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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능성 부인 등 황당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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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능성 부인 등 황당의 극치
  • 정윤석
  • 승인 2005.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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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의 빚고 있는 대구교회 이현래 목사 설교 녹취록


한 핵심 신도가 대구 남산동 황실아파트 인근에 남산병원을 세우면서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일을 계기로 대구교회의 담임인 이현래 목사의 사상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구교회의 이현래 목사가 어떤 주장을 하며 무엇을 가르치기에 핵심 신도인 김상근 병원장이 △남산병원을 포교의 전진기지로 삼겠다 △껍데기는 나지만, 사실은 목사님이 내 안에 산다 △우리가 어디가든지 목사님 표현하며 산다 △자나깨나 목사님 기쁘게 하는 게 우리 할 일이다고 주장하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다. 김 병원장이 그토록 추앙하며 인생의 목적처럼 여기기까지 하는 이현래 목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목사는 과연 어떤 주장을 하며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 또 그의 사상에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일까?

▲ 대구 달성구 가창면에 위치한 대구교회

대구교회 인터넷 사이트(http://www.churchlife.net)에는 이 목사의 설교가 다수 올라 있다. 한 사람의 사상을 아는 데 있어서 설교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중 <교회와신앙>이 확보한 이 목사의 설교는 대구교회에서부터 제주도, 미국 등 각 지역에서 진행한 것들이다. 설교를 들으면 이 목사가 정통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문제 있는 발언들은 신론은 물론 인간론, 기독론, 종말론 등 여러 부분에 걸쳐서 나타난다.

신론에 있어서 이 목사는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한 부분에서 문제를 보인다. 하나님의 전능성과 편재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기존의 문제 있는 단체들이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한 부분에서만큼은 정통교회와 거의 이견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목사의 신론과 관련한 주장은 이례적이다. 그는 편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안에만 계신 하나님(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면 예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뭔가 모자란, 절대적인 부족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녹취록 신론 부분 참고).

인간론에서는 신인합일적 주장이 두드러진다. 이 목사는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 성분을 계속적으로 받게 됨으로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고, 형태는 사람인데 내용은 하나님이 된다는 희한한 주장을 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이 목사에게 이르면 ‘한덩어리’가 돼야 할 운명인 것이다. 이렇게 된 사람을 이 목사는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곧 영생이기도 하다(녹취론 인간론 부분 참고).

기독론과 종말론에 있어서 대구교회측의 부활·재림은 기성교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부활은 예수가 한 사람에게로 들어가 예수의 실재가 확장되는 것, 재림, 강림, 다시 오심은 예수님이 인격적·육체적·가시적으로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게 아니라 사람의 속으로 오는 것이란 주장을 한다(녹취록 기독론·종말론 부분 참고).

이 목사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인수 교수(장신대)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인하는 단체는 당연히 기독교라고 할 수가 없다”며 비판의 가치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현래 목사의 대구교회는 대구를 비롯, 국내에 22개 지부와 미국, 독일, 캐나다 등 해외에 7개 지부를 갖고 있으며 교인 수는 약 2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목사의 사상은 인터넷을 통해 아무런 경계없이 유포되고 있고, 또한 최근에는 대구교회의 한 신도가 남산병원을 설립을 하고 포교의 전진기지로 삼겠다고 전면으로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교회들이 이들의 문제 있는 사상과 포교활동을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다음은 이 목사의 문제 있는 설교 녹취록이다.

▲ 2002년 제주교회에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며 이 목사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인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부족, 즉 모자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이 땅 위에 교회가 필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영이신 분이고, 자체의 형상이 없는 분이에요. 영은 형상이 없으니까 표현이 불가능하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분이 전지전능하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받을 이유가 없고, 오늘 이 땅위에 교회가 필요 없습니다. 그분에게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고 그분에게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게 있는 분이에요. 왜? 그분은 영이시니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그 필요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게 아니고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우리들에게는 마음이라는 게 있죠. 마음은 무엇으로 표현되느냐 하면 우리의 육신을 통해서 표현이 되요. 우리 만일 육신이 없이 마음만 있다면 우리 마음처럼 안타까운 게 없어요. 아무리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게 있을 지라도 내 몸이 없으니까 마음이 어떻게 표현하겠느냐 이 말이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마음은 있는데 몸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어떤 것과 비교가 되겠느냐 이 말이에요. 천만금이 있으면 뭐하겠어요. 마음을 표현할 데가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느냐 그거예요. 그런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이 영이신데 그 영이 표현될 방법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거예요. 만물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의 필요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거예요. 사람을 위해서 사람을 창조한게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는게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지으셨어요”(이현래 목사, 2005년 2월 25일, 하나님 경륜의 중심 -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심).

