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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산부인과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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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산부인과가 돼야 한다"
  • 정윤석
  • 승인 2007.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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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칼빈주의연구원 대표 정성구 총신대 전 총장

백발이 성성한 정성구 박사(68, 한국칼빈주의연구원 대표, 총신대 전 총장)는 '한칼연'을 방문한 기자를 자리에 앉혔다. 한국칼빈주의연구원(한칼연)과 관련한 자료는 이미 다 구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개설한 한칼연은 이미 언론사에 수없이 보도가 돼 기사를 쓰기 위한 자료들은 충분하다는 의미다. 본 사이트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도 한칼연에 대한 탐방 기사를 쓴 바 있다. 인터뷰 자체가 그에게는 되풀이 되는 일상의 하나인 셈이다.

그는 ‘CD를 보면 자료가 다 나온다’, ‘새로 쓴 책에도 도움되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며 기자의 취재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 사실 이런 말들은 기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다.

기자와 마주 한 지 10분여가 지났을 때 그의 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국교회에 대해 노학자로서 한 마디 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이 있고 나서였다. “한국교회가 너무 가벼워지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의 현재 모습에 대해 염려 섞인 지적부터 내 놓았다.

“성경에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진중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의 무게감이 뚜렷하다. 인내의 깊이가 느껴지는 삶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는 엔터테인먼트화돼 가고 있다. 성도들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순간적 즐거움에 취해 있다. 하나님을 동전을 넣으면 커피를 내 놓는 자동판매기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커피가 나오지 않으면 자판기를 마구 두드리는 조급함까지 보이고 있다.”

이 세상을 즐기는 기독교, 이 세상에 만족하는 기독교가 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중국제=싸구려’라는 인식이 팽배한 때 정 박사는 중국 지하교회 교인들의 신앙만큼은 ‘싸구려’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가 10년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정부로부터 핍박받는 지하교회의 성도가 ‘주필재러(主必再來)라고 쓴 글을 봤다. 예수를 믿으면 죽는 상황에서도 주님이 반드시 오신다는 재림신앙. 그것이 한국교회에는 점점 약화돼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박사는 “종교개혁자 후스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진리를 지키라’며 화형당했는데 오늘날의 신자들은 진리를 위해 고민하고,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신앙보다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신앙’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런 데서 온다”고 지적했다.

“강단부터 변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강단의 개혁’을 첫 번째로 제시했다. 그가 제시하는 강단의 개혁은 역설적인 면도 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신앙’ 그것을 위해 목회자들은 율법적 설교를 해야 할까? 즉, 이렇게 살면 되고, 저렇게 살면 안 되고···. 정 박사는 “율법적 설교는 복음설교가 아니다”며 “강단은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만이 신학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기준에 서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옳은 말’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그릇을 핑계로 진리 자체를 희석시키고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변화를 위해 그는 둘째로 목회자들이 ‘야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교자에게서 제일 큰 시험은 ‘야망’이다. 야망이 목회자를 죽인다. 목회의 청사진과 비전을 갖지 말란 의미가 아니다. 야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비전’과는 다르다. 이것이 교회 세속화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교회가 작으면 움츠러 들고, 교회가 크면 목에 힘들어가고···. 목회자들은 목회의 비전과 야심을 구분해야 한다. 야심, 야망을 갖고 강단에 서게 되면 설교도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된다. 복음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옆의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결과가 좋았다더라고 하면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카피’하다 보니 어느덧 교회는 ‘속빈 강정’이 되고, 목회는 세속화돼 간다고 정 박사는 통렬히 비판했다. 잘못된 경험이 잘못된 전통을 낳고, 잘못된 전통이 굳어지면 잘못된 교리로 나간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교회에 이단 추수꾼들이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도 교회 자체의 ‘세속화’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얼마 전 자신이 한 실수를 얘기했다. 우연히 방송을 들었다. 너무도 은혜로운 설교(?)가 나왔다. 나중에 그 방송을 확인해 보니 불교방송이었다. 설교는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 승려의 법어였다.

“기독교의 설교와 불교의 법어를 구분을 못할 정도로 비슷한 시대입니다. 그만큼 강단이 ‘성공학과 관련한 좋은 예화’, ‘삶에 도움이 되는 격언들’로 점철돼 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는 복음 설교가 넘쳐야 합니다. 그게 강단의 제 1 사명입니다. 복음설교는 간단합니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해야 합니다. 역사 가운데 유일한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와 달리 성경을 ‘영해’를 하거나 수없는 격언들과 ‘성공학’을 나열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는 한국교회는 ‘산부인과가 돼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산부인과가 조용하면 어떡하나? 산모의 진통과 아기의 울음소리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좋은 얘기들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교회는 ‘좋은 얘기’를 들려 주는 곳이 아니다. 한국교회에 자기 개혁의 진통 소리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정 박사 개설한 ‘칼빈박물관’에는 최근 100여 명의 합동측 목회자들이 다녀갔다. 경기도 분당 연정교회에서 열린 합동측 총회 기간을 이용해 총대들이 정 박사의 칼빈박물관을 방문한 것이다. 정 박사는 세계 유일의 칼빈박물관을 통해 점점 옅어지는 개혁자의 숨결이 한국교회에 골고루 퍼져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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