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06-22 11:03 (화)
“역사적으로 모든 개혁신학자들은 ‘준비론’ 가르쳤다”
상태바
“역사적으로 모든 개혁신학자들은 ‘준비론’ 가르쳤다”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21.05.26 0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 준비론 비판에 대한 마르투스출판사측의 반론
마르투스출판사가 페이스북에 2021년 5월 21일 회심준비론 주장에 대한 반박 글을 올렸다
마르투스출판사가 페이스북에 2021년 5월 21일 회심준비론 주장에 대한 반박 글을 올렸다

진용식 목사(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안산상록교회)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 준비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내온 마르투스출판사가 페이스북 계정(마르투스 출판사 페이스북 바로가기)에 두 차례 반박글을 올렸다.

2021년 5월 21일 올린 반박 글은 회심 준비론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형태의 글이었다.

마르투스출판사는 “역사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칼빈, 청교도, 모든 개혁신학자들은 회심 전 거치는 과정으로서 ‘준비론’을 분명히 가르쳤다”고 밝혔다. 출판사측은 “많은 오해 중에 ‘준비’를 마치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생각하고 적용하려는 점이다”며 “회심(중생)하기 전에 있어야 하는 준비는 곧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의 회개를 준비하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출판사측은 “개혁 신학은 결코 회심 전의 준비를 은혜 받는 원인이나 근거로 말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구원을 얻기까지 성령님께서 죄인이 믿음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을 쓸어 버리시는데 이를 위해 인간의 지성과 양심이라는 기능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 지성과 양심에 복음적 부르심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심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신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요구하지만 대개의 경우 믿음을 위한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는 잃어버린 죄인들의 영혼이 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 준비 교리의 본질이다.”

하나님께서 중생의 은혜를 주시기 전, 사람의 마음의 죄악을 보게 하시고 그것으로 애통을 일으키시고 지독한 교만이 깨어져 자기 존재가 무너지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스스로 공로를 쌓는 의미에서 회심 준비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반박한 것이다.

출판사측은 2021년 5월 22일에도 반론을 올렸다. 두 번째 반론에서는 회심 준비론이 회중파 청교도만이 아니라 장로파 개혁주의에서도 가르치는 교리라고 설명했다. 이 반론은 마르투스출판사측의 허락을 받아 해당 글 전문을 올린다. 
------------------------------------------
청교도의 준비론은 회중파만의 교리인가?

*이 글은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사랑하는 분들이 장로파 개혁주의는 이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한 반론이다.

준비론 (preparation )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중세 교부학적 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청교도들보다 오래 전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은혜를 선택받은 백성을 불신에서 영광으로 이끄는 과정에 상응하는 일련의 점진적 단계로 설명했다.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59)

1. 아우구스티누스의 준비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에게 사랑을 먼저 베푸셨던 분은 누구신가? 그 사랑을 아무리 과소평가할 지라도 의지를 준비시키시고, 그분의 역사로 인해 시작하신 일을 그분의 도우심으로 완성시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아니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일하시기 시작하셔서 우리가 의지를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빌 1:6)라고 말했다.[Augustine, On Grace and Free Will, 33장,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5:458.]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빌 2:13; 롬 9:16), 스스로를 준비시켜서 구원의 은혜를 받을 만한 공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는 죄인들이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자발적으로 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발적인 반응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잠 16:1).” 그는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지를 의롭게 만드시고, 그 의지를 준비시키시며, 준비되었을 때 그 의지를 도우신다.... 이러한 준비는 비자발적인 마음을 자발적으로 만들며 자원하는 마음을 지닌 자에게는 그 의지를 효력 있게 만든다.”라고 기록했다.[Augustine, The Enchiridion on Faith, Hope, and Love (Washington, D.C.: Regnery, 1996), 39-40 [32장].]

2. 존 칼빈의 준비론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직접 인간을 준비시키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고 말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로 향하도록 하나님께서 죄인을 준비시키시는 한 예로,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간절함(눅 19:1-10)을 들었다.

칼빈은 “여기서 아직 삭개오가 믿음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간절함은 믿음을 위한 하나의 준비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보기를 아주 진지하게 갈망했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화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시기 전에 종종 인간들에게 은밀한 갈망을 부여하시는데 이러한 갈망은 그들을 그분께로 인도한다.”기록했다.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66)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이중 지식”에 대해 언급했는데, 즉, 첫째는, 창조주의 주권적 선하심과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느끼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화목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Inst, 1.2.1) 믿음은 “머리(brain)보다는 마음(heart)이고, 이해(understanding)보다는 성향(disposition)인데,” 그 이유는 “믿음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만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칼빈은 말했다.(Inst, 3.2. 따라서 구원 얻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지성(mind)의 설득뿐 아니라 마음(heart)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또한 포함한다.

