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 무너뜨리는 변승우 목사의 나쁜 설교
9차례 율법설교···행위 심판으로 이신칭의 무력화, 공포의 언어로 불안 고조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다고 해서 거룩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거룩한 용어들이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도구로 전락한다. 변승우 목사는 사랑하는교회에서 2025년 7월 20일부터 9월 28일까지 ‘그리스도의 율법’이라는 주제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설교했다. 이는 성도들을 지옥의 공포로 옭아매는 나쁜 설교였다. 그가 왜 나쁜 설교를 했다는 것인지, 그리고 왜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당장 그곳을 탈출해야 하는지, 그 치명적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봤다.
‘행위 심판’의 공포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변승우 목사는 십자가의 은혜(이신칭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결론적으로 이를 무력화한다. 어법은 십자가의 은혜, 믿음, 이신칭의를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최종적 구원의 커트라인을 ‘행위 심판’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강조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예수님의 의는 그 뜻을 온전히 드러낸 계명들을 언행 심사로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도 탐심을 품지 않는 거예요.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않는 거예요. 마음으로도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언행 심사로 지키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그리스도의 율법 6 “팩트 체크!!! 정말 변승우 목사는 율법주의자인가?” 25. 8. 31, 주일설교, 변승우 목사).
이 말을 한 뒤 그는 “목사 말을 믿을래요? 예수님 말을 믿을래요”라고 협박하듯 말한다. 여기서 그는 말씀 구절만 떼어내서 협박하고는 결코 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심, 인간의 의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의 미움과 탐심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는 ‘옳은 행실’이 없으면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 마지막 때에는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로 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다 천국 간다는 말은 이단 사설이라고 강변한다. 변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그것만으로는 천국 가기에 불충분한 것’으로 깎아내리고, 성도들을 평생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과 자기 검열 속에 가두어 버리는 참 나쁜 설교를 한다.
성령의 이름을 빌린 영적 가스라이팅하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가 사용하는 심리적 통제 기법이다. 그는 성도들에게 도달 불가능한 완벽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지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성령님을 통해서는 가능하다’고 선포한다.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았나요? 진지한 결단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우리에게는 결단한 대로 살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중략)그 성령은 부르짖는 자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말씀이 첫째지만 그다음에는 반드시 기도가 따라와야 돼(중략) 그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달라고(중략) 하나님 앞에 여러분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의 율법 9 “정말로 율법 안에 복음이 들어 있는가?”(25. 9. 28. 주일설교, 변승우 목사).
내 힘으로는 절대 계명을 지킬 수 없는데,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위협한 뒤 결국 지옥을 피할 유일한 길은 성령님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삶에서 죄를 짓거나 실패하면? 그는 “네가 기도를 충분히 안 해서 가짜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그리스도의 율법 2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탄의 전략 무율법주의!” 25. 7. 27. 주일예배, 변승우 목사 설교 참고)이라며 모든 책임을 성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성령님께서 언행심사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도록 힘주셨는데 결국 기도가 부족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성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이는 요즘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게 만드는 철저한 가스라이팅이다. 그래서 변승우 목사의 설교는 참 나쁘다.
숨막히는 율법 설교가 비극을 빚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지점은 변승우 목사 자신도 질식해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경험했다는 점에서다. 그는 무서운 율법의 굴레를 성도들에게 던지면서, 정작 자기 자신조차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토로한 바 있다.
“목요일인가, 집에 가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숨을 쉴수가 없어”
“중압감이, 중압감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공황 상태처럼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래서 일어나서 대적하는 기도를 했어요.”
“남들처럼 하나님이 주신 거 은혜스러운 거 한편 두편 짜리, 한시간 두시간 짜리 그런 설교를 하다가 죽으면 안될까, 나도 이제 앞으로 그렇게 할까.”
“집요하게 씨름하고 매달려야 되는데, 그 여러분 숨을 쉴 수가 없어. 침대에 눕는 게 무서워 잠을 잘 수도 없어 성경을 생각하는 것도 무서워. 이게 생각이 너무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죽을 거 같아. 사람이 질식해서 죽을 거 같아.”(그리스도의 율법 3 “당신은 지금 죽으면 확실히 천국에 갈 수 있는가?” 25. 8. 3. 주일설교, 변승우 목사).
질식할 정도로 공황상태에 빠져 변승우 목사는 대적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럴 때는 대적기도를 할 일이 아니라 심리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물론 변승우 목사는 이 설교를 한 뒤에 대적기도를 했고 다음 날 마음이 평안해졌다고는 합니다.
그가 강단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언급한 부분은 매우 용기있는 행동이다. 그런 용기를 약점으로 거론하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변 목사 자신을 위해서 제안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이런 공황적 상황은 심리적, 인간적 연약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가 철저한 율법 준수를 통해 구원 받는다고, 행위 심판을 가르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숨막히는 율법 준수의 굴레와 옥죄임에서 나온 현상으로 보여서다.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교리적 족쇄를 그는 무슨 권리로 연약한 성도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지운단 말인가? 그들도 동일한 아픔이 있을 때, 변 목사처럼 영적 문제로 착각하고 대적기도를 할 것 아닌가.
그의 설교 시리즈 전편에 흐르는 ‘공포의 언어들’도 문제다. 그의 설교에는 지옥, 심판, 마귀, 멸망과 같은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더 끔찍한 것은 기독교의 가장 영광스러운 소망의 단어인 ‘구원’과 ‘천국’조차 언제든 박탈당할 수 있는 공포의 조건어로 오염시켜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무조건 천국 가는 거 아니야”라는 부정어와 연결하여 성도들의 내면에 끝없는 불안을 주입한다. 그래서 변승우 목사의 설교는 나쁘다.
영혼이 병들기 때문이다
자신조차 질식할 것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 그것이 인간의 연약한 한계에서 오기보다 교리적 필연성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은 이를 매우 중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율법주의적 굴레에서 목회자와 부모의 영향력을 거의다 흡수하며 자라나는 연약한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렇다. 부모가 “내가 행위로 신앙의 참됨을 증명하지 못해 지옥에 가면 어쩌나, 내가 가짜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데, 그 부모에게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평안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또한 참된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장할 수 있겠는가? 이런 율법의 시스템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넣는 것은, 자녀들을 십자가의 은혜와 차단된 채 ‘숨 막히는 행위 구원론적 공포’의 감옥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하나님을 ‘우리를 안아주시고 쉬게 하시는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라, ‘조금만 잘못해도 언제든 지옥에 던져버릴 무자비한 감시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순진무구한 자녀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영적 트라우마와 공황장애의 씨앗을 물려주지 않기를 당부한다. 이제 변승우 목사의 나쁜 설교를 분별하고 하루라도 율법주의의 굴레에서 탈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