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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단에서 느꼈던 정만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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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단에서 느꼈던 정만은 그립다"
  • 정윤석
  • 승인 2007.03.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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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하)

얼마 전 전화가 왔다. 이단에 빠진 아내와 가정에서 갈등을 겪는 한 집사님이다.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아무 일도 못하겠어요. 도대체 그 사람들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는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가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굉장히 궁금해 했다. 그리고 긴 터널과도 같은 극과 극의 대치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했다.
좌담회를 마련했다. 교주를 극단적으로 신격화하는 일부 이단단체에 다녔던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단체에 빠진 사람들이 가족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주 신격화 단체에 빠져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심리를 가졌으며 어떻게 사회와 가정과 정통교회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소외시키게 됐을까?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 단체에 나오면서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심리적 변화를 갖게 됐는지와 나온 후 심리적 공황 상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도 답변을 들어보았다. 이 좌담회를 통해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에 빠진 가족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녔던 이단단체와 나이와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하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으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A단체에 각각 3년 반, 1년 반 동안 빠졌던 40대, 30대의 여신도 두 명, 교주를 이긴자로 믿으며 신격화하는 B단체에 4년, 1년 반 정도를 빠졌던 20대의 남녀, 교주를 재림주로 믿으며 신격화하는 C단체에 6개월 동안 다녔던 20대의 여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복음으로 치유하는' 안산 상록교회(진용식 목사, www.jesus114.net)에서 신앙상담을 통해 정통교회로 개종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회심자들의 교주 신격화 단체는 물론, 이들의 이름 등은 모두 이니셜로 처리했다. <편집자 주>
 
진행: 정윤석 기자
참석자:
J 씨(44, A단체 3년 반 출석),
K 씨(32, A단체 1년 반 출석)
C 씨(26, B단체 4년 출석)
G 씨(22, B단체 1년 반 출석)
M 씨(23, C단체 6개월 출석)


 

'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상) [이전기사보기]
'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중) [이전기사보기]

- 다녔던 단체는 다르지만 모두들 상록교회에서 이단상담을 받고 나오게 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온 이후 가장 걱정되는 것, 즉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또는 가장 극복하고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나?

G 씨: 나는 이단단체를 나오고 나서도 내가 정말 다시 상록교회에서 미혹 받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K 씨: 여기도(상록교회) 가짜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거지.

G 씨: 한번 속았기 때문에 또 미혹된 거 아닌가? ‘만에 하나라도 교주 신격화 단체가 진리였으면 어떡하지? 나 또 미혹된 거 아닌가?’라고 의심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혼란을 일으키는 시간이 있었다. 이런 마음이 3, 4개월은 갔다. 줄지어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데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예배드리고 교제하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

K 씨: 그러다가 이단단체로 가면 교주 XX하나님이 ‘왜 가셨어요?’라고 말할 게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수재민을 위해 기부금을 낸 사람의 명단이 방송사에서 나왔다. 그 교주의 이름도 떴다. 이름을 보니 너무 보고 싶었나 보다. 나도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보고 싶다. 내가 그 이단단체에 갔을 때 늘 달려 나와 반겨 주던 그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그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J 씨: 그런 이단에 비하면 정통교회는 태만해 있다. 교주 신격화 단체에서는 누군가 갈등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만나고 저 사람이 챙겨주고 너무 너무 마음을 써준다. 총력을 기울이는데 여기는 그런 것이 없다. 겨우 이곳에 오면 목자들이 챙겨 줄 뿐 다정다감하게 챙겨 주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이단에서 느꼈던 끈끈한 정을 갑자기 끊었는데 여기서 채울 수 없다면 힘들어진다.

K 씨: 그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이 사람들은 자기 집 물건을 갖고 와서 다른 사람들과 정말로 유무상통한다. 초대교회 때 모습으로 산다. 옷을 다 갖고 오면 우리 집 아이 옷을 다른 아이가 입고 있다. 그리고 다른 아이 옷을 우리 아이가 입는다. 그리고 신랑에게는 아이 옷을 샀다고 하고 헌금을 비축한다. 윗 선들은 이게 사업이 된다.

G 씨: 정말 사람들이 아직도 보고 싶다.

사회자: M 씨는 이제 1개월이 됐다. 요즘 마음은 어떤가?

M 씨: 이제 적응해가는 기간인 거 같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시간을 교주 신격화 단체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회복해가는 것 같다.

그래도 옆에서 내가 고민하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아 내가 거쳐야 할 과정을 겪는 거구나’라며 안도한 적이 있다. 교리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거나 의심이 찾아올 때마다 ‘너는 괜찮아 이 시기에는 그것이 당연한거야’라고 사람들이 말해줬다. 그러면 내가 생각한 것에 대해 자책하지 않고 자존감도 상하지 않게 된다.

