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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까지 흰옷 입은 교주가 나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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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까지 흰옷 입은 교주가 나타나서…"
  • 정윤석
  • 승인 2007.03.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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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중)

얼마 전 전화가 왔다. 이단에 빠진 아내와 가정에서 갈등을 겪는 한 집사님이다.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아무 일도 못하겠어요. 도대체 그 사람들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는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가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굉장히 궁금해 했다. 그리고 긴 터널과도 같은 극과 극의 대치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했다.
좌담회를 마련했다. 교주를 극단적으로 신격화하는 일부 이단단체에 다녔던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단체에 빠진 사람들이 가족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주 신격화 단체에 빠져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심리를 가졌으며 어떻게 사회와 가정과 정통교회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소외시키게 됐을까?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 단체에 나오면서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심리적 변화를 갖게 됐는지와 나온 후 심리적 공황 상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도 답변을 들어보았다. 이 좌담회를 통해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에 빠진 가족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녔던 이단단체와 나이와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하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으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A단체에 각각 3년 반, 1년 반 동안 빠졌던 40대, 30대의 여신도 두 명, 교주를 이긴자로 믿으며 신격화하는 B단체에 4년, 1년 반 정도를 빠졌던 20대의 남녀, 교주를 재림주로 믿으며 신격화하는 C단체에 6개월 동안 다녔던 20대의 여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복음으로 치유하는' 안산 상록교회(진용식 목사, www.jesus114.net)에서 신앙상담을 통해 정통교회로 개종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회심자들의 교주 신격화 단체는 물론, 이들의 이름 등은 모두 이니셜로 처리했다. <편집자 주>
 
진행: 정윤석 기자
참석자:
J 씨(44, A단체 3년 반 출석),
K 씨(32, A단체 1년 반 출석)
C 씨(26, B단체 4년 출석)
G 씨(22, B단체 1년 반 출석)
M 씨(23, C단체 6개월 출석)


 

'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상) [이전기사보기]

- 이단에 빠진 가족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주신격화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갈등을 완화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나?

C 씨: 가족상담을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이런 예가 있었다. 딸이 교주 신격화 이단에 빠졌는데 아버지가 딸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딸이 나를 무시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꼴도 보기 싫다, 딸을 호적에서 팔 것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딸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은 것은 이해하지만 갈등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단 교리에 대해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즐거운 가족 모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은 장소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다거나 놀이공원에 간다거나 실생활의 측면에서 교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교리적인 면으로 부딪히면 안 좋다고 본다. 교리를 얘기하면 할수록 상대는 더욱 튀고 가족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리적인 충돌은 피하고 상대가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만한 행동을 가족들이 보여줘야 한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미혹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환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환자인데 가족 말고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자다.

G 씨: 내가 그 단체에 있을 때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와서 보니 나도 정말 환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자: 그래도 이번 좌담회의 기사 제목을 ‘우리는 환자였다’고 뽑으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하나?

G 씨: 전혀 나쁘지 않다.
J 씨: 당연하다. 우리는 환자였다.
M 씨: 그 말이 딱 맞다.
C 씨: 환자라고 생각하며 불쌍하게 대해줘야지 이단단체에 빠진 사람의 말을 듣고는 ‘니가 나를 무시해?’라고 생각하면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긍휼을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교리적인 부분으로 부딪히지 말고 신천지에서 느낀 사랑과 정보다 가족들이 더 큰 사랑과 정을 보여 줄 때 가족의 가치를 알고 조금이라도 대립이 완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G 씨: 진짜 환자였고, 심하게 말하면 정신병자였다. 정신적으로 이단단체에 완전히 미혹돼서 가족을 사랑하는 관계로 보지 않고 사탄의 도구로 생각하며 14만 4천명이 차서 구원의 날이 도래하길 기다리고 모든 일상 사회 생활을 죄악시한 환자였다. 교주가 가족을 묻으라면 묻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가족들은 ‘얘는 정말 환자다,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가족들이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얘가 정상이 아니구나, 정신적으로 뭔가가 싹 들어가 있구나.’ 정상적인 가족들이 그것을 간파하고 환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물론 상대를 정신병자 취급한다는 것을 말하거나 알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세만큼은 그렇게 가져야 한다. 싸우면 서로가 똑같아지고 답도 나오지 않는다.

