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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질의에 대한 이단 대책위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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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질의에 대한 이단 대책위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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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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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신인철 교수

본 원고는 정통교회를 향한 신천지측의 공개토론 제의 등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신학대 교수로는 처음으로 신인철 교수(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가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신천지의 추수꾼 포교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통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는 공개적으로 토론을 하자며 공세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 신학대 교수로서 용기를 내신 신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편집자주>.

신천지 질의에 대한 이단 대책위 연구 보고서

연구자: 신인철(Ph.D) 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I. 서론

얼마 전 대전시 기독교연합회 소속 교회 목회자가 신천지를 대상으로 공개토론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신천지 측에서는 신약성경 본문을 근거로 한 자신들의 교리 주제들을 선정하여 대전시 기독교 연합회에 토론을 제안해 왔다. 물론 신천지 측에서 주장하는 교리적인 내용들은 한국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주장하는 성경 해석과는 완전히 상반된 비성서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대전시 기독교연합회에 소속된 교회들이 성도들을 이단 신천지 장막 성전의 성경공부를 빙자한 포교 유혹으로부터 보호와 이단 신천지 주장에 대한 예방 교육 목적으로 신천지 장막 성전 측에서 질의한 내용들의 연구 보고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따라서 본인은 신천지 장막 성전 측의 교리적 주장을 성서의 역사 배경, 해석학적 합리성, 그리고 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연구 보고하고자 한다.


▲ 신천지측 수료사진
II. 신천지 장막 성전 측에서 질의한 내용에 대한 답변
1.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한다는 것과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뜻은 무엇인가?

신천지의 주장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천국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으로 신천지가 기대하는 천국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하늘의 천국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으로 구분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진짜 바로 알자 성경과 신천지』 (과천: 도서출판 신천지, 1999), 28-29.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하늘 영계를 보고 그 모형과 그림자인 장막을 이 땅에 지었으나(출 25:8~9; 히8:5) 그것으로 육계에 천국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91.
본문은 천국이 영계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이다. 그 천국은 마지막 때 영적 새 이스라엘로 나타난다. 즉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씨로 난 아들이신 주께서 하늘(영계)에서 이룬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이 땅에서도 신천지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일러주신 기도라고 믿는다. 이만희,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사복음서 개론』(과천: 도서출판 신천지, 2006), 112-120.


신천지의 주장에 대한 반박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신천지가 주장하는 종말에 일어날 일과 장소적인 측면에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이 가르친 기도는 신천지가 주장하는 미래적 종말론적 사상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은 종말을 갈망하고 있었다. D. A. Hagner/채천석, 『마태복음 1-13』(서울: 솔로몬 출판사, 1999), 290.
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주기도문은 미래적 종말론 사상보다는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한다. Hagner, 앞의 책(1999), 290; J. Nolland, 『누가복음 9:21-18:34』(서울: 솔로몬 출판사, 2004), 341.
이미 이 땅에 메시아로 임한 예수를 믿음으로 누리게 될 현실의 구원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신천지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첫째, “나라가 임하옵시며”(ἐλθέτω ἡ βασιλεία σου)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함의한다. 본 문구에서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의”라는 소유 형용사를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미침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가 메시아에 의해서 지상에서 통치됨을 말한다(사 40:9; 미 4:7). 그리고 “임하옵시며”(ἐλθέτω)는 명령법 제2부정과거 능동태 3인칭 단수로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는 그분의 공의와 정의가 드러나는 것이다(눅 11:17-20, 10:13-30).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사역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 사역이 그들이 현재 참여하고 있는 전도 사역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한 것이다. 즉 현재 제자들은 실현된 종말론이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통치는 어떤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가? 공관 복음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기록했다. 메시아 예수를 믿고 그를 구원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마 18:1; 20:21; 막 11:10; 눅 17:20; 19:11).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종말론적 의미만 함의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메시아 시대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예수가 메시아임을 깨닫게 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라는 뜻이다. 본문의 이러한 해석적 의미는 신천지가 주장하는 장소적인 개념의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천지의 주장은 다음을 참조하라.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8-29.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려고 복음을 선포하고 다녔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눅 13:32).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그들의 교주 이만희가 영적인 씨로 이 땅에서 천국을 만든다는 주장은 주기도문 본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본 구절은 구원론과 하나님의 통치를 함의하고 있지 미래 종말론적 새 하늘과 새 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는 신천지가 주장하는 이만희에 의해 영계가 지상에 이루어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계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성서적인 해석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천지가 주장하는 영계가 땅에 이루어진다는 해석의 허구성을 논해 보자.

