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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대처와 성경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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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대처와 성경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6]
  • 장운철 목사
  • 승인 2017.06.19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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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6번째 연재 글입니다.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 ‘번역 원칙에 대해서’와 ‘다른 번역 동시에 살펴보기’라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다양한 번역 성경이 주어졌다는 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을 풍성하게 살필 수 있다는 게 즐거운 일입니다. 성경을 잘 살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이단을 대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에 큰 힘이 됩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목차

1. 관주 사용하기
1-1 모세 이야기
1-2 니고데모 이야기
1-3 가인과 아벨 이야기
1-4 유월절 이야기
1-5 마태복음 이야기
1-6 홍길동 씨 이야기 1
1-7 성구사전 사용하기
1-8 관주의 한계

2.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2-1 ‘시험’에 대해서
2-2 번역 원칙에 대해서
2-3 번역 성경 동시에 살펴보기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4. 참고서 활용하기


2-2. 번역 원칙에 대해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 성경(개역한글 또는 개역개정판 등)이 하나님께서 직접 한국어로 기록하라고 해서 주어진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하면 한국어 성경이 바로 원어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일점일획도 가감하거나 흔들림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한국의 문화의 배경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정말 기쁜 일이다. 그러지 않은가. 그러나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 성경은 사본이자 번역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주신 맨 처음의 성경은,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후대로 계속해서 전달된 것인데 그것이 사본이다. 당시에 복사기가 있었다면 한 글자의 오류도 없이 정확하게 후대에 전달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복사기가 없었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장시간에 옮겨 적다보니 보니 이런저런 오탈자들과 오류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복사본을 가지고 또 복사하고 또 복사하는 방식이 거듭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오늘의 각 나라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즉 번역본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은 사본이자 번역본인 것이다. 처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한글 성경 사이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을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하신 정확한 말씀을 알고 싶어 한다.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한 소망일 게다. 우리가 다른 번역 성경을 사용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우리네 성경이 갖는 ‘번역 성경의 한계’를 뛰어넘어 좀더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에 가까이 가고자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마음으로 다른 번역 성경을 들춰보려는 것은 거룩한 작업이요, 기쁜 일임이 틀림없다.

A라는 언어를 전혀 다른 B라는 언어로 번역할 때에는 크게 3가지 원칙이 있다. 직역, 역동적 번역 그리고 의역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직역 또는 문자적 번역이다. 이는 가능한 대로 단어나 문장의 형식 등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그대로 번역해 놓는 방식이다. 원문을 있는 그대로 번역해 놓는 방식이다. 그 번역해 놓은 것의 이해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직역은 오직 정확한 원문의 번역에만 신경을 쓴다. 이것에 장점이 있다면 원문을 간접적이지만 그대로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대화 도중 흔히 “당근이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를 영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고 치자.

어떻게 할까? 직역을 하면 “It's a DangGun(또는 carrot).”이라고 하면 된다. 왜 이렇게 번역을 하는가? 원문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역을 해 놓으면 영어를 사용하는 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장점은 있다. 원문에 그렇게 사용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 성경(개역한글성경 또는 개역개정판성경)이 좀더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영어 성경 중에는 <KJV>, <RSV>, <NASB> 등이 있다. 물론 이중에서도 약간씩 정도의 차이는 있다.

두 번째는 의역이다. 이는 위의 첫 번째 경우와 전혀 다른 번역 방식이다. 원문을 오늘의 ‘의미’ 중심으로 번역하여 전달하려는 작업이다. 오늘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단어를 선택해서 번역하는 방식이다. 위의 예를 다시 들어보는 게 쉬울 것 같다. “당근이지”를 의역 방식으로 번역하면 “Of course. I do.” 등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당근이지”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당연하지” 또는 “물론 나도 그래” 등으로 해석하여 그 해석 문장을 번역한 것을 말한다. 이때의 장점은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원문에 나타난 문화나 사상 또는 철학의 개념을 오늘의 것으로 쉽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말 원작자도 그 말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국어 성경 중에는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성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영어 성경으로는 <Good News Bible>, <NLT - New Living Translation>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각 성경의 정도의 차이는 있다.

