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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택 목사 “삼위일체 잘못 이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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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택 목사 “삼위일체 잘못 이해, 사과드립니다”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9.03.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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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식 목사에 대한 보고서 폐기되어야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박형택 목사가 개인적으로 사과문을 보내왔다. 그간 필자도 같은 이단 연구가 동료들과 논쟁을 하고 비판하는 과정이 심적으로 불편했었다. 그러나 박형택 목사가 개인적으로나마 깨닫고 잘못을 시인하게 된 것을 환영하고 높이 평가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오류를 범할 수가 있다. 그러나 깨닫고 잘못을 시인하는 일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박형택 목사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문을 쓴 것은 훌륭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필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박형택 목사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으니 이제는 <미주 세이연>의 공적인 결의에 의하여 이 보고서는 취소되어야 하고 <미주 세이연>의 공적인 사과가 있어야 한다. 필자에 대한 보고서가 <미주 세이연>의 공적인 결의에 의하여, <미주 세이연>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잘못된 삼위일체관을 고집하며 반박문을 쓰고 수 백 명의 신학자가 와도 자신 있다고 한 이인규 씨도 사과하고 회개해야 한다.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에게 박형택 목사와 같은 용기를 기대해 본다. <진용식 목사 주>

박형택 목사 /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

삼위일체론에 대한 해명과 사과의 글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은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발생을 하게 되었다. 신학적은 토론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토대를 찾아가고 세워나가자는 것이다. 삼위일체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문제의 발단은 진용식 목사가 계시록을 해석하면서 “그리스도는 여호와시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대하여 반증하면서 시편 2:1에는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로 구분을 하셨고 이것을 사도행전 4:25-26에서는 분명하게 “주와 그리스도”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주는 여호와 성부 하나님이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가 여호와 자신이 된다면 양태론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신데 여호와 자신이 메시야다 라는 말로서 동일 인격이라고 하면 결국 양태론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호와 자신이 메시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갑론을박 문제가 나온 것이다.

* 먼저 사과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여호와시다”라는 말에 대하여 진용식 목사가 말하고자 한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요 나의 시각을 가지고 그 말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진의를 알지 못하고 이것이 양태론이 아닌가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한 것과 진용식 목사가 성경에 자주 나타난 이분법적(dichotomy) 해석을 한 내용을 이원론(dualism)적 해석이라고 잘못 판단한 부분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 그리고 내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명칭이 성부 하나님만의 명칭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칭적 명칭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약에서는 삼위일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문법적 이해를 통하여 ‘나 여호와’라는 용어를 성부 하나님만 가리킨다고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여호와 이름이 성부 성자 성령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곡해한 것이다.

그리고 성자께서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나오시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표현을 곡해하여 성자의 자존성(여호와)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신성(deity)으로서의 자존성을 부정하면 성자가 더 이상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랫동안 이단연구를 해온 나로서 삼위일체 대해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음이 심히 부끄럽다.

* 합신의 김병훈 교수와 신학교 동기생인 김재성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명칭이 단수인 것과 하나님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말씀 등 1인칭 단수로 말씀하고 구약에서는 삼위가 잘 구별되지 않고 여호와나 여호와의 사자를 구별하기도 하고 동일시하기도 하기 때문에 구약의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두 교수님은 정확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구약의 ‘여호와’는 명칭은 성부 하나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구약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통칭적 명칭이라고 설명했다.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은 상호 내재하시고 함께하신다는 말씀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만을 말씀하신다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것을 가장 잘 말해주는 단어가 ‘circumcessio’라고 하는데 상호존재(相互存在)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이신데 이것은 본질의 구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신을 구별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용어를 문법적 해석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큰 실수라고 여겨진다. 분명히 성부 성자 성령은 언제나 한 하나님으로서 본질적으로 여호와이시며 따로 각자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역사하심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13장 18-25까지 읽으면서 삼위일체에 대하여 새롭게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18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차이(Difference)를 말하며 아버지는 활동의 시작이며 만물의 근원(the fountain)이요 원천(the wellspring)이며 아들에게는 모든 만물의 지혜와 방편이 되고 만물을 정돈(the ordered disposition)하신 분으로, 성령에게는 그러한 활동에 능력을 부으시며 효과 있게 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이런 이유로 아들은 오직 아버지에게서 나오시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동시에 나오신다고 기록한다.

