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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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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
  • 정윤석
  • 승인 2016.03.2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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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의 사역자 대구동신교회 권성수 목사
▲ 대구동신교회 전경, 좌측이 비전관, 가운데가 본당, 우측이 교육관이다(사진 동신교회 제공)

대로변엔 건물이 켜켜이 둘러서 있다. 그래도 그 너머로 우뚝 솟은 거대한 흰색 건물이 대번에 눈에 띈다. 대구동신교회다. 옛 본당 건물 하나, 그 옆의 교육관(2002년 설립), 5층 짜리 참신관(2007년 설립), 비전관(2013년 설립), 그리고 7,500평의 생명의 동산, 대구동신교회의 규모는 가히 놀랍다.

16년 전 붉은색 벽돌 건물 하나였던 대구동신교회(http://www.ds-ch.org)는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될 것처럼 변하는 세상 속에서 성장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권성수 목사가 자리하고 있다. 기자는 2016년 3월 17일(목) 대구 동신교회 담임목사실에서 권 목사와 인터뷰를 했다. 권 목사의 담임목사실은 동신교회 본당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교육관 5층에 자리했다. 다른 건물에 비해 외관과 내부가 낡았다. 2013년에 비전관을 세우면서 교회 장로들이 담임목사실을 옮길 준비를 했다. 그러나 권 목사는 교육관에서 비전관으로 옮길 것을 마다했다. 설교 준비에 집중하는 데 이만한 자리가 없다며 고사한 것이다.

기자가 알던 신약학 교수, 권성수는 그곳에 없었다. 기도와 설교에 생명을 걸고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위해 광인 정신으로 살아가는, 목양에 일생을 바친 목회자가 우뚝 자리했다. 그의 생각은 차가웠고, 가슴은 뜨거웠다. 그의 발성은 젊은 청년 못잖게 또렷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40여분간 그는 거의 원고를 보지 않았다. 인터뷰하는 순간에도 한국교회와 후배 목회자들을 위한 안타까움과 돕고 싶은 열정은 애절하도록 흘러 넘쳤다.

▲ 대구동신교회 담임 권성수 목사

“아버지, 미치시려면 혼자 미치셔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권 목사의 아버지는 목회자였다. 그는 5형제(성묵, 성수, 성호, 성대, 성달) 중 둘째로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가난하게 지냈다. 교인이 적을 때는 30여 명, 많을 때는 150여 명이었다. 모두가 가난할 때라 성도들이 30명이든, 150명이든 어렵기는 매 한가지였다. 권 목사는 불만이 많았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삶을 예정해 놨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이토록 가난한 삶을 살게 하신 걸까. “아버지, 우리는 왜 가난해야 합니까! 목사는 왜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아버지는 왜 목회자가 되셔서 이렇게 사는 겁니까?” 더 답답했던 게 있었다. 5형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이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한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버지, 미치시려면 혼자 미치셔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권 목사뿐 아니라 5형제 모두가 한 사람도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5형제의 반항은 길지 못했다. 아버지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자녀들의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하셨다. 결국 5형제 모두 목회의 길로 백기투항 하게 된다.

