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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증인·안식교·지방교회 다니다 장로교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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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증인·안식교·지방교회 다니다 장로교 안착”
  • 정윤석
  • 승인 2019.12.0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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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호 씨, 성경통독, ‘칼빈·바빙크’ 읽으며 신앙의 본질 찾아

기자(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는 2019년 11월 26일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최주호 씨(40, 한마음개혁장로교회 출석)를 만났다. 아래의 글은 천주교 모태 신앙인으로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지방교회를 전전하다가 정통 장로교회에 안착한 최 씨의 신앙의 편력의 과정을 정리한 글이다.

▲ 최주호 씨는 여호와의 증인을 시작으로 안식일교회, 지방교회 등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곳들을 출석했다

하루는 친할머니가 집에 들어오던 날이었다. 할머니의 손에는 ‘파수대’(여호와의 증인들이 포교를 위해 배포하는 월간지)가 있었다. 큰 의미 없이 길거리에서 나눠주던 걸 그대로 들고 오셨다. 파수대의 제목은 ‘경쟁이 성공의 열쇠인가?(파수대 1994년 3월호)’ 였으며 그 잡지를 다 읽고 나서, 그 시기에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란 여호와의 증인(여증)의 성경연구 교재를 접하게 되었다. 여증의 이 서적 두 권은 당시 중학생이던 최 씨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연약한 인간의 삶에 대한 생생해 보이는 듯한 전망과 세상 종말에 대한 명료한 가르침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최 씨는 모태 천주교인이다. 중학교 3학년까지 천주교인으로 살던 최 씨는 파수대를 보고 직접 워치타워협회 한국지부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여증에 대해 알아 보고 싶다는 앳된 최 씨의 말은 그 어떤 전화보다 반가웠을 것이다. 협회에선 곧바로 서울 서초구 근처의 지역 왕국회관을 소개해줬다. 중 3이 되던 시절, 여증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처음 왕국회관을 출석했을 때의 감격을 최 씨는 생생히 기억한다. 모든 사람이 선해 보였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한 자리에서 경건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은 이들이야 말로 성경말씀 그대로를 이 땅에 실천하려는 의의 투사 그 자체로 보였다. 가르침도 매우 명료했다. 이렇게 최 씨는 중·고·대학생 초까지의 시절을 여증에 바친다.

“그런데 내적 고민이 있었어요. 처음 들었을 땐 모든 교리에서 ‘와!’하는 감탄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에이···’라는 실망으로 바뀌었지요. 그리고 그들의 교리에 한계와 모순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1~2년은 감동으로 다니고 그 후엔 동음반복에 지나지 않는 교리를 계속 듣는 거죠. 싫증이 나게 돼 있어요. 처음에는 단기간에 사람의 관심을 끌고 사로잡게 하는가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부실함과 얕음과 모순이 차츰 인식되었어요. 저의 경우 이단에 빠질 때마다 보통 3년안에 권태기가 찾아 왔습니다.”

고민·갈등하는 어린 나이의 최 씨에게 한 동료 여증 신도가 말했다. “주호 형제, 다른 데는 귀를 막고 오직 성경이 뭐라고 하시는 지에 대해 귀를 기울여 봐요!” 최 씨는 그 말 그대로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귀를 기울이며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증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성경을 읽는 그 과정에 가장 큰 갈등을 겪던 것은 대표적으로 여증의 병역 거부 교리와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예수를 성부 하나님 보다 하등의 피조물로만 보는 교리였다.

