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학의 권위자 로스 클리포드
로스 클리포드, 그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변호사, 목회자, 교육자, 방송인 그리고 정치인. 지난 6월 3일 '몰링 칼리지'(Morling College)로 향했다. 오후 3시에 로스 클리포드(Rev. Dr. Ross Clifford) 학장과 인터뷰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한 시간 예정이었던 인터뷰는 5시가 돼서야 끝났다. 클리포드 학장과는 구면이다.
지난 5월 16일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Rev. Hon Fred Nile) 상원의원 '재선축하만찬'이 시드니조정클럽(Sydney Rowing Club)에서 있었다. 그날 모임에 로스 클리포드 학장 부부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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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Lawyer)
그는 1951년에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공부한 일 년과 알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2년을 제외하고 그는 시드니에서 태어나 시드니에서 활동한 토종 시드니 사람이다.
1959년 시드니에서 열린 빌리그레함 집회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가 다닌 교회는 ‘아더 말콤 스테이스(Arthur Malcolm Stace)가 다녔던 교회이다. 스테이스는 시드니의 거리에 아름다운 필체로 'Eternity' 단어를 쓴 사람이다.
시테이스는 1885년 2월 9일 ‘레드펀’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15살에 감옥에도 갔었다. 1930년 8월 6일 밤 브로드웨이에 있는 성 바나바 교회에서 하몬드(R.B.S. Hammond) 목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32년 11월 14일 그는 존 리들리(John Ridley)목사의 이사야 57:15절 말씀을 의지한 ‘영원의 울림’(The Echoes of Eternity)이란 설교를 듣고 삶이 변화되었다. 스테이스가 교회 문을 나설 때도 그 말씀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침 호주머니에 백묵 하나가 있기에 허리를 구부려 보도블록에 쓰기 시작한 'Eternity'가, 30여 년 동안 50만 번 이상이나 시드니 전역을 다니며 쓰게 되었다.
그는 'Eternity'(영원)란 단어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믿었던 것 같다.
- 어떻게 법을 전공하게 되었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법에 관심이 있었고, 토론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을 전공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고, 그들을 도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는 시드니의 '킹 스크로스'에서 일하다가, '알리스 스프링' 가까운 광산촌에서 호주 최초의 가정법 전문 법정변호사(barrister)로 2년간 활동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변호사 일이 너무 좋아서 부르심을 무시하였다.
1978년 어느 날 법정 서류를 잔뜩 싣고 '알리스 스프링'으로 향하던 중, 대형차를 추월하다 차가 전복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차가 길을 벗어나서 몇 바퀴 굴렀습니다. 제 머리가 앞 창문에 부딪치면서 ‘이제는 죽었구나’ 소리쳤죠. 정말 그때 끝인 줄 알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놀랍게도 차는 폐차가 될 정도로 부서졌지만, 저와 아내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이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라는 것을. 그래서 시드니로 돌아와 몰링 칼리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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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Pastor)
그는 신학교 졸업 후 남윈저침례교회(South Windsor Baptist Church)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 신학이 법학보다 더 많은 도전과 질문에 직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설명해 줄 변증학(Apologetics)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80년 초반에 안식년을 맞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있는 Simon Greenleaf의 Law School에서 변증학을 공부한 후, 부활을 논증적으로 설명한 '그리스도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hrist)의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8명 법조인들이 펼쳤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변증학 논쟁에 관한 연구이다. 논문은 곧 책으로 발간이 되었고, 1991년에는 러시아어와 아랍어로도 번역되었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책을 고르바초프의 측근이 읽고 그를 러시아로 초대하였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강연했다. 책은 러시아 기독교인은 물론 법조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책 내용은 부활의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 그리고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 등을 제시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밝혔다. 책자에서 부활의 증거를 몇 가지로 요약하여 밝히고 있다.
첫째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 후 아무도 무덤을 찾지 않았다.
둘째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설립된 것이다.
셋째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주일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을 지켰는데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지켰다.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지킨 날이다.
다섯째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빈 무덤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여섯째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제자들의 삶이 변화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도망 갔던 제자들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일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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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학(Apologetics)이란?
기독교 변증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초대교회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는 유대로부터는 종교적으로, 헬라로부터는 철학적으로, 로마로부터는 정치적으로 도전과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자로, 유대인에게는 불경건한 자로, 로마들은 무신론자로 박해를 받았다. 당시에 특히 육체 부활 교리가 가장 큰 쟁점이었는데, 이것이 이교도와 영지주의(Gnosticism)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초기에 로마정부는 법적인 의미에서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간주했다.
하지만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적대적 감정은 네로 박해 당시(64년)에 확연하게 분리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이단과 이교도의 공격에 방어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전파하는 사명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클리포드 학장은 그가 쓴 '교회와 시장에서 변증적 설교와 가르침'(Apologetic Preaching and Teaching for the church and the marketplace)이란 책자에서 '변증학이란 무엇인가'를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acgrath)가 내린 정의를 인용하며 설명하였다.