1) 신천지는 모세가 지은 장막은 천국의 상징을 지상에 옮겨 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8.
유대인들은 모세의 장막을 하나님이 현현하는 장소로 인식했다. 하지만 성막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거하실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죄인들이 죄의 용서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예배의 장소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실 장소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장소의 필요성에 따라 지상에 허락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유일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모세에 의해 만들어진 장막은 인간이 초월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더욱이 히브리서 8장5절에서 말하는 모세의 장막에 대한 신천지의 해석은 히브리서 본문의 문학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기독론은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로 독자들을 위한 권면의 핵심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기독론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모형론을 통해 본문을 서술했다. 이것은 히브리서 자체가 모형론을 바탕으로 서술되었음을 의미한다. E. K. Lee, “Words Denoting 'Pattern' in the New Testament.” NTS 8(1961-62), 167-69.
따라서 모세의 장막은 하나님 나라의 지상적 모형이다. 그러나 지상에 세워질 장막은 임시적인 처소에 불과하다. 메시아 예수가 이 땅에 옴으로 장막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A. Cody, Heavenly Sanctury and Liturgy in the Epistle to the Hebrews (St.Meinrad, Indiana: Grail Publications, 1960), 17-21, 154-55.

 

더욱이 본 구절이 포함된 히브리서 8장의 문맥은 모세의 장막을 설명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장막에서 일하는 제사장을 대신할 완전한 대제사장인 예수가 이 땅에 옴으로 완전한 희생 제사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비유로 묘사한 것이다. 즉 예수가 자신을 완전한 희생 제사로 드려 십자가에 죽음으로 더 이상 이 땅에는 제사와 제사를 드릴 장막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장 내용의 핵심은 제사장이 집도한 제사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고, 예수가 완전한 제사로 영원한 제사장(구원자)이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천국이 이 땅에 증거 장막으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 올바른 성경적 해석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2)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장소적인 개념의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τὸ θέλημά σου)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보다 정확한 해석이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 12:50).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엡 3:11).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이 땅에 임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신천지가 말하는 하늘의 장막이 이 땅에 물질과 공간적으로 임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3) 본 단락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있는 본문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활동해야 하는 “땅”(γῆ)은 죄악이 가득한 불안전 세상이다. 제자들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다. 제자들은 비진리와 불신앙이 만연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인 구원을 전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룬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이만희에 의해 영계가 이 땅에 임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제자들은 단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해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이만희 교주가 영계를 이 땅에 이루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망상에 불가하다.

결론적으로 신천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공간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경배받고 그분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장소적인 개념으로 하나님 나라가 땅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패역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게 해 달라는 의미다. 더욱이 본 구절을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미래적 종말론 관점이 아닌 실현된 종말론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2. 마태복음 24장 멸망의 가증한 것과 짓밟히는 거룩한 곳과 도망가야 할 산은 어디인가?
올바른 번역: 신천지 증거 장막 성전 측에서 질의한 내용 자체가 마태복음 24:15-16절을 잘못 번역한 것이다. 다니엘서를 인용한 본 구절은 한글 개역 성경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τὸ βδέλυγμα τῆς ἐρημώσεως, ἑστὸς ἐν τόπῳ ἁγίῳ, τότε οἱ ἐν τῇ Ἰουδαίᾳ φευγέτωσαν εἰς τὰ ὄρη)로 번역되었다. 신천지는 ‘서다’(ἑστὸς)를 짓밟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서다’는 ‘굳건하게’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니엘서의 배경적 해석으로 본다면 신성을 모독하는 우상 숭배의 황폐함이 ‘거룩한’(ἁγίῳ) 곳을 장악함을 의미한다. J. E. Goldingay, Daniel WBC 30 (Dalls: Word, 1989), 212-23, 263.
여기서 거룩한 곳은 이방인에 의해 장악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신천지 측에서 주장하는 ‘도망가야 할 산’은 정확한 번역으로 유대에 있는 산을 의미한다.