“말 그대로 다른 데는 귀를 막고 성경을 읽다가 발견했어요. 베드로에게 세례받은 고넬료가 군대 백부장이더군요. 그런데 퇴역하라는 말씀이 없었어요. 세례요한에게 군인들이 세례를 받으러 올 때 군인들도 동일하게 세례를 받았지 거절당하지 않았어요. ‘성경, 성경’하던 여증의 감독·장로들이 제가 위의 구절을 들고 가서 ‘성경에도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이 있는데 왜 우리는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까지 가야 합니까?’라고 따졌더니 속 시원한 답을 못해줬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에게 순종하시며 자신을 낮추시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혹은 ‘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라는 말씀도 나와요. 이러한 예수의 말씀들은 단순한 피조물로서는 도저히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지요. 그런 예수의 말씀을 읽었을 때 ‘예수는 성부와 구별되는 겸손한 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으로서 동등한 권능을 주장하실 수 있는, 피조물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늘 저를 흔들었어요.”

성경을 읽을수록 ‘여호와의 증인이 진리인가?’라는 확신이 점차 불투명해져 갔다. 결국 최 씨는 성경에도 없는 규율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여증을 탈퇴하기에 이른다. 병역을 앞둔 해였다. 군대를 가는데 하등 양심의 가책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한 곳에 몰두하면 미치도록 빠져 들어가는 최 씨의 기질은 그를 군 제대 후 ‘재즈, 소울, 힙합’ 등 음악에 심취하도록 만들었다. 음악을 듣고 동호회 생활을 하면서 평론하는 데 몰두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었지만 영혼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서울의 헌책방에 갔다가 책을 사갖고 나온다. 3권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엘렌지 화잇(안식교에서 선지자로 간주하는 사람)의 ‘각 시대의 대쟁투’란 제목의 책이었다. 성경을 추상화하지 않고 역사속에 구체화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내용이 매력적이었다. 이 책을 미치도록 독파한 최 씨는 이번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경기도 S교회)에 출석한다. 2004년 25살 때의 일이다. 음악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레 대쟁투 등 엘렌지 화잇의 책을 탐독하면서 학교를 복학하며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삶의 상당 부분을 안식일교회 생활에 몰두를 하게 된다.

▲ 여호와의 증인을 떠나 최주호 씨는 안식일교회에서 생활했다.

안식교에 25살에 들어가 28살까지 지낸 최 씨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조사심판교리’(예수 그리스도께서 윌리엄밀러의 시한부 종말 주장 연도인 1844년 이전까지는 성소에 계시다가 1844년 이후로는 지성소로 들어가 인간의 죄를 샅샅이 조사해 심판하신다는 교리)와 ‘영혼멸절설’(사람이 죽으면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의 ‘중간기’가 무의식이라는 교리)이었다.

최 씨의 경험 속에는 안식교에도 소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다. 강경파는 엘렌지 화잇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2300주야·조사심판 교리를 굳건히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온건파는 안식교의 절대적 교리에 오직 예수·오직 믿음을 적절히 섞어서 ‘조사심판’의 난제와 약점을 피해가며 기존 복음주의 개신교와의 접촉점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죠. 안식일교회의 참된 교리적 기둥은 ‘조사심판’이에요. 저를 아끼던 한 젊은 안식교 목회자가 정확히 말하더군요. ‘주호 형제,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 해. 안식일교에 온건파들이 있는데, 그들처럼 믿으면 안 돼. 엘렌지 화잇 여사가 가르쳐준 조사심판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이 참된 안식일 교인이야.’ 이 말을 듣고 제대로 믿어보려고, 조사심판 교리를 성경적으로 검증해 보니 이 또한 오류 투성이었어요.”

결국 조사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얻는 것을 부정하는 교리였다. 예수 믿는 건 시작일 뿐 최후에 가선 내 행위를 샅샅이 조사당해서 부족하면 심판을 받는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2008년 안식일교회를 떠나 지방교회로 간다.

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과 그의 후계자 위트니스 리의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라는 책에 매료되어서이다. “과정을 거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과 “신자의 영”이 본질적 “연합”을 통해 “생명과 본성에서 신자가 하나님이 된다”는 신화 사상, 그리고 “자아의 죽음”과 “속사람”을 강조하는 지방교회의 주장은 율법주의적인 안식교에 비하면 매우 ‘영적’으로 여겨졌다.