기도하는 아버지께 반항했던 둘째 아들, 권 목사의 인생에서도 ‘기도’는 운명처럼 따라다닌다. 그의 인생의 어려운 순간과 고비마다 기도는 떠나지 않았다. 목회자가 되기 싫어 영문학을 전공하고, 도망다녔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마음에 ‘목회직’에 대한 부담은 떠나지 않았다. 군 제대하기 전 ‘안전하게 제대하게 해 주시면 10일 동안 금식하겠다’고 기도했다. 안전하게 제대한 후 10일 동안 금식하며 그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도 현실은 나아지는 게 없었다. 총신대 신대원 시험을 치렀다. 그때도 기도했다. ‘만일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다닐 수 있게 해주신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걸로 믿겠습니다.’ 그는 새벽마다 총신대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 시험 결과는 놀라웠다. 수석입학을 한 것이다. 찢어질 듯한 가난에, 휴학을 하고 2년만이라도 직장생활을 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하나님은 너무도 선명하게 인도하셨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신학을 마친 후 총신대학교 교수로 1986년 부임했다. 그의 강의는 인기 절정이었다. 로마서 강해를 듣겠다고 몰려든 신학생이 400명이 넘었다. 그러던 그가 전격 사임하고 2000년 1월 대구 동신교회 담임목사로 간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계기는 엉뚱한 데서 비롯됐다. 총신대학교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권 목사는 ‘총장의 오른팔로 잘 보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의 현상을 정확히 보고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래학’ 서적을 손에 집어 들었다. 앨빈 토플러, 존 나이스비트 등이 쓴 책 30여권을 독파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21세기는 ‘실천적 지식인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남모를 오기도 있었다. 신학교 사은회 때마다 졸업생들이 와서 한마디 한마디 말하는 게 권 목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졸업생들이 “교수님, 현장 목회와 신학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하고 목회가 영 다릅니다.” 권 목사에게는 이 말이 상당히 불편했다. 결국 신학이 목회 현장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표현이었다. 한두명이 아닌 졸업생들이 자주 이런 얘기를 했다. 권 목사의 마음에 ‘그래! 내가 한번 보여줄까! 목회와 신학의 괴리가 있는지 없는지, 정말 보여줄까!’라는 도전과 오기가 불끈불끈 솟아 올랐다.

그가 신대원에서 공부하던 70년대만 해도 신학교수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들에게서 배운 것을 그대로 현장 목회를 하며 가르쳤다. 그런데 권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 신학생들은 달라져 있었다. 신학교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졸업 후 실제 목회는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먹혀드는 목회’를 따라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권 목사는 신학교 강단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자신이 쌓은 지식을 실천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 본당 전경(사진 동신교회 제공)

“동신교회 오시라고 해도 안 오시겠지만 그래도 기도나 한번 해 보이소.”
일부 유명 교회에서 청빙 의뢰가 오면 총장이 막아섰다. “내 오른팔을 왜 잘라가시려 합니까!” 그러던 중 대구 동신교회에서 권 목사는 헌신예배를 인도했다. 두 명의 장로가 설교 후에 찾아왔다. “교수님, 앞으로 총장이 되실 분이고, 제일 인기도 많으시고··· 동신교회 오시라고 해도 안 오시겠지만 그래도 기도나 한번 해 보이소.” 마음에 둘 것도 없었다. 서울도 아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는 생각도 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 때 대구 동신교회의 무게감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하나님의 몰아가심이 느껴졌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항복했다. 대구행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1999년 연말의 일이었다.

주변에선 그의 대구행과 관련, 의견을 달리하는 목소리가 무성했다. 고 옥한흠 목사는 생전에 그의 대구행을 ‘어리석다’며 만류하기까지 했다. “총장 하기 위해 3년 안에 목회 실험하다 떠날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아내도 자식들도 모두 반대했다. 특히 미국에서 권 목사가 유학을 할 때 명문대 출신 이면서도 봉제공장에 다니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거의 권 목사를 공부시키다시피 한 아내의 반대를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아내 김난숙 사모도 대구에 내려오고 나서야 마음이 바뀌었다. 어느 날 동신교회 뒷산에 올라갔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이윽고 아내는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부르셨는지 이해가 된다”며 권 목사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됐다. 김난숙 사모는 칼세미나(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을 도입한 교회들의 제자훈련 세미나)를 수료하고 생명의 사역자로 변해 교회 사랑방과 전도폭발훈련과 독서클럽을 인도한다. 권 목사와 함께 거의 목회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권 목사는 신학교에서 인기강사였다. 목회를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동신교회에서도 그의 설교는 ‘인기’다. 이유가 있다. 권 목사는 진리를, 성도들에게 쉽게, 재미있게, 생활과 연결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무주의·쾌락주의·복음주의를,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하는 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먹어봤자 뭐하냐, 다 병들어서 없어지는 건데, 다 지나가는데 뭐가 필요해!” 이러면 허무주의자다.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와, 이게 최고야.” 경상도 사투리로 “쥑이네, 쥑여!” 이러면서 “난 이 맛에 사는 거야. 딴 거는 필요없어.” 이러면 쾌락주의자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지나가긴 지나가겠지만 매순간 의미 있지 않나. 하나님 주신 것을 이렇게 즐기는 것이 감사한 거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즐기기만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고 사명감당하라고 주신 거 아니겠어? 사명감당해야지.” 이러면 신앙이 되고 복음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쉽게, 재미있게, 생활에 연결시켜서 가르치면 철학적 주제도 쉽게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 2015년 제 1기 생명사역 컨퍼런스에 참석한 목회자들. 올해 2기는 4월 25일~27일 진행한다.

