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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2천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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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2천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신론
  • 교회와신앙
  • 승인 199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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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교수(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한국교회의 이단문제는 그 심각성이 이미 공지된 사실이다. 그러나 심각성에 비해 대처와 처방이 미흡하고 적절하지 못했다. 이단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 또한 대처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이단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는 교리적인 문제의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단 사상에 대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과거에 어떤 교리에, 어떤 이단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본지는 이단이 발생할 수 있는 전 교리를 고찰, 오늘날의 이단 사상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고자 '기독교 2처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을 기획했다.

필자마다의 다소간의 학문적 차이점이 있고, 전문적인 용어 때문에 독자들에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집중해서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편집자 주>


머리말

정통교리를 떠나서 제 나름대로의 독선에 빠진 나머지 급기야 불행한 최후를 장식하는 이단들을 보면 제 궤도를 이탈하여 사고를 낸 기차를 연상하게 된다. 어리석은 지도자들로 인하여 무지한 영혼들이 당해야만 하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인간은 과연 초월의 세계, 특히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나라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있는가? 만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여기저기서 분출되는 다양한 사상들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으며, 진정 무엇이 진리인가를 누가 보장한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적은 범위에서나마 깨달을 수 있음을 허용하셨다. 우리가 성경이라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면 참된 지식과 지혜를 붙잡을 수 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이 글을 통해서 '이단'이란 '거짓교리'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사도적 교회가 믿어온 바를 버리고 참된 신앙을 포기한 무리들이 지닌 비성경적 신념을 의미한다. 미국 트리니티신학교의 조직신학교수인 해롤드 브라운(Harold Brown) 박사의 명저인「이단」(Heresis)라는 책을 중심으로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던 초대교회 시대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단의 아버지, 시몬 마구스
초대교부였던 이레니우스(Irenaeus)는 「이단들에 반대함」(Against Heresis)이라는 글에서 시몬 마구스(Simon Magus)를 향해 '모든 이단들의 아버지'라고 공격하였다. 이 사람이 사도행전 8장 9절에서 24절에 나오는 인물과 동일한가는 확실치 않다.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행 8:9)라고 하였다.

이레니우스가 공박한 시몬 마구스도 사마리아에서 크게 위세를 떨쳐서 주후 150년경에는 큰 집단이 되었다.

시몬 마구스는 자칭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하면서 초월해 계신 하나님을 부인하였다. 따라서 성경을 거부하였고, 내재하는 영의 성육신을 강조하였다.

구원을 위해서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천지의 근원을 고요함에서 찾고자 하였다. 마치 신비적인 안개 속을 헤매면서 마음으로 그 속에 있는 진리의 빛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시몬을 훗날 양태론(Modalism)으로 불려지게 될 신론을 갖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형태를 입은 구세주가 아니요, 높으신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과 구세주와(시몬 자신) 모두가 동격이다.

초창기의 이단들
말시온(Marcion)과 영지주의자들(Gnosticism)
헬레니즘과 유대교를 혼합하여 형성된 대표적인 이단사상으로 주후 150년경까지 큰 추종세력을 형성하였던 대표적인 이단사상이다. 주후 144년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창조교리를 변조시킨 초대교회 시절의 종교 철학운동이었다. '지식'을 지나치게 숭상한 나머지, 실재에 대해서 이원론으로 치달았다. 영혼과 물질, 정신과 육체, 선과 악, 구약과 신약, 이스라엘과 교회, 하나님과 예수님, 율법과 복음, 심판과 칭의 등의 대립과 대결 속에서 만물이 형성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말시온은 크레도(Credo)라는 시리아의 영지주의자에게서 이런 이원론을 배웠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영적인 권능' 정도로 이해하였고, 물질 세계의 근원자가 될 수 없다고 격하시켰다.

성경과는 정반대로 물질 세계란 전혀 별개의 근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별개의 근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펴서 창조론을 거부하였다. 물론 성경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 자신과는 완전하게 별도의 세계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며 영원히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피조물이다. 이러한 구분을 영지주의자들은 부인하였다. 이들은 이 세상을 의미있는 곳으로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육체를 죄악시하고 엄격한 금욕주의에서 신앙생활의 이상을 발견하였다.