신천지의 주장
신천지 측은 멸망의 가증한 것을 기존 교회라고 주장한다. 신천지의 교리는 멸망의 가증한 것을 전통 교회로 본다. 하지만 멸망의 가증한 것을 전통 교회라고 직접 적으로 말하지 않고 사탄의 조직체라며 “바다에서 나온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으로 칭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97-298.
짓밟히는 거룩한 곳은 신천지 장막 성전과 그에 속한 신자라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신천지는 신천지 장막 성전이 핍박으로 대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동일한 용어인 짓밟히는 곳은 신천지 구성원 가운데 신천지를 배도한 선민으로 보기도 한다. 예를들면, 유재열 장막 성전이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가야 할 산은 시온 산이라고 믿는데, 이 산은 과천 청계산에 있는 자신들의 첫 장막이라고 주장한다. 이만희,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188-196; 신천지는 이만희를 이긴자라 믿는다. 그리고 신천지 증거 장막은 이긴자 이만희가 만든 조직체를 의미한다.


신천지의 주장에 대한 반박
마태복음 24장은 종말 강화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24장 전체의 맥락을 따라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본 구절 한글 성경 “그러므로”(Ὅταν)는 시간을 나타내는 불변화사로서 본 구절 앞에 나온 내용과 본 구절이 연결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본 구절의 인용은 24장 2절에 이미 언급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예루살렘 성전 파멸의 징조를 상징한다. 마태복음 기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에 의해 파괴됨을 다니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 것이다. D. A. Hagner/채천석, 『마태복음 14-28』(서울: 솔로몬 출판사, 2006), 1077-78.
본문의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자신들의 증거 장막이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해석에 불과하다. 신천지 측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역사성을 완전히 무시한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첫째,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은”이 정확한 번역이다. 신천지는 마태복음 24장 15절을 자신들의 교리적 목적에 따라 변형시켰다. 즉 “짓밟히는”이란 문구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짓밟히는”은 ‘서다’ 또는 ‘장악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본 구절에서 ‘서다’는 과거에 일어난 다니엘서의 기록 내용을 읽음으로 알게 됨을 말한다. 따라서 문맥에 따르면 ‘서다’는 현재 신천지에서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마태가 과거의 사건을 현재 그들의 독자들에게 교훈하기 위해 사용한 과거의 사건을 나타내는 완료형 분사다.

“멸망의 가증한”(τῆς ἐρημώσεως) 것은 “황폐하게 만드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황폐하게 만든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본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BC 167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안티오크스 4세가 성전의 번제단을 없애버리고 그곳에 제우스를 위한 단을 세운 사건을 말한다. 다음을 참조하라. 1 Macc 1.;54.
다니엘은 이것을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했고, 마태는 다니엘의 기록을 본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대단한 수치로 생각했으며, 거룩한 곳 예루살렘 성전이 수치 당했음에 분노했다. 따라서 신천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신들의 예배 처소라는 청계산 장막 성전에 비유하는 것은 성경 해석에 대한 완벽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만희,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191.
즉 성경의 역사적인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해석이다.

둘째, 본 구절은 예수님의 어록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수는 다니엘이 기록한 멸망의 가증한 사건이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예언했다. 이러한 형태의 예언들은 성취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본문에 언급된 사건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성취되었다. AD 40년에 로마 황제 갈리굴라는 자신의 형상을 성전에 놓으려고 했다.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로마 제국의 깃발을 세우려고 했다.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가증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마태에 의해 예수의 경고의 가르침으로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본문을 신천지 장막과 연결시킨다는 것은 성경의 영감성과 역사성을 부인한 결과에서 나타난 오류에 불과하다.

셋째, 마태복음에 의하면 신천지가 말하는 도망가야 할 산은 유대에 살고 있는 자들을 향한 경고다. 헬라어 본문 “τότε οἱ ἐν τῇ Ἰουδαίᾳ φευγέτωσαν εἰς τὰ ὄρη”의 보다 정확한 번역은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가라”이다. 헬라어 명사 “산”(ὄρos)은 단수가 아닌 복수다. 따라서 도망가야 할 산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산들을 지칭한 것이다. 본 구절은 당시 유대에 살고 있는 자들을 향한 명령이기 때문에, 그들이 도망가야 할 산은 유대 광야에 있는 바위투성이 언덕들임을 의미한다. 참조하라. Eusebius, Historia Eccleistica 3.5.3.
유대인들은 전쟁을 피해 이미 여러 번 유대 산악 지역에 있는 많은 동굴들로 피신한 경험이 있었다.