▲ 2005년 하나님 경륜의 중심이란 설교에서 이 목사는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과 사람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인간론

"우리도 하나님의 내재적인 본질로 구성돼 가고 있다"
“사도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묻지 않았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오직 예수만 전했어요. 오직 예수만 말했지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고 말한적도 없고, 어떻게 생기셨다고 말한 적도 없어요. 오직 예수만 말했어요. 그러니까 오직 예수만 전했는데 그분안에 모든 게 다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 따로 전할 필요가 없어요. 따로 전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도 어느 날 하나님을 따로 전할 필요가 없는 때가 온다 이거예요. 왜냐, 우리가 거듭나서 새로나서, 그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새로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생명이 자라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안 물은 것처럼, 우리를 보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안 물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도 지금 하나님의 내재적인 본질로 구성되어 가고 있는 거예요. 규화목에서 본 것처럼, 나무가 강물에 있는데 수없는 규소가 지나가면서 나무는 점점 없어지고 세월이 지나면서 규소가 박혀 돌이 됩니다. 형체는 분명 나무인데 내용은 돌이에요. 그 돌 성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분이 계속 흘러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흘러들어가는 동안 우리 자신은 점점 물러나고 새로 들어온 것이 구성된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가 달라지는 이유는 새로운 성분이 들어오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습니다. ···

새예루살렘은 이러한 하나님의 내재적인 본질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내재적 본질이 사람 속으로 계속 흘러들어가서 변화를 일으키고 들어가고 변화를 일으켜요. 형태는 나무인데 돌인 것처럼 그 날에는 우리가 형태는 사람인데 내용은 하나님이다 이렇게 된다 이 말이에요.   형태는 교회인데 내용은 새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목표는 분명하고 이것이 허황한 얘기가 아닌 것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잠정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처럼 어느날 갑자기 온다 이게 아니고 우리는 지금 날마다 조금씩 경험하고 누리고 있다. 싹이 자라는 것은 매일 조금씩 자라요. ···말세론 하는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갑자기 그렇게 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자라나는 나무예요. 왜냐하면 그 자체가 생명이 있잖아. 그리고 우리가 갑자기 변할 수 없잖아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6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1-서론).

하나님은 인생 안에서 과정을 거쳐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하나님이 됐다
“미나리를 보면 돌 미나리 있죠? 그것을 갖다가 시궁창에 이식하면 시궁창에 과정을 거쳐서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미나리가 되요. 자,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인생 안에서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하나님이 됐다 그 말이에요. 인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면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살 수 없어요.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어? 성질이 다른데 말야. ····

하나님도 사람하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람 속에 와서 과정을 거쳤어. 승천하신 분이니까 유태인의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 사람하고 같이 살 수 없는 하나님,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만일 율법을 어기면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과 사람이 질적으로 다르니까. 하늘에 계신 분이죠. 그런데 오늘 우리 하나님은 그 하나님이 아니다. 과정을 거친 하나님이에요. 인생을 통해서 과정을 거친 하나님,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 분이 됐다, 이 말이에요. 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세계가 새예루살렘이다.  이 새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거처하는 사회를 말해요. 이것이 어디서 있어요? 한 인격 안에서만 하나님도 사람도 같이 살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이 같이 살 수 없어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7일 뉴욕집회, 본문 계 21:10, 최종완성02-문과 기초).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보편화됐다는 의미에서 서로를 그리스도라고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둥을 봤다. 하나님의 기둥을 봤다. 하나님의 표징으로 봤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보편화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교회에서 간증을 한다든지, 고백을 한다든지 할 때 우리가 아무개 그리스도라고 표현을 합니다. 가르친 것도 아닌데(신도들 웃음) 그런 말을 해요. 어떤 형제를 그리스도다, 그렇게 얘기해요 . 그러면 밖에서 모르는 사람들은 ‘야, 저 사람들 저희들끼리 그리스도라고 한다, 자칭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한단 말예요. 모르니까 할 수 없죠.

왜 이 말을 하냐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본 독생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독생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들어와서 보편화된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신도들 아멘). 하나님의 목적은 보편화시키는 거예요. 씨앗 하나만 그리스도로 남겨두고, 그것을 바라보고, 경배하고 하려고 그 씨를 만든 것이 아니고 그 씨 하나를 만들어서 땅에 뿌려서 수없는 열매가 나와 가지고 그것이 보편화되게 하려고,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게 아닙니까?  예수라는 씨 하나가 독생자라는 씨가 하늘에 매달려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경배만 하고 있다면 찬송만 하고 예배당만 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겠어요?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성질이 틀리니까. ···

지구상에 15억 정도의 인구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신·구교를 합쳐서 10억이 넘는데 이 사람들이 만약에 그리스도가 보편화됐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죠. 이 보편화 된 게 아니고 이것을 높이 달아놓고 모두 경배만 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9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4-살아 있는 인격체).

