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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수 목사의 책자 발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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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수 목사의 책자 발췌록
  • 정윤석
  • 승인 2014.01.1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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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수 씨의 책자 발췌록
(정리: 정윤석 기자, 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

성경의 본의에는 무관심한 영해 - 성경론

“아담 옆구리를 열어서 갈비뼈를 뽑아 하와를 만들었으니 예수님의 신부도(그렇게)”

“(아담 하와를 만드신 사건을 설명하며)하와를 만들 차례가 됐는데 흙이 모자라서 하나님이 아담의 옆구리를 열어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만들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신부를 흙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된 몸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육신이 주님의 몸이 되거나 그리스도의 교회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신부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아담의 옆구리를 열어서 갈비뼈를 뽑아 그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예수님의 신부니까 예수님의 옆구리가 열려져서 거기에서 뽑아낸 것으로 신부를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옆구리는 갈비뼈가 있는 곳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옆구리를 창으로 찔렸습니다. 예수님이 창에 찔릴 때 물과 피가 쏟아지고 거기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태어난 것입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76쪽, 2012년).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 상징, 신부를 데려오는 종은 성령의 그림자”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위하여 신부를 구하려고 하란으로 종을 보내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서 신부를 데려오는 종은 성령의 그림자입니다. 즉 이 땅위에 성령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려가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성령이 오셔서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단장시킵니다. 아브라함의 종도 그가 가져간 보석으로 리브가를 장식해 주었습니다. 귀걸이도 해주고 팔찌도 해주는 등 완전하게 준비해서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데려옵니다. 그처럼 이 땅에 오신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단장시켜 예수님의 신부로 공중 혼인잔치로 데리고 올라가십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110쪽, 2012년). 

“레위기의 다섯제사 또한 예수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예표가 됩니다. 하나의 제사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과 이 땅에서의 모습을 다 설명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이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다섯 가지 제사로 설명을 해 놓으셨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13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번제에서 소가 예물인 이유는 소처럼 불평없이 많은 일들을 하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
“(번제에 대해 언급한 레위기 1:1~17을 설명하며)제일 먼저 등장하는 제사는 번제입니다. 제사와 관련해서 예물, 제사장, 드리는 자 이렇게 세 부류가 나오는데, 예물의 종류도 세 가지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소를 드리거나, 또는 양이나 염소를 드리거나, 혹은 새를 드리는 경우입니다. 예물의 내용이 세가지인 이유는 드리는 자의 경제적 여유와 관련도 있지만 주님의 서로 다른 품과 역할을 모두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막 건축에 쓰인 실들을 예수님의 사역과 성품에 따라서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 등으로 구분한 것처럼 예물도 소, 양이나 염소, 혹은 새로 구분하여 설명을 해 놓은 것입니다. 소의 예물은 예수님의 성품이 소의 성품과 닮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소처럼 불평없이 많은 일들을 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마치 소처럼 묵묵히 잔뜩 짐을 지고 일하시는 모습으로 예시된 곳이 많습니다. ··· 그래서 예물이신 주님께서 묵묵히 노동하시고 고생하시는 모습을 소의 예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21~22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레 1:10) 두 번째 예물에 대한 설명입니다. 양이나 염소는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죽음에 이르러도 불평할 줄 모르는 온전한 순종의 모습입니다. ··· 양은 목에 칼을 대는 그 순간까지도 가만히 있습니다. 주님께서 순종하신 모습도 이러합니다. 자기 생명을 드리는 그 순간에도 불평 한마디 않으셨던 주님의 모습이 양과 염소로 설명된 것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22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번제의 비둘기는 목자없는 양떼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에 항상 슬픔이 있음을 설명”(영해)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레 1:14) 새 중에서 까치나 까마귀가 아니 비둘기를 말씀하셨는데 비둘기의 어떤 점이 예수님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비둘기는 슬피우는 짐승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사 59:11) 그러므로 비둘기의 순결과 슬픔이 세 번째 예물의 성격입니다.