마카비 반란 때 이미 경험한 것처럼 유대 광야에 있는 언덕으로 이루어진 작은 산들은 그들에게 안전을 제공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1 Macc 2:28). 예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할 때가 되면 이와 같이 언덕으로 피하여 숨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배경은 AD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G. R. Beasley-Murray, Jesus and the Last Days: The Interpretation of the Olivet Discourse (Peabody: Handrickson, 1993), 419.
유대 전쟁을 경험한 마태 교회는 예루살렘 파괴 사건을 종말 사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 것이다.

넷째, “거룩한 곳”에 대한 해석이다. 신천지는 거룩한 곳을 자신들의 증거 장막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본문에서 말하는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멸망의 가증한 것인 이방의 신상과 물건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온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장소적인 개념으로서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을 나타낸다.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유대인들이 가장 거룩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 도시인 예루살렘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거룩한 곳으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성서적 해석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마지막 때에 도망가야 할 산이 청계산 신천지 증거 장막이라는 해석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시온산이 어디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질문 3번에서 논하도록 하겠다.

3. 요한계시록 14장에 처음 익은 열매는 무엇이며, 144,000명이 모여 있는 시온 산은 어디이며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신천지의 주장
신천지 신도가 되면 ‘신인합일’을 통해 육체적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이 여전히 90세에도 못 미치는데 신천지 증거 장막 성전측은 이만희를 믿는 자는 영생하게 됨으로 자기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며, 이때 140,000명에 뽑힌 신천지 신자들은 제사장직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144,000명이 2-3년 내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열심히 전도 활동을 한다. 이들은 익은 열매를 추수의 대상으로 본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63.
그리고 144,000명을 알곡 신앙인으로 이해한다. 이만희,『천국 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성취』(과천: 도서출판 신천지, 2005), 300.
 

이들은 시온 산을 하나님이 택한 목자와 선민이 모이는 곳으로 본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명은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의 목자와 성도들이라고 주장한다. 144,000명이 모여 있는 시온산은 자신들의 신천지 증거 장막 성전으로 믿고 있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90-292.

신천지 주장에 대한 반박
본 질문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첫째, 요한계시록 14장에 언급되었다는 처음 익은 열매에 대한 해석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처음 익은 열매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14-20절에서 추수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을 뿐이다. 15절에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곡물 추수의 비유로 나타낸 것이다. 추수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은유로 사용한 성경 구절과 유대 문헌은 다음과 같다. 사 17:5; 렘 51:33; 호 6:11; 욜 3:13; 마 13:24-30; 막 4:29; 4 Ezra 4:28-32; 2 Apoc. Bar. 70: 20.
마태복음 3:11-12의 타작마당도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여 심판하다는 내용을 은유로 기록한 것이다. 본 구절에서 말하는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곡식 추수는 열방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R. Bauckham, "The Conversion of the Nations”, in The Climax of Prophecy: Studies in the Book of Revelation (Edinburgh: T&T. Clark, 1993), 283-96.
따라서 신천지가 주장하는 “처음 익은 열매”라는 단어는 14장에서 추론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은 신천지 교인과 전통 교회를 구분하여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욱이 익은 열매는 정통교회 신자를 지칭한다는 내용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둘째, 성경에 기록된 시온 산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신천지는 시온 산을 자신들의 장막 성전이 있는 청계산을 영적인 시온 산으로 믿는다. 이만희, 천국 비밀, 300.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시온 산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인 장소를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사 60:14). 요한계시록 14장1절에서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다는 산은 예루살렘을 나타낸다. 이것은 본 구절의 상황적 배경이 땅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G. E. Ladd,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Eerdmans, 1972), 189.
14장2절이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고 기록하기 때문에 시온 산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유대교의 종말론은 시온 산을 예루살렘으로 의미하는 단어로 보았다. 다음 구절들을 참조하라. 욜 2:32; 사 24:23; 미 4:7; 슥 14:4-5.
히브리서 기자도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비교함으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을 동일한 장소적 표현으로 사용했다(히 12:22). 이러한 증거들은 신약에서 시온 산은 예루살렘의 상징으로 보아야 함을 드러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온 산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영적인 산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을 참조하라. 이만희, 천국 비밀, 300.