"우리는 성육신할 팔자다"
“사람은 꼭 사람이어야 하고, 사람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 필요하려면 성령으로 잉태되든지, 말씀이 육체가 되든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그 생명이 부어져서 그 안에 들어와서 그 속사람이 그 인격이 그렇게 돼야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피조물로서의 그냥 인간이라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는 하나님의 깊으신 영원한 목적을 성취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원래 만드실 때 피조물 그 자체로서 목적을 이루시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 피조물 안에 자신의 생명을 넣어서 그 사람이 속사람, 다른 사람이 되게 해서, 한 인격이 되게 해서, 한 인격체를 만들어서 한 단체적인 자신의 표현이 되도록 그렇게 설계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운명적으로 성육신하도록 그렇게 설계가 돼 있는 것이죠. 사탄의 말이 우리안에 들어와서 성육신을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 안에 와서 성육신하든지, 좌우지간 성육신할 팔자란 말이에요. 우리가!”(이현래 목사, 2004년 2월 29일,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 - 강림과 두 번째 오심).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아담을 빙자해 하나님의 마음을 얘기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갈망을 채울 배필을 찾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읽어드린 말씀 중에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해서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그렇게 말했어요. 여기서 아담을 빙자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죠.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참 안 좋다. 빙자해서 하는 말이죠. 사람도 그렇게 말할 때가 많아요. 자기 마음이 그런데 남을 빙자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직접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자기가 배가 고픈데 자기가 고프다고 말하지 않고, 거 ㅇㅇㅇ 참 배고프겠다, 이렇게 말한다고요. 사실 자기가 배고프다는 말이죠. ···

아담을 빙자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이건 결혼 때문에 한 말이 아니죠. 아담이 독처하는 게 좋지 못하니. 하나님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자기의 욕구를 채울 배필이 필요한 것이다. 그 배필은 형상으로서의 사람이죠. 자기 자신을 형상화할 수 있는, 자기 마음을 형상화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배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과 하나가 되고 한 육체, 한 덩어리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어요”(이현래 목사, 2005년 2월 25일, 하나님 경륜의 중심 -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심).

"하나님은 영이셔서 육신을 가진 배필, 즉 아담이 필요했다"
“새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적 완성이라는 것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새나간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배필의 최종적 완성이에요.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을 자기의 배필로 지었어요. 상대적인 배필로.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육신을 가진 배필이 필요했어요.  우리가 마음이 있다면 몸이 필요하죠. 몸은 마음의 배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몸을 잃어버린다면 우리가 배필을 잃는거예요. 마찬가지로 마음을 잃는다면 나는 배필을 잃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배필의 관계예요(신도들 아멘).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담과 하와를 갖고 표현을 했어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이것은 아담과 하와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을 얘기하려고 한 것이에요. 하나님에게는 배필이 필요하다. 하나님 배필이 없으면 자기가 나타날 수 없어요. 표현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얼마나 자기를 표현할 배필이 필요한가. 이것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해요. 나라는 인생이 왜 필요한가, 하나님의 배필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존재예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6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1-서론)

"하나님과 사람의 배필관계를 아담과 하와로 표현했다"
“혼인 기약이 오면 결혼식을 하게 돼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됐다. 둘이 배필이 되게 됐다. 새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배필의 최종 완성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어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사람을 지었는가? 그리고 배필의 상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최종적인 완성이 새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있어요. 아담과 하와로 표현했던 것이 이제 하나님과 사람, 이렇게 완결이 된다는 거죠. 창세기만 읽으면, 배필 그러면 아담과 하와밖에 모르지만 계시록에 와서 보면 아, 아담과 하와라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이구나, 이렇게 우리가 알게 되잖아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하나님과 사람의 배필 관계를 아담과 하와로 표현했구나,  이렇게 우리가 알게 되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6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1-서론)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과 사람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일치해야 해요. 한 육체가 돼야 해요. 둘이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둘이 연합해서 한 육체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사람이 한 육체가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말씀이 육체가 되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육체가 된다는 것은 한 골육이 된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어떻게 됐느냐? 사탄의 말씀으로 인해서 사탄의 말씀과 한 육체가 된 사람이다. 사탄이 시켜서 들어보고 하는게 아니라 사탄의 마음이 입장하자마자 그대로 행동하는, 한 몸이니까. 한 육체니까, 사탄이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사탄의 말씀에 육체가 됐다. 뭐 따로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탄을 이롭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한 육체가 됐다 이 말입니다.