K 씨: 나는 후속조치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혼자 있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교리가 잘못됐다고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닌 거 같고···. 교주 신격화 단체가 진짜는 아니었을까? 교리는 성경적으로 깬 거 같은데 마음에 잔해가 남아 있다. 기도할 때 교주의 이름이 떠오를 때면 나 스스로를 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첫날 교육을 받고 자살을 연습했다. 손목을 가르고, 목을 매고, 아파트에서 떨어지고···. 오만 생각을 다했다. 그런데 남편이 신앙도 없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애써주고 힘이 돼주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이제 기도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 1개월, 6개월, 1년 등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심리적 변화를 거쳤는지 말해달라

C 씨: 1개월부터 6개월 정도까지는 감사의 생활이었다. 그런데 개인의 구원에 대한 감사였지 어떤 공동체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확실히 구원을 받았나’라고 고민하기도 했다. 1년이 지나자 비로소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 이단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말이나 일반 교인들이 삼갔으면 하는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K 씨: 이단에 나와서 그 단체의 잘못된 점에 대해 성경공부를 하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이제 그만 좀 해라,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 ‘뭘 쫓아다니면서 더 배우냐?’라고 했는데 정말 눈물이 났다. 머리 속에서는 계속 교주 하나님이 얘기한 것이 떠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줬다. 나도 정말 머리 속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싸움으로 머리가 터질 정도로 내적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이것을 이해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G 씨: 한번 실패를 하면 또 실패를 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런데 가족 중 누군가가 ‘너는 그렇게 실패를 했잖아? 그러니 그런 너를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너 예전에도 그렇게 가족들을 고생시켰는데 그런 너를 또 믿어봐?’ 자극적인 말이 된다. 농담이라도 이런 말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 외에는 특별하게 상처되거나 문제되는 게 없는 거 같다. 상록교회에서 생활해서 그런 거 같다.

J 씨: 시댁 어른들한테 배신감을 많이 안겨 준 것이 마음 아프다. 상록교회에서는 이단에 간 이유를 ‘정말 열정이 있어서 간 것이었다, 이단에 간 사람들 보면 나쁜 사람 없더라, 전부 착한 사람이 빠지더라’ 이런 말을 해준다. 빈말이든 아니든 사실 많은 힘이 됐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다시 꿈과 희망을 갖게 된다. 그 전에 못 느꼈던 자존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댁에만 가면 나 스스로 움츠러든다. 이단을 갔다 온 후유증이다.

K 씨: 나는 불안증 때문에 못 살겠다.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이단단체 사람의 자녀가 다니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 깊숙이 이단에 빠졌었기 때문에 내 아이가 만나는 사람, 친구들 중에 이단에 빠진 아이가 있는 거 아닐까?라고 걱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다그치듯 묻게 된다. ‘친구가 어느 교회 다니니? 언제 다니니?’ 그리고 ‘혹시 결혼할 사람이 이단 종교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다.

M 씨: 동생이 나로 인한 피해자라면 피해자다. 동생이 내가 이단에 빠졌을 때 우리 부모님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니 누나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단에 빠졌는데 하나님이 계신 거냐?’ 이 말을 듣고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죄책감이 생겼다. 나름대로 식구 중에서 가장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모범을 보였던 사람인데 이단에 빠지니 동생이 시험에 든 것이다. 본보기가 돼도 모자랄 판에 더욱 악화를 시켰다. 동생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게 나에게는 큰 상처가 됐다.

지금은 동생을 신앙으로 어떻게 이끌어 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기도제목이 되고 있다. 현재는 ‘나 구원 받았나? 다시 영접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반복되기도 한다. 나는 아직까지는 내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비전과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단에 빠졌다가 나온 지금, 모든 게 감사하다”

- 이단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다. 이번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느낀 것이 있다면,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눠 달라. 또 이단에 빠졌다가 나온 지 얼마 안된 사람들도 있는데 한마디씩 해 달라.

C 씨: 정말 이단에 있을 때의 신앙은 가짜였고, 거짓 하나님이었다. 이제는 진짜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단의 하나님은 율법적인 관점의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는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대화할 아버지 같은 분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꿨으면 좋겠다. 그리고 후속조치가 너무나 중요하다. 나는 이단에서 나온 후 3개월 동안 교회, 집, 교회, 집만을 오갔다. 그 시간은 답답했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후속조치는 특히 가족들이 도와줘야 한다. 이단에서 나온 후 종교적인 나는 성장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대로다. 가족들은 네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며 애통해할 때가 있다. 이제는 가족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으니 그들을 위로하고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J 씨: 교주 신격화 단체 사람들은 정말 거짓말을 많이 한다. 그 점에 치가 떨린다. G 씨를 상록교회에서 처음 봤을 때 너무 화난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교회 오는 모습을 보면서 ‘붙어 있기만 잘해라, 언젠가는 빛이 임할 것이다’는 생각을 했다. 이단에서 돌아왔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교회를 떠나면 복이 안 된다. 힘들어도 하나님의 교제권에 붙어 있으면서 힘들어도 같이 묻어 가길 바란다. 이단에서 돌아오니 G 씨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행복해 보인다. 내가 이단에 빠져서 나왔을 때 사람들이 나를 격려해줬던 게 생각난다. 이렇게 이단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 늘어나면 구원의 감격이 더 배가 된다. 막 구원 받았을 때 너무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상상 못할 구원의 감격이 있다. 구원받은 것 자체 말고 또 다른 크기의 구원의 감격이 기다릴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단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처음에는 멋쩍지만 사람들의 손을 계속 잡아주고 말을 건네 주면 그 진심이 나중에 상대에게 전달된다. 그 일을 해야 한다.

