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과 한국교회의 이단
요한계시록 총론 강의: 짐승을 이기는 어린 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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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오늘 저는 ‘요한계시록과 한국교회의 이단’이란 주제로 여러분들과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넷플릭스나 영화 볼 때 ‘스포일러’(중요한 내용을 미리 공개해 영화의 재미를 망치는 행위) 당하는 거 좋아하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도 없을 겁니다. 터미네이터 2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였습니다. 교회를 갔더니 한 대학생 청년이 “와 아놀드 슈활츠제네거가 이번엔 존 코너를 지키는 역할로 나와!”라고 하면서 막 자랑스럽게 말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 인간이 왜 그 말을 했을까 싶은데 당시에는 스포일러에 대한 개념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을 때여서 그냥 넘어간 적 있습니다. 가장 황당한 스포일러는 최고의 반전 영화로 불리는 유즈얼 서스펙트라는 영화에서 발생했습니다. 절름발이가 범인인데, 영화 상영관앞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도망갔대요. 어벤져스의 ‘엔드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제작진은 제발 스포일러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잠깐 화장실을 들렀는데 어떤 사람이 “어떻게 아이언맨이 죽을 수 있냐!”며 안타까워하는 척하더랍니다. 슬며시 스포일러를 한겁니다. 그 사람과 화장실에서 싸움이 났다는 뉴스까지 나온 적 있습니다. 스포일러, 아주 질색할 일이죠. 결말을 알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사람들은 내 인생의 스포일러, 우리 미래의 스포일러는 미치도록 알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내 취업은 어떻게 될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내 짝일까, 아닐까? AI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늘어가는 것도 미신과 점집, 타로점, 무속인 유튜버 등입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 66권 중에 유일하게 ‘인류 역사의 결말’을 완벽하게 스포일러 해주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책은 공포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승리해, 해피엔딩이야’라고 말해주는 안심 스포일러입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 드릴게요. 이토록 그리스도와 교회의 승리를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여러분 교회에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창세기나 복음서는 많이 들었는데 왜 성경의 마지막 본문, 요한계시록은 아직 접해 본 분이 많지 않을까요? 도대체 한국 교회는 왜 이 최고의 엔딩 크레딧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걸까요? 사실 여기에는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 혹은 아주 어릴 때 일어난 거대한 ‘사건’ 때문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합니다.
2.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을 잘 듣지 못하게 된 이유
자, 그럼 이 ‘인류 역사의 스포일러’, 요한계시록의 첫 장면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장 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여기서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라고 했는데, 이 ‘속히’의 기준점은 언제일까요? 스마트폰과 AI 시대를 살아가는 2026년의 우리일까요, 아니면 이 편지를 처음 받아 든 1세기 사도 요한일까요? 성경 해석의 제1원칙은 최초 수신자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는 것입니다. 나를 주인공으로 놓고 성경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편지를 처음 받은 사도 요한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보는 기초 중의 기초(Basics)입니다. 같이 말해보겠습니다.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에게 알게 한 것이다, 요한도 모르는 내용을 전달하신 것이다? 답해 보세요. 네, 알게 하신 것이라. 사도 요한의 시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절도 볼까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서 '때'라는 단어도 아주 중요합니다. 헬라어 원어는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크로노스(Chronos)'입니다. 지금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40분이네요. 이렇게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계의 시간이 크로노스입니다. 둘째는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이건 물리적인 시각이 아니라, 의미가 담긴 ‘기회의 시간’,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구속사의 시간’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때가 가깝다'는 것은 달력 날짜가 며칠 남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다는 ‘카이로스’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기초적인 해석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2000년 전의 요한이 아니라, 자기들이 사는 시대로 억지로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때가 가깝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시간(카이로스)을 물리적인 달력 날짜(크로노스)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시작을 서기 4천년에, 그래서 서기 2천년이 되는 시기에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고 1천년이 지난 7천년에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그들의 계산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3장엔 교회가 등장하지만 그 후로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며 하늘로 집단적으로 올라가고 이 땅에는 11장과 12장에 마흔두달, 한때두때반때, 1260일이라는 시기가 계속 반복되는데, 이를 전3년반, 후3년반으로 나눠 총 7년 대환난을 빼면 대략 1992년 10월 28일을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하는 날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를 강타했던 '다미선교회 시한부 종말론' 사건이었습니다. 한국교회 대다수 이단 문제는 교회 밖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다미 선교회 사건은 조금 다른 양상이었어요. 그 사건의 지도자였던 이장림은 유명한 기독교출판사인 ‘생명의 말씀사’에서 번역 일까지 했던 성결교 목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휘말린 교단도 침례교뿐 아니라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도 교단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신도들과 교회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시한부 종말론이 남긴 트라우마는 대단히 컸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한국교회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됐습니다. 요한계시록 한번 잘못 건드리면 이단으로 찍힌다는 생각도 갖게 됐어요. 교회에서 쉽게 요한계시록을 다루기가 어려워진 이유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있습니다.