갈빗대 하나를 취해서 하와를 만들었다 이것입니다. 이것은 한 생명이라야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한 육체가 되려면 한 생명안에서 가능하지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거죠. 이것이 창세기 2장에 명백하게 계시가 됐어요. 그러니까 만일에 창세기 3장 이후에 사건(선악과 사건을 말한다)이 없었으면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한 육체가 됐을 거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갈비뼈 하나를 빼서 하와를 지었다 이렇게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하리라 이렇게 될 건데 창세기 3장 이후의 사건이 생겼기 때문에 이것이 안 되고 종교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이겁니다”(이현래 목사, 2005년 2월 25일, 하나님 경륜의 중심 -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심).

"칭의와 죄 사함은 궁극적인 문제가 아니다"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 죄사함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 이것은 가르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궁극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새예루살렘에 가면 없어져 버립니다. 죄를 사함 받았느니, 의롭다 함을 받았느니, 오직 그분만 남게 됩니다.
  얼마만큼 그분의 성품을 받았는가, 그것만 남게 되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계시록을 보게 되면 죄를 사함 받았느니, 의롭다 함을 얻었느니 이런 말 아무것도 없어요.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다, 이 말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 말하게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아, 이것이 하나님의 성분이구나’ 그렇게 알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다 이 말이에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6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3-새예루살렘의 구성요소).

"하나님 경배하면 사이비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냄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성질을 보편화하려고 한 거예요. 종교는 그것을 갖다가 종교로 만들어 가지고 신을 숭배하는 그런 윤리로 만들어 버렸다고요. ···예배가 참 좋은 거 같잖아요. 가서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러니까 참 좋은 거 같아요. ···그런데 다른 길로 빠져가게 만든다 말예요. 이게 더 무서운 거예요. 차라리 전혀 아니다 하면 그냥 깨달을 수가 있어요. ‘아, 저거 아니구나.’ 그런데 비스무레 해가지고 비슷한데 아닌 거잖아요. 이것을 가지고 사이비라고 하잖아요. 사이비!  비슷하면서 아닌 거 같고 사이비라고 해요.

하나님께 열심도 있죠, 경배하죠, 참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있죠. 살고 있는데 정통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비껴가는 길이라 이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편화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더욱더 특수화되고 있죠. 갈수록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좋은 거 같은데 이상하게 좋은 것을 통해서 빗나가게 만들었습니다”(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9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4-살아 있는 인격체).

"하나님이 우리 인격 안으로 옮겨 온 것이 영생이다"
“요한복음 3장에 가면 니고데모가 나오는데 니고데모에게 ‘다시 나야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잖아요. 영생을 얻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영원한 생명, 다시 남, 이것은 뭔가가 바꿔지면서 새로운 것이 온다는 것 아니겠어요? 다시 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 한 인격으로 옮겨 온 것, 하나님이 한 인격 안으로 옮겨 왔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은 영생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생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생이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하늘에 계신 영생이다,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영생이잖아요. 객관적인 영생이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2장에서 어디로 옮겨 왔냐? 그것이 인격 안으로 옮겨 왔어요. 인격 안으로 옮겨 온 것이 우리한테는 영생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존재자체로는 어디에 있든지 영생이지만 우리에게 영생은 우리 안에 옮겨 온 것이 영생입니다.···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이 옮겨 오시면 그것이 바로 영광이고, 그 영광은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은 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문제라고. 품질의 문제라는 얘기를 했어요. 시간의 문제가 아니고 질적인 문제라고 얘기했어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30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5-내 아버지 집).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되기 위해서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메신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사실을, 성분화된 사실을 갖다가 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삼중 사역을 통해 들어오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삼중사역적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동충하초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속에 들어가서 그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되기 위해 오셨단 말예요.  그러니 항상 나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되지. 나는 그의 점령된 사항이 되어야지. 그가 나를 점령해가지고 내가 아니고 그가 되는 것이지. 나는 겉이고, 속은 그분이 된다는 것이지. 이것이 삼일 성 안에서의 우리의 존재의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삼일성적 존재가 되게 하는 거예요. 그분 자신이 삼일성을 갖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분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같이 삼일성적인 그런 존재가 되도록 하는 거예요. 이게 아니면 우린 아직 율법 가운데 있어야 해요. 이게 아니면 우린 아직 객관적 사역 가운데 있어야 해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9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4-살아 있는 인격체).