슬피우는 비둘기로 비유된 주님, 그 주님이 슬퍼하심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그가 슬픔을 당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죽음을 당하신 것이고 목자없는 양떼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에 항상 슬픔이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물로 예시되어 있는 세 종류의 짐승은 예물이신 예수님의 다양한 성격과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22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번제는 우리 죄를 위하는 제사는 아닙니다···번제 속에는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처리하는 부분이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던 제사가 번제입니다. 번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목적이지 우리 죄를 위하는 제사는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한 제사에는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 점을 잘 구분하여 말씀을 읽어야 혼동이 없습니다.··· 번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인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먼저 기쁨과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번제 속에는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처리하는 부분이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25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번제를 속죄제와 함께 병용하며 속죄를 위해 드렸음을 의미하는 성경근거가 다수 나온다. 그러나 손영수 씨는 우리 죄를 위한 제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하라”(레 9:7). - 속죄제의 속죄와 번제의 속죄가 다른 의미로 쓰였다고 구분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

“머리는 생각, 내장은 감정, 정강이는 행위 상징”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8~9) 머리를 구분한 이유는 생각이 나오는 곳이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생각까지도 하나님 앞에 다 드려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내장은 감정과 연관된 부분입니다. ‘가슴이 뜨겁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열정, 감정 등이 내장으로 비유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 그것이 내장의 숨은 뜻입니다. 정강이는 걸을 수 있는 부분이므로 행위를 상징하는 부분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걸음걸이가 비뚤어졌다거나 곁길로 갔거나 죄인의 길에 들어섰다는 내용의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실수하셨다는 표현을 찾을 수 없듯이 그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흐트러진 행위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름은 활력을 말합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27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레위기의 다섯제사 또한 예수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예표가 됩니다. 하나의 제사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과 이 땅에서의 모습을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다섯 가지 제사로 설명을 해 놓으셨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13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아론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미,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구원받은 성도들 의미”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레 1:5)아론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미하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오늘날 예수님 안에서 제사장이 된 우리들, ,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30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성경에서 아론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이 아론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나온 제사장이라고 말씀한다.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비둘기 잡을 때 반만 찢는다 행위는)“주님을 이해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레 1:14~17 비둘기를 번제로 드릴 때를 설명하며)“또 한가지 살펴볼 것은 비둘기를 잡을 때에는 속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날개도 전부 찢지 않고 반만 찢습니다. 소나 양을 드릴 때처럼 깊은 속까지 전부 들추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주님을 이해하는 정도를 나타냅니다. 주님을 어린 양으로만 기억하거나 예수님을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으로만 이해를 한다면 예수님의 속에 있는 다른 부분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님을 새 정도로 이해하는 데 그친다는 뜻입니다··· 속을 다 드러내고 내장을 다 들어내어 물로 씻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것이고, 속을 완전히 들추어 내지 않는 경우는 예수님의 바깥 모습이나 행위만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33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소제의)가루가 곱다는 것은 예수님이 늘 일정하시다는 뜻”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레 2:1)예물을 드리는 사람이 가져온 고운 가루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밀가루일수도 있고 보릿가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밀을 갈아서 가루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소제의 예물은 바로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이 한 알의 밀(요 12:24)로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아주 고운 가루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물이 되었는데 그 고운 가루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 오셔서 고운 가루가 되셨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뺨맞고 배반 당하신 그분의 고통과 고난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물의 가루가 곱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13:8)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늘 일정하시다는 뜻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44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두 번 기름 붓는 것은 예수님께 부어진 두 번의 성령과도 일치”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레 2:6)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반죽한 다음 철판에 놓고 굽는데, 그 전에 또다시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두 번 기름을 붓는 것은 예수님께 부어진 두 번의 성령과도 명확하게 일치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5)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되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소제물에 처음 기름을 섞는 내용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그 육신 속에 사람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 그분에게 다시 성령이 더해집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눅 3:21~22)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반죽을 굽기 전에 또다시 기름을 붓는 내용이 기록된 것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46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대제사장 아론은 예수님, 아론의 자손들인 제사장들은 구원받은 성도들, 즉 교회”
“(레 2:1~3을 설명하며)소제는 하나님의 몫이 있고 인간의 몫이 있습니다. 인간의 몫이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몫을 말합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예수님을 말하고, 아론의 자손들인 제사장들은 구원받은 성도들, 즉 교회를 말합니다. 소제물의 일부만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것은 제사장 가족들이 먹을 수 있도록 주님이 주셨다는 것은 소제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54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모습을 레위기는 소제물을 화덕에 굽는 것으로 표현”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레 2:4~7) 굽는다고 표현되어 있는 이 세가지 예물은 고운 가루보다 등급이 조금 낮은 예물이지만 물론 그 속에도 기름이 빠짐없이 들어갑니다. 굽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받으시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불에 굽는 모습은 고난을 통과하는 것의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님이 불에 굽히신다는 말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고난을 가리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 살아 게시는 동안 겪으신 3년간의 고난은 환자를 돌보시거나 죽은 자를 살리시거나 말씀을 가르치시거나 가난한 자를 도우시거나 하는 일들을 통해서 그가 육신적으로 당하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슬픈 자의 슬픔을 대신하고 병든 자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많은 고난을 받으신 모습을, 레위기는 소제물을 화덕에 굽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54~55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소제 드릴 때 소금 넣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예표”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 2:13)소금을 넣은 음식은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따라서 소금은 지속성과 영구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소금처럼 바뀌지 않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 소금을 넣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오래 참으면, 나중에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54~55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하나님은 소금처럼 바뀌지 않는 분”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 2:13) 소금을 넣은 음식은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따라서 소금은 지속성과 영구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소금처럼 바뀌지 않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 소금을 넣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오래 참으면, 나중에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옵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59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소금이 변하지 않는 약속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민 18:19). 그러나 소금이 지속성과 영구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나님을 소금처럼 바뀌지 않는 분이라고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때로 성경은 쓸모 없는 경우를 빗대 맛을 잃은 소금에 비유하기도 한다. 때로 소금은 황무한 땅, 저주받은 땅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어떤 사물에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 자체는 매우 주의해야 하는데 손영수 씨는 영해를 하느라 그런 기본적인 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화목제의 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합니다. 나무는 예수님의 인성을 말합니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레 3:5) 맨 밑에 불이 있고, 그 위에는 나무가 있고, 그 위에는 번제물이 있고, 그 위에는 화목제물이 있습니다. 불은 하나님이 받으셔서 응답하시는 것을 설명합니다. 화목제의 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무는 예수님의 인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시며 결코 죽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면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니셨던 예수님을 나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손영수, <레위기 다섯제사>, 74~75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11년).