원래 “시온 산”은 다윗의 마을로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언덕을 의미하며,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세우고 예루살렘 성을 지배해 왔다. W. Barclay/고영춘, 『계시록(상)』(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73), 271.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상징적으로 시온 산이라고 부른다(시 2:6, 50:2). 따라서 성경의 역사적 배경은 시온 산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온의 개념은 신약 성경에서 믿는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된다(마 18:15-20).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를 상징한 시온 산을 특정한 장소로 국한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의 속성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천지 장막 성전에만 있다고 믿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간의 관점에서 제한한 해석의 오류에 불과하다.

셋째, 144,000명에 대한 해석이다. 신천지는 자신들만이 144,000명에 속하며, 이 숫자가 채워지면 주님이 재림의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신천지 신자들은 특권을 누리게 된다고 믿는다. 즉 신천지에 속한 자들이 제사장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음을 참조하라. 이만희, 천국 비밀, 300.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144,000명이 어떤 의미를 함이 하고 있는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1) 요한계시록 7장 4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 구절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인 맞은 사람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4장 2절에서 말하는 144,000은 인 맞은 자를 제한하는 숫자를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즉 전 인류의 구원받은 자를 무제한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의 역할을 한다.

문자적 관점에서 144,000명을 해석한다면, 일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음으로 신앙적으로 유대교에서 분리되어 인 맞았음을 의미한다. 문자적 해석과 비슷하지만 비유적 관점에서 144,000명을 해석한다면, 이것은 인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인 맞은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유대교에서 분리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롬 11:7).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참 이스라엘”로 언급했다(갈 6:16; 벧전 2:9). Justin Dial. 11.5; 82.1.
따라서 요한계시록 7장에 언급된 144,000명을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본다면 이 숫자는 유대교 각 지파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유대의 족장을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Ignatius, Phil. 9:1.
요한계시록 7장 5-8절을 근거로 144,000명을 해석하면, 144,000명은 12×12,000에 근거한 수로 12×12×1,000이라는 수식이 형성된다. 이러한 계산법이 가능한 것이 하나님의 백성인 “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십이 사도에 기초한다는 기독교 종말론적 해석의 관점에 근거한 해석이다. D. E. Aune/김철, 『요한계시록 6-16』(서울: 솔로몬, 2004), 202.
 

요한계시록이 열두 지파를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물론 AD 1세기경에는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G. B. Caird,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York: Haper & Row, 1966), 95; M. E. Boring, Revelation Interpretation (Louisville: John Knox, 1989), 129.
하지만 중요한 것은 AD 1세기에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가 존재했느냐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십이 지파가 존재한다고 믿었느냐가 중요하다. 초대 교부들의 증거는 당시 유대 사회가 십이 지파를 인식하였고, 예수도 십이 지파에서 제자들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Irenaeus, Adv. Haer. 1.20.2; Hippolytus, Ref. 5.3.
따라서 십이 지파는 초대 교회 기독교 사상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주장을 정리한다면 144,000명은 유대교를 떠나 개종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Aune, 요한계시록 6, 201.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144,000에 대한 해석은 신천지 장막 성전 측에서 주장하는 자신들이 144,000명을 채워 제사장이 되어 다스린다는 주장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이 땅에 더 이상의 제사장이 필요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를 사한 예수가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이기 때문이다(히 4:14-16).

2) 요한계시록 14장 1-5절에 나타난 144,000명은 그와 함께 섰다는 표현을 통해 보았을 때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배교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을 지칭한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십사만 사천 명은 1세기 말에 지중해 연안에 살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의 숫자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Aune, 요한계시록, 753.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개략적인 숫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14장 2-3절 역시 144,000명을 언급했는데, 그들을 모두 찬양대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14장 15-20절에 나타난 추수를 명받은 천사는 신천지가 주장하는 자신들이 144,000명의 제사장이 된다는 주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추수를 위해 보냄을 받은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천사는 하나님의 원수들을 벌하는 직책을 가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위해 온 천사들은 하늘의 성전과 제단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심판이 하나님의 권위에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천지 측에서 주장하는 자기들의 모임인 144,000명이 제사장이 되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144,000명이 제사장이라는 것도 성서적이지 않고, 다스린다는 표현도 14장 15-20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보았을 때 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144,000명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정의해야 할 것이다. 1) 신실한 남은 자들이다. 2) 기독교 순교자들을 의미한다. 3) 유대교 출신의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4)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전체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5) 참 이스라엘로 지칭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은 144,000명이 현대의 어떤 기독교 단체의 구원받아야 할 숫자로 해석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접근임을 보여준다. 더욱이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박해 가운데 신앙을 지킨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의미하는 단어를 신천지 교리를 맹종하는 무리의 수로 인식한다는 것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4. 마태복음 13장에 추수되어 가야 할 곳간은 어디이며 가라지를 불사르는 밭은 어디인가?

