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숨겨진 이민자’ 선교사 자녀 위해 사역하는 MK네스트[1편]
숙소·장학금·상담… 고립된 '초록 아이들'을 위한 환대의 공동체를 찾아가다
선교는 흔히 헌신의 이야기로 기억된다. 낯선 땅으로 떠나는 결단,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 선교사들의 눈물과 순종은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자랑해 온 믿음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희생의 그림자 뒤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 채 외로움과 상실을 견뎌온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 바로 선교사 자녀(MK, Missionary Kid)들이다.
이들은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국이 낯설다. 선교지에서 자랐지만 그곳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결단을 따라 제3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수없이 반복되는 이동과 이별 속에서 정체성과 관계, 그리고 ‘고향’의 의미를 다시 배워야 했던 아이들이다. 어떤 아이는 대학 진학을 위해 홀로 한국에 돌아와 낯선 행정과 문화, 경쟁 속에서 버텨야 했고, 어떤 아이는 선교 현장의 외로움과 차별, 상처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 살아왔다.
초교파선교단체 GMF 산하 MK지원 사역기관인 MK네스트는 지난 29년 동안 바로 그 아이들의 곁을 지켜왔다. MK네스트는 1997년 서울 불광동 팀수양관에서 둥지캠프(선교사 자녀 수련회)를 시작으로 MK호스텔(주거 지원), 상담과 장학, 공동체 사역, 연구와 세미나 등으로 확장하며 한국형 MK 사역의 중요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 가정을 함께 파송하는 것”이라는 의식 속에서 출발한 MK네스트의 사역은 한국교회와 선교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자는 서울 목동 MK네스트 사무실에서 2026년 5월 19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최융 MK네스트 대표, 강민희 상담팀장, 한상회 MK네스트사역연구소 소장이 함께했다.
특히 이번 인터뷰에서는 선교사 자녀들을 ‘초록 나라 아이들’이라고 표현한 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부모의 나라 ‘노란 나라’와 선교지 ‘파란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어느 한 문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흔들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 문화를 연결하는 브릿지 세대로 성장할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이다.
MK네스트의 사역 전문가들은 선교사 자녀들이 겪는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의 혼란, 관계의 상실과 외로움, 그리고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었던 돌봄의 사각지대에 대해 진솔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인터뷰 내내 반복해서 강조된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MK 사역도 선교입니다.”
다음은 이들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참고로 MK사역의 모델이 미국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글에 외국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편집자주].
1.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MK 네스트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개인 소개와 MK 네스트 사역 소개, 그리고 MK네스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첫 이야기(시작 계기)를 알려 주세요.
답변: 최융 대표(이하 최) - MK네스트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GMF에 대해 설명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GMF(Global Missionary Fellowship)는 약 40여 년 전 이태웅 목사님과 한국 복음주의권 선교 리더들이 함께 세운 독립선교단체입니다. 현재는 파송기관과 연구기관, 지원단체, 훈련단체 등 11개 기관이 하나의 우산 아래 연결되어 사역하고 있습니다. 초기 한국 선교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파송 이후의 돌봄’이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선교사 자녀(MK)들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렇게 해서 1997년 MK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저는 당시 서울 불광동에 있는 ‘팀수양관’에서 교회 수련회와 캠프 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하며 사역 중이었는데, 선교사들이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자녀들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연결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7년 ‘둥지캠프’라는 MK 캠프 사역이 시작됐고, 이후 점차 사역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2002년부터는 풀타임 MK 사역으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이후 대학생 MK들을 위한 돌봄 필요도 커졌습니다. 선교지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문화도 낯설고, 학교생활도 어렵고, 교회 문화조차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고민 끝에 2004년부터 MK호스텔 사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서울 창신동의 48평 아파트를 2년 동안 지원받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직장인 선배 MK들이 '빅시스터', '빅브라더'로 함께 거주하며 언니 오빠 역할을 하고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강민희 상담팀장이 MK대학생 호스텔 슈퍼바이저로 2004년부터 입주와 생활안내, 개인면담, 상담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강민희 상담팀장(이하 강): 처음 MK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문제는 ‘적응’과 ‘정체성’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한국 문화만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교지 문화에만 속한 것도 아닙니다. 선교지 문화와 국제학교 경험, 그리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색깔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 독특함을 이해해주기보다 빨리 적응하기를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MK들이 더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오히려 그 독특함이 하나님이 주신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문화를 경험한 아이들은 매우 창의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인정받고,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과 안정감을 회복할 때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로 성장해 갑니다.