설교할 때, 권 목사의 시선은 거의 교인들을 향한다. 외워서 하기 때문이다. 매일 설교를 위해 글을 쓴다. 여기에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고 주석을 보고 같은 주제의 책을 참고해 살을 붙인다. 현실도 연구하고 자신을 살피고 기도한다. 김난숙 사모의 모니터링도 받는다. 아내가 자신의 설교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그 앞에서 설교한다. 10분 동안 축약한 요약 설교를 들려주며 부족한 부분을 점검받는다. 딱딱한 부분은 없애고, 성경적 근거가 약한 부분은 채워 넣는다. 아내가 일종의 코칭을 하는 셈이다.

날마다 설교의 내용을 묵상한다. 원고는 들고 나가지만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라 거의 외운 상태에서 강단에 서게 된다. 묵상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권 목사 자신에게 설교를 했기 때문에 강단에 섰을 때는 이미 네댓 번 설교한 상태가 된다. 설교 준비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한다. 권 목사는 “여기서 실패해 성도들이 설교에 감동을 받지 못하면 제자훈련은 율법주의나 고역이 된다, 설교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다.

요즘 권 목사가 관심을 갖는 목회자는 ‘팀 켈러’다. 그는 팀 켈러에 대해 말씀을 보고 적용하는 눈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설교학에서는 그것을 Fallen Condition Focus, FCF라고 하는데 타락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파란 색깔을 ‘이건 파란색이니까 믿으세요!’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 옆에 하얀 색을 갖다 놓고 파란색을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교인이 이단 신천지에 빠진 경우가 있었다. 권 목사는 놀랐다. 9개월 만에 사람이 완전히 돌변해 있었다. 도대체 이단들의 의식화·이념화는 이토록 잘 되는데, 복음의 의식화는 안 되는 걸까. 권 목사는 고민했다. 제자훈련에 더하여 교인들의 생각의 틀을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복음이 들어가서 사람의 의식을 바꾸고 생각의 틀을 바꾸면 이게 인생을 바꾸게 되는 겁니다. 왜 이게 안 됩니까? 이유는 생각의 틀을 바꾸려면 체계적인 게 머릿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입니다. 신천지는 ‘이만희 재림주 만들기’라는 목표를 갖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 봉함된 비밀인 비유풀이, 계시록의 실상 등 교육 과정을 체계화시켜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냥 이 책, 저 책,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좋다고 하면 이것저것 갖고서 하니까 들을 때뿐, 목회자 자신은 물론 성도들에게도 체계가 잡히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가 있을 때 막 흔들리는 거 아닙니까!”

권 목사는 장로교 목사답게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을 성도들의 생각과 삶속에 구축한다는 정확한 목표를 갖고 그것도, 쉽게, 재미있게, 생활에 적용하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기대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권 목사는 ‘BEST’라고 한다. Bible Exposition, 성경강해 해서 Spirit Transformation, 성령으로 변화시킨다. BEST! 16년간 이 목표를 갖고 가르치자 실제로 성도들의 삶 가운데 변화의 물결이 몰아쳐왔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보람은 성도들의 변화다.

장로들도 말한다. “목사님, 목회하는 동안 우리가 모두 변화됐습니다!” 예배 후에 성도들은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말로 끝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바뀌었습니다’라며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알린다. 심방을 가도 마찬가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했던 설교를 역으로 다시 듣는 분위기라고 한다. 강단에서 한 설교가 성도들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였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서 다시 듣는 경험은 현장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짜릿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권 목사는 “교인들이 제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은 없습니다. 이게 억만금보다 더 큰 보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담임한 후 동신교회는 폭발적 성장을 거듭했다. 800여 명이던 성도들은 출석 7천명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예산은 16년 전보다 11배 규모로 커졌다. 변화하는 성도들과 함께 교회의 외형적 성장도 가속화하고 있다.