신천지의 주장
주님이 재림할 때 할 일은 초림 때 뿌린 씨를 추수하여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초림 때 예수가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의 씨가 뿌려진 곳은 기존 교회 성도들의 마음 밭이요 교회였다(마 13:24).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115-116.
추수 때는 세상 끝날이고, 추수꾼은 예수와 천사로 믿는다(마 13:37-39). 씨가 뿌려진 교회에는 두 가지의 씨가 뿌려졌는데(마 13:24-30),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마귀의 씨는 마귀의 아들이 된다(마 13:37-39).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62.
이러한 주장은 기성 교회는 목자의 말에 묶여 구원을 받지 못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117.
그러므로 추수꾼인 신천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추수되어서 갈 곳간은 신천지 장막 성전이며, 가라지를 불사르는 밭은 세상 교회라고 주장한다.

신천지 주장에 대한 반박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설명한 것이다. 먼저 신천지가 주장하는 곳간, 가라지, 밭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본 장을 종말론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곳간”은 추수의 결과를 나타내는 장소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종말론 관점에서 본다면 곳간은 지상에 있는 특정한 교회나 단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나타낸다. 헬라어 ἀποθήκη(곳간)은 원래 합성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 “위에 쌓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곧 주님이 재림하면 가게 될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천지의 주장처럼 “곳간”은 믿는 자들이 가야 할 장소적 개념을 의미하지만,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신앙고백을 한 자들에게 실현된 종말론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장소적 개념으로는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는 곳간이 신천지 장막 성전이라는 주장이 비성서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가라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자적으로 “가라지”는 독 보리를 말한다. 독 보리는 가짜 밀인데 진짜 밀이나 보리와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것을 잘못 먹게 되면 죽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본 단락에서 씨를 뿌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밭은 세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에 말씀의 씨를 뿌렸지만 원수들의 방해로 결실을 거두기에 어려움을 당한다. G. Dalman, Arbeit und Sitte in Palästina (Gütersloh: Bertelsmann, 1932), 2:250, 325.
그런데 가라지를 심은 자는 원수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가서 가라지를 모아 불사른다. 여기서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누구인가? 39절은 원수를 마귀라고 기록한다(참조. 마 5:37; 6:13). 마태복음이 종교지도자들과 갈등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태임으로, 본 구절에서 원수는 예수와 제자들의 사역을 방해하는 종교지도자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라지를 기성 교회라고 지칭하는 신천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셋째, 마태복음 13장에 언급된 “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천지는 밭을 기성 교회로 보기 때문에 교회로 추수꾼을 파송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13장에 언급된 밭은 기성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13장 24절에서 “밭”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ἀγρός다. 하지만 38절은 비유를 설명하면서 “밭”을 명확한 “세상”(κόσμος)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Hagner, 마태복음 상, 640.
따라서 현대 신학자들은 “밭”을 교회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와 불신자들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밭은 교회로부터 복음이 선포되는 세상을 의미한다(참조. 마 24:24; 28:19). 더욱이 마태복음 13:36-42의 내용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다. 이것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주체가 바로 제자들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은 밭을 기성교회로 볼 수 없음을 확증해 준다.

위에서 살펴본 두 견해를 종합해보면 곳간과 불살라지는 밭은 신천지와 기성교회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아니다. 즉 곳간은 신천지 장막 성전이 아니며, 밭은 복음을 들어야 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시 마태공동체가 시리아 안디옥 이방인 지역에서 이방인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룬 유대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5.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나무 실과와 먹으면 죽게 되는 선악나무 실과는 무엇인가? 계시록 때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실체는 무엇인가?

