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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거머리 포교 "한 번 물면 안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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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거머리 포교 "한 번 물면 안 놓는다"
  • 정윤석
  • 승인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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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관리와 회유, 인간적 친근감으로 결속 다져
창간13주년(인터넷신문 전환 1주년) 특집
이단 왜 이렇게 활개치나/ 이단 측의 요인 ①

가정 주부인 경기도 부천의 김문정 집사(37)는 매일 한 두차례 이상씩 이단 단체 신도들의 집 방문을 받는다. 문앞에 교패를 붙여 놨는데도 초인종을 누르며 접근을 시도하는 단체는 이단단체가 대부분이다. ‘ㅇㅇ단체에서 왔는데 설문조사에 답변 좀 해주시겠어요?’라며 직접적인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고 매일 문 앞에 전단지를 뿌리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단들도 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 김 집사는 호별 포교를 하는 신도들을 상대도 하지 않는다. 집 앞에 떨어뜨려 놓은 전단지는 재활용수집 코너로 직행시킨다. 원천차단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감탄사와 함께 걱정이 생긴다. ‘이단들은 참 포교에 열심이구나. 저러다가 한 두 사람은 미혹하겠지···.’

이단들이 활개치고 있다. 대도시의 번화가를 지날 때도, 주택가가 밀집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기성교인들을 미혹하기 위한 이단 신도들의 포교활동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통교회가 불건전하고 문제있는 단체들을 이단 및 사이비로 규정하며 경계하고 있는데도 이단단체의 숫자는 기독교인들의 바람과 달리 사라지지 않고 왜 날로 번창하며 늘어만 가는 것일까? 이는 이단단체의 강력한 자생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생력은 열렬한 포교, 철저한 신자관리 등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은아 씨(24, 가명)는 2004년도에 교주를 재림주로 믿는 A단체에 빠졌다. 가가호호 집을 방문하며 설문조사를 해달라는 사람들에게 집 문을 열어 주고 응해 준 것이 화근이었다. 가족들 몰래 이단단체 신도들을 집으로 불러 한달 동안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정도 쉬지 않고 성경공부를 했다. 교회를 다녔었지만 이단단체 사람들과 지내니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이런 단계가 지나자 A 단체는 곧바로 서 씨를 포교 현장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포교는 주로 방학기간을 이용했다. 오전에 일어나 A단체의 집회 장소에 도착해서 설문조사지를 들고 신도들과 짝을 지어 거리로 나섰다. A단체에서는 포교하기 힘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그것도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포교대상으로 하라고 가르쳤다.

   ▲ 지성의 전당 대학가에서도 이단단체들의 포교는 암암리에 전개된다
기독교인들의 문화의식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다는 식으로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포교는 밤 8시가 될 때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기성교회의 타락상을 알려주고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을 많이 알아야 한다며 하루에 20여 명의 기성교인들에게 설문조사를 받아냈고 이들의 연락처로 성경공부를 하자는 메일이나 전화 연락을 시도해서 자신들의 단체로 끌어들였다. 한 달에 많게는 3명, 적어도 1명 정도는 기성교회 교인들이 연결됐고 이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했다. 새신자로 등록하게 되면 이들과 함께 밤낮을 함께 놀고 공부하고 대화하며 친분을 쌓아갔다.

이러한 생활패턴은 서씨가 A단체에 몸 담고 있는 2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되풀이 됐다. 거의 딴 생각을 품을 겨를조차 없었다. 포교가 끝난 밤 9시에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집회 장소에 모여 교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집에 가면 시계바늘은 자정을 넘어가곤 했다. 때로 김밥 한 줄로 하루 끼니를 대신할 때도 있었고 차비가 없어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간 적도 있었다. 이런 열악한 생활 가운데도 서 씨는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2년 동안 서 씨는 개인의 사생활은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포교 활동에 얽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경험은 서 씨뿐만이 아니다. 오영신 집사(37, 가명)도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는 B단체에 몸담고 있는 1년 동안 매일 매일을 포교활동에 몸과 마음을 바치며 살았다고 회상한다. 오 집사가 포교에 매달린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4시까지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였다. B단체에 있는 동안 한 아파트 단지를 정해 놓고 걸어 다니면서 포교를 했기 때문에 집에 가면 파김치가 됐다. 당연히 집안 살림은 물론 아이들 교육까지 등한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오 집사의 포교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아니 식을 줄 몰랐다는 게 아니라 식을 수가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는 이들이 몸담고 있었던 이단단체들이 갖고 있던 독특한 교리 때문이었다. 오 집사는 “구원받는 무리 중에도 큰 무리와 작은 무리 즉 14만4천이 있는데 후자들이 천국의 영광을 모두 누리는 자들이라고 배웠다”며 “영광된 구원을 누리는 무리에 들기 위해서는 이단단체의 공적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 아니라 매일 거리로 나가 포교해서 사람을 데려 오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원과 포교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2년여를 이단단체에서 보낸 서은아 씨는 “내가 있는 단체에서는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지우리라는 말씀을 근거로 전도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며 “구원을 받고 지옥 불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즉 생명책에 기록되려면 매일 설문지를 들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고 고백한다.