▲ 교회 뒷편에 위치한 7천500여 평의 기도 동산

권 목사에게 옥한흠 목사가 질문했다. “교수님,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목회해 온 권 목사는 만일 이 세상을 떠난다면 묘비명에 “주를 위해 죽고, 주를 위해 살았던 생명사역자 권성수.” 이렇게 적어달라고 말한다. 40대 후반에 대구동신교회에 와서 16년간 목회를 했다. 그는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으로 ‘생명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2015년부터 그는 목회자 200~300여 명을 선착순으로 모집, 자신의 신학적 토양과 목회적 경험을 후배 목회자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권 목사가 신학교 교수이던 시절, 옥한흠 목사가 물었다. “교수님,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 권 목사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다. 그러나 속으로 심한 모독감을 느꼈다. ‘목사님! 제가 증조할아버지부터 예수를 믿어 4대째 예수 믿는 집안에, 아버지가 목사님이에요. 그뿐인가요? 5형제 모두가 목사인 집안입니다. 게다가 저는 한국의 가장 유명한 보수적 개혁신학의 요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예요!’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겉으로는 옥 목사의 질문에 “허허! 목사님, 저희 아버지도 목사이고··· 저도 목회자인데 말이지요!” 화끈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지금 권 목사는 옥 목사의 간단한 질문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이 단순하지 않았다고 재해석하게 됐다고 말한다.

“옥 목사님의 질문은 목회 현장에서 교회가 확 뒤집어지는 것 같은 그런 고난을 당해보지 않고, 목회의 고난이 뭔지 아십니까? 하는 질문이었어요. 목회를 하며 지독하게도 악한 사람이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변화되는 과정을 보지 않고, 당신이 훈련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 귀신에 들려 밤새 잠도 못자고, 가위 눌리고, 공포에 짓눌려 얼굴 색깔까지 바뀐 사람들을 예수생명을 가진 강한 용사로 만드는 목회가 뭔지 아십니까 하는 그런 질문이었어요. 굉장히 깊은 질문을 하셨던 거죠.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질문이 이해가 돼요.”

세월이 갈수록 깊어지는 목회, 지금의 지혜와 심정으로 권 목사는 만일 40대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목회 사역은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길 거라고 말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 결국 생명사역 콘퍼런스를 열게 만들었다. 자신이 경험한 16년 목회 노하우를 하나도 남김없이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수시켜 주자는 생각이다.

“제 세미나 와서 한번 들어보세요. 부탁하고 싶어요. 신학생들은 물론 목사님들도 끊임없이 배워야 해요. 신학교 교수하다가 16년 동안 목회하면서 도대체 권 목사가 뭘 깨달았는지 들어 보라는 겁니다. 신학과 목회에는 괴리가 있다며 뿌리없이 하는 목회, 그거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저것 엉뚱한 거 하다가 이단에 빠지고, 성도들이 말씀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며 직통계시·예언·투시 등 외적 현상을 추구하지 말라는 거예요. 목회 현장에서 본질 목회에 충실하면서도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어요. 그렇게 목회하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들을 게 많고, 배울 게 많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약동하고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람이 잘 나서 그런 게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와서 보고 듣고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테크닉이 아니고, 기교가 아닌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삽니다. 생명사역도 그렇습니다. 목회 테크닉을 쓰지 말라. 본질, 본질! 예수님의 본질,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근거한 생명사역을 닮아가는,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그런 목회를 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하면 나도 살고 남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권 목사의 생명사역콘퍼런스는 오는 4월 25일(월)~27일(수)까지 대구동신교회 벧엘홀 에서 2박 3일간 진행된다. 이 콘퍼런스를 통해 권 목사는 신학을 100% 살리면서 하는 목회, 성경을 통해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세우는 생명사역의 진수를 선보이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권 목사에게 ‘목회가 뭡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버지가 목사이고, 형제 다섯 명이 목사입니다”라는 식의 답변을 얻을 수 없다. 그는 “목회는 생명의 환희”라고 답할 것이다. 예수의 생명, 그러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의 생명을 체험하고, 그 생명을 전수해 주는 환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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