신천지의 주장
영생하는 생명나무는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49, 285-286.
선악나무는 신천지를 배신하고 나온 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이들은 생명나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결국 이만희의 가르침이 생명을 준다는 주장이다. 또한 선악나무는 마귀가 준 씨(사단의 목자)를 의미하며 신천지를 배신하고 바벨론 목자와 하나 된 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50.


신천지 주장에 대한 반박
첫째, 신천지는 에덴동산을 한 조직이며, 각종 나무는 조직된 무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86.
그리고 나무의 실과를 영들의 말이라고 믿는다. 에덴동산이 하나의 조직이란 말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니다. 에덴동산에 영생하는 나무가 존재한 것은 사실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창 3:22; 잠 3:18; 11:30; 계 22:2, 14, 19). 이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로 피조 되었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인간의 연약함과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요 5:24; 6:40 8:51).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즉 한 인간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는 재림 주 예수를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셨지만 영생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95. 신전지는 예수가 공중 재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예수의 영이 감동되어 하늘로 간 것이기 때문에 재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예수님만 믿으면 이 생명나무 과실을 먹지 않아도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반문한다. 이러한 주장은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가 생명나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목적이 함의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칭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이만희를 통해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

둘째, 신천지 지파장(제자)이 생명나무가 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는 이 주장을 펼치기 위해 계시록 3:12, 21의 이긴 자를 생명나무라고 주장한다.
즉 예수님과 함께 이긴 자가 된 신천지 지파장들이 생명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3장 12절의 이기는 자가 성전의 기둥이 된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으로 실제의 성전이나 기독교 공동체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을 나타낸다. G. Klinzing, Die Undeutung des Kultus in der Qumrangemeinde und im Neuen Testment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1), 201.
물론 기둥이 교회의 중직을 의미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교회의 기둥은 당시 기독교 공동체의 중심인물들을 의미한다. B. E. Perry, Aesopica: Studies in Text History of Life and Fables of Aesop: Greek and Latin Texts (Urban: University of Illinois, 1952), 1:68.
따라서 신천지 지파장과 신천지 신도들이 생명나무가 된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더욱이 신천지 장막 성전측은 마태복음 19장 28절을 근거로 예수님과 12제자가 신천지의 이긴 자와 그 12지파장이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159.
그러나 마태복음 본문은 종말에 다스릴 자로 묘사된 참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12제자가 불신 이스라엘 다스림으로 그들의 신앙이 인정받게 됨을 말한다(레 21:12, 14). 따라서 이 본문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12지파장이 생명나무가 된다는 주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계시록 22장 2절의 열두 실과는 신천지의 12지파장의 상징이 아니라, 12는 완전수로 부족함이 없고 넘치는 영적 생활을 의미한다.

셋째, 신천지측은 선악나무는 신천지를 배신한 사탄의 조종을 받는 자들을 지칭한다고 믿는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49.
선악을 아는 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구분함을 말한다. 아담과 화와가 이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는 것은 인간이 독자적으로 도덕적 판단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즉 인간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는 힘을 말한다. 이러한 힘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인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신천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깨닫고 올바른 길을 들어선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것은 비성서적이며 잘못된 가르침이다.

셋째, 계시록에 나타난 생명나무는 하나님(이만희)을, 선악나무는 신천지의 잘못된 교리를 깨닫고 전통 교회로 돌아온 자들을 의미하는가? 창세기에서 말하는 선악과는 인간의 독자적인 도덕적 판단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인간이 스스로 자기 중심의 판단을 하는 능력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에는 “생명나무”가 5번 언급되었다(2:7; 22:2, 14, 19). 요한은 생명나무를 단수로 언급하지 않았다. “생명나무”(ξύλον ζωῆς)는 집합 명사로서 강 좌우를 따라 수없이 늘어선 나무들을 지칭하는 복수다. H. B. Swete,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in Greek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14), 299.
 