K 씨: 이단에 빠졌다고 너무 안달복달 매달리지 않고 좀더 여유롭게 현실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교주 신격화 이단은 단계가 계속 올라가는 게 아니다. 즉 20단계, 30단계의 교육 과정이 새롭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일정한 단계가 되면 처음 배웠던 것을 몇 년이고 반복학습을 한다. 하고 또 한다. 그러니 교주 신격화 단체에 빠졌다고 정말 세상의 끝이 온 것처럼 절망하거나 당장에 이단에서 안 나오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기보다 좀 더 여유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은 철저히 단속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회자: 교주 신격화 이단단체에 빠진 사람은 계속 같은 내용을 돌려가며 학습을 받기 때문에 의심을 품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인가?

G 씨: 그렇지는 않다. 그곳은 늪이다. 혼자서는 나올 수가 없다. 그곳에서 회생시키고 또 회생시킨다.
K 씨: 그냥 의심만 품다가 그러고 만다. 어느 정도로 의심이 없고 무모한지 말해 주겠다. 내가 다니는 중간에 우리 단체는 구원자를 바꾼 적이 있다. 처음에 갔을 때는 OO씨가 하나님이고 현재의 재림예수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OO씨는 세례요한격이고 XX씨가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교리가 확 바뀌었다. 당연히 의구심을 가져야 정상인데 그곳에 있을 때는 전혀 의심이 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랬던 내가 신기할 정도다.

G 씨: 의심을 품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에 교주신격화 이단단체 안에서 ‘아, 이거는 이상하다 알아봐야겠다’라며 문제삼고 비판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0.1%도 안 된다.
K 씨: 타의에 의해서 나오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G 씨: 너무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다. 마약과도 같다.
K 씨: 자기가 지쳐서 나가 떨어지든지, 아니면 그 단체에서 내쫓는다면 모를까 자기 스스로는 나올 수가 없다.
G 씨: 그래서 옆에서 가족들이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전부 환자들이었다”

J 씨: 우리가 이단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가족들이 우리를 환자취급하는 것만 보여도 극단적 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내가 미쳤기 때문에 절대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는 시점을 달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알아주고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남편은 3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교주 신격화 이단에 빠졌을 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상록교회가 이단상담을 본격화할 때가 아니어서 정말 찾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찾고 찾다가 마지막에 진용식 목사님을 만나서, 이단문제 전문가를 만나서 좋게 결말이 났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환자가 있으면 병원에 가서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지만 병원에 가기 전에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응급처치는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병원에 가기 전에 그 사람의 병에 대해 전문지식을 키우는 것처럼 가족들이 실제로 이단단체에 가서 어떤 곳인지 알아본다든지, 제 3자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자: 실제로 교주 신격화 단체에 가족이 가보라는 얘기인가?
J 씨: 그렇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반드시 교주 신격화 단체의 미혹교리와 핵심교리를 간파한 다음에 가야 하며 가족들이 한두번 정도 듣고 나서 ‘내가 너희 단체에서 들어봤으니 너도 내 말을 들어야 하지 않느냐’며 상호성의 법칙을 갖고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이 설득하는 좋은 방법이다.

M 씨: 우리 부모님이 이런 부분에서 대처를 잘하셨다. 부모님은 우리 단체에 함께 집회에 참석하신 적도 있다.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유사시를 대비해 호신도구들을 차 트렁크에 싣고 오셨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하시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이 나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안도감이 많이 들었다. 하나님께 무척이나 감사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동조하시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단단체에 다니면서도 어머니를 많이 의지하게 됐다. 식구 아무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는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우리 단체에 대해 이해를 해주는 것 같은 태도를 취했다. 이단에 가서 그 사실을 말하니 ‘어머니가 영적으로 열린 분이다’고 말해 엄마를 더 의지를 하게 됐다. 엄마는 ‘그래 네가 거기에 다니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며 나를 지지해주셨다. 이런 신뢰감이 형성되자 엄마가 상록교회로 이단상담을 받으러 가자고 했을 때 올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 비판하고 무시해도 엄마는 내 편이다는 든든함이 이단상담을 가능케 했다.