19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어 “그리스도는 자신에 관하여는 하나님이라 불리우고 성부는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운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아버지라 불리우시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들이라 불리우시지만 자신에 관하여는 그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라고 기록한다.

23번에서는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시다(The Son is God even as the Father)라는 글을 통하여 “우리가 아버지 외에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면 아들은 하나님의 위치에서 내 던져야 한다. 그러므로 신성(deity)을 언급될 때마다 결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반론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 6:1 은 하나님만이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표현하지만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이라고 확정한다”(요12:41)고 기록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는 곳에는 그 분의 신성에 관하여 자신에게서 자신의 존재가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도 그의 신성이 우주의 창조에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로서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본질을 빌려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들이 자신의 본질이 아버지로 부여 받았다고 하는 자는 자신으로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있어서 전적으로 완전하게 동일하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질에 있어서는 서로가 구분이 없다.

24번에서 성경에서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아버지에게만 언급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속한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을 안다고 기록한다.

25번에서 신적 본성(The divine nature) 세 위격 모두에게 동일하다. 이단자들은 본질의 구별된 각 부분을 가진다고 속인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요 아들과 성령의 본질은 나오지 않았다(unbegotten). 아버지는 순서에 있어 첫째요 그분으로부터 그의 지혜가 나왔다. 우리는 신성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체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들도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위격에 관해서는 아니다. 그는 아들이시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그는 존재한다. 이와 같이 그의 본질은 시작이 없으나 반면에 그의 위격의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존재한다.

그의 본질은 시작이 없이 존재하지만 그의 위격의 시작은 하나님 자신이다. 정통교회 삼위일체에서 이 이름을 오직 인격들에 적용한다. 삼위일체에서 3가지 본질로 만들기 원하는 자들은 아들과 성령의 본질을 명백하게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한다.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 본질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성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 각 신경에 나타난 내용을 관찰하면서
니케야 신경에서는 예수님에 대하여 “그 분은 아버지에게서 독생자로 나셨으니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셨으며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빛이시오 참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나신 분이시고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하늘과 땅위에 존재하는 만물을 있게 하신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다”라고 기록한다.

콘스탄티노블 신경은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요 빛에서 나오신 빛이시오 참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오 나셨으며 창조되지 않으셨고 만물을 있게 하신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다”라고 기록한다.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세 분이시나 한 본질이시고 한 실체요 한 본성이신 하나님이시다. 아무에게서 나오시지 않으신 아버지, 오직 아버지에게서만 나신 아들, 두 분에게서 나오시는 성령께서는 영원히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시다. 낳으시는 아버지(begetting), 아버지에게서 탄생하신 아들(begotten), 나오시는 성령(proceeding)께서는 한 본질이시오 동일하시고 동등하시며 전능하시며 영원하시다”라고 기록한다.

프랑스 신앙고백은 “아버지는 제일 원인이시오 만물의 시초이며 원인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영원하신 말씀이요 영원한 지혜이시며 성령은 아버지의 능력이요 권능이시고 효능이시다. 아들은 영원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셨고 성령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 두 분에게서 나오신다”라고 기록한다.

벨기에 신앙고백은 “아버지는 원인이시오 근원이시며 만물의 시작이요 아들은 말씀이며 지혜요 아버지의 형상이시며 아버지에게 아들이 계시지 않거나 성령이 계시지 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 세분이 동일하게 영원하고 동일한 본질이시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이신 하나님 안에 삼위가 계시니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을 가지셨다. 성부께서는 아무에게서도 출생하셨거나 나오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출생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고 기록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서는 “이 세위는 비록 각 위의 고유한 품성과 구별되시지만 참되시고 영원하신 한 하나님이시며 본질이 같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성부는 성자를 낳으셨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셨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셨다”라고 기록한다.

* 따라서 분명하게 정리하게 된 것은 삼위를 구별할 때는
본질을 가지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위격적 관계에서 설명할 때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셨고(begetting)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begotten)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proceeding)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로서 ‘자존자’(여호와)라는 통칭 적 명칭인 여호와는 성부 성자 성령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삼위일체에 대하여 바로 깨닫게 해준 합신 동기생인 김재성 교수와 김병훈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정확한 이해 없이 다른 사람을 비판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낮 뜨겁다. 삼위일체 문제로 비판을 받았던 진용식 목사에게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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