"하나님을 살려 낸 자가 산 자다"
“인격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가 사는 자리구나, 이것이 보여진 거란 말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목숨을 갖고 있는 것, 숨을 쉰다는 것이 산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이라 이 말입니다. 우리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하나님께 대하여 살 사람이 있는 것이고, 목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사람이 있죠. 성경은 산자와 죽은 자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공동 묘지냐, 아파트냐,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냐,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냐 이렇게 봐요. 그런데 뭐를 갖고 하느냐? 그건 인격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이 인격입니다. 육신이 아니고 인격이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영원히 살아 있는 사람, 영원히 산자, 하나님을 영원히 하나님 되게 한 자, 하나님을 살려 낸 자, 이것이 산 자란 말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다시 살아 난 것입니다. 아담은 결국 우리에게 죽음의 소망을 줬지만 그리스도는 산 소망을 주었습니다”(이현래 목사, 2003년 11월 2일, 유다서 - 완전한 구원).


기독론

부활은 예수가 우리에게로 들어오는 사건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교회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분의 육체의 번식이고, 그리고 그분이 말하는 성전이고, 그분이 말하는 아버지의 집이고, 그분이 말하는 나 있는 곳이고, 그분이 말하는 내가 간다 하는 그 집이었단 말이에요. 명백하단 말이에요. 한치의 틀림도 없습니다. 너무너무 분명합니다. 간다, 온다, 갔다가 온다, 갔다가 와서 너희를 데려 간다, 이것을 물질적으로 생각하니까, 엘에이에서 뉴욕에 왔다가 뉴욕에서 엘에이로 간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잖아요. 갔다 온다는 말은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죽는다는 말은 간다는 말이고,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이고, 부활했다는 말은 우리에게로 온다는 말 아닙니까? 자, 그러니까 부활은 더 이상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에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는 하나이지만 번식해서 돌아올 때는 많은 밀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이것은 예수의 실제가 확장된다는 말이에요.   밀의 실제가 확장되는 것이 밀알들입니다. 밀의 실제가, 밀의 모양은 처음 모양의 밀과 다를 수가 있어요. 그러나 실제는 같다는 말입니다”(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30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5-내 아버지 집).


"아담이 잠잘 때 하와를 만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온 인류를 살릴 것을 예표한 것이다"
“하나님이 한 육체를 만들었다.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었다. 자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갈빗대가 하와가 될 수 있느냐, 숨 중의 하나에 불과한 갈빗대가 어떻게 하와가 될 수 있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갈빗대를 취했다 이렇게 돼 있어요. 자, 잠든 중에 취한 거죠. 잠든 중에. 깊이 잠든 중에 하나됨의 역사가 시작이 돼요. 아담이 펄펄 뛰고 다닐 때 된 게 아니고 잠든 중에 하나가 빼졌어요.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 온 인류가 다시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고, 예표하는 거예요”(이현래 목사, 2005년 2월 25일, 하나님 경륜의 중심 -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심).


종말론

주님의 재림은 공중으로 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속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재림하면 둔갑하리라는 것은 너무너무 어리석은 생각이죠. 유치한 생각이죠. 주님이 어떻게 둔갑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그분의 성징이 어떤지 안다면 그분이 어떻게 오시는 지도 알아야 하잖아요. 그분은 사람들 속으로 오실 거란 말입니다. 공중으로 오시는 게 아니에요. 공중에 오시면 뭐하시겠습니까? 아무 소용 없잖아요. 사람의 속으로 와야 진짜로 오는 것이죠. 속으로 와서 영원토록 거해야 진짜로 오시는 거죠.  예수님이 왔다 해도 예루살렘에 오면 못 볼 거 아니에요? 또 내 옆에 왔더라도 내 속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 분하고 나랑은 상관이 없잖아요. 그분이 오신다는 것은 뭘 말하냐 하면 내 속으로 온다는 것을 말해요. ‘나화’된다. 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휴거해서 올라간다는 말도 내가 그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에요. ···사람이 공중으로 떠올라간다는 것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더구나 이 문명의 세계에서, 최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너무너무 맹신이다. 기적을 믿는 맹신에서 비롯된 것이다”(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6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1-서론)