“금은 하나님 아버지, 은은 예수의 구속, 보석은 성령의 역사”
본문: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2~13).

“구원받고 난 이후에는 나의 좋은 행실과 나쁜 행실이 섞여 있습니다. 이것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분류가 됩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땅속에 있는 것이고 나무나 풀이나 짚은 땅위에 있는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그 결과를 말하며,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나무나 풀이나 짚이 됩니다. 성경에 나무나 풀이나 짚이라는 것은 인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사 40:6). 예수님도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눅 3:9). 반면 은 하나님 아버지를, ‘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그리고 보석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그 결과를 의미합니다.”(손영수, <거듭난 후의 죄들은 어떻게 사함을 받는가?>, 66~68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인간 양심을 마치 영과 동일한 것처럼 강조하고 육은 영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주장하는 인간론, 죄책감 느끼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자, 깨달음 강조하는 구원론

영혼, 육신 안에 있는 진짜 사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집에 사람이 사는 것처럼 육신인 흙집 안에도 진짜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상대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이지 집이 아닙니다. 흙집 속에 들어 있는 이 사람을 하나님이 상대하십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37쪽, 2012년- 책 출판연도는 2012년으로 돼 있지만 책의 원고는 이미 1998년경에 집필된 듯하다. ).

영이 곧 양심? 양심적이어야 구원받는다?
“육신 속에 살고 있는 영은 하나님과 통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 보이겠습니까? 여러분의 귀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코도 아닙니다. 어디입니까? 이 흙집 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영, 그 양심을 통해서 나타내 보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가장 양심적이 되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양심을 통해서 지금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성경은 가장 양심적인 사람에게 말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자기를 나타내 보입니다. ··· ‘너 그래서는 안된다. 그건 죄다. 그렇게 하지 마라.’ 이런 소리 한번도 안 들은 사람은 제 말씀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이 무감각한 사람은 구원을 못받습니다.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지만 사람은 계속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38쪽, 2012년).