한상회 목사(MK네스트사역연구소 소장, 이하 한): 저는 원천침례교회(이계원 대표 목사)에서 약 20년 동안 목회 사역을 하다가 코로나 이후 MK네스트 사역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MK사역이 주로 현장 중심의 돌봄과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MK네스트 안에 연구소를 세우게 됐습니다. 현재 연구소에서는 MK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워크숍과 세미나를 기획하며, 한국형 MK 사역 모델을 정리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MK 사역은 단순히 몇 명의 아이들을 돕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함께 준비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 ‘초록 나라 아이들’, ‘초록 아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MK들을 흔히 부모의 나라인 ‘노란 나라’와 선교지인 ‘파란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는 '초록 나라 아이들'이라고 하는데요. 현장에서 수많은 MK를 만나오시면서, 이 제 3문화 아이들(TCK, Third Culture Kids)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나 빛나는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느끼셨나요?
최: ‘초록 아이’라는 개념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성장하던 한 미국인 MK의 일기에서 시작됐습니다. ‘나는 노란색일까, 파란색일까’라는 고민이 담긴 글이었는데, 저희가 그 내용을 발췌해 강의안으로 만들면서 ‘초록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후 MK 간증집도 『초록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게 됐습니다. 사실 모국 문화와 선교지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안 좋은 결과는 문화적 부적응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가장 아름다운 결말은 두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바로 그 가능성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TCK라는 개념은 195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 루스 우심(Ruth Hill Useem) 박사 부부가 인도에 거주하는 미국인 선교사 자녀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처음 정립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다른 문화 속에서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하나의 이론 체계가 만들어졌고, 저희도 미국 선교부를 통해 그런 부분들을 배우게 됐습니다.
강: 상담을 하면서 만난 선교사 자녀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적응과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안에는 정말 독특한 색깔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한국 문화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자란 선교지 문화와 국제학교 문화까지 함께 품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색깔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환경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른 문화에 적응하려다 보니 MK들이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이 아이들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초록 아이들이 자신의 색깔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계발하게 되면, 한국 사회 안에서도 굉장히 특별한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아이들이 정체성과 안정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사역 초기에 만났던 한 MK 학생이 미대에 진학했는데, 미술 작품이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그림 안에 한국적인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타문화권의 색감과 문화가 함께 녹아 있었습니다. 교수들도 굉장히 높게 평가했어요. 저도 그 그림을 보면서 ‘이건 한국도 아니고 선교지도 아닌, MK만의 세계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 어떤 전문가는 MK들의 창의성에 대해 ‘한국 유치원식 틀 안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외로움 속에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창의성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 MK들의 가장 큰 매력은 문화적 수용성과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사람 안에서 융합되면서 나오는 독특한 색깔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MK들만의 아주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3. 익숙하고 편리한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부모를 따라서 떠나는 MK와, '리엔트리(귀국 재적응)'로 어려움을 겪는 MK들이 있을 듯합니다. 특히 대학 진학 등으로 부모를 떠나 홀로 한국에 온 청년 MK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이며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한국교회가 청년 MK를 위해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 1세대 선교사들은 대부분 20대에 헌신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갓난 아이이거나 세 살 이하일 때 떠난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선교사들의 평균 연령이 40대가 되면서 또 다른 과제가 생겼습니다. 예전 MK들은 한국에 와서야 ‘이렇게 편리한 나라였구나’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가 중요한 고민이었습니다.