K 씨: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과 갈등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공허함에 시달리던 상황에 이단단체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나의 인생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궁금증들이 그 사람들이 옴으로 인해서 뭔가가 해결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파하는 문제들이 이단 단체에서 해결되자 그 단체가 주는 교리들의 달콤함이 커 보였다. 그렇게 해서 이단에 간 것인데 가족들은 이단에 빠진 사실 자체만 생각하지 이단에 빠지게 된 심리적인 과정을 전혀 이해하려 않는다. 한마디로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으니 정신병자라고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파내고, 파내다 보면 시댁과의 해결할 수 없는 숨막히는 갈등, 그리고 인생의 깊은 공허 그것이 이단단체에서 어떤 형태로든 채워졌기 때문에 이단에 빠졌다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이단에 다니는 것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했다. 나는 성경을 대 놓고 ‘내가 믿고 있는 교리를 깰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불러 와라, 그러면 내가 이단단체를 나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남편은 15년간 장로로 계시던 분을 모시고 왔다. 서로 얘기를 하는데 이 장로님이 성경적으로 답변을 못했다. 그분이 내린 결론은 “그냥 이단단체 다니세요, 나는 정통교회 다니겠습니다”라는 거였다. 15년간 장로님으로 교회를 섬겼던 분이 이제 3~4개월밖에 안 된 나에게 성경적으로 전혀 답변을 하지 못하자 나는 의기양양해졌고 남편은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더욱 남편을 다그쳤다. 목사님도 좋다, 정통교회 목사님 중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줄 수 있는 분이 있으면 데리고 와라. 당장 내가 그 교회를 가겠다는 거였다. 남편은 ‘좋다! 내가 수소문을 하겠다’고 말한 후 몇 개월 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뒤 남편이 와서 하는 말이 ‘없더라, 정말 네 말대로 성경을 놓고 너희 교리를 깰 수 있는 분이 없더라’고 절망적으로 얘기했다. 그 말이 내 마음에 낙인처럼 찍혔다. ‘거 봐라. 당연하지 진리는 그곳에서밖에 못 가르치는데!’ 그러던 신랑이 계속 인터넷을 찾다가 상록교회를 알게 된 거다. 뒤지고, 뒤지고, 또 뒤지다가 알게 된 거다.

그런데 내가 이단단체에 있을 때 상록교회에 오면 죽는다고 배웠다. 그래서 정상적 방법으로는 데려 올 수도 없었다. 상록교회는 사람을 감금하고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곳이라고 따로 시간을 내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이단에 빠진 사람을 잘 설득해서 이단 상담에 참석하도록 하는 방법, 그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때로 가족들의 강압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죽는 길을 가고 있는데 늘 좋은 모습으로 이해하면서 오냐오냐 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정통교회 목사님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이단에 대해 경멸할 것이 아니라 이단에 빠지는 사람은 정통교회 성도들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무신론자들은 이단에 잘 안 빠진다. 지금 이단단체에 다니는 신도는 처음부터 이단 신도가 아니라 예전에 정통교회를 다녔던 내 형제·자매들이었다는 생각을 해주시고 불쌍히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단에 대해 시시콜콜히 목사님들이 모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단 문제를 어떤 교회가 전문적으로 해결하는지 정도는 알고 계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남편처럼 이 교회, 저 교회 찾아다니며 불쌍하게 해매는 사람이 있을 때 어디로 가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라도 해 주시길 바란다.

- 이단에 빠진 아내 또는 남편과 이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가출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을 교주 신격화 이단단체에 다닐 당시 본 적 있는가? 그들은 그 단체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나?

J 씨: 처음에 그 단체를 갔을 때 한 여자가 있었다. 아이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혼한 사람이었다. 이단단체에서 인정받고 알아줬다. 혼자 살면서 이단신앙에 전폭적으로 헌신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식당에서 일을 했고 단체에서도 어느 정도 보조를 해줬다. 정기적으로 교주인 XX하나님을 만나는 특권도 부여했다. 그 사람이 어떤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권위가 있었다.

K 씨: 그런 사람들은 단체에서 당당했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받는 핍박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J 씨: 그런 사람들이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소위 ‘말뺏이 섰다.

G 씨: 그런 사람들은 믿음이 인정된 사람이었다. 10년 동안 가출한 상태에서 단체를 다닌 자매가 있었다. 여자로서 인정받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봤다. 가족과의 관계는 단절했지만 단체에 모든 인생을 걸고 포교에 몰두하니 인정을 받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M 씨: 맞다. 학생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학비 갖고 한 학기를 쉬고 학비를 갖고 포교하는 데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러러 본 적이 있다.
J 씨: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교주가 밤마다 한복입고 나타나는 꿈을 꿨다”

- 다녔던 단체는 다르지만 모두들 상록교회에서 이단상담을 받고 나오게 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온 이후 가장 걱정되는 것, 즉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또는 가장 극복하고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나?