▲ 지방교회 신도들과 서울의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최주호 씨

잠깐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지방교회마저도 최 씨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했다. 특히 ‘오 주예수여!’를 천번이고 만번이고 외치는 그들의 기도방식과 이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신앙생활의 양상과 그들의 전체 교리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라. 그러면 내 영과 하나님의 영이 하나가 되어 결국에는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고 가르쳤어요. 그래서 ‘오 주 예수여, 오 주 예수여!’라고 외치곤 하죠. 그걸 수천번, 수만번씩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스도의 성분이 속사람에 쌓여 결국 죄는 물러가고 거룩한 삶으로 나타난다고 해요. 그런데 그거만 해서 죄가 물러가고 거룩해지다면 성경에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말씀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외우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이리도 간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교리적 난센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도 거의 8년 동안 지방교회에 몸담을 수밖에 없었던 건,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최 씨가 지방교회측 출판사와 팬시 사업체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주일 오전엔 지방교회, 오후엔 정통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그는 2017년 지방교회를 완전히 탈퇴하기에 이른다.

최 씨의 특징은 3개의 이단 종파를 전전했음에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경읽기는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 중 하나다. 지금도 최 씨는 매년 신구약 1독, 신약 2독을 한다. 이단 비판서적도 많이 읽었다. 최삼경·진용식·이영호 목사의 글도 읽었고 이인규 장로의 글도 적잖게 접했다. 필립샤프의 교회사, 칼빈의 기독교강요, 그리고 존 맥아더를 거쳐 존 파이퍼, 로이드 존스, 스펄전,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 등 개혁교회와 관련한 책도 탐독했다.

“칼빈, 존 맥아더, 로이드 존스 등의 책을 읽게 된 건 제가 몸 담았던 이단단체를 의심해서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신앙의 고전들과 주류 개신교 신앙의 책들을 통해 내가 속한 이단의 교리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그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신앙의 고전에서 내가 몸담고 있는 이단 단체의 모순을 비판하는 걸 발견했다는 거예요. 신앙의 고전들을 통해 이단을 나올 수 있는 씨앗이 뿌려진 셈이죠.”

최 씨는 특히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개요>(크리스천다이제스트)를 읽으면서 앞으로 정통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인지 더욱 투명해져 갔다. 어떤 교회를 선택하는 게 좋은지,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무엇인지 뿐 아니라 직장생활을 포함한 세상에서 어떻게 신앙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것 인지에 대해서도 좋은 지침과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 한마음개혁교회에서 정통 장로교인으로 생활하는 최주호 씨(사진 우측에서 두번째)

기자는 개혁장로교회에 안착하며 신앙생활하는 최 씨에게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이단단체 편력의 과정을 거쳐 온 것처럼 개혁교회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최 씨는 그런 질문을 적잖이 받는다고 말한다.

“껌을 한번 씹을 때는 단맛이 나지만 단물이 다 떨어지면 맛도 없고 턱만 아파요. 이단단체에 있으면 처음엔 정말 쇼킹한데, 시간이 지나면 동음반복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영적 식물인간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통교리는 씹으면 씹을수록, 이 단맛이 언제 끝나나, 그 감격이 끝이 없어요.”

이런 감격이 클수록 그에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이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조금더 생각하면 그에겐 이런 마음이 든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지방교회에 있을 때, ‘올바른 길이 아니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이키게 해 주소서’라고 필사적으로 기도하던 때가 있어요. 과거에 한번은, 저희 집 아파트를 올라가면 저 멀리 한강이 보였어요. 밤낮으로 ‘야곱처럼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놔 주지 않겠습니다’라며 절규하듯이 기도했어요. ‘나를 물리적으로 이끄시더라도,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구요. 그러나 당시는 아무 응답 없는 하나님께 야속했어요. 왜 진리를 당장에 내 마음에 조명해주지 않으시냐며 하나님께 화를 내고 분노했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언약적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인격적인 분이시잖아요. 이방종교의 신들이나 독재군주처럼 자신의 자녀를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다루지 않으신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해요.”