MK 사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데이비드 폴럭(David Pollock)입니다. 미국에서는 ‘MK 사역의 대부’라고 불리는 분인데, 미국 캘빈대 근처에서 사역하며 한국 MK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MK네스트가 시작될 당시 저희를 리엔트리(re-entry, 귀국 재적응) 현장에 초청해 미국 선교부의 MK 사역 시스템을 배우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이론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뭐가 가장 힘들었니? 한국에 돌아와서는 무엇이 어렵니?’ 그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사역의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안식년 기간 동안 MK들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뭅니다. 그런데 MK들이 한국에 오면 머물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교 기숙사 비용도 부담이 컸고요. 그래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숙소’라는 생각에 MK호스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슈퍼바이저 1명의 선배와 5명에서 많게는 7명이 합숙하는 숙소입니다.
또 하나는 재정 문제였습니다. 대학생 MK들에게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많은 MK들이 아르바이트를 한 개 이상씩 하였죠 그 중 한 여자MK는 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면서 그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주어 ‘알바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요즘은 국가장학금 제도가 생기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초록 아이들』이란 책을 출간한 이유도 책 판매 수익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MK들이 한국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대학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해외여행 많이 한 사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MK들은 여행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공동체가 꼭 필요합니다. ‘나는 어디서 왔어’라고 말했을 때 자연스럽게 공감해줄 수 있는 청년 MK 공동체와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또 아이들이 한국교회 적응을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회에서 양육과 돌봄이 필요한데, 오히려 ‘MK니까 영어 잘하겠네’, ‘찬양팀 해라’, ‘봉사해라’ 하며 재능과 역할부터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선교지에서 사역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돌봄과 양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MK인데 교회 안에서도 쉼보다 일을 먼저 맡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MK들은 파송교회에 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숙소와 재정 문제, 공동체와 관계의 문제, 돌봄의 문제들이 모두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필요에 맞춰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진행하는 ‘동행채플’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한 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방학 때가 되면 20~30명의 청년 MK들이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강: 제가 만난 MK들을 보면, 처음 호스텔에 들어왔을 때 밥을 굉장히 많이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폭식에 가까운데, 마음의 허전함이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적응해가면 식사량만 봐도 안정감을 찾아가는 게 느껴집니다. 조금 정착해서 안정감을 찾으면 식사량이 줄어듭니다. 입시 문제도 쉽지 않습니다. MK들은 해외 12년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대학에 가면 치열한 경쟁 속에 놓입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경제학과나 경영학과처럼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학업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MK는 경제학과에 진학했는데,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진행되는 수업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과로 다시 재입학했습니다. 선교사 부모들이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잘 적응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출생지가 한국이라는 것과 MK들이 대학생으로서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갑자기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수강신청부터 행정 처리, 은행 계좌 개설, 카드 발급 같은 기본적인 일들도 MK들은 낯설어합니다. 알바를 두세 개씩 하며 버티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한번은 덩치 큰 남학생이 제 앞에서 펑펑 울면서 “빨리 졸업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현실적인 부담이 큽니다.
한: 한국은 부모님의 고향일 수는 있지만, MK들에게는 낯선 나라일 수도 있습니다. 여권은 한국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방인처럼 느끼는 것이죠. 이것은 한국 MK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TCK(MK)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외모라도 다르면 사람들이 이해해줄 텐데, 겉모습은 똑같은 한국인이니 더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MK들을 ‘숨겨진 이민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는 MK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충격을 줄여줄 수 있는 ‘환대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도 그런 공동체와 연결되어야 하고요. 신앙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고, 갈등과 마찰을 줄이며, 전인적으로 품어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MK들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큰 힘을 얻습니다. 또한 서로의 경험을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MK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과 동질감 그리고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힘이 됩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