J 씨: 교주 신격화 이단단체를 나온 지 7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에 너무 감사한 생활을 했다. 2~3개월이 지나자 그 전에 없던 두려움이 생겼다. 2000년 당시엔 뉴스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렸다. 그러면 두려워지기도 했다. 순간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교주 OO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면 어떡하지?’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 버리기도 했다. 기도할 때도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교주의 이름으로 했다. 그런데 그 단체를 나오고 나서도 기도할 때마다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자꾸 머릿속에 교주의 이름이 떠올랐다. 이 말이 튀어나올까봐 두려워서 기도 자체를 못했다.

그 뒤로 목사님의 세미나를 좇아다니고 구원 받은 이후 성장하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에 대해서 반복하고 반복해서 말씀으로 확인했고 구원론을 듣고 또 들었다. 더불어 목사님은 메시지를 하실 때마다 기회가 되면 나를 격려해주셨다. 처음에는 그게 격려인 줄 몰랐다. 이단에서 나온 시점에서는 내가 잘못된 데 빠졌다가 나왔다는 허탈감에 자아상이 낮아진다. 그런데 목사님이 칭찬의 말씀을 해주시니 자아상이 회복되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그것이 정말 필요했다. 교회에서도, 동료들끼리도 그렇게 축복하고 격려해야 한다.

나온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너무도 중요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이단에서 나온 허탈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때 꿈을 꿔도 꼭 교주 하나님이 한복을 입고 내 등 뒤에 서 있는 꿈을 꿨다. 귀신 같은 분위기였다. 어떤 때 한 번은 꿈을 꿨는데 교주가 나타나 역대상 몇 장 몇 절을 읽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섬뜩했다. 꿈이 너무 생생해 바로 일어나 성경을 펴고 찾아봤다. 그런데 전혀 있지도 않은 말씀이었다. 꿈속에서도 교주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힘든 경험을 하고도 정통교회에 정착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도와줄 수 있는 것 같다.

목사님과 상담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목사님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너무 잘 풀었다. 너무 기가 막히게 성경을 잘 풀어내자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는 줄 아는가?···
당신은 누구세요?(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어쩜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을까? ‘당신은 누구세요?’ 말씀을 잘 푸니 목사님도 이 시대의 뭔가 되는 분 아닐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목사님과 궁금증을 묻고 답변을 들으면서 마음의 답답한 부분들이 치유되고 해결되기 시작했다.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이단을 나왔어도 정통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이단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온 사람들이 교제해 주고, 만나주고, 만나기 힘들면 문자라도 보내 주고 돌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단에서 나온 지 6개월을 방황하면서 피나는 영적 싸움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단에 빠졌다가 나온 후 느낀 점과 아픔들과 고민들을 자꾸 얘기하고 내어 놓아야 빨리 치유가 된다. 방황하면 할수록 모임에 자꾸 투입이 되면서 ‘나 전에 이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후속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단에서 나온 후 1년 이상이 지나면 내가 제자를 키우든지, 내가 제자가 되든지 해야 한다. 이 일에 투입되지 않으면 신앙이 흐릿해진다.

예배 우선순위의 삶을 살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늘어질 수밖에 없다. 이단에 있을 때는 어떤 조직력과 교리 때문에 내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단체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런데 정통교회에 오니 너무 자율적이다. 처음에 그것마저도 상처가 됐다. 교회를 보면서 ‘와 여기는 완전 방종주의다,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럴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뜨거운데 그 마음을 알고 교제할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극복하는 게 힘들었다. 1년이 지나면서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교주 신격화 이단단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을 도우면서 나도 좋아지게 됐다. 그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같이 교제할 사람이 생기니까 치료도 되고 힘도 되고 서로 도움을 받게 됐다. 주일에 교회 오면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전부였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자기와 똑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 때문에 교회에 왔고 토요일이 되면 좁은 집에서 30명이 함께 잠을 잘 정도로 친해지게 됐다.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이단에서 나왔다고 배척하지 말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격려해 주기를 당부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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