3. 정통교회에 비해 요한계시록을 적극 활용하는 이단들
자, 이렇게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덮어버리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저희 교회에서도 작년 10월 31일 금요예배 때 간증을 하신 분이에요. 인플루언서이자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더엘그룹의 이미나 대표님이 제가 쓴 ‘복음으로 다시 읽는 요한계시록’ 책 나눔 이벤트를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달린 댓글들을 보고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통독을 해도 요한계시록은 무서워서 빼고 읽어요.” “읽어보려다 무슨 뜻인지 몰라 덮어버렸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 청년들의 솔직한 현실입니다. 알고는 싶은데 가르쳐주는 곳은 없고, 혼자 읽자니 무섭고. 즉,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없는 상태, 바로 영적 진공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장 경제 원리 아시죠? 정식 시장에서 물건을 안 팔면 어디가 생기나요? 바로 ‘암시장’이 열립니다. 이단들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신천지’입니다. 이들은 1980년대 초창기부터 아예 대놓고 ‘요한계시록 대집회’라는 간판을 걸고 집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5명으로 시작했던 이들이 1990년에 1천 명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지금은 거의 15만명을 넘어섭니다. 비결이 뭐였을까요? 바로 요한계시록에 목숨 건 확신이었습니다. 잘못됐지만 확신을 가진 거죠.
부산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입니다. 한 성도님이 요한계시록이 너무 궁금해서 신천지 교육을 받으러 가정집을 찾아갔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센터도 없었던 1980년대였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부엌에서 시퍼런 식칼을 하나 들고 오더랍니다. 그러더니 책상에 '탁!' 놓으며 이렇게 말했대요.
“지금부터 내가 가르치는 내용 중에 성경과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으면, 이 칼로 나를 찔러 죽여도 좋다.”
1990년대 부산이라 그런지 화끈하죠? 요즘 여러분 같으면 웬 정신병자가 다 있냐 할 테지만 영화 ‘친구’의 도시 1990년 부산에서는 그 날것의 확신이 통한 겁니다. 성도들은 생각했겠죠. ‘얼마나 진짜면 목숨을 거나? 우리 교회에선 얘기해주지도 않는데...’
요한계시록을 ‘공포 마케팅’에 주로 활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재앙들을 언급하며,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대력으로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보면 그냥 남자 하나님은 안상홍, 여자 하나님은 장길자라고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로 기억하시면 됩니다.
결국 교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풀려고 유튜브를 뒤지고, 이상한 세미나를 찾아다니다가, 분별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독이 든 성배’를 마시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뺏긴 슬픈 역사입니다.
4. 이단 해석 vs 정통 해석의 가장 큰 차이는?
그렇다면 수많은 해석 중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일까요? 복잡한 교리나 헬라어를 몰라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찾기’입니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이 거대한 우주적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1장 1절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마지막 장인 22장 16절에서도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단과 사이비, 그리고 병든 해석들은 아주 교묘하게 이 핵심을 훔쳐 갑니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주인공을 ‘교주’로 바꿔치기
‘나 예수’의 계시인 요한계시록에 자신을 끼워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시록 그대로가 아니라 내용을 추가해 넣는 겁니다. 신천지는 ‘계시’를 열려서 보여줬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환상계시, 실상계시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본 것은 환상이요, 1966년 경기도 과천에서 요한계시록의 실제, 실상이 이뤄졌다는 교리를 조작해 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 예수 모두 환상이구요. 실제는 그에 걸맞는 21세기의 실제 인물로 나타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실상의 인물들이 실제로 신천지에서는 존재했습니다. 그 중에 사도요한격 목자, 이긴자, 철장 권세 잡은 자, 약속의 목자 등 계시록의 좋은 표현은 자신에게 다 갖다 붙여요.