“죄가 생각나고···죄가 자신을 억누르면 아직 구원 못 받은 것”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예배당 새벽기도회나 부흥회에 가서 울면서 회개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는 좀 후련해지지만 돌아서면 또 죄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부흥회 가서 죄를 고하고 다음 부흥회에 가서 또 죄를 풀어놓고 고합니다. 그렇지만 기도할 때는 시원했다가 돌아서면 그 죄가 자신을 억누릅니다. 그것은 아직 구원을 못받았기 때문입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208~209페이지, 2012년). 

“깨달음이 거듭남”
“예수님의 말씀이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속에 있는 영을 끄집어 내려면 그리스도의 말이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전하는 것이고, 여러분이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에 있던 영과 들어가는 영이 만나서 ‘아하!’하고 화합합니다. 우리의 영은, 영이신 말씀을 들음으로써 살아납니다. 우리 속의 영을 되살려 놓으려면 밖에서 영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경에 있습니다. 말씀이 곧 영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알아들으면 우리 속에 있는 양심이 , 그렇구나하면서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이 거듭남입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212페이지, 2012년).

“양심이 예민해야 죄를 깨달아 ··· 죄를 못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도 구원받게 못하신다”
죄사함 받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양심을 아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으려고 하면 양심을 갖다대야 합니다. 양심은 죄를 깨닫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 양심이 예민해야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죄를 못 깨달으면 구원도 못 받습니다. 하나님도 죄를 모르는 사람을 구원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을 겉 같지만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구원받게 하지 못하십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242페이지, 2012년).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못 깨달으면 하나님은 먼저 이 사람의 양심부터 고쳐줘야 합니다”
사람의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못 깨달으면 하나님은 먼저 이 사람의 양심부터 고쳐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양심 관리를 잘해야 됩니다. 양심을 마비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범죄입니다. 처음에 죄를 지을 때는 양심이 떨리지만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 양심은 점점 마비되어 갑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243페이지, 2012년).

창 12장을 설명하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를 분리해야 할 ‘육신’으로 해석함
“(창세기 12:1~9을 강해하며)첫번째 부름을 받았을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100퍼센트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순종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조카라는 혈육이 함께 얽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육신이 구원 받은 우리의 영과 분리되지 않고 얽혀 있는 모습을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처음 구원 받았을 때에는 영과 육이 얽혀 있어서 분리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정말 신령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육신을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고 우리 자신을 항상 죽음에 내어 놓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비가 하란에서 죽은 일을 통해 첫 번째로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아비가 죽었다는 것은 육신의 한 부분이 포기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비는 곧 육신이고 육신의 큰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육신에 종노릇하고 사는 이유는, 육신이 마치 아비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손영수, <아브라함의 믿음과 롯의 믿음>, 21~22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원받은 후 처리할 ‘육신’인 것처럼 해석함
“아브라함은 죽음의 첫 번째 단계를 경험한 후에도 육신을 다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롯이라는 친척이 또 하나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창 12:4).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한글자 한글자 자세히 읽어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일행이 출발했다라고 하지 않고 롯도 그와 함께 갔다라고 했습니다. 롯만 간 것이 아니라 사라와 종들도 다 따라갔을 텐데 특별히 롯의 이름만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리되어야 할 육신의 한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하려고 롯의 이름을 분명히 언급하여 기록한 것입니다.”(손영수, <아브라함의 믿음과 롯의 믿음>, 23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아브라함은 영에 속한 자, 롯은 육신에 속한 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두 가지 모습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속한 성도가 있고, 롯에 속한 성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생활 속에서 점점 깨끗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불순한 것들이 전부 다 씻겨지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 완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뀝니다. 애굽에 가서 겪은 실패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반대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 중에 하나는 영에 속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손영수, <아브라함의 믿음과 롯의 믿음>, 47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그러나 성경은 롯에 대해 ‘의로운’사람으로 평가한다(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영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기 위한 장소로 주신 것”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기 위한 장소로 주신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만나기 위해 금강산에 면회소를 설치하듯,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 주시려고 만드신 장소가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영입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고, 영 이외에는 어떤 곳도 하나님을 모셔 들일만한 곳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감정 속에 하나님을 모시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영에만 거처를 정하십니다. 영은 하나님의 처소 즉,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장소입니다. 첫사람 아담의 영에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아담의 영 속에 계신 하나님은 아담의 생명이셨는데 아담이 죄를 짓자 그 안에 계시던 하나님이 떠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손영수, <에베소서 강해>, 95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09년).