“변증학(Apologetics)이란 다양한 사상이 난무하는 시장에서 기독교의 진리와 타당성을 방어(defense)하고 제시(presentation)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방어'와 '제시'이다. 변증학이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공격에 대한 방어(defending)와 긍정적 질문에 대한 복음을 제시(presenting)하는 학문이다.
그가 가장 많이 인용한 성경구절은 베드로전서 3장 15절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logos)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apologia)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변증학이란 용어가 파생된 것은 그리스어 아폴로기아(apologia)로, 이는 변호(defense), 즉 법정에서 피고의 무죄를 증명하는 논리 정연한 주장 또는 논증이나 신념의 정확성에 대한 입증을 말한다.
법정에서 유죄를 주장하는 행위를 카테고리아(kategoria)라고 하고, 변호(defense)하는 행위를 아폴로기아(apologia)라고 한다. '카테고리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공격하다'와 '질문하다'는 뜻이다. 이에 반하여 '아폴로기아'는 '공격에 방어'와 '질문에 대답'한다는 의미이다. 변증은 논쟁이 아니라 소통이다.
변증으로 상대방을 압도하여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독교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본문은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했다. 복음의 진리는 영원하지만, 진리를 소개하는 변증학은 시대의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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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결혼 (Same Sex Marriage)
초대교회의 도전 이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기독교는 끊임없는 공격과 질문에 답해야 한다. 모더니즘 시대의 문화를 획일적이고 억압적이라고 비판하며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독교는 또 한 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사회는 다원주의(Pluralism), 세속주의(Secularism), 상대주의(Relativism) 등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는 기독교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세속정부는 종교를 넘어, 인종을 넘어, 문화를 넘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지 갈등하거나 대립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흥하여 호주에서도 동성결혼의 합법화 문제가 점점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 클리포드 학장은 얼마 전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하는 이유를 5가지로 밝혔다.
1. 결혼의 본 의도는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일생 동안 연합을 하는 것이다. 자연적 근간으로써 가정이 친부모 친자녀의 관계를 보장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동성(the same sex) 두 사람의 결합으로는 - 그들의 사랑의 진정성과 자녀양육 기술이 얼마나 존중받을 만한 지의 여부를 떠나서 - 이와 같은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2. 결혼이라는 전통은 인류 역사와 문화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동성애 결혼 반대론자들은 수백 세대에 걸쳐온 인류 전통의 지혜를 존중한다.
시드니 대학 법학 교수 패드릭 파킨슨은 “문제는 우리가 결혼에 있어 그 문화적 의미와 특수성을 보존하는 것에 대해 정말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느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3. 동성애 결혼 찬성론자들은 그들이 외치고 있는 ‘결혼의 평등성’(marriage equality)만 부여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우리를 확신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결혼법이 일단 수정된다면 집단 혼인을 비롯 전통적 결혼의 참 의미와 가치를 훼손할 많은 법들의 제정이 요구될 것이다.
학교에서 동성애 성향에 대해 교육하는 것을 의무로 하라는 압력이 있을 것이고, 종교인들은 동성애 커플의 결혼을 집례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며,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동성애 자체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케 하는데까지 이르고 말 것이다.
4. 자연적 방법을 통한 자녀 임신과 출산이 불가능함에 따라 동성애 커플은 체외수정(IVF) 혹은 대리모(surrogacy)를 통해 자녀를 얻으려 할 것이다. 이것은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정서적 외상 (emotional traumatic)을 불러 올 것이며 모든 동성애 커플이 이러한 고가의 서비스를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5. 체외수정과 대리모 출산을 동성애 커플에게 허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출생할 아이들의 정신과적이고 정서적인 면을 고려할 때 많은 윤리적 질문과 문제들을 야기한다. 희귀 의약품의 배급에서부터, 대리모 출산을 권유하는 나라들에서의 잠재적 인권 남용, 그리고 태아를 상품화하는 망령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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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Educator)
몇해 전 시드니 목회자 체육대회가 몰링 칼리지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학교에 넓은 운동장도 있었고 주차할 장소도 넓었다. 그러나 지금은 운동장이 있던 곳에는 높은 빌딩이 올라 가고, 학교 입구에는 관계자만 들어 갈 수 있도록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클리포드 박사는 1997년에 학장으로 임명을 받은 후 지금까지 연임하고 있다. 그가 부임하고 몰링 칼리지는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의 명문대학과 같이 학교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선교센터로 학교를 발전시켰다. 학교 내에 빌딩들이 놀랄 만큼 많이 세워졌고, 지금도 계속하여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편의시설을 짓고 있다. 학교가 발전하면서 신학 뿐 아니라 연관된 다양한 학과를 개설하였다.
몰링 칼리지에서는 ACT(Australian College of Theology)와 연결된 박사학위를 비롯하여 석사와 학사 코스를 제공하고 교사, 상담사를 위한 과목도 개설되어 있다.