▲ 2004년 5월 뉴욕집회에서 이 목사는 하나님의 편재성을 부인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람 속으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당에 간다는 신앙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천당은 어디인가? ‘어떤 공간이다! 푸른 하늘인지, 어디인지 모르지만 좌우간 공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왜 예수를 믿냐? 나는 죽어서 천당에 가려고 믿는다,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새예루살렘이 필요한데 그 사람은 천당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천당으로 다 가고 나면 새예루살렘에는 아무도 없을 것 아니겠어요. ···

심각한 문제죠. 보통 문제가 아니죠. 우리도 하마터면 그 교리안에 끌려 갈 뻔 했어요. 목표점을 모르고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들이 잘못 인도해서 우리도 천당에 가려고 열심히 하다가 천당에 가버렸으면 하나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아마 좋은 곳일지도 모르죠, 편안하고, 행복하고, 좋은 곳일지도 모르죠. 모르지만 하나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동떨어진 곳이에요.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예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30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5-내 아버지 집).

"천당이 공간이라는 개념은 휴지통에 날려 버려라"
“신약에서 생명은 어떤 것인가? 성육신을 통해서, 인생과 승천과 부활과 승천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시는, 실제로 우리를 포함함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나눠 줘 가지고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고 그분이 우리에게 오고, 그래서 그분이 우리 입구가 되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고, 이렇게 그분과 우리가 생명의 연관 속에서 포함과 관계 속에서 엮어져서 한 덩어리가 돼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객관적인 일이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 자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요. 객관적인 교리와 신학은 아주 신학적이고 성경에 반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완벽하고 그렇지만 생명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천당이라는 개념, 공간이라는 개념, 물질적인 개념, 이것을 휴지통에 완전히 날려버려야 해요. ··· 그렇게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잔재가 남아 있으면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  이게 있으면 우리가 우리의 자라남을 방해한다, 우리의 자라남을 지연시켜요. 혹시 자라더라도 왜곡시켜버려요. 빗나가게 만들어요. 오늘날 우리가 많은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나보면 말은 다 맞는 말이야, 성서적으로 옳은데 이 왜곡돼 있단 말예요. 생명이 왜곡돼 있어요. 심각한 문제예요”(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30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5-내 아버지 집).

예수님이 구름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겠느냐?
“분명히 그분은 머리로서 세상에 오셨지만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가지고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쳐다보고 있었더니 ‘왜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가 쳐다보고 있는 이대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리라’ 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지금도 하늘을 쳐다보면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예요.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읽으면, 지금 2천년을 기다렸는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연구하면서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어떤 현상적인 상태를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구름을 타고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구름이라는 것은 수증기란 말예요. 수증기, ···

사람이 수증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란 말예요.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가 그 아주 버려진바 된 예수가, 자기들이 무시했던 예수가, 지극한 영광중에 하늘로 오르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오르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올라갔다는 것은 높아졌다 그 말입니다. 공중으로 올라가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여기서 둥둥 떠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지금 간단한 예로 제가 여기서 둥둥 떠가지고 천장을 열고 하늘로 올라갔다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겠어요? 비행기 올라가나 사람이 올라가나 매 한가지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올라가셨다는 것을 그림처럼 그 현상처럼 생각하는 것은 그분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죠.  그분은 영광중에서 올림을 받았어요”(이현래 목사, 2004년 2월 29일,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 - 강림과 두 번째 오심).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은 그분 자신의 질적인 확산과 양적인 확대를 뜻하는 말이다"
“두 번째 오신다, 다시 오신다는 것이 뭔가, 이 씨를 뿌렸으니까 추수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예수라는 씨를 뿌렸으니까 추수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추수 때를 말합니다. ··· 이것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얘기합니다. 그분이 다시 오신다는 말은 추수하러 온다는 말입니다. 심겨진 씨가 자라고, 교회 안에서 자라고, 확산되고,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나라가 되고, 그것이 그분의 몸의 완성이 되고, 그것이 몸의 충만이 되게 되면, 그 때 주님은 오신다 이런 뜻이에요.

