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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을 옹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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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을 옹호해야 하는가?
  • 덕림교회 김현수
  • 승인 2014.07.2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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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현수(예장합동 덕림교회 중고등부 교사)
필자는 예장합동측 덕림교회 중고등부 교사로서 한남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목회자 후보생입니다. 그는 네이버 블로그 '생각하는 그리스도인'(blog.naver.com/calvianus)의 운영자이자 평신도이단대책협회의 스태프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참사가 밝혀지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처사를 놓고 국제사회는 고민에 빠졌다. 이에 영국을 필두로 하여 유대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당시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의 거주 지역을 마련하였으며 팔레스타인과 조율을 시도하였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불공정하게 받아들여졌음은 당연할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에 입각하여 팔레스타인 땅에 새로운 터전을 건설하였고, 경제력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들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은 국가의 존립 문제를 놓고 팔레스타인에서의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자 하였는데, 나중에는 영국 대사관까지 공격하는 등 자치적인 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호전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행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민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등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려 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같은 주장을 완강히 거부한다. 물론 팔레스타인 과격파도 이스라엘 민가와 공공시설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였다고 전해진다.

종말에 가서는 급기야 전쟁이 터지기에 이르며, 당시 이집트, 이라크 등의 4개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패배하고 만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자치적 입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을 옹호해야 하는가?
중동은 '화약고'라고 불린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랍권 국가들은 반미, 반이스라엘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란의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을 주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충돌 중에 있는 하마스(1987년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로 창설하여 저항활동을 전개해 오다가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이 되었다) 세력은 이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북한으로부터도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또한 북한과 교류를 하고 있으며 무기를 거래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마찰은 쉼이 없으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대전이다. 필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역사적인 비극 중 하나로서 국제 사회의 조율이 철저히 실패한 사건으로 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단지 그들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 비판할 뿐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이스라엘 대사관에 찾아가서 이 전쟁(이스라엘 vs 하마스)을 소위 이스라엘의 선한 싸움이라고 선전하는 자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세대주의자들로서 국지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고대하며, 개혁주의에 입각한 영적인 이스라엘을 부정한다. 그들은 신약과 구약이 관계가 없다고 믿으며,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이스라엘, 국지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ttp://blog.naver.com/calvianus/140206132865 참고).

그런 의미에서 세대주의자들은 국지적 이스라엘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작금의 이스라엘의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반면 아랍권 국가들은 데모니즘(demonism, 귀신 숭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경우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의 이 같은 행동 때문에 상당수의 무신론자들은 이스라엘과 기독교를 연관지어 소위 '개스라엘'(개독과 유사한 표현)이라는 표현으로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우리는 주변의 기독교인들 중에서 작금의 사태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아마 한국의 신학적 토양이 세대주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서인 것 같다. 또한 신사도운동권에 속한 교회들이 '백 투 예루살렘'이라는 소위 극단적인 세대주의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친근한 감정이(성경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는 단어이기에) 그러한 신학적 조류에 더욱 쉽게 반응하도록 하는 것 같다. 물론 이슬람, 아랍권 국가들에 대한 반감도 한몫한다.

물론 필자는 이 글에서 신학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생각은 없다. 다만 필자는 국지적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이스라엘은 하등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기독교와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이스라엘은 유대교 인구가 80%를 차지하며 기독교 인구는 2%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교회, 영적 이스라엘로 대체되지 않는 세대주의적 의미의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들'로 칭해진다고 할지라도 작금의 분쟁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비인도적인 행위가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국지적 이스라엘의 선민성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교회는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국지적 이스라엘을 대체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들은 국지적 이스라엘을 옹호해야 할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물론 하마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세대주의의 관점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작금의 이스라엘의 태도를 정의로운 그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다면(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는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작금의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자 한다. 과연 팔레스타인에는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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