이것은 생명나무들이 구원받아 낙원에 있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을 말한다(1QH 6:14-19). 따라서 생명나무는 단수 명사가 아님으로 이만희를 지칭할 수 없다. 이만희를 생명나무라고 믿는다는 것은 그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한 사람의 신자에 불가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생명나무가 구세주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인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명나무는 신자를 가리키는 은유로 사용되었다(시 92:12-13; 사 61:3). 그러므로 생명나무에 참여한 자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넷째, 요한계시록은 선악나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특정한 무리들을 지칭한다는 표현 자체는 성서적 배경에서 나온 주장이 아니다. 아마도 신천지는 창세기에 언급된 선악과를 신천지를 반대하는 자들로 마지막 종말에 멸망 받을 자들로 설정한 것 같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50.
그러나 이미 앞에서 밝힌 것처럼 선악과는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6. 오늘날 요한 계시록이 열렸는가? 열렸다면 계시 받는 자는 누구인가?

신천지의 주장
요한계시록은 열려졌으며, 계시받은 자는 신천지 교주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50
즉 이만희가 계시를 받았고, 그가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계시록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222.

신천지의 주장에 대한 반박
신천지가 주장하는 요한계시록이 열렸다는 자체가 신학적인 문구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열리는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여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는 “계시”라는 신학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계시의 뜻은 숨겨진 것이 드러남을 뜻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자칭 계시를 받은 자라는 이만희에게만 열려진 것이 아니라 계시록의 첫 수신자들에게도 열려진 계시의 말씀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식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미 계시의 완성으로 인류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특별한 사람만 계시를 받아 열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신학 사상을 바탕에서 나온 사상이다. 더욱이 성령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계시의 말씀을 여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령의 조명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은 누구나 성령의 조명을 받아 요한계시록의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7. 요한계시록 21장에 없어지는 처음 하늘과 땅은 무엇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이며 어디인가?

신천지의 주장
없어지는 처음 하늘과 땅은 기존 교회 신천지는 교리적인 측면에서 없어지는 옛 장막을 직접적으로 전통 교회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없어질 첫 장막이 배도한 유재열 장막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신천지 총회에서 발행한 책에서는 자신들만 남고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함으로, 이에는 기존 교회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각주 57번을 참조하라.
를 의미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은 이긴 자들이 있는 신천지 증거 장막이라고 주장한다. 신천지 총회 교육부,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310.
요한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며, '공중 재림'에서 '공중'은 '신천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만희, 천국 비밀, 449.
신천지 교회가 곧 천국이므로 교회 가입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며 믿는다.

신천지 주장에 대한 반박
첫째,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주의 완전한 멸망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요한계시록 20장 11절에서 “흰 보좌에서 보니 하늘과 땅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다는” 구절과 상통한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만유의 새로운 변화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복음서에 천지가 없어진다는 언급이 반복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것은 지구의 완전한 멸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눅 16:17; 마 5:18; 24:35 막 13:31). 따라서 처음 하늘과 땅은 신천지의 주장처럼 기존 교회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멸망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둘째,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 본 구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언급은 환상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문법적 구조를 보았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사야 65장 17을 인용한 묘사로 보인다. 유대교 묵시 문학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언급을 다양하게 언급했다(1Enoch 72:1; 91:16; Sir. Or 5.212; Jub. 1:29).

예수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말했다(마 19:28). 베드로는 이 세상이 완전히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출현할 것을 예언했다(벧후 3:10-13).

학자들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옛 상태의 개조인지 새로운 창조인지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다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자신들의 증거 장막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시기 때문이다.

III. 결론

지금까지 신천지 장막 성전 측에서 질의한 7개의 내용을 그들의 교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통 기독교적 관점에서 답변을 했다. 신천지 장막 성전 측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비유로 인식하고 해석한다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신천지의 질의를 반박하는 가운데 그들이 가진 교리적 문제점과 비성서적인 성경관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째, 신천지는 성경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인용한 성경 구절이 성경에 없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은 정확한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러한 역사성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셋째, 신천지는 하나님을 믿는 계시 종교를 한 인간을 신격화하는 수도 종교로 변형시키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구원의 역사를 성령 안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런데 신천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사에 인간 이만희를 등장시키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넷째, 성경의 언어학적 기초가 전혀 없다.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만 읽어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소한 부분들을 실수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신천지가 질의한 7개의 내용은 비성서적이고 답할 가치도 없을 만큼 성경을 막무가내 식으로 혼용한 그들의 비유 풀이에 불가하다. 성도들에게 성경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가르치고 가벼운 신학 서적을 읽게 한다면 누구나 신천지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구분하리라 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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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재능기부> 이관형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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