오신다는 말을 거리상으로, 시간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죠. 그분 자신의 질적인 확산이고, 양적인 확대이죠. 그분 자신이 교회 안으로 확대되고 확대되고, 확대되고, 교회 안으로 깊어지고, 깊어지고, 깊어지고, 충만해지고 충만해지고, 그래서 온 인류 안으로, 모든 사람안으로 충만해질 때 그분은 교회 안에 오시는 분이잖아요. 지금도 교회 안에 와 계시잖아요.  요한계시록 보니까 끌리는 옷을 입은 그분이 일곱 촛대 사이를 왕래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일곱 교회 사이를 왕래한다는 그 말이에요. 일곱 등대를 관리하고 있다 이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교회를 관리하고 있더라. 주님의 다시 오심, 그것은 그분의 몸의 충만이고, 그분의 교회의 충만이고 그래요. 그분이 다시 오시는 것은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떼처럼 있는 모여 있는 이 사람들을 타고 오신다는 말예요.  오늘 우리 안에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은 우리가 구름이 되는 것이죠. 하늘의 구름을 타는 것이 아니고 그를 환영하고 그분을 영접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구름이 된다는 말이에요. 어느 것이 더 영광스런 것이겠어요? 어느 구름이 더 영광스런 구름이겠어요? 수증기로 만들어진 구름이 영광스런 구름이겠습니까? 아니면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진 구름이 영광스럽겠습니까? 그분이 구름타고 와봐야 구경거리밖에 안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영광스런 교회 속으로 오실 때는 우리들의 충만이고, 축제이고 그렇겠죠. ···

관념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문제예요. 다시 오신다, 내려 오신다는 것도 그렇지만 다시 오신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완전히 바꿔야 해요. 그분은 지금도 오고 계시고, 또 오실 것이고, 완전하게 오실 거다 그거예요. 확실하게.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고, 찌른 자도 볼 것이고, 믿는 성도들에게 기이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이에요. 모이면 모임 안으로 자기 자신을 계속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안으로 자기를 계속 공급하기 원하고 계세요. 그리스도는 자기의 몸안으로 자기를 계속 공급해요. 자기를 공급함으로써 성장하게 돼요. 그런데 어떤 것을 공급하느냐, 시시한 자기를 공급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은 그 왕권을 가진 자신을 공급하신다는 말이에요. 오늘 우리가 공급받은 생명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공급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받는 예수는 그 예수를 받고 있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왕권을 받은 그 예수를 우리가 받고 있어요. 그분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왕권을 받은 사람들도 동일한 왕권을 받게 되요”(이현래 목사, 2004년 3월 1일, 하나님 비밀의 경륜 - 다시 오심).


"그분 자신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강림이자 다시 오심이다"
“우리가 왕권을 가지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왕권을 우리가 계속 주입 받아 가지고 우리가 왕권으로 충만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히 왕권을 분배하게 될 것이고, 왕권을 분배하게 될 때 그것은 영이요, 생명이라고요. 영이요, 생명, 말씀이나, 영이나, 생명이나, 이것이 다 표현은 다르지만 다 하나입니다. ··· 말씀, 하나님, 생명, 빛, 육체가 되심 다 하나란 말이에요. 이런 말씀 안에 있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왕권의 영광이, 왕권의 영이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오고 있다구요. ···

그분 자신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구요. 들어오고 있어. 지금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거예요. 강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오고 있는 거예요. 다시 온다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을 얘기하는 거예요. 늘 들어오고 있는데 어느 날 가면 이게 완전히 자라서 확산돼 가지고 그것이 몸이 완성돼 가지고 누가 봐도 ‘그리스도구나’ 하고 되게 될 날이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게 될 거란 말이에요. 기이하게. 야, 저 사람,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인데. 어제도 간증했잖아요. 저거 ㅇㅇ인데, 청송에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할 거 아니겠습니까? 어찌된 거야? 기이하네 이럴 거 아녜요? 왜? 그분이 그 안에 왔기 때문에. 그분이 강림했기 때문에 그렇다구요. 그 사람 속에 들어간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된 거라구요. 옛날의 ㅇㅇ가 아니죠. 기이하다. 그러니까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요, 비난하던 자도 볼 것이고, 절대로 안 그런다던 사람도 볼 거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그런 현상을 보고 있잖아요. 우리가 지금 보고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하고 바꿔졌다 이거예요. 자기가 결심해서 바뀐 게 아니고 위에서 계속 머리가 공급됐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에요. 보좌에 계신이가 계속 공급됐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이에요.

우리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라는 말은 이 생명이신 하나님을 사람 속으로 공급하는 겁니다. 왕좌에 계신 분을 하나님 보좌에 계신 분을 우리가 갔다가 공급하는 거예요.  그분을 갖다가 먹이고 공급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서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뭘 갔다가 놓고 오는 거예요. 비밀 요원으로 갔다가 스며놓고 오는 거예요. 그냥 돌아다니면서 밥만 먹고 오고, 잠만 자고 오기도 하고, ···그냥 오는 수도 있다구요. 기도도 한번 못하고 오는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비밀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내가 비밀을 놔두고 오는 거라구요”(이현래 목사, 2004년 3월 1일, 하나님 비밀의 경륜 - 다시 오심).