직역과 의역을 적절히 섞어 놓은 것도 있다. 세 번째 방식인 역동적인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직역과 의역을 경우에 따라서 적절하게 섞어 놓은 것을 말한다. 역시 오늘의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성경은 <NIV - New International Version>다.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는 영어성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기 쉬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새번역성경>과 <쉬운성경>이 있다. 이 두 성경은 직역과 역동적인 번역 사이에 위치해 놓으면 좋을 듯하지만, 역동적인 번역에 포함시켜 놓겠다.

그럼 우리는 어떤 번역 성경을 읽어야 할까? 우리의 언어로 주어진 성경(개역한글 또는 개역개정)을 기본으로 삼고, 다른 번역 성경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영어가 조금이라도 가능하면 더욱 그 폭이 넓어질 것이다.

번역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번역자들마다 견해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바는 같다. 바로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과 그 의미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번역본을 참고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것도 직역, 의역, 역동적인 번역의 개념을 알고서 말이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닌가.

아래 <도표1>은 번역성경을 종류별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다.

 

2-3. 번역 성경 동시에 살펴보기

이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마태복음 20:1-8절이다. 천국의 어떠함을 비유로 설명한 본문이다. 소위 ‘포도원 품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원에서 일할 품꾼을 구하기 위해 주인이 장터에 나갔다. 제 삼시, 제 육시, 제 구시 그리고 마지막 제 십일시에 각각 품꾼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을 직접 읽어보자. 아래와 같다.

▲ 영어 번역본들. 의역, 직역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마20:1-8, 개역개정)

주인이 품꾼을 부르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각각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 등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다. 궁금한 점이 발생했다. 위에서 ‘삼시’라고 한 시간은 오늘의 몇 시를 말하는 것일까? 새벽 3시인가 아니면 오후 3시인가? 그럼 다음에 나오는 육시, 구시, 십일시는 또 각각 몇 시를 말하는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주변에 성경을 잘 아는 목회자에게 물어볼 수 있다. 또는 관련된 참고서, 즉 주석서가 있다면 펼쳐서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양한 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여러 번역 성경을 통해 성경 원문의 내용(당시의 의미)과 그것을 지금의 내용(오늘의 의미)을 동시에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세 가지 번역 원칙에 따라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 등의 시간 표현을 아래 <도표 2>로 정리해 보았다.

 

어떠한가? 왼쪽 아래에 개역개정성경이 있다. 여기에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로 표시되어 있다. 직역에 속한 KJV, RSV, NASB 등도 ‘third, sixth, ninth, wleventh'로 비슷하게 번역을 했다. 당시 사람들이 표현했던 시간의 방식을 그대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오늘의 의미는 독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겨 놓았다.

우리는 오늘의 의미를 의역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어 성경인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성경>을 살펴보자. 모두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로 잘 번역을 해 놓았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 부분에서는 역동적인 번역 성경도 동일하다. 우리는 다양한 번역 성경을 통해 성경의 원문의 표현과 오늘의 의미를 동시에 파악하였다. 이것이 여러 번역성경을 살펴보는 맛이다.

위의 다양한 번역 성경을 모두 구입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에 대부분의 성경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이제 “자료가 없어서 성경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라는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되었다. 성경공부를 위한 자료, 적어도 다양한 번역성경은 이미 차고 넘치도록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때 ‘어, 나의 NIV 성경은 조금 다른데’라며 깜짝 놀라시는 분도 계시리라 본다. 어떤 NIV 성경은 위 본문에서 ‘third, sixth, ninth, eleventh’로 직역 번역 표현으로 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당황할 필요가 없다. NIV 성경도 시간이 지나면서 ‘개정’, 즉 수정 보완해 왔다. 성경책 맨 뒷면을 보면 개정판의 년도가 나와 있을 것이다. 1984년 이전 판에는 ‘third, sixth, ninth, eleventh’로 되어 있다. 이것이 2011년 판 이후부터는 ‘nine, noon, three, five’로 바뀌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NIV가 의역에 기울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 번역 성경을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비슷한 예를 한 가지 더 살펴보겠다. 직역과 역동적 번역 그리고 의역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마태복음 18:24에 나오는 ‘만 달란트’에 대한 표현이다. 먼저 성경을 살펴보자.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마 18:24, 개역개정)

‘달란트’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다. 어린이 성경학교 때 많이 사용한 돈의 단위 용어다. 그렇다면 위 본문에서 ‘만 달란트’는 과연 얼마를 말하는 것일까? 역시 여러 번역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직역에 속한 성경들이다. 살펴보자.