정통 장로교회에 안착한 최 씨는 시각디자인 전공을 살려서 북디자인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 위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한번 정도 틀릴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찰하고 반성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단에 있는 사람들은 이게 안돼요. ‘나는 틀린 게 없어’라고 하죠. 그런데 우린 피조물이잖아요. 하나님은 틀림없지만 나는 틀릴 수도, 불찰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런 생각을 한번이라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음은 최 씨와 서면으로 주고 받은 질의 응답을 요약한 내용이다.

▲ 최주호 씨는 천주교 모태신앙인으로 자랐다

1. 저와 페이스북 친구이다. 만나서 반갑다. 최주호님의 페북(최주호 씨 페이스북 바로가기) 문체는 매우 세련됐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많은 방황을 하셨더라. 편력이란 말이 있다. 종교적 편력의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할 정도인데, 지금까지 거쳐 온 단체를 알고 싶다.

유년 시절 및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으로 인해 천주교회에서 영세와 견진을 받아 신앙을 시작하였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고자, 그리고 신앙에 대해 깊어지고자 천주교 사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 때인 10대 시절에 여호와의 증인의 서적인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라는 책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을 출입하였으며, 20대 대학교 때는 엘렌지 화잇의 <각시대의 대쟁투>와 <대쟁투 총서>를 읽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4년간, 그리고 3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워치만 니의 주저인 <영속인>이란 책과 위트니스리의 책인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란 책을 읽고 매혹되어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신자가 되었으며 거의 신자가 되자마자 그곳의 출판기관에서 거의 8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2. 내면에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 남다른 편력의 과정을 거쳐 온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할 말이 많지만 간단하게 하면 어릴 때부터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 자체는 별 다른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믿어졌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고 있고 그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려주는 신·구약 성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는지 이해하는 데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 8:31)하는 구스인 내시와 같은 갈등과 질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조명으로 합당한 답변을 얻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즉, 참된 성경진리와 복음을 깨닫게 되기까지 바른 길로 지도해 주는 사람 혹은 디딤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그릇된 이해로 인도해 주는 ‘거짓 스승’과 영적 장애물만 만나 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하나님이 이런 나를 오랫동안 방황 가운데 방치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연약한 피조물인지라 진리의 분명한 조명을 받는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영적 인식의 연약함과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과 현실은 너무나 장애물이 많았고, 너무나 복잡했고, 내면의 영적 갈등은 너무나 힘들었었고 가혹했었다.

그 과정은 지금처럼 정통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말씀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밝아지고 냉수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고 기쁜 것이 아니라, 이단 종파들에 있던 당시와 그곳에서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면서 문제가 더 꼬이고 어려워졌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부패한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불투명한 신에 대한 인식과 영적고뇌는 마치 시편 기자에게 가해지던 원수들의 조롱과 같이,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시 42:3)라는 외침과 조롱 같았다. 이러한 내면의 외침은 청년시절 내 삶의 무거운 짐이었다.

즉, 이단의 교리는 처음에는 참으로 단 기간 안에 사람의 관심을 끌고 사로잡게 하는가 싶지만, 이단에 있는 시간이 지나면 그 부실함과 얕음과 모순이 차츰 인식되었다는 것인데 본인 같은 경우 각각의 이단에 빠질 때마다 이 갈등의 시점이 보통 2년반에서 3년안에 찾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는 야고보서의 말씀에 늘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부단히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응답되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의 빛이 내안에 분명하게 성령께서 조명해주시기 까지는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초대교회와 고대교회가 기독론과 신론을 이해해 가며 영지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파생된 허다한 이단들과 논쟁하고 충돌해 가면서, 그렇게 초대 교회가 몸살을 겪었지만 장차 정통교회를 건강하게 지켜나갈 공적인 신조를 만들어가고 교회와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나갔던 것처럼, 그러한 기초들이 오늘날 현대교회가 -비록 많은 부분 주름 잡히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적어도 보편적인 공교회의 기초와 반석을 유지하는 것처럼, 본인도 어린시절부터 현재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리고 섭리적으로 본인에게 여러 가지 영적이고 종교적인 장애물을 만나게 하심으로써 – 인간이 진지하게 성경을 이해하며 하나님을 참되고 필사적으로 믿고자 할진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할 때 그런 오류와 장애물을 만나고 함정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해주셨다는 생각이다.

