 일찍이 ‘제 5의 물결은 영성’이라고 말했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 켄 블레차드는 자신을 CSO(Chief Spiritual Officer)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CSO는 자신이 영적 지도자로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목사는 “최근 경제학에서는 ‘영성경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것은 “경제적 효율성은 수동적 명령수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영성에서 나온다고 보고 ‘영성경제’라는 말을 만들어 내어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영성’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할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이란 단어가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라며 “진정한 영성추구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따르고자 하는 삶의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성’ 혹은 ‘영성추구’를 강조하는 분들 가운데 종종 자기 목적 달성의 도구로 ‘영성’과 ‘영성추구’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성추구의 최고 목표는 ‘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데도 말이다.

이 목사는 시대정신이 말하는 영성과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영성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며 시대정신으로서의 영성에는 ‘나’가, 기독교적 영성의 본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구분했다. 시대정신이 말하는 영성에는 ‘나’가 절대 지존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영성과는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영성수련회’를 많이 가지는 때 “영성추구의 진정한 핵심 주제와 단어인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십자가’를 확인하는 귀한 여름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CGN TV에 올린 이상화 목사의 CGN칼럼 전문이다.

이상화 목사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
한국소그룹목회연구원 대표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편집인
사랑의교회 협동목사
‘영성의 오남용 시대’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자신의 성찰을 통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지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른바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런 삶의 모습은 과거에는 분명히 종교적 영역에만 국한된 특화품 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일찍이 제5의 물결은 ‘영성’이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꼭 그의 표현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돌아보니 영성이 사회의 중요한 주제가 되고 ‘영성 추구’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아예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이곳 저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례로 경영 관리와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로서 세계적 경영컨설턴트로 알려져 있으면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와 <겅호>, 그리고 <1분 경영수업>등의 책으로 유명한 켄 블랜차드는 자신을 CSO (Chief Spiritual Officer)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영적 지도자로서 자신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경제학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은 수동적 명령수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영성에서 나온다고 보고, ‘영성경제’라는 말을 만들어 내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지능지수인 IQ(Intelligence Quotient)보다는 감성지수인 EQ(Emotion Quotient)를 강조해야 한다는 하다가 이런 주장을 넘어 이제는 영성지수인 SQ(Spiritual Quotient)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영성’이 일반 사회에서까지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는 것을 보면 영적인 영역을 다루는 교회에서도 ‘영성’이 주요 주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영성’이란 단어가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기독교 안에서 진정한 영성추구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따르고자 하는 삶의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영성’ 혹은 ‘영성추구’를 강조하는 분들 가운데 종종 자기 목적 달성의 도구로 ‘영성’과 ‘영성추구’를 활용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아연실색할 때가 있습니다.

1년여 전에 발간된 <월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창간호>에 영성신학의 대가로 알려진 유진 피터슨이 쓴 ‘영성, 가장 오용되고 있는 단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 속에서 유진 피터슨은 한 영적인 여성을 만난 경험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 여성은 훌륭한 사람이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녀 자신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 증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것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의 문제를 더 잘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오로지 나, 나뿐입니다. 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가장하고 있는 ‘나’뿐입니다. 그녀의 영적인 말투가 우리를 무장해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27쪽).

영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분명히 ‘나’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삶의 통찰과 자기 성찰을 통한 창의적 가치창출을 ‘영성’ 혹은 ‘영성추구’라고 일컬으며, 이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가 절대지존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영성과는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께서 “영적 삶을 정의하는 하나의 방법은,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염증이 나고 물려 버려서, 더 나은 어떤 것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여름은 교회가 영성수련회를 많이 가지는 귀한 때입니다.

영성이라는 단어가 오남용되고 있는 시대 속에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나’가 아니라 영성추구의 진정한 핵심주제와 단어인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십자가’를 확인하는 귀한 여름을 보내게 되기를 마음 깊이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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