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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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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 정윤석
  • 승인 2016.02.12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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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 논평 "이슬람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다"
 

샬롬(평화)을 꿈꾸는 나비(작지만 큰 폭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의미)행동(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가 2016년 2월 11일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다’는 주제로 논평을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논평에서 “예일 대학교의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가 쓴 책 『알라』(IVP)가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신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고 답했다. 샬롬나비는 그 이유를 △알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 △알라는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다 △알라는 지하드(Jihad, 聖戰)를 명령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구원자 되심을 부인한다 △알라는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은 인간이 지어낸 존재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샬롬나비의 논평 전문이다.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다. 한국교회는 이슬람 내부자운동의 혼합주의 선교를 경계해야한다.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존재인가? 예일 대학교의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가 쓴 책 “Allah: A Christian Response”가 『알라』(IVP)로 번역되고 지난 1월 22일 은혜와선물교회(송용원 목사)에서 <알라> 출간 기념 좌담회까지 열려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알라와 하나님을 동일선상에서 보는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존재론적 일치 대상을 인식론적 신 이해의 차이로 보아, 양 종교가 믿는 두 신(神)은 결국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종교문제가 민감한 때에 이슬람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가 되고, 반면 과잉반응이라는 상반된 의견도 있어 그 파장이 여러모로 확장되고 있다. 과연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신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샬롬나비는 정통기독교 입장에서 그 이유를 다음 6가지로 밝힌다.

1. 알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
이슬람이 말하는 알라 개념은 “단일인격적 유일신론”(unipersonal monotheism)인 반면에 기독교의 하나님의 개념은 “삼인격적 유일신론(tripersonal monotheism)”이란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공격하여(Q. 4:171; 5:73, 116), 삼위일체라면 단지 “알라, 마리아, 예수” 정도로 말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삼위는 동시선재, 동일권능, 동일예배 대상의 한 분 하나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확실하게 구분 짓는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다.

2. 알라는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아내나 아들을 가지지 않는다며 하나님 아버지 되심을 강하게 부정한다(Q. 4: 171; 72:3; 19:88-92).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요17장) 그를 믿는 성도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요 1:12).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이다(롬 8:14-17).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없는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시 될 수 없다.

3. 알라는 지하드(Jihad, 聖戰)를 명령한다.
알라는 비 무슬림들과 성전(聖戰)을 명령한다. 무슬림을 이슬람교에서 떠나게 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포획하거나 살해하라고 가르친다(Q. 4:89). 특별히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은 무슬림들을 배신자로 만드는 자로서(Q. 3:100) 살해 대상이 됨을 시사한다.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최악의 피조물이며 지옥행이 된다고 한다(Q. 98:6). 그리고 비 무슬림들과 싸워서 무슬림들의 엄격함을 보여주라고 한다(Q. 9:123). 박해가 없어지고 종교가 단지 알라를 위한 것이 될 때까지 성전(聖戰)을 치루라고 한다(Q. 8:39; 22:78; 8:12; 47:4; 9:29; 4:89; 61:11,12). 알라는 성전(聖戰)으로 인한 죽음을 사랑하고(Q.61:1) 이것을 위대한 승리로 여긴다(Q. 61: 11, 12). 성전으로 죽은 자들은 죄 사함을 받으며 천국에서 눈이 크고 아름다운 배우자들과 함께 살게 한다(Q. 37:48-49, 52; 44:54; 52:20; 56:37). 그들에게 살인은 정당하다(Q. 8:17; 3:157-158, 195). 금지된 달(the sacred months: 살생이 금지된 거룩한 달)이 지나면 불신자들(the idolaters)을 죽이라고 명한다(Q. 9:5). 일상에서 그들이 어느 순간에라도 잔인한 모습으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하드(聖戰)를 명령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에게 대속제물로 주셨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복음의 진리로 영혼들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성경은 무력이 아닌 사랑과 은혜의 복음으로 죄인을 구원하고자 한다.

4.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Q. 5:17).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생물학적 출생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은 심각한 신성모독이고 저주감이다. 그러나 성경은 구구절절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한다(사9:6; 요1:1-3, 14, 18; 20:28; 롬9:5; 빌2:5-7; 딛2:13; 요일5:20). 그들은 또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도 부정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크리스천들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Q. 2:116). 알라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기에(Q. 4:171) 예수님의 하나님 제2위되심도 더불어 부정한다(Q. 5:73; 112:2,3).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요 적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 아버지도 있다(요일 2:22-23; 4:1-3)

5.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구원자 되심을 부인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살해 되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다고 한다(Q. 4:157).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말한다. 초대교회 사역자들의 핵심 메시지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이셨다(행 2:36; 5:30; 10:39,40; 고전 1:17,18 23; 15:14-4; 갈 3:1, 13; 6:14; 엡 2:16; 골 1:20; 신21:23).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모든 자는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롬6:6; 8:1-4). 비록 꾸란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기적을 인정하고 심지어 메시아라는 칭호를 쓴다 할지라도 결정적으로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구원자 되심을 부인하는 것은 복음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는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고 선지자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은 단지 아담처럼 창조되었고(Q. 3:59) 언제가 멸망하여 없어질 존재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고 구원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며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이다(딤전2:5; 행4:12; 롬9:5; 히1:8; 계7:9-12).

6. 알라는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은 인간이 지어낸 존재이다.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만 바로 알 수 있다. 알라가 꾸란을 근거로 하는 한 하나님과 결코 같을 수 없다. 다른 종교들도 그들의 경전을 근거로 신을 말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신이 성경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는 루스드라 사람들 앞에서 옷을 찢으며 그들을 만류했다(행 14장). 신들 중에는“알지 못하는 신”(Unknown God)까지 만들어 섬기던 아덴 사람들에게 바울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을 내가 알게 하겠다”며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였다(행 17:22-25).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모든 종교의 신이 다 하나님이라면 삼신 할머니도, 인도의 쥐나, 원숭이, 소나 돼지도 다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우상이다. 칼빈이 말하는 인간의 “종교성” 과 “신인식” 능력은 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종교적 본성을 말하는 것이지 세상의 모든 신을 일반화하여 그 존재를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러한 종교성은 하나님을 바로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행 17:27). 요한네스 바빙크는 족자카르타에서 30년간 선교하고 자유대학교 선교학과를 창설하였는데 그는 이방인들이 열심히 믿는 범신론, 다신론, 자연숭배가 사실은 다 참 하나님을 찾고자 하되 성경을 모르니까 우상숭배를 통해 몸부림치는 발버둥이라고 보았다. 이런 진리를 부인하는 미로슬라브 볼프는 알라와 하나님의 유사성을 정치 신학적 차원에서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무리한 시도이다. 볼프의 이론은 이미 존 힉(John Hick)이 말한바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입장이다.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지 않다. 오히려 알라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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