즉, 사람이 이단종파들처럼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며 무엇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예수와 올바른 관계를 맺기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를 알아 갔으며, 또 일반은총(세상)에서의 삶 또한 얼마나 피폐해 지는지를 깨닫게 해주셨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그 폐해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신자가 여호와의 증인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을 때 나아가 우리가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특별히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주목하며 성령의 유효하게 하는 구원의 역사를 믿지 못했을 때 죄인의 구원이 얼마나 위태해지고 그저 사람의 행위에 의존하는 공로주의 신앙이 되어가는 지를 깨달아 갔다는 것이며, 또는 재림교(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처럼 사람이 죽으면 혼이 소멸되고 지옥의 형벌이 영원하지 않다고 했을 때 도덕률과 죄에 대한 인식도 그 지점과 수준에서 멈추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되고,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치르시고 구속하신 인류의 죄 값의 무게와 그것을 전가 받으시고 또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돌리신 그분의 구속의 가치 또한 그 정도 지점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30대 때 출입하던 지방교회에서는 위트니스 리의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시는 과정을 거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믿는 이가 먹고 마실수 있는 만유를 포함한 복합적인 영이 되어 믿는 이 안에서 연합되므로써 그리스도가 증가되고 확대되고 연장이 된다’ 교설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버린 고대 이단이던 ‘양태론 사상’에 좌초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리스도를 먹는다’라는 사상 역시 불변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을 그저 물질과 같은 요소로 축소시켜 버리고 결국에는 그분의 영광을 격하시켜 버릴 수밖에 없는지를 깨달아 갔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식 으로 하나님을 이해했을 때 전체 성경과 충돌을 일으키고 인간 편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경건이 올바로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지방교회의 이단성과 오류를 통해 깨달아 갔다는 것이다.

즉, 내가 주류 교회사를 연구했을 때 ‘아, 초대교회와 고대교회의 신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단들과 싸우며 겪었던 교리적 고민들과 투쟁을 나도 하는 것이었구나’, 그리고 ‘고금을 막론하고 정통 교회 안팎에 이런 교리적 어려움들이 늘 있어왔고 지금도 있는 것이구나’하는 감탄과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정통 교회의 선구자들이 이러한 이단 종파들의 그릇된 사상과 씨름하면서 교회의 앞날을 설계할 수 있었듯이, 본인 또한 그러한 종교적 어려움을 극복하므로 건강한 신앙을 정립하고 있으며 아울러 지금 누군가 과거의 본인과 같은 종교적 방황을 겪는 이가 있다면 본인의 방황과 싸움을 참고하여 그 자신도 어떻게 참 진리에 인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의 이정표와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곧 이는 기원 2세기 교부 시프리안의 다음의 말과 같다.

“이단들이 생겨나는 것을 허락하고 그대로 놔 두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분이 각자의 선택의 자유를 건드리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지성이 진리의 판단 기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시험하시고 이 시험을 이겨낸 사람들의 완전한 믿음의 빛이 밝게 빛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부 시프리안(2세기 카르타고 교회 감독), 보편교회 일치 중에서

▲ 여호와의 증인, 안식일교회, 지방교회를 출석하다가 장로교회에 안착한 최주호 씨. 신천지는 한번 가보고 도저히 성경해석이 납득되지 않아 갈 수 없었다고 한다.

3. 지방교회,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등 거쳐 온 단체들이 있다. 그곳의 장단점이랄까. 이것만은 배울 만하다, 정말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각각의 요소는 무엇이었나?