말시온의 신론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란 높이 존경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하였다. 말시온이 생각하고 있던 것은 우주란 쇠사슬과 같은 영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란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 데미우르게(Demiurge)라는 것이다. 헬라의 신화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신들은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듯이, 일종의 그런 신이라고 본 것이다.

이 세상이 원죄로 인해 타락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소외되었다고 생각했다. 말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야훼 Yahweh)은 이때부터 화를 잘 내고, 용서할 줄 모르고, 엄격한 정의만을 고집하는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헬라의 신화 속에 나오는 신으로 곡해한 것이다.

말시온은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의 창조자는 참된 하나님으로부터도 소외당했고 영적인 사람들로부터도 소외당했으며 이로 인해서 실수도 곧 잘하고, 금방 후회도 잘 하는 거친 신이 되고 말았다고 설명하였다. 이 신이 인간의 불행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신이라고 보았다.

말시온은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진노하니까,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참된 신'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말시온의 극단적인 이원론은 여기서 잘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셨고, 신구약은 서로 내적인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진리를 오해하였다. 예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율법을 없애고 인간을 구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시온은 자신의 생애에 금욕주의적으로 살아가면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말시온의 눈에는 메시야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가 세웠던 신약시대의 교회들도 세계 역사의 일부가 아니다고 주장하였다. 세대주의의 창시자인 다비(J..N.Darby, 1800~1882)가 약 1천 8백년 뒤에 이 사상을 받아들여서 교회는 역사의 일부가 아니요, 괄호 속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말시온은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성자의 고난과 죽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다. 말시온은 성자를 '구원의 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절대로 죽거나 고난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성자는 성부의 다른 형태로 이해하여 양태론에 빠지고 말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교리의 일부가 여기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출발점은 근본적으로 이원론에서 나왔다.  하나님을 구약의 야훼의 신과 '신약의 알려지지 않는 신'이 예수를 통해 나타났다는 대립으로 곡해한 것이다.

몬타누스
말시온과 몬타누스는 동일시대의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안토니우스피우스 황제(Antonius Pius, 138~161 재위) 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새 예루살렘이 곧 임박했으므로 결혼은 금하고 말세를 준비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몬타누스는 자신에 대해 맹종을 요구하면서, "나는 특별한 예언적 은사를 받았다"고 확신시켰다. 자기가 받은 계시에 따르면 새로운 성령이 넘쳐흐르고 있으므로 곧 말세가 온다는 것이다. 1992년 10월 재림설을 주장하다 실패한 이장림 등의 재림파들이 쓰는 용어가 이미 이때에 있었다.

몬타누스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소개하면서, 추종자들은 기독교의 영적 엘리트로 확신을 불어넣었다. 막시밀라와 브리스가라는 두 여제자를 두었고, 소아시아 지방에서 큰 세력을 확보하였다. 막시밀라는 남편으로 하여금 몬타누스를 따르게 하고 자신은 소아시아 프리지아 지방의 페푸자라는 동네에 새 예루살렘이 임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세속적인 일을 중지하라고 했다.

"내 뒤에는 예언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오직 세상의 종말이 있을 뿐이다"고 극단적인 종말론은 가르쳤던 이들의 초기사역은 재림에 대한 사도들의 교훈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에 잘 구별이 안 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종결과 함께 몬타누스가 받았다는 '새로운 계시'의 정체가 차츰 드러나면서 이단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몬타니스트들은 금욕주의적 생활양식과 순교에의 자발적 참여 등으로 인하여 정통교리가 체계화되지 못했던 초대교회 시대에 정통교회들의 반발을 무력화시키는 위세를 발휘하였다. 심지어 터툴리안 같은 교부마저도 관련을 가질만큼 큰 해독을 끼쳤다.

가현설(Docetism)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현설을 들고 나와서 육체적, 실제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고 영적인 예수만이 있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 사상은 시몬 마구스가 선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 없이 그냥 외형상으로 존재하였으며,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아니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마술적 존재라는 것이었다.