“And when he had begun to reckon, one was brought unto him, which owed him ten thousand talents.”(마18:24, KJV)

“When he had begun to settle them, one who owed him ten thousand talents was brought to him.”(마18:24, NASB)

“As he began the settlement, a man who owed him ten thousand talents was brought to him.”(마18:24, NIV 1984년 판)

모두 ‘달란트’란 단위를 그대로 사용했다. ‘1만’(ten thousand)이라는 양도 그대로 사용했다. 원문에는 그렇게 쓰여졌다는 의미다. 해석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그렇다면 역동적인 번역 성경을 살펴보자.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까? 아래와 같다.

“왕이 셈을 시작할 때에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불려왔다.”(마18:24, 쉬운성경)

“계산을 시작하자 10,000달란트 빚진 한 종이 왕 앞에 끌려왔다.”(마18:24, 현대인의 성경)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마18:24, 공동번역성경)

모두 ‘만 달란트’라는 표현을 동일하게 사용했다. 흥미로운 것은 의역으로 분류해 놓은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성경>도 동일하게 ‘만 달란트’로 번역을 해 놓았다는 점이다. ‘달란트’라는 돈의 단위를 어떻게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야 할 지, 그 다음에 ‘만’이라는 양의 숫자를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할 지 역시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회 학교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입에도 ‘만 달란트’가 그대로 익숙해 진 것 같다. 그런데 아래 성경은 조금 다르게 번역을 해놓았다. 계속 들여다보자.

“As he began the settlement, a man who owed him ten thousand bags of gold was brought to him.”(마18:24, NIV 2011년 판)

“in the process, one of his debtors was brought in who owned him millions of dollars.”(마18:24, NLT-New Living Translation)

아!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NIV는 2011년 개정판에서 ‘ten thousand bags of gold’라고 했다.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일만 달란트’를 ‘만 개의 금 가방들(또는 덩어리들)’로 표현했다. 한 돈짜리 금반지나 소위 골드바가 하나씩 들어있는 가방이 만 개라는 그림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이때 NLT 번역은 좀더 적극적이다. ‘밀리언스 달러’(백만 또는 수백만 달러)라고 오늘의 미국 화폐 단위로 그 액수를 기록해 놓았다. 오늘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12억 원에 해당된다. ‘만 달란트’를 경제와 화폐 단위가 각각 다른 오늘의 액수로 정확하게 번역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성경 번역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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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철 목사는 월간<현대종교>, 월간<교회와신앙>, 주간<교회와신앙>, 인터넷신문<교회와신앙>에서 이단사이비 문제 전문 취재기자로 20여 년 간 사역을 해 왔다. 신천지,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 사이비 문제의 현장을 직접 잠입 취재, 보도했다. 또한 이단 사이비의 핵심 교리들을 분석, 비판하는 다수의 글도 발표했다. 신학교 강의는 물론 각 지역 교회와 연합 기관의 수련회와 집회에서 특강을 해 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B.A.)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TH.M)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Azusa Pacific Uni., M.A.R)에서 공부를 했다. 두 편의 논문,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과 <An Evangelical Christian Perspective on Money>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신천지 포교 전략과 이만희 신격화 교리>(장운철, 진용식, 정윤석 공저, 한국교회문화사, 2007),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을 읽자>(장운철, 솔로몬, 2012),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 이야기>(장운철, 부흥과개혁사, 2013) 등이 있다. 지난 2007년 서울에 만나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이단특강을 원하는 경우 이메일로 연락하면 된다(kofkin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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