너무나 많이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단은 성경을 표면상 그 누구보다 존중히 여기고 신실히 추구하고 이에 걸맞은 윤리적 생활을 표면상 영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은 성경을 인간의 감각과 생각 안에 부단히 꾸겨 넣는 게 이단의 근본적 속성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하나님을 인간적 수준으로 낮추고 축소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향은 인간의 철학이나 이방종교에서도 발견되지만 문제는 이단은 이것을 정통 기독교라고 소개하며 주류기독교회를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폄하하고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게 핵심적인 문제 아닌가 싶다.

세상의 철학은 이단만큼이나 어리석지만 적어도 철학은 인간 자체를 존중이라도 해주며 세상과 정상적인 대화라도 하지만 이단은 그 ‘대화’마저 차단해 버리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이성과 상식의 수준을 더 낮추어 버린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인간적 틀안에 꾸겨 넣으니 당연히 종교에 대한 건강한 인식뿐만 아니라 일반 삶에 있어서도 그 형태와 내용도 같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고 사람의 사고도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결국 이단이란 단순히 주류 신학의 전-정통에서 벗어나고 정죄된 단체들이라는 문제를 넘어서서 이단의 열매는 사람이 하나님도 놓치게 되고 복음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발휘해야할 건강한 정체성과 창의성과 개성마저도 잃어버리게 하는 게 이단의 본질과 목적이 아닌가 싶다.

4. 이단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나오는 것도 어렵다. 각각의 단체에 다니다가 나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나?

여러 이단에 각각 빠지는 와중에도 그렇게 오래있지 못하게 한 원인과 안전장치로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표적으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일하게 읽어온 ‘성경을 읽은 습관’이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정통교회에서 배우는 것처럼 분명하지는 못했어도 어렴풋이나마 성경에 대한 전체 문맥이 늘 머리와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 여기에서 빗나가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영적 민감함이 이단단체에 있을 때마다 종종 감지되었고 결국에는 이단성을 점차 인식해 가며 참된 것에 무릎 꿇게 하는, 필경은 이단단체를 나오게끔 자극한 기초와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바꿔 말해 지금처럼 정통 기독교회안에서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통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의해서 성경진리에 대한 이해가 더욱 확대되고 더욱 증대되고 더욱 풍성해지는데 반해, 이단에 있을 때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내가 믿는 이단의 교리와 갈등이 빚어지고 마찰이 일어나고 자신과의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단에 있으면서도 자주 ‘기독교 서점’을 출입하면서 그곳에 진열된 책을 읽으며 이단의 교리와 정통의 교리를 나름대로 비교하던 습관이 있었는데, 양쪽의 교리를 본인 나름대로의 ‘저울’에 올려놓으며 비교하던 습관 또한 본인이 해당 이단에 오래 있지 못하게 한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듯 싶다.

내가 진리라 생각하고 믿는 신앙이 타버리고 말 지푸라기와 같은 허접한 이단사설이 아닌 정금과 같이 견고한 진리라면 그 어떤 논쟁의 불에 던져놔도 능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험의 결과 이단의 기초와 속성은 참으로 부실한 것으로, 타버림으로 그 본질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니 이단에 오래 있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5. 개혁주의로 결국 안착했다. 지금 안착하며 배우고 있는 개혁주의의 매력은 무엇인가?