"여러분이 하늘 쳐다봤자 구름 타고 다시 오실분은 없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그분의 머리 되심이 몸 안으로 충만하게 역사돼가지고 그 몸이 그분 자신으로 완성될 때까지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날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자리예요. 그 이후에 다시 오시는 것은 없을 겁니다. 제가 단언하고 말하지만 여러분이 하늘 쳐다봤자 구름타고 다시 오실 분은 없습니다(신도들 아멘!).  2천년 동안 없었는데 그래도 인제, 제가 어렸을 때는 그랬어요. 2천년이란 시간이 상당히 멀었거든요. 그래서 뭐, ‘곧’ 온다고 했으니까. 곧이 언제냐? 하루가 천년 갖고, 천년이 하루 갖다고 했으니까 내일이면 2천년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우리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2천년도가 되면 예수님 오신다는 얘기요.

그런데 벌써 2004년입니다. 2004년인데 그러면 주님이 안 오신다, 안 오신다는 사람들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하는 데가 있어요. 그럼 제가 주님이 안 오신다고 하면 저거, 성경에서 틀렸다고 할 거 아닙니까? 주님이 안 오신 게 아니고 주님이 계속 오고 계신다니까요. 지금 오고 계셔. 나는 안 온다는 말을 한 게 아니고 오고 계셔. 그 사람들은 지금 먼 미래엔가 언젠가 모르는 날에 온다는 것이고, 나는 언제 올 것인가 확실히 알고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하루아침에 갑자기 오는 게 아니고 날마다 오시고 있어요. ··· 그러나 우리가 늘 말씀을 들으면 가랑비에 온 젖듯이 자꾸 젖어 들어와요. 어느 날 그것이 자기가 밝아질 날이 오게 되면 지금까지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거 같다가, 오늘 갑자기 말을 들은 거 같다구요. 오늘 갑자기. 내 귀가 번쩍 뜨여서 이런 말이 언제 있었나 싶어요”(이현래 목사, 2004년 3월 1일, 하나님 비밀의 경륜 - 다시 오심).

"교회가 그분 자신의 몸이 될 때 그게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볼 겁니까? 교회로 볼 거 아닙니까? 주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보겠어요. 교회로 볼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을 우리가 아들로 본 것처럼, 그분의 다시 오심을 교회로 볼 거란 말이에요. 머리가 몸 안으로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면 몸이 완성이 될 거예요. ···(이 부분에서 이현래 목사는 올챙이가 처음에는 머리만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가 나오다가 나중에 완성된다며 ‘올챙이 예화’를 말했다) 처음엔 머리만 있었는데 차차차차 발이 완성되고, 발가락 끝이 완성되면 그 때 다 끝나는 거예요. 그것이 주님이 다시 오심이라니까요. 다시 오신다는 거예요. 교회가 그분 자신이 될 때, 교회가 그분 자신의 몸이 될 때, 누가 봐도 아, 교회, 그리스도구나 할 때, 올챙이가 개구리 될 때, 그게 다시 오시는 때예요” (이현래 목사, 2004년 3월 1일, 하나님 비밀의 경륜 - 다시 오심).

 

교회론

"하나님의 본성인 성분을 분배하는 것이 사역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일은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인 성분을 분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 그러니까 선교를 한다는 사람도 많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어떤 사람은 죄를 사하는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의롭게 한다는 교리를 전한다는 사람도 있어요.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 이 말은 어떤 죄를 사한다는 말도 아니고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것을 전파하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전파하려면 이것 공부해서 되는 일이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교리를 전할 때는 공부를 하면 되지만 우리가 어떤 성분을 분배하려면 내가 그 성분이 없이는 분배할 수 없다고요. 내게 금의 성분이 없으면 금을 보여 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역은 교리적인 문제가 절대로 아니라는 거예요. 신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사역을 할 수 있다, 설교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은 제도죠. 하도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든 제도고, 실제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 자신의 성분을 분배하는 일이에요. 그분의 영광을 갈음하는 자신의 성분을 사람 속에 분배해서 사람 속에서 그 성분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를 왜 지었는가? 바로 이 일을 위해 지었어요. 우리가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하여금···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을 대신하려면 하나님의 성분이 있어야 대신하지, 하나님의 성분이 없이는 그분을 대신할 수 없어요. 만일 그분이 어떤 일을 하는 분 같으면 하나님의 일을 사람이 맡아서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뭐냐하면 자기 자신을 분배하는 일이란 말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분의 일을 하려면 그분을 분배해야만 그분 일을 하는 것이지 그분을 분배하지 않으면 그분의 일이 아니란 말예요” (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6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3-새예루살렘의 구성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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