가현설은 당시 헬레니즘의 합리적 사고와 부합하여 예수님의 탄생, 고난, 부활 등의 객관적 역사성을 모두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트라얀 황제시대(Trajan, 98~117 재위)에 순교한 안디옥의 아그나시우스가 가현설의 오류를 간파하여 "예수님은 형상만 있던 분이 아니요, 참 사람이었다"고 강조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성부와 성자를 동일본질의 한 분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태론(Modalism)
일반성도들에게 양태론이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는 바 많은 부분이 양태론적 삼위일체임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교역자들이나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설명이 이와 유사함을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양태론이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을 각기 다른 '형태' 혹은 '양식'(Modes)으로 계시하셨다는 학설이다. 창조시에는 성부로, 구원시에는 성자로, 승천 후에는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흔히 구약은 성부시대요, 신약의 초반은 성자시대요, 지금은 성령시대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를 '단일신론적 삼위일체론'이라고 부른다.

양태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은 받아들이면서도 창조부터 영원까지 성부와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한 하나님 안에서 세 인격들이 상호 동등한 권위와 경륜을 하고 계심을 인정치 않는다.

이레니우스는 그의 대전집(Magnum Opus)에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체계화하여 초대교회시대의 이단사상을 막는 데 공헌하였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다. 따라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과 말시온에 대항하여, 삼위일체의 구별된 부분에 관해 언급을 하여 줌으로써, 훗날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에 기초를 제공하였다. 

잘못하면 3위(位) 3신(神)이라는 3신론(新論)에 빠질 우려가 있으므로, 창세전의 일이나 성육신 등에 대해서 지나친 의구심이나 상상력을 갖지 말라고 이레니우스는 충고하였다.

삼위일체론의 오해 -아리안주의
325년에 채택된 니케아신경(the Nicene Creel)과 451년의 칼케돈 신경(the Chalcedonian Creel)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체계화한 위대한 문서들이다. 니케아신경은 318명의 교계지도자들이 모여서 초대교회의 신론을 체계화한 것으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일종의 양태론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로서, 피조된 존재이기에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가 일어나서 성경에 명백히 언급된 성자와 성부의 동일 권위와 신성을 공박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진일보하게 되어졌다. 물론 니케아회의 때까지만 해도 성령에 관한 논쟁이 없었다. 니케아 회의를 통해서 삼위일체의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의 논쟁이 있었다.

무엇이 아리우스로 하여금 성자에 대한 이단적 사상을 갖게끔 하였는가? 아리우스는 지적 엘리트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철학적 진술들을 펴고자 하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마치 루돌프 불트만이나 한스큉과 같은 현대 신학자들이 자꾸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철학적 사고에 깊이 영향을 받아 버린 결과와 같다.

아리우스는 성부 하나님 외에 성자나 성령이나 다른 모든 여타의 존재들은 동등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성자는 성부에게서 낳았다(begotten)고 했으니, 이는 달리 표현하면 창조된 것이다(Created)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피조물(creating)의 위치에 있으므로 경배를 받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회의에서 정죄를 받았으나 금욕적 생활로 자신이 거주하던 알렉산드리아서 존경을 받았던 까닭에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하여 336년에 사망하였다. 핍박이나 물리적 사형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는 거의 모든 명예나 지위를 회복할 정도에 이르렀다.

아리우스와 같은 사상은 훗날 미카엘 세르베투스(Servetus, 1511~1533)가 다시 들고 나와서 요한, 칼빈을 괴롭혔고, 끝내 회개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시 의회의 결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또한 소시니안파(Socinians)로 불리우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삼위일체가 거부되었고, 성자의 신성이 도전을 받았다. 16세기에 인간의 자기 능력 속에서 구원받을 만한 공로가 남아있다는 주장을 하였다니, 종교개혁자들이 명성을 날리던 시대에도 역시 이단들의 활동은 집요하였다. 

19세기 초 미국의 동북부, 뉴일글랜드 지방에서 역시 단일신교(Unitarians)라는 사상이 유포되어 하버드 대학교의 신학부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 이단들의 하나님 이해
이 글에서는 지면관계상 중세 시대의 이단들은 간략하게 넘어가고자 한다. 중세시대는 알셀름(St. Anselm)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스콜라 신학이 풍미하였다. 여전히 지성주의적 신학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체제 속에서 신을 이해하고 증명코자 시도하였다. 안셀름과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은 유명하지만 논리적 사유의 부산물일 뿐이다.