정말 많은 것이 있지만 요약을 하면 개혁주의는 성경이든 인류역사든 그 전체를 보고 있다면 이단은 아주 단편적이고 일부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가 성경 전체와 그 책들이 알려주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대함을 전부 다 설명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교회를 통해 공적으로 선포되어온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에 대해 보편적으로 말해오고 확증해온 교리들을 종합하였을 때 내가 평소에 성경을 읽으며 갈등하던 영적 고민의 파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균형잡힌 그림을 완성해 가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즉, ‘내가 어렴풋이 암묵적으로나마 이해했던 전체 성경에 대한 이해가 이런 것이었는데 과거의 이분들도 나처럼 성경을 이해했고 하나님을 믿었구나’, 그리고 ‘그분들이 전체 세계 교회안에서 결의해오고 확증해온 공교회적 신앙고백에 따라서 성경을 이해하여야만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올바로 믿게 되는 것이고 이 삼위일체를 올바로 이해하여야만 사람이 구원을 받는 문제를 포함한 신앙의 나머지 분야들도 올바른 원칙이 세워지는구나’ 라는 점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고 개혁신앙을 통해 보다 판명해지고 구체화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부패하고 유한한 피조물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극히 높고 무한한 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를 선택하고 의롭게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고 더욱 밀접히 인간에게 다가오시어 ‘언약’을 맺길 강력히 원하시고,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써 나를 구원하시고 중보해 주신다. 개혁신앙은 내게 하나님은 그 어떤 인간 피조물보다 더 인격적인 분이라는 진리를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선택받은 신자들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축복이 그저 ‘피안의 세계’에 갇힌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가 눈을 뜨면 그 무진장한 영광과 복과 지혜와 지식이 창조 세상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으며 우리가 그 선하심을 장래뿐만 아니라 지금도 맛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몽학선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 서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내가 지난날 이단으로 인한 종교적 실수들과 영적 판단력의 취약함이 왜 발생하였는지, 왜 내가 자꾸만 성경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또 그분이 창조하신 선한 세상을 오해하였는지, 그래서 영혼의 탄식과 병들어감의 의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개혁신앙의 렌즈로 인해 그 원인과 처방이 보였다는 것이다.

6. 지금 다니는 교회와 개혁주의에 안착하게 된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책자, 인물, 설교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현재 본인은 경기도 분당 한마음개혁장로교회(예장대신 경동노회 담임 목회자 신원균 목사님)에 출석하고 있다. 현재 교회를 출입하기까지 많은 자극과 배경적 요소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그 교회의 문을 두드린, 2014년 봄을 전후하여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틈틈이 들었다.

그리고 –말하기 길지만- 결정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한 형님의 본 교회에 대한 추천과 현재 목사님과 같은 노선을 지향하는 개혁주의자인 합신 소속 일산의 한 목사님의 교리 교육 덕택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기도 분당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 젊은 전도사의 권면과 책망 때문이었는데, 그는 나에게 “최 형이 주님을 믿고 정통교리를 논하고 있다면 적어도 가견적 교회(유형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해야만 말과 생각이 일치되는 게 아닌가요?”라는 강도 높은 권면을 했다. 이 충고는 내가 정통교회를 향한 발걸음에 추진력과 반성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현재 정통교회를 본격적으로 출석하기까지 과정은 무척 점진적이었고 환경과 원인들은 복합적이었으니(선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였으니), 또 다른 요인들로써는 대학교때 선택과목으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읽어야만 했던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재림교회(안식교)와 지방교회에 있으면서도 자주 탐독하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저서들과 존 맥아더의 책들 그리고 아더 핑크의 책들이 있었다.

특히 존 맥아더는 성경본문을 탁월하게 주해하는 교사이며, 신자에게 참된 중생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주던 교사요 목회자이다. 현재 본인은 그분들보다 더 깊이 있는 책들을 읽느라 그분들의 책을 거의 잘 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분들의 저서들은 지금도 참으로 귀하며 본인이 정통교리와 정통교회로 진입하고 이단에서 배운 비뚤어진 인식을 샅샅이 파괴해준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쇠망치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단으로부터 좀더 적극적으로 등을 돌려야 하겠구나, 그들의 결국은 공로주의 신앙이구나’ 또 ‘삼위일체 하나님을 건강하게 이해하려면 이렇게 이해하여야 하는구나’ 하는 보다 명확한 판단력을 제공한 책은 어거스틴의 ‘은총론과 신앙론’, ‘삼위일체론’이었다. 결정적으로 개신교회, 즉 장로교회에 가야겠다고 구체적으로 결정하게끔 진리의 이정표를 보다 투명하게 세워주고, 추진력을 더해 준 서적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 합신 소속의 일산의 한 목사님의 소개로 구체적으로 알게 된- 네덜란드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의 ‘하나님의 큰일’(개혁교의학 개요)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내가 앞으로 정통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예배하여야 하며, 일반은총의 삶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기독교적인 청사진을 균형있고 또렷하게 제시해 주었다.