노아 홍수 전 지구 대심판설, 둘째날 ‘보시기에 좋았더라’ 없는 이유 등 과장된 마귀론

천지창조 둘째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없는 이유는 마귀가 공중 권세 잡아서
“사탄은 영으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부채질해서 더욱 불순종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공중에 있다는 말을 잘 생각해봐야 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궁창을 만드신 둘째날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른 날에는 이 말씀이 다 들어 있고 어떤 날에는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는데 둘째 날만은 이 말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어 쫓겼던 사탄이 벌써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땅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특별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마귀한테 넘겨줘 버렸습니다.”(손영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말씀사랑선교회, 139~140페이지, 2012년).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천지창조 후 이 땅에 무엇인가 변화가 있었다는 뜻”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1~2)우리가 알 수 없는 영원의 어느 한 시점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처음 만드셨는데 그 다음에 갑자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2절에는 하늘에 대한 언급이 없이 땅 이야기만 다시 나옵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 땅에 무엇인가 변화가 있었다는 뜻입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9~10페이지, 2010년).

“즉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처음 땅을 만드실 때에는 혼돈되게 만들지 않으셨는데, 이후에 땅이 혼돈하게 되어 그 땅을 다시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셨다는 내용이 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1:2). 하늘은 하나님이 손댈 필요가 없었는데 땅이 혼돈되어 버렸고 완전히 빈 곳이 되었고 거기에 흑암이 가득하게 되었다면 처음 창조하신 땅에 분명히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10~11페이지, 2010년).

노아 홍수 전에도 물심판?
“땅이 혼돈 속에 빠지게 된 이유는 땅이 땅으로 있지 않고 물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 물이 그 땅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결과입니다. ··· 여기서 말하는 물은 노아의 홍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말은 그 전까지 땅이 물속에 갇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뭍이 드러나라(창 1:9)고 하신 말씀도 그 때 땅을 창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처음 만들어진 땅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물속에 갇혀 있으므로, 그 땅이 다시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뿐입니다. 창세기 11절은 천지창조에 관한 내용이고, 창세기 12절은 그 후에 새로 시작된 어떤 일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는 말씀은 심판을 겪고 난 후에 온통 물로 뒤덮여 있는 이 땅의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11~12페이지, 2010년).

창 1:2의 혼돈과 공허를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천지를 물로 심판을 하신 사건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손영수 씨. 심판의 이유를 14페이지에서 밝혀 놓았다.

사람 만들기 전 엄청난 사건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6일간의 창조 중 하나님께서 매번 하신 말씀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이 말씀이 매번 나오고 사람을 만드신 여섯째 날에는 두 번이나 나오는데, 유독 둘째날만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빠져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을 잘못해서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1절과 2절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있어 땅이 심판을 받게 되었고, 둘째 날에는 그 일과 관련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지구가 혼돈 속에 빠지고 땅이 물로 완전히 뒤덮인 것이 심판의 결과라면 누구를 심판하셨던 것일까요? 그때는 사람이 만들어지기 전이었으므로 심판의 대상은 사람보다 먼저 만들어진 어떤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성경이 암시하고 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14페이지, 2010년).

악의 영들이 (천지창조 둘째날과) 관계가 있다
“6일간의 창조중에는 천사를 만드신 날이 없으므로 천사는 인간이 지구에 거주하기 전에 이미 지음 받았던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피조물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들이었습니다. 천사들 중에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베소서 6:12)이라는 말씀처럼 공중에서 권세를 가지고 있고 공중에서 정사를 행할 수 있는 악의 영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이 둘째날과 관계가 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15페이지, 2010년).