피터 아벨라르드(Peter Abelard, 1079~1142)는 안셀름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신학에 반대하여 다른 종류의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다. 아벨라르드도 역시 지성적인 사람들만이 종교에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교리와 정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벨라르드의 실수는 삼위일체의 신비로움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점이다. 그는 하나님을 3신(神)으로 이해하여 이단으로 빠지고 말았다.

여호와의 증인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은 반드시 집집마다 방문하고 그 사역결과를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열성적으로 포교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매월 정해진 양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은 목회자로 준비하는 동안이나, 전담 사역자로 일할 경우에 한 달에 140시간을 전도활동에 쏟아부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만 4천명의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정통교회에서는 이 숫자를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의 신학 중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라는 옷을 입은 영의 사람'이라고 보는 데 있다. 마치 가현설과 흡사하다.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 러셀(Russel, 1852~1916)에 의하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들의 모습과 같은 일종의 현상화로 나타난 인간적 신체일 뿐이요(창18장), 예수님은 성육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 후계자인 러터포드(Rutherford) 때에 급성장하기 시작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제 2의 신으로 전락시키고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단일신교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이며, 영원하지 않고 창조된 존재이나 성육신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삼위일체를 완전히 부인한다. 예수는 제한적 의미에서 신이라고 보고 있으며, 성령의 인격성과 하나님으로서의 지위는 부인해 버린다. 성령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간주한다. 아리우스가 4세기에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몰몬교(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몰몬교도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있다. 대신에 요셉스미드(Joseph Smith 1805~1844)라는 창시자와 같은 성지자들을 통해서 계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몰몬교에서는 성경의 하나님을 완전히 곡해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 4장 28절이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여 듣지도 못하여 먹지도 못하여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육체적인 몸을 지진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구별되어서 인간들을 행동과 특징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본문의 신명기 4장 15절에서 18절은 인용치 않는다.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

신명기의 가르침이나 성경 전체적으로 하나님은 만질 수 없는 초월자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몰몬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와는 완전히 반대에 서 있다. 
몰몬교에서의 하나님은 '최고의 경지에 올라선 인간'이다. "인간처럼 하나님도 한때는 같은 존재였고, 하나님의 존재와 같이 인간도 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은 최상의 회의에서 인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 회의에는 예수 그리스도, 에녹, 엘리야, 아브라함, 바울, 베드로, 요셉 스미드(몰몬교 창시자), 브링햄 영(몰몬교의 조직을 체계화함)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식의 다신교의 색채로 점철된 하나님의 이해가 어떻게 나왔는지 성경을 읽는 성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몰몬교에서는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6절, 이사야 40장 12절에서 31절, 45장 18절 등이 강조하는 주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지배하시는 주권자시오, 영원하신 하나님이며,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강조를 외면하는 무리들이다.
몰몬교에서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분이다.
 
결론

이단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거나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비록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보여주시는 부분이 어렵고 난해할지라도 우리들에게 알려 주신 바 그 자체는 명백하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서 성부는 성자를 알고, 성자만이 성부를 아신다. 요한복음10장 33절에서 성자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여 참람하다고 공격을 받았다. 광야의 시험에서 사탄마저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정하고 있다(마4:1-11).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님 되심은 성경이 전해주는 바요,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다.

삼위일체는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인격의 연합을 의미한다. 한 분 하나님은 세 인격의 상호관계 속에 일하신다(약 2:19).

삼위일체 교리를 불가해한 것으로 단정하는 사람들은, 3차원의 세계를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가 말하는 삼위일체(Trinity)교리에 대해서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유추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간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를 필요로 한다. 세 가지가 모두 다 똑같이 중요하며 서로 없어서는 3차원이라는 공간이 세워지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이중에서 개별적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체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끝으로 두 가지만 첨언하여 둔다. 
첫째로는, 삼위일체의 교리는 하나님이 자기 계시를 통하여 세우신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심어주시기 위해서 친히 계시하신 것이며, 삼위를 통해서 구원을 베푸신 사역이 총괄적으로 정리된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을 대치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의 참된 기초를 추구하려면 삼위일체는 필수적인 신앙의 내용이 되고 만다. 이단들은 이를 버리고 인간적인 사색과 이성으로 맞추려다가 멸망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 성령님에 의해서 아버지께 나아가느니라"(엡2:18, NIV.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to the Father by one Spirit.")
(월간 <교회와신앙> 199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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