한국어로 가르치는 신학과를 개설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회의를 했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금의 체재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어 교수도 있고 한국 학생들을 위한 직원들도 있고, 한국어 책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영어로 듣지만 나머지는 한국어로 공부하기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몰링 칼리지의 교단 배경은 침례교에 속하지만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신학교로서 50%는 침례교 출신, 50%는 타 교단 출신의 교수진과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현재 750명의 학생들이 있고, 그 중 한국 학생도 100여명이 있다.
몰링의 자랑이라면 신학, 목회, 설교, 선교, 전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학문적인 경험과 견해를 갖춘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교수는 현장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현장 경험이 없는 교수들은 이론에 치우치기 쉽기 때문이다.
학교의 모토로 삼고 있는 ‘Summa Supremo’는 '최고를 위한 우리의 최선'이라는 뜻으로 먼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최고의 리더들을 길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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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인 (Radio Announcer)
그는 2001년 호주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Centenary Medal'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10년 정부에서 수여하는 'Member of the Order of Australia' 메달도 받았다. 메달은 군인과 일반인으로 구분되어 있다. 군인은 특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 받고, 일반인은 특정한 분야에 특별한 활동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클리포드 학장은 4가지 영역에서 탁월하게 기여한 것이 인정되었다. 목회자, 교육자, 다문화 대화 그리고 미디아.
그는 13년간 매주일 밤 9시부터 12시까지 일반 라디오 방송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소개했다. 변증학적인 차원에서 인종과 종교를 넘어 다양한 손님을 초대하여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 타종교와는 논쟁이 아닌, 그들이 오해하는 기독교 진리를 변증적인 차원으로 풀어갔다.
그는 특별히 뉴에이지(New Age)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그들의 행사에 여러 번 참석하였다. 그의 책자인 '교회와 시장에서 변증적 설교와 가르침'(Apologetic Preaching and Teaching for the church and the marketplace)에서 기독교와 뉴에이지의 차이를 도표로 정리했다. (*상기 도표 참조)
뉴에이지의 사상은 ‘일원론’(Monism)과 ‘범신론’(Pantheism)을 근거로 한다. ‘일원론’이라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라는 주장이며,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 의식’(아트만)을 확장시켜서 ‘우주 의식’(브라만)에 이르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트만와 브라만’의 연결 방법으로 요가, 명상(medication), 마음 수련, 기수련 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수행 방법 때문에 기독교의 기도나 명상이 가끔 왜곡될 때가 있다. 명상(meditation)이란 약(medicine)이란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명상은 성령 안에서 말씀에 중심을 두고 있다.
매주일 오전과 오후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밤에 방송을 마치고 집에 가면 새벽 2시가 된다. 피곤은 하지만 학교나 교회에서 할 수 없는 일, 방송을 통하여 복음을 안방까지 전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특히 방송 후 "자살 하려던 내 딸이 방송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었는데 'You raise me up'이란 찬양을 듣고 다시 일어 설 수 있었습니다." "내 딸이 정말 힘들어 하고 있는데 방송을 듣고 위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등의 수많은 전화를 받을 때, 모든 피로는 아침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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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Politician)
- 어떻게 정치를 하게 되었습니까?
"초기 호주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세워진 나라인데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최근 몇 년 동안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내일의 호주를 위하여, 내 자녀들을 위하여 이제 크리스찬이 일어나 적극적으로 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교회가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기독교 전통을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해서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월말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referendum)를 통해 첫 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되면서 “호주에서도 합법화 법안 추진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였다.
“만약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면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Mother's Day, Father's Day는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사회 근간을 흔드는 혼돈이 오지 않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이 법의 통과를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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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활동 (Activities of Christian Communities)
클리포드 학장은 교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NSW 교회 협의회 회장'이며, '아시아 태평양침례교연맹 총회장'인 동시에 '세계 침례교 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책상 위에서는 2013년에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 침례교 연맹과 한국 침례교 총회' 모임 때 대표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대전침례교 신학대학교에서 초청을 받아 채플 시간에 설교도 했다.
한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한 옥타브를 높이며 "저는 한국인의 신앙 열정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기독교 성장이 정체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조건 믿으라고만 하지 말고 변증학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자연적으로 성장할 때는 지났습니다. 열심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일방적인 전도가 아닌 대화를 통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한국 신학교에서도 변증학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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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호주 교민들에게 좋은 말씀 한마디를 부탁했다.
"한국인으로 긍지를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다문화, 다민족 속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가족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하고, 다른 민족들과 잘 화합하며, 한국인의 장점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김치, 불고기 등 한국 음식과 전통을 잘 보존하고 전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상보다 긴 인터뷰로 인하여 그의 스케줄이 한 시간이나 지체되었다. 그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마무리했다.
"저는 여러 직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모든 일을 '목회자의 심정'으로 합니다." 〠
글/김환기ㅣ 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인
사진/권순형ㅣ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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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크리스찬리뷰> 2015년 7월호에 나온 기사입니다[크리스찬리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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