G 씨: 나와는 다른 교주 신격화 단체에서 나온 분들의 얘기를 듣고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J 집사님은 나온 지 정말 오래 되신 분이고, 우리들은 기껏해야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단에 나온 이후 수년 후의 모습이 굉장히 궁금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이런 불안감이 있었는데 J 집사님을 보며 마음에 평안함이 생겼다. 나도 계속 즐거울 수 있고 헌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단에 빠졌다가 잘못된 것을 알고 나오는 것은 정말 다행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 이후의 삶과 성장과 회복이다. 지금은 구원까지는 받았는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단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들 가운데 성장해야 하는데 그 때 적절하게 교제하고 이끌어줄 사람이 정말 필요하다. 그래서 후속조치가 중요하다. 그리고 갈수록 더욱 큰 구원의 감격이 기다린다는 말씀에 많은 기대가 된다. 상록교회 안에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섬기며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날에 대해 기대가 많이 된다.

J 씨: 나누면 기쁨이 배가된다는 말씀이 맞다.

M 씨: 여러 가지 다채로운 단체의 사람들을 만나서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의미가 있었다. 이런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느낌을 듣고 내 심정을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오래 전에 나오신 분이 있어서 대략 내 미래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 사실 뭔가 허전함이 있었고 그것을 채우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목사님도 말씀하셨다. 사람이 마음을 비우면 살 수가 없다. 뭔가 채워야 산다. 우리는 채우기 위한 도구가 이단종교였다. 정통교회 사람들도 구원의 감격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데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단에 있다가 빠져 나온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격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환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6개월밖에 안 다녔지만 이곳에서 이단상담을 받고 교주 신격화 단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는 ‘아 신앙생활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태까지 정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들어갔는데 그곳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자 신앙생활 자체가 싫어진 것이다. 그런 나를 격려와 위로로 잡아준 것이다.

교주 신격화 단체 간부급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들이 너무 너무 못됐다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 열심히 포교하는 사람들은 정말 순결하고 깨끗한 신앙으로 살아가는데 교역자 중에는 교주들의 실체를 알고 비리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미 자신도 당했고 그곳에 묻힐 대로 묻혀서 나올 수가 없게 돼 있는 것이다.

교주 신격화 단체에 있을 때 남자에 대해 돌처럼 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정말 돌처럼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마음 속으로 ‘저 사람은 돌이다, 돌이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순결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데 깨끗하게 해 놓고 교주가 관계를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있던 단체에 20년 동안 있다가 나왔는데 자신의 삶에 대해서 너무나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부인까지 교주에게 바친 사람이다. 자신은 남자라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여자인 부인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계를 갖게 하면 온전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알면 알수록 무서운 단체가 교주 신격화 단체다. 일부 교역자 중에는 그런 무서운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고 회피하고 있는데 정말 큰 죄라고 말하고 싶다.

K 씨: 나는 이단에서 나온 게 너무나 창피했다. 상담할 때, 둘째 날 뒤통수를 딱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잘못된 이단에 빠졌던 것이 너무 창피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못할 정도였다. 딱 듣는데 창피해서 뒤를 못 돌아보겠다. 뒤에 언니와 남편이 있었다.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걸 깨닫자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고 교회도 나오기 싫었다.

그런데 옆에서 계속해서 힘을 북 돋아 주고 앞선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이단에서 나온 분들의 간증을 듣게 되니 힘이 생긴다. 사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이단이란 걸 몰랐다. 쪽방에 모여서 몰래 교주 숭배하다가 자살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별개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단에 내가 빠짐으로 그게 나와 완전히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단에 가기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롭게 깨달아졌다. 내가 예뻐서 남편이 나를 쫓아다니다가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그 남편과 맺어준 이유가 있었다. 남편의 눈물겨운 노력에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나를 이단에서 빼내 주셨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범사에 감사하다. 아이가 밥을 잘 먹는 것, 내가 아침에 멀쩡히 일어나서 숨을 쉬는 것이 모두 감사하다. 무서운 이단에 빠졌다가 나오니 그렇게 바뀐다.

이단에서 나온 분들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때의 절망보다 감사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

사회자: 교주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는 단체에 있다가 나온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고 해야 할 말이 많지만 벌써 얘기를 나눈 지 5시간이 지나간다. 대화를 마무리 하면서 기자가 가장 놀란 것은 동석한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환자였다’고 거리낌없이 말했다는 점이다.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들을 원수·마귀의 쓰임을 받는 도구로 생각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까지도 이단단체의 컨트롤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교주 신격화 단체가 갖고 있는 비윤리, 비논리, 몰상식, 부도덕성을 정상적 판단력을 갖고 도무지 볼 수 없었기에 스스로를 ‘환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사랑이 있다면 결국에는 이단에 빠진 사람을 돌아서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 시간이었다. 소중한 좋은 시간 내준 모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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