그의 뒤를 따른 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회심의 중심점은 의지라고 말했다. 그는 빌립보서 1장 6절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한 일을 시작하신’이라는 구절은 회심 자체의 근원이 의지 안에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our hearts)에 의에 대한 사랑과 갈망과 열정을 불러일으키심으로써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이 의로 향하도록 그 마음을 굽히시고, 형성시키시고, 인도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다.”고 말했다. “마음”과 “의지”라는 말을 계속해서 번갈아 사용하면서 칼빈은 새 마음을 주신다는 약속(겔 36:26-27)에 대해서 썼다. 그는 “의지란...악에서 선한 의지로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Inst, 2.3.6) 구원 얻는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칼빈은 “단지 어떤 견해나 설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믿음은 교인들을 “전적인 무지”로 남겨두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 굴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믿음을 논하는데 있어 지식을 강조했다.(Inst, 3.2.2) 하지만 지식에 대한 칼빈의 개념은 머리로 깨닫는 지식뿐 아니라 마음(heart)으로 깨닫는 지식까지 포함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 위에 맴돌 때가 아니라 그 말씀이 마음 깊이 뿌리 내릴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믿음이 사랑과 떨어질 수 있는가?...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냉랭하고 기본적인 지식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존 칼빈, 야고보서 2:14 주석)

이와 같이 믿음얻는 구원은 머리와 마음 둘 다 사로잡는 지식을 포함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춰진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스럽고 겸비한 인식을 포함한다.

칼빈은 “스스로를 정죄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됨이 없이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저주에 대한 두려움과 극심한 고통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인간이 하나님께 올바르게 회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John Calvin, The Deity of Christ and Other Sermons, Leroy Nixon 번역 (Audubon, N.J.: Old Paths Publications, 1997), 54.]

이와 같이 칼빈은 율법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성시키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의 도구라고 말했다. 칼빈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인도하는 율법의 기능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는 또한 불신자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오도록 하는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한 사람도 예외[된] 자 없이 하나님 앞에 모든 이를 부른다. 율법은 아담의 모든 자손을 정죄하고,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내쳐져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과 지옥 불에 삼켜지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찾을 수도 없고, 어떤 다른 소망도 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가 된다. 이제 하나님께서 천둥이 몰아치듯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자비를 향하여 반드시 달려가야 한다...우리 안에는 단지 영벌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 겸비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구해야 한다.[John Calvin, Sermons on Timothy and Titus (1579; facsimile 재판, Edinburgh: Banner of Truth, 1983), 50-1.]

칼빈은 도덕법의 세 가지 용도에 대해서 말했다. 데이비드 존슨은 이 세 가지 용도를 “예비적 용도, 보존적 용도, 회복적 용도”로 설명한다. 그는 “율법의 첫번째 용도는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특히 믿음으로만 말미암은 칭의를 간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David C. Jones, “The Law and the Spirit of Christ,” in A Theological Guide to Calvin’s Institutes, David W. Hall과 eter A. Lillback 편집 (Phillipsburg, Pa.: P & R Publishing, 2008), 302.] 그는 사회에 대한 규제와 신자들을 위한 삶의 원칙으로써의 율법의 용도를 강조했음에도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한 죄에 대한 깨달음과 정죄의 기능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율법은 죄인들의 자연적 양심을 보조한다. 칼빈은 자연적 양심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떠한 수단으로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억누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까지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묘사했다.(Inst, 3.19.15) 인간의 양심이 깨어나지 못하거나 위선에 빠져있다고 하더라도 양심이 깨어나게 되면 그것은 죄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며 그들의 모든 변명을 제거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는 심판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영광을 양심에 비춰주는 도구가 되어 영혼을 추적하며 죄인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도록 한다. [David L. Foxgrover, “John Calvin’s Understanding of Conscience” (박사학위논문, Claremont Graduate School, 1978), 143-45, 369-80.]

또한 칼빈은 아직 중생하지 않은 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선행으로 혹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먼저 그들이 비워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기에 적합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율법은 자신의 비참함을 인식하여 겸비해지도록 함으로써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들의 부족함을 놓고 간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Inst, 2.7.11)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들과 그로 인한 정죄를 직면하게 하고, 우리의 교만을 낮추며, 우리의 의와 하나님의 은혜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거울이다.[Guenther H. Haas, “Calvin’s Ethic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Calvin, 100.]

이렇게 칼빈은 분명히 자기 인식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얻는 믿음을 위한 선행적이고 준비적인 역사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바라봤다. 이와 같이 청교도 준비 교리에 대한 씨앗들은 존 칼빈의 신학에서 발견된다.

칼빈의 신명기 강해에서는 이렇게 준비론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그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올바로 인도해 주셔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뚜렷이 다른 두 가지 은혜를 수여하신다는 사실이 언급되어야 한다. 하나는 우리가 준비되어 그분께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은혜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를 깨우치셔서 그분의 뜻을 알게 되는 즉시 그분을 섬기는 지속적인 애정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는 은혜이다.... 인간이 믿음으로 이끌려오기 전에...그들은 미리 어떤 적절한 준비를 하게 된다.... 그들은 믿음은 없지만 믿음으로 가는 입구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적 움직임이 인간으로부터, 혹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부터 나오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분께서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가르치셔서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여하신 하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행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Calvin, Sermons on Deuteronomy, 422.]

이와 같이 칼빈은 하나님의 준비적 은혜는 믿음으로 가는 길로 인도해 준다는 것과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음에도 회심하지 않은 자의 의무는 이러한 준비를 추구하는 것임을 분명히 확신했다.

#청교도 #마르투스 #준비론 #은혜로말미암은준비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율법 #회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