기성교인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일부 이단단체 신도들의 초인적 포교 활동의 근본적인 이유에는 포교를 해야 생명책에 기록되거나 14만4천의 무리에 포함된다는 특수한 교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부 이단단체들의 교리가 근본적으로 수정되거나 바뀌지 않는 한 기성교인들을 향한 이단단체의 포교 활동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포교 중인 이단단체 신도
비정상적 포교와 함께, 한번 이단단체에 들어온 신자들은 철저한 신자관리 시스템에 종속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어려운 끈끈한 신자들간의 관계구조. 이것도 이단들이 더욱 활개를 치고 성장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의 철저한 신자관리는 관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차은서 씨(37)는 어떤 병이든 낫게 한다는 C단체에 1998년부터 2년여를 출석했었다. 어머니의 병환을 호전시키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출석기간 동안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C단체는 커다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도저히 출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C단체는 인간적인 부분을 활용해서 철저하게 교인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기 때문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의 삶에 중요한 요소들은 모두 관여하려 했어요. 직업·결혼·교육 등 현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걱정거리가 되는 부분들을 교회가 관심을 갖고 실질적인 도움을 줬습니다. 교회 안의 실업가 모임, 미혼 남녀들의 매칭, 대학생들의 과외 등으로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걱정들을 덜어주었죠.

신자 관리는 한 사람의 새 신자가 등록하면 그 사람을 다섯 조직이 맡아서 관리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요.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의 새신자를 대교구·선교구·구역모임·기관장 등이 관심을 가져 주는 거예요. 한때 사람들이 자꾸 교회에서 빠져 나가자 그 단체의 교주는 교구장들이 모이는 시간에 ‘왜 등록한 사람들을 놓치는가? 그물망을 치고 한 번 들어온 사람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어요. 이런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했습니다.”

C단체를 떠난 지 5년째. 아직도 C단체에서는 차 씨에게 전화를 한다. 문자도 심심찮게 온다. 차 씨가 “사람을 신격화 하는 단체에는 가지 않겠다”고 칼같이 잘라 말했는데도 지금도 전화는 그치지 않는다. 집안의 애경사, 생일, 가족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서 도움을 주었던 C단체는 교인이 떠나고 나서도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었던 것이다. 차 자매는 “만일 마음이 여리고 약한 사람이었다면 돌아가도 100번은 돌아갔을 것”이라며 “‘오는 사람 말리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일부 기성교회의 사람 대하는 태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고 마음 아파했다.

“전 10년 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토록 따뜻함을 느껴 보지 못했어요···.” 문희영 씨(25)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이단단체라는 것을 알아 D단체의 출석을 중단한 상태지만 그곳에서 받았던 신도들과의 친밀함은 가슴 따뜻한 경험이었다.

“그곳에 갔을 때 사람들은 이곳만이 진리라면서 이 진리의 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동안 어디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 느낌 속에 살아왔던 저같은 사람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방황하던 마음이 비로소 평안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로 인해 낮았던 자존감이 회복되는 것 같았고 강한 특권의식을 갖게 됐죠. 새신자인 저는 그 단체에서 특별한 존재였어요. 이사를 할 때는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저에게 D단체 신도들이 모두 손과 발이 돼 주었어요. 이사비용은 그들을 대접하는 것 말고는 들지 않았어요. 친구가 필요할 때면 저와 대화하고 놀아줬어요. 맛있는 음식도 아낌없이 베풀어 줬고 새로운 가족 공동체와 같이 따스하게 대해줬답니다. 외로운 객지 생활을 하는 저에게 가족보다 더 친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자관리에 있어서 이단단체의 관계적 측면은 식구 이상으로 따스하고 친절하며 절친한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처럼 끈끈하게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이유로 ‘잘못됐다, 이단이다’는 지적이 있어도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현실보다는 실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단단체에서 발을 빼내지 못한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이단단체, 이러한 가족 같은 결속력이 이단단체를 성장시키는 요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 순교자의 정신으로 전도사명 감당하자는 한 이단단체의 플래카드
이단단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요소 중에 하나는 이단단체를 나오려는 사람들에게는 저주의식을 심어 주는 부정적 방법으로도 진행된다. 차은서 씨는 “C단체를 나오려고 할 때 ‘이 교회를 떠나면 새예루살렘에서 누릴 수 있는 구원의 특권을 얻을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암에 걸리고 교통사고를 당할 것이라고 저주했다”고 기억했다. 이런 이단단체의 특성은 이단단체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차 씨는 이런 두려움 때문에 이단단체를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주의식은 단체를 달리하지만 상당수의 이단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서은아 씨도 “말씀의 비추임을 받고 타락한 사람은 구원의 기회를 상실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토대로 OO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배웠다”며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져 버린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도 싸다고 강조해서 떠날래야 떠날 수 없도록 세뇌한다”고 지적한다.

이단들의 적극적인 포교와 한번 들어온 신도를 상대로 이뤄지는 철저한 관리, 그리고 단체를 빠져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저주의식. 이런 이단단체 내의 긍정적·부정적 전략들로 이단 단체 신도들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이단에 일단 발을 들여 놓으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설령 빠져나오더라도 이단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기성교회에 대한 폄훼작업’으로 인해 이단단체를 나온 사람들은 일반 교회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른 이단으로 빠져들어가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얼마 전 통계청의 발표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기독교 공기관을 비롯해서 많은 목회자들이 1천2백만 기독교인이라며 큰 교세를 자랑해왔지만 실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사람들은 8백61만명이었다. 이 수치는 10년 전인 1995년에 비해 14만 명이나 감소한 수치다.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이다. 이단들의 포교가 뜨겁고 열성적일수록, 미혹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는 곧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인구의 감소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활개치는 이단단체에 대해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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