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8 12:38 (목)
자살하면 모두 지옥가나?
상태바
자살하면 모두 지옥가나?
  • 정윤석
  • 승인 2005.03.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명 여배우 사건계기로 새롭게 논란

 

A 집사의 옆집에 사는 한 교인이 얼마 전 자살했다. 참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여성이었다. 교회는 그 일에 대해 침묵했고, A집사도 말해봐야 덕이 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내가 참 무심했구나’라는 자책감과 함께 착잡한 마음 한편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자살한 그 크리스천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은 자살하면 지옥에 가는 걸까?’라는 질문이 A 집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최근 한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는 자살과 관련한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 여성 연예인이 서울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었다는 점에서 ‘자살한 크리스천이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찬반 양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엄마, 자살하면 지옥에 가지!”라며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하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현실이다.

자살한 크리스천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살은 살인죄다 △생명의 주인이신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회개할 기회도 얻지 못한다 △믿음은 행위를 수반하는 데 자살은 그 사람의 믿음이 바른 믿음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자살이 큰 죄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자살한 사람을 무조건 구원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의견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에 자살 하나만 놓고 구원문제를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구원은 예수님과의 관계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살 자체를 구원과 연결시키는 것은 구원관에 혼돈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복잡해진 현대사회 속에서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의 경우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는 반론이다.

그렇다면 최근 불거지고 있는 크리스천의 자살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신학자들과 기독교 전문 상담사역자들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살이 잘못됐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자살은 곧 지옥행’으로 도식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신국원 교수(총신대학교 기독교철학)는 “사람의 구원 문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것”이라며 “단지 자살이란 외적 결과만을 놓고 구원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규훈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상담학)도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구원여부를 결정한다”며 “크리스천의 자살을 구원과 연결시키면 구원관에 혼동을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면서 자살이란 행위를 한 사람을 도매금으로 지옥행이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뜻이다.

오덕호 교수(호남신학대학교 신약학)도 같은 견해다. 오 교수는 <교회주인은 사람이 아니다>(규장)는 저서에서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지, 우리 죄를 구체적으로 모두 회개했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볼 때 자살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인 실수로 자살이란 큰 죄를 짓고 미처 회개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이 함부로 구원문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신학자든 기독교 상담자든 자살과 관련, 최근 일고 있는 구원 논쟁이 복음주의적 구원관을 훼손하고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교인들도 자살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회와 성도들은 정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오히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교인들이 혹시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국원 교수는 교회가 가진 공동체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신 교수는 “하나님도 나를 버렸다는 깊은 절망에 빠진 크리스천의 경우 자살하기도 한다”면서 “교회 공동체에서 교인들의 아픔과 고민을 섬세하게 챙겨준다면,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되어 준다면 자살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홍찬 원장(한국기독교상담연구원)도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도저히 헤쳐 나갈 길이 없다고 판단하고 여유를 갖지 못할 때 자살에 이르게 된다”며 “일단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정보를 흘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를 잘 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또한 크리스천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신앙일변도적 반응과 접근이라고 말한다.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향해 신앙이 없다고 질책하고 그들의 복잡한 감정을 무시하면 더욱 절망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 여성 연예인의 자살 이후 한국사회에 더욱 퍼져가는 자살 신드롬은 교회가 무심코 넘겨서는 안 될 정도로 파급되고 있다. 교회 직분자들 중에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살길이 막막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는 이때에 자살대책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