7. 가끔식, 정통교회로 돌아온 후, 이건 지방교회·안식교·여증 등 이단에서 주장했던 것인데···라며 놀랐던 문화나 신앙형태가 있었나?

결론만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면 극단적인 ‘이원론’이 아닌가 싶다. 본인이 격은 이단종파들은 하나같이 그 강도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원론 체계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원론은 결국 하나님의 속성마저 일그러지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이 부패한 세상에서 구원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비록 부패하였지만 창조주로서 여전히 통치하고 주관하는 분이라는 진리를 이원론은 담아내지 못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대한 균형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단은 전자만 귀하게 볼 뿐 후자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렇게 이단과 그들의 교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반으로 쪼개 놓는다.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이 세상의 통치자를 하나님이 아닌 사탄 마귀라고 보는 관점이나 지방교회의 교리처럼 거듭난 신자의 영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지만 육체에는 사탄이 거한다는 인간관 같은 것들이다. 이런 렌즈로 성경만 보는 게 아니라 세상도 보니 결국 모든 게 불균형을 초래하고 인간성도 망가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결국 전자도 후자도 모두 잃으며 요새 말로 ‘정신승리’로 종교생활을 근근이 할 수밖에 없는데 즉, ‘동굴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그저 동굴의 벽에 비추인 실재의 그림자만 보면서 사실과 참된 진상을 외면한 채 자의적인 종교적 사색을 하게 되는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것 말이다.

정통교회안에서도 명목상으로는 정통 신조를 붙잡고 있지만 그와 같은 이원론적 경향 혹은 그에 준하는 양상이 한국교회안에서도 왕왕 관찰되거나 오버랩 될 때가 있는데 당황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8. 앞으로 신앙생활, 이렇게 하고 싶다는 바람 한말씀, 그리고 거쳐 온 이단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뭔가?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그분들께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우선은 그저 그분들이 성경을 부단히 읽으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사람의 실수는 많은 경우 숲을 못보고 나무만 보는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즉 성경을 특정 부분만 읽거나, 내키는 대로 펴진 부분이나 마음에 와 닿는 부분만 읽거나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자신이 속한 종파의 교제에서 인용된 파편적 부분만 읽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 전체를 차례대로 신문이나 소설책을 읽듯, 대하드라마를 시청하듯, 그렇게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그 전체의 맥락을 주목하며 읽어내려 감으로써 그 전체 ‘네러티브’를 스케치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전체를 다 읽었으면 이것을 해마다 계속 반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면 ‘나무’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전체 숲’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것이 참인지 나아가 내가 걷는 신앙이 참된 길인지 점차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속한 해당 이단 종파에서 기독교에 대해 판단하고 비판한 것과 달리 기독교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즉 좁은 식견을 버리고 마음과 생각을 좀더 넓게 가지고 적어도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가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성찰과 반성을 제발 한번 정도는 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염려와 갈망을 바탕으로 필사적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기를 부탁드린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진심으로 나오는 필사적인 기도를 말이다.

현재 그분들은 나와 다른 신앙을 가졌어도 이 정도 제안은 누구나 부담 없이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부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당부는 이단에 있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정통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또한 진지하게 고민하여 주시고 사려 깊게 받아들여야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의 갈망처럼 우리가 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과 바른 관계를 놓는 믿음의 길에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다 “해로 여기며”,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참으로 우리가 평생에 “힘써 여호와를 알”기를 기도한다(호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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