(노아 홍수 전)땅은 하나님의 대심판으로 멸망을 받았다(노아 홍수 전에 하나님의 대심판이 있었다는 소설같은 주장을 펼치는 손영수 씨)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과 다릅니다.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들어 놓으셨을 때, 그 땅은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로 채워져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 주는 완전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구를 포함한 우주 전체에, 하나님께 대항하는 대반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땅은 하나님의 대심판으로 인해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땅이 황폐되고 혼란속에 빠진 상태로 얼마의 세월이 흘러갔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 성경학자들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24페이지, 2010년).

그때 사탄의 세력들이 궁창에 와 있었기 때문
“궁창에 만들어진 후에 천사와 그 졸개들이 공중(궁창)으로 내어쫓겨서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 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은 그때 사탄의 세력들이 궁창에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26페이지, 2010년).

“사람을 지으신 것은 ··· 마귀 멸하는데 인간이 앞장서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마귀를 대항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 보이고 마귀를 멸하는 데 인간이 앞장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권한을 다 행사할 수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이 마귀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결국 죄를 짓고 타락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27페이지, 2010년).

“사람은 사탄 파멸시킬 대리자로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을 반역한 사탄과 그의 사자들을 제어하고 파멸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귀에게 빼앗겨 버리고 마귀의 통치에 넘어간 땅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탄 앞에 자기를 대신할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으므로 사탄에게 ‘나는 하나님의 대리자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29페이지, 2010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르시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하나님은 아담에게 ‘잘못하면 빼앗길 테니 잘 지켜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하와가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하셨을 때 동산에는 아담 혼자만 있었습니다. 다스리라는 표현은 창세기 1장에도 나왔지만 2장에는 지키라는 표현이 추가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모든 권한을 넘겨 주셨고 아담이 통치권을 받았으니 다스리라는 말씀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도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빼앗으려고 쳐들어오는 적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지키라는 말씀을 하셨을 까요? 그 적은 엿새 동안의 창조 중 둘째 날에 이미 땅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계신 보좌에 도전하다가 내어 쫓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잘못하면 빼앗길 테니 잘 지켜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33페이지, 2010년).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 ···사실은 사탄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계속 도전하고 대립하는 사탄의 역사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통해서 마귀를 멸하시려고 했는데 첫 번째 사람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태어나는데 하나님은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그 사람이 반드시 마귀를 멸하게 될 것이라는 두 번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귀는 자기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역사에 여자의 후손이 나타날 징조가 보이는 곳마다 방해하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마귀가 자기에게 돌아올 화를 미리 막고자 배후에서 사람을 부추기고 민족을 부추기는 이야기가 창세기 4장부터 시작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우리는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로 읽고 넘겼지만 사실은 사탄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멸할 한 사람을 여인의 후손에서 찾겠다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마귀는 그 여자의 후손이 나올 민족을 말살시킬 계획을 오래전부터 세운 것입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48페이지, 2010년).  

“마귀와 그에게 속한 많은 천사들을 멸하시려고 ···사람을 만드시고”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이 사탄에 의해 공격을 받자 하나님께서는 마귀와 그에게 속한 많은 천사들을 멸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을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보다 사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져 버렸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람은 실패하게 되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50페이지, 2010년).

“하나님의 일차적인 목적은 마귀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죄의 근원인 마귀를 멸하는 것”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무서워하고 사망을 두려워합니다. 구출을 받아야 할 그 사람들이 혈육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님도 혈육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것을 단순히 우리 편에서만 보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구나라고 생각되지만 하나님의 일차적인 목적은 마귀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죄의 근원인 마귀를 멸하는 것이었습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81페이지, 2010년).

“성경을 읽을 때 잠이 오는 것도 사탄의 계략 중 하나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잠이 오는 것도 사탄의 계략 중 하나입니다. 사경회 때 사람들이 졸거나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흩어지게 하여 말씀듣기를 방해하는 일입니다. 시끄러운 소리나 몸이 아픈 것이나 갑작스러운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손영수, ‘사탄 기원과 도전 그리고 최후’, 말씀사랑선교회, 88~89페이지).