결론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 땅을 떠나셨고 지금 이 시대의 구원자는 바로 예수의 영이 육체 속에 들어온 우리 총회장님(교주)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읽고 배우실 경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영광된 십자가와 부활이 가슴속에 찬란하게 빛난다면 제대로 잘 가르치는 곳이구요, 읽고 나서 이 시대에 새로운 구원자가 떠오른다면 지금 잘못 가고 있는 겁니다.
2) 주인공을 '사건'으로 가리기 (공포 중심의 왜곡)
또 하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교주는 아니지만, 요한계시록을 '음모론'으로 만드는 경우입니다. 예수님보다 '666 베리칩', '바코드', '제3차 세계대전', '프리메이슨' 같은 사건과 공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해석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다 듣고 배우고 나서 예수님은 기억 안 나고, ‘아, 백신 맞으면 큰일 나나?’ ‘전쟁 나면 어떡하지?’, ‘베리칩이 짐승의 표 666이지 않을까’ 이런 공포심만 남는다면? 이것 역시 주인공(예수님)을 놓친 병든 해석입니다."
3) 주인공의 머리된 교회를 바벨론으로 혐오하기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주인공(예수님)과 그분의 몸(교회)을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는 무너져야 할 세상 제국과 권력으로 ‘큰 성 바벨론’이 등장하고, 귀신의 처소이자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라고 묘사합니다(계 18:2).
그런데 이단들은 이 ‘바벨론’을 바로 ‘정통 교회(기성 교회)’라고 가르칩니다. 지금 드리샘이 다니고 있는 교회, 여러분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시는 부모님의 교회를 ‘마귀의 소굴’이자 ‘무너질 바벨론’이라고 세뇌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8장 4절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기성 교회(바벨론)에서 탈출하여 우리 단체(시온 산, 증거장막)로 옮기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이 해석이 왜 치명적인지 아십니까?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랑 되신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라고 말합니다. 교회라는 용어 자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인데 이 말의 뜻은 ~으로부터 구별되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구별된 교회를 사탄의 소굴처럼 혐오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지상의 교회가 불완전하고 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음녀’, ‘바벨론’, ‘마귀의 집’이라고 저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판별 기준은 명확합니다. 요한계시록 공부를 마쳤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와야 된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의 구원의 장엄함보다 베리칩, 세계3차대전 등 공포와 두려움만 남았다, 한국교회는 탈출해야 할 바벨론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잘못 배운 겁니다. 그것은 주인공(예수님)의 몸을 찢어놓는 가짜들의 해석에 중독된 것입니다.
5. 그러면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기준, ‘어린 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가 30대 때 푹 빠져 있던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이종격투기 시청입니다. 혹시 2005년 일본 프라이드(PRIDE)에서 열린 전설의 경기를 아십니까? ‘60억 분의 1의 사나이’ 러시아의 효도르와, ‘불꽃 하이킥’ 크로아티아의 크로캅의 대결이었습니다. 당시 이 경기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를 도배할 만큼 전 국민이 열광했던 세기의 빅매치였죠. 타격이냐 그래플링이냐, 누가 이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한계시록에도 이와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우주적인 대결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경기는 효도르와 크로캅의 경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승패가 너무나 뻔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미스매치이기 때문입니다.
1) 청코너 vs 홍코너: 미스매치
링 위에 오른 두 선수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관중이라면 누구에게 돈을 거시겠습니까?
청코너에선 짐승이 나옵니다(계 13:1-2). 계시록에 기록된 모습을 보니 그냥 맹수가 아닙니다.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 개입니다. 표범의 몸에 곰의 발, 사자의 입을 가진 괴물입니다. 게다가 용(사탄)에게서 우주적인 권세와 능력까지 받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폭력과 권력을 합친 절대 포식자입니다.
이제 홍코너를 볼까요. 성경은 그를 어린 양, ‘아르니온(ἀρνίον)'이라고 부릅니다(계 5:6). 헬라어로 그냥 양도 아니고 '아주 작고 연약한 새끼 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상태가 심각합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에스팡메논, ἐσφαγμένον)'. 목에는 제물로 바쳐진 칼자국이 선명하고 피가 철철 흐릅니다. 싸울 힘은커녕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인,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입니다.
