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말하지만 결국 행위 심판과 구원
변승우 목사의 ‘성령·행위·지옥 공포’ 설교를 통해 본 현대판 율법주의 분석- 변승우 목사 설교 비판(마지막 편)
결론: 변승우 목사는 자신을 ‘율법주의자도, 칼빈주의자도 아닌 오직 성경주의자’라고 항변한다.
성경대로 믿고 가르치고 행하려고 하는 자신을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 자들을 무지한 맹인이라고 맹비난한다. 그가 내세우는 방어 논리는 단 하나다. 자신은 폐해진 구약의 모세 율법(할례, 안식일 등)을 지키라고 한 적이 없다. 율법주의자는 그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단들이다. 그러나 자신은 오직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성령을 의지해 계명을 지켜야 하고 그것을 못 지키면 지옥에 가는 것이라고 성경대로 주장하니 율법주의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교묘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의 설교 기저에 깔린 논리는 다시 정리하면 네 가지로 귀결된다.
1. 법전의 '이름'만 바꾸었을 뿐,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율법주의의 본질은 '어떤 법을 지키느냐'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순종을 최종 구원의 조건으로 삼느냐'에 있다. 변 목사는 구약의 모세 율법은 폐해졌지만, 예수님이 산상수훈 등 신약에서 의미를 온전케 하신 '그리스도의 율법'은 영원하며, 이를 반드시 지켜야만 천국에 간다고 핏대를 높이며 강조하고 그걸 어기면 지옥에 간다고 위협한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가리켜 겉 행동뿐 아니라 마음의 탐심과 미움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는 '언행심사'로 지켜내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그걸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구원의 절대적인 커트 라인을 십자가의 대속이 아니라 ‘내면과 외면의 완벽한 계명 준수(언행심사)’라는 더 가혹한 행위의 잣대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변 목사는 행위 구원론적 율법주의이다.
2. '성령의 은혜'로 다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며 정죄하는 모순
변 목사는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니 공로가 아니다”라고 방어한다. 언뜻 보면 은혜를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치명적인 모순에 빠진다. 성도들이 ‘성령을 의지했는데도 왜 나는 계명대로 살지 못할까?’라고 절망할 때, 그는 ‘난 기도했는데 죄를 이길 수 없어. 난 성령님을 의지했는데 죄를 이길 수 없어. 그거는 여러분 충분히 기도를 안 해서 그런 거예요. 충분히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결국, 지옥 불못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기 살기로 기도의 노동을 짜내어 성령을 받아내야 하고, ‘내’가 의지를 발동하여 행실을 통제해야만 한다. '성령의 은혜'라는 단어로 포장했을 뿐, 최종 구원의 열쇠는 철저히 '인간의 기도량과 의지력(공로)'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계명을 못 지키는 성도들을 향해 ‘왜 기도 안 해’, ‘왜 성령님의 은혜로 능력을 받지 못해!’라고 정죄하며 강박에 빠지게 만든다.
3. 십자가의 칭의를 모독하고, '도덕적 행실'을 천국의 최종 입장권(예복)으로 둔갑시켰다.
변 목사는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를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최후의 심판을 철저한 '행위 심판'으로 규정한다. 그는 "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한번 알아보자,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던지우더라"라며 결국 마지막 심판대에서 신도 개개인의 행위가 구원을 결정한다고 가르친다. 결정적으로 그는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갈 '예복'을 십자가의 보혈로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義)가 아니라,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못 박으며 예수 믿고 칭의를 얻었어도, 자신이 율법대로 완벽하게 살아낸 '행실의 예복'이 없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완전한 충족성'을 부정하고, 인간 스스로 짜낸 도덕적 성취를 더 해야만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는 율법주의의 전형이다.
4. 복음의 '평안'을 빼앗고, 지옥의 '공포'를 무기로 성도를 통제한다.
참된 복음은 은혜 안에서의 참된 자유와 기쁨을 준다. 그러나 변 목사는 신앙의 동기를 철저히 '두려움과 공포'에 둔다. 그는 "그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으면 100% 지옥 갈 거예요"라고 저주하며 눈을 뽑고 손발을 자르더라도 지옥만은 피해야 한다고 극도의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는 '지옥의 영원한 고문'을 가장 강력한 심리적 무기로 사용한다. 십자가의 은혜나 복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을 '가짜 신앙'이나 '이단적 무율법주의'로 깎아내리고, 조금이라도 계명(언행심사)을 어기거나, 기도를 게을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목사나 선교사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영원히 톱으로 썰리고 불에 튀겨지는 지옥에 간다는 끔찍한 공포를 주입하여 신도들의 행동과 내면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언행심사의 잣대를 들이대며, 구원이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는 극도의 강박증과 불안 속으로 성도들을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공포를 주입하여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종교적 학대이다.
그가 아무리 화려한 성경적 언어와 믿음을 앞세워 변증하더라도 그의 가르침의 본질은, "네가 피 터지게 기도해서 성령을 끌어와, 네 마음과 생각(언행심사)을 완벽하게 통제해 내는 '옳은 행실'을 증명해 내지 못하면, 너는 가짜이며 결국 지옥 불못에 던져진다"이다.
따라서 변승우 목사가 주장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다.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신율법주의자'라는 본색을 2025년 7월 20일부터 9월 28일까지 진행한 ‘그리스도의 율법’이라는 설교에서 제대로 보여줬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