“사탄의 주된 공격 목표는 몸과 혼입니다”
“사탄의 악령들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어디를 공격하겠습니까? 인간은 밖으로는 ‘몸’이 있고 내적으로는 ‘혼’과 ‘영’이 있는데 사탄의 주된 공격 목표는 몸과 혼입니다. 몸이 공격을 받는 것은 우리가 병드는 것을 말합니다. 병도 마귀에게 당하는 고통인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일년 내내 아프거나 특별한 병도 없는데 늘 지쳐 있거나 피곤하거나, 스스로 ‘아 나는 육신이 약해’라며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은, 악의 영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이 얼마나 간교합니까? ‘아프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남에게 동정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내가 팔팔하게 살아 있을 때는 나에게 관심도 없던 사람이, 내가 아프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기 때문입니다. 전화도 해주고 병문안도 와주고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을 마음 속에서 은근히 기대하다 보니, 평생동안 아프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우리 자신을 남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도록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스스로를 계속 아끼고 사랑하게 만들며, 모든 관심이 자기 육신에게만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손영수, <사탄의 불화살>, 12~13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우리 자신의 동의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우리 자신의 동의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인격이고 사탄도 인격이고 하나님도 인격입니다. 인격은 인격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미리 동의를 구하고 ‘예’라고 허락하면 들어가서 활동합니다. 내가 사탄의 생각을 거절했는데도 사탄이 내 속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탄이 들어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 속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것입니다.”(손영수, <사탄의 불화살>, 19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번쩍하고 떠올라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 생각은 사탄이 쏜 불화살입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은 뿌리없는 생각입니다. 섬광같이 번쩍하고 떠올라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 생각은 사탄이 쏜 불화살입니다. 사탄이 나에게 화살을 하나 쏘았고, 그것이 내 생각에 박히는 것입니다. ···사탄의 불화살을 여러번 맞으면 사람이 우울증에 빠지고 의기소침해지며 식욕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서 그상태가 원래의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학 되고, ‘나는 나면서부터 이렇게 소심한 성격의 사람이야’ 라고 온갖 변명을 다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잘 살펴야 합니다. 평소에 말이 없고 침묵을 지키며 항상 심각하게 무엇인가 생각하는듯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매우 신령한 것 같지만 그 순간에도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손영수, <사탄의 불화살>, 22~23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남이 뭘 하는지 살펴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가장 먼저 ‘보는 것’을 통해 우리를 미끼로 삼습니다. 남의 편지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남의 은밀한 부분을 계속 살피는 사람, 남이 뭘 하는지 살펴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남의 은밀한 것은 보지 않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남의 비밀을 듣지 않으면 궁금해서 못 견디는 사람도 악령에게 아주 많이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동네에 무슨 이야기가 돌아다니는지 다 알려고 열심히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역군이 되어 있습니다. 남의 비밀 캐기를 좋아하고 남의 비밀을 많이 아는 사람치고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손영수, <사탄의 불화살>, 48~49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예수가 죽은 뒤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기독론과
양태론적 삼위일체

“예수가 죽은 뒤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뜻”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전혀 쓰지 않은 것은 아니며 한 두 번 그렇게 말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표현을 주로 썼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인 베드로나 요한, 그리고 야고보, 유다의 편지를 보면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은 씌어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칭할 때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 야고보서, 유다서에도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 인간 예수를 만나 교제하고 듣고 배웠으며, 그 예수가 죽은 뒤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 그들이 먼저 안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였던 것입니다.”(손영수, <에베소서 강해>, 17~18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09년).

“부활 후 그리스도로 확정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몸을 입으셔서 아들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에베소서 1:17)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중에 특별히 가장 먼저 언급한 말이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라는 표현입니다.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와, 부활하시고 나서 그리스도로 확정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이후의 모습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주님은 자신을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나는 누구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시는 동안 계속 ‘인자’라는 표현을 쓰신 이유는 그가 본래는 하나님이신데 아들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를 보내셨고, 자기는 아들로 이 땅에 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입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몸을 입으셔서 아들 하나님이 되셨고, 아들 하나님이 또 성령이 되신 것입니다.”(손영수, <에베소서 강해>, 71~72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09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고 선포된 것은 부활하시고 난 다음의 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거듭남의 기초를 마련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고 선포된 것은 부활하시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손영수, <에베소서 강해>, 236~237페이지, 말씀사랑선교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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