자, 청코너와 홍코너를 봤으니 우리는 내기를 해야 합니다. 어디에 걸어야 할까요? 당연히 짐승에게 걸어야 돈을 땁니다. 실제로 짐승이 양을 찢는 건 단 1초도 안 걸릴 테니까요. 이것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고 선언합니다. ‘어린 양이 이긴다! 그리고 그 어린 양이 짐승을 박살 낼 것이다!’(계 17:14). 도대체 어떻게 이 어린 양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5장은 그 충격적인 승리의 비밀 2가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2) 승리의 비밀 ①: 죽여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이긴다
짐승의 승리 공식은 심플합니다. 나보다 약한 자를 짓밟고, 물어뜯고, 죽여야 내가 삽니다. 세상의 모든 제국은 이 '짐승의 법칙'으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린 양의 승리 공식은 정반대입니다.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성경은 어린 양을 죽임을 당한 자라고 묘사합니다. 짐승이 어린 양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을 때, 짐승과 세상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환호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어린 양은 죽임 당함으로써 승리하셨습니다. 짐승은 남의 피를 흘리게 하여 잠시 승리하지만, 어린 양은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를 영원히 깨뜨리셨습니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십자가의 죽음이, 사실은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는 가장 강력한 '핵펀치'였던 것입니다.
3) 승리의 비밀 ②: 힘으로 뺏는 것이 아니라, 피로 '사셨다'
두 번째 비밀은 소유권입니다. 짐승(이단, 세상 권력)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립니까? 요한계시록 13장을 보십시오. 협박하고, 666표를 강요하고, 공포로 굴복시켜 노예로 삼습니다. 이건 진정한 소유가 아니라 ‘납치’이자 ‘강압’입니다. 힘으로 뺏은 건, 더 센 놈이 오면 언제든 뺏깁니다. 하지만 어린 양은 우리를 훔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9절은 말합니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기서 '사다(에고라사스)'는 시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살 때 쓰는 상업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 그 우주에서 가장 비싼 핏값을 지불하고 저와 여러분을 정당하게 사셨습니다. 법적으로 값을 다 치렀기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짜리 인생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짐승은 화려하고 강해 보이고, 어린 양 예수는 초라하고 무력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승의 줄에 서려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최후의 승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이 아니라,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어린 양이라고요. 그리고 어린 양만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긴다고 선포합니다. 이 어린 양의 승리의 법칙과 어린 양의 승리와 진실한 자들의 승리의 메시지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바르게 읽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서두에 제가 ‘스포일러’ 이야기를 했었죠?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아는 사람은 영화 중간에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악당에게 두들겨 맞아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팝콘을 집어 먹으며 여유를 부립니다. 왜입니까? ‘저러다 결국 주인공이 다 이기는 걸 나는 알고 있거든.’ 이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 최고의 스포일러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어린 양과 성도의 대역전승’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마주한 현실을 보십시오. 마치 ‘미스매치’ 같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세상은 거대한 짐승처럼 거대하고 강력해 보입니다. 취업의 문턱, 불확실한 미래, 치솟는 집값, AI와 급변하는 정세 속에 나는 물론 내가 믿는 하나님도 한없이 작고 초라한 ‘새끼 양’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의 힘과 방식이 부럽고, 거기에 줄을 서야만 살 것 같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짐승의 화려함은 잠시뿐입니다. 폭력과 강압으로 세워진 짐승의 나라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러나 죽임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짐승이 공포로 납치한 노예가 아닙니다.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전부 지불하고 정당하게 사신,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인생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요한계시록의 총론적 설교를 마무리하며 계시록에 대한 두려움의 안경을 벗어 던지시길 바랍니다. 이단들이 조장하는 종말의 공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세상이 주는 위압감에 쫄지 마십시오. 대신 그 자리에 '승리의 확신'을 채우십시오.
얼마전 안성기 씨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남긴 말 중에 ‘세상이 필요하는 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이 세상에 정말 착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면, 이 세상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어린 양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임을 요한계시록은 일깨워줍니다. 그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외치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린 양의 편이다. 이미 이긴 싸움을 하는 중이다.”
이 배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후로 요한계시록을 펼칠 때마다, 무서운 심판의 경고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벨론과 짐승을 향한 것이라 점, 우리를 향한 구원의 대서사라는 것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여전히 짐승처럼 으르렁거릴지라도, 만왕의 왕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묵묵히, 그러나 당당하게 최후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