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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이 모였는데 김밥 한 줄 안 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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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이 모였는데 김밥 한 줄 안 사다니!”
  • 정윤석
  • 승인 2010.07.11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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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파는 아줌마는 울상을 지었다. “아니 해도 너무 하잖아. 3만명이나 모였는데 어떻게 김밥 한줄, 커피 한잔 안 사는 거야! 이게 말이 돼냐구?”

때는 2000년 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 이단 단체가 어떤 공원에 집회신고를 냈다. 예상인원은 3만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날 아침에 비가 왔다. 경찰들은 ‘비가 오니 오늘 사람들이 적게 오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9시부터 공원 앞에 사람들이 꾸역 꾸역 모여 들었다. 경찰의 예상은 빗나갔다. 모인 인원은 경찰 추산 결과 3만명에 달했다. 신고할 당시 예상한 인원과 차이가 없었다. 비는 집회 참석자들에게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았다.

공원은 순식간에 이단단체 신도들의 시위 장소로 돌변했다. 3만명이 어떤 목사를 처단하라는 어깨띠를 띠고 한꺼번에 구호를 외쳐댔다. 복잡하고 번잡스러웠지만 여느 단체가 시위하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사실 집회가 있기 전부터 이 단체는 사전답사를 철저히 했다. 3만명이 모이니 지역별로 구획을 나눠 앉을 자리를 정하고 가두시위를 할 때는 어떤 장소로 이동할 것이고 이동할 때의 방법 등등을 구상했다. 이 중 가장 큰 문제가 화장실이었다. 3만명이 모이는데 이 공원에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단 하나 있었다.

그걸 예상하고 미리 어려움을 예방해야 했다. 이 단체는 시위 전날 지부 단체들에 두가지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첫째, “아침에 절대 밥을 먹지 말아라.” 밥 먹고 오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게 뻔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시위 장소에서 김밥이나 커피 등 일체의 군것질을 금한다.” out put을 막으려면 in put을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조처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

김밥 파는 아줌마 A씨는 3만명의 군중이 모 공원에 모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열심히 김밥을 말았다. 아이스박스에 음료수와 냉커피도 준비해 놨다. 드디어 D데이가 됐다. 출격~ 오늘은 얼마나 매상을 올려 줄까. 공원에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여느 시위와 다르게 사람들이 먹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김밥 한 줄이라도 안 나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몇 줄 팔리라고 기대를 했건만 집회가 3시간여에 진행되고 3만명의 인원이 가두시위를 위해 공원을 빠져나갈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길···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아니, 해도 너무 하잖아. 3만명이나 모였는데 어떻게 김밥 한줄, 커피 한잔 안 사는 거야!’ 김밥 아줌마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른 아줌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공원을 떠나 가두시위를 시작했다. 3만명이 모였지만 공원에는 휴지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준비해 온 비닐 봉투에 휴지를 담아 그들은 자신들이 있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가두시위를 할 때도 이런 질서는 유지됐다. 여성들이 대다수였음에도 마치 군대 조직처럼 오와 열을 맞췄다. ‘폴리스 라인’을 철저하게 지킨 것은 물론이다. 돌출 행동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당시 근무를 섰던 경찰은 혀를 내둘렀다. 그가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한 마디 했다. “정말 이단이라고 한다면 몰상식하고 질서도 없고 사회규범을 안 지키는 사람들로 생각했는데 이곳은 아닌 거 같더군요.” 경찰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질서정연함, 깔끔함을 느꼈나 보다.

그러나 기자는 경찰의 얘기를 모두 듣고 나서 울상 지었다는 김밥 아주머니의 푸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3만명이 거리로 나섰지만 김밥 한줄, 음료수 한병, 커피 한잔 사지 않는 획일성, 그들은 이미 이성이나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라기보다 조직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조종당하는 로봇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그 단체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뒷 얘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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