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원 목사에게 별칭 하나를 붙여주자. ‘부흥이 따라다니는 사람’이라고 하면 제격일 듯하다.어린 시절을 살펴보자. 집안은 무속신앙이었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하며 교회를 쫓아내는 일에 앞장섰다.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를 겪을 때마다 굿을 했다. 어린 시절, 무당은 서 목사를 수양아들로 삼기까지 했다. 1977년, 아버지가 먹은 것마다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위암 말기였다. 굿을 하고 온갖 시도를 해도 호전되지 않았다. 서 목사의 형이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를 모시고 기도원에 올라가겠다고 한 것이다. 온 집안이 반대해도 형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기도원에 가서 아버지는 예수를 믿고 그 해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를 계기로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됐다.
예수를 믿었지만 어머니는 악몽을 꾸며 날마다 공포스런 밤을 보내야 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는 찬양을 하며, 성경을 머리에 배고 나서야 비로소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별세 후 형은 가계를 책임져야 했다. 형이 말했다. “길원아 내가 목회자가 되고 싶지만, 집안을 책임져야 겠다. 네가 대신 목회자의 길을 가다오.”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형의 말은 곧 법이었다. 대전으로 갔고, 그곳에서 목원대학교 신학과에 수석으로 입학, 졸업까지 하게 됐다.
군대에 가선 군종으로 헌신했다. 4명으로 시작한 교회를 2개로 부흥시켰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을 보다 못한 연대장이 전방에 심방오지 못하도록 출입금지 명령까지 내렸다. 제대한 후에는 김국도 목사가 담임하던 시절, 서울 임마누엘교회 아동부 목사로 부임해 1천200여 명으로 부흥하는 결실을 맛 봤다. 청양교회로 부임했을 때는 150여명으로 출발해 40개월만에 800명이 출석하는 교회가 됐다. 군민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그러던 그에게 2004년은 새로운 부흥을 체험하는 해가 된다. 상계교회 성도들의 강청에 못 이겨 청양에서 서울 상계교회로 부임한다. 58년된 교회였지만 교인 450여 명의 대다수가 노인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설교를 할라 치면 ‘어디 어떻게 하나 보자’며 팔짱을 끼고 간을 보려는 모습이었다. 서 목사는 첫 설교 때 말했다. “상계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만일 이 교회를 제것처럼 목회한다면 저를 끌어내십시오. 반대로 성도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 저 또한 목회직을 걸고 맞서 싸울 것입니다.”
remake 공동체
서길원 목사는 이문세의 ‘소녀’를 예로 들었다. 30년 전에 나온 노래이지만 현대적 감각으로 가수가 새롭게 편곡해 부르니 색다른 맛이 있다는 것이다. 전통교회들도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단점도 켜켜이 쌓여간다. 장점은 살리되, 단점은 고쳐서 새롭게 갱신해 가는 것이다. 서 목사는 교회가 이런 리메이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혁신이나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들의 호흡을 가쁘게 하고 따라오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이런 리메이크를 ‘낯설지 않은 새로움’이라고 부른다. 예배도 새롭게 갱신했다. 찬양도 뜨겁게 부르고 기도도 소리쳐 외쳐서 한다. 한 권사님은 예배가 살아나니 살맛까지 난다고 간증한다고 한다.
서 목사는 7개월이 지나자 교회건물을 리모델링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교회에 생기가 넘쳤다. 교회 예배당이 예뻐서 구경을 왔다가 등록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과거의 예배당에선 찬양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다. 창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리모델링 후에는 예배에 집중하며 맘껏 찬양할 수 있었다. 교인간의 갈등으로 분쟁을 겪던 상계교회였지만 서 목사가 목회하며 450여 명의 성도였던 교회는 12년이 지난 현재, 2100명~220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발돋음했다.‘
전도하는 공동체
서 목사는 공동체는 서로 마주보면 싸움이 난다고 지적한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남의 티끌이 들보처럼 커보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분쟁은 피할 수가 없게 된다고.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 공동체로의 탈바꿈을 꾀했다. 서 목사 자신이 극적인 신앙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전도도 뜨겁게 했다. 이는 서 목사가 부임한지 100일째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진행된다. 1천명 초청 오병이어 큰 잔치를 열겠다고 말했다. 장로님이 들어와서 물었다. “목사님, 성도 400명에, 초청되는 사람이 600명인 거지요?”
서 목사가 말했다. “아니오, 장로님, 새가족 1천명을 초청하는 전도잔치입니다.” 장로는 말없이 돌아섰다. 100일 후에 진행될 전도잔치를 위해 교회는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전도지를 제작하고 청년들은 기타를 메고 길거리로 나섰다. 커피를 준비해 중앙시장으로 나갔고 아파트 곳곳을 전도지를 들고 상계교회 성도들이 누비고 다녔다. 2004년 11월 7일 1144명의 새가족이 교회에 초청받아서 왔다. 이 일은 상계교회 교인들을 깨우는 계기가 됐다. “처음엔 목사님 말씀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는데,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들의 고백이었다. 이게 불씨가 돼 상계교회 교인들은 그 후에도 전도가 체질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상계교회는 사실 사역하기가 만만치 않은 교회였다. 58년 동안 한 지역을 섬기던 교회였지만 전임목사의 은퇴와 후임 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분쟁이 시작됐고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공동체는 사분오열되었다. 그러나 서 목사의 부임 후 출석인원과 재정이 5배 성장하며 ‘교회 부흥 세미나’를 통해 비전교회(서 목사는 미자립교회를 이렇게 부른다)의 자립화를 위해 돕는 교회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 목사는 2016년 6월 10일 상계교회와 함께한 12년을 한권의 책에 담아 펴냈다. ‘다시 교회가 뛴다’(넥서스 크로스)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이 책에는 서 목사의 신앙의 여정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다. 상계교회 성도들의 눈물 나는 간증도 포함했다. 가슴 설레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서 목사의 교회 리메이크의 매뉴얼들까지 담아놨다. 책을 읽다보면 ‘다시 교회가 뛴다’는 제목이 ‘다시 교회의 심장이 뛴다’로 읽힐 정도다. 그만큼 이 책은 서목사의 혼신이 담긴 듯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