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세우는 영인가, 자기를 높이는 영인가?

3편 대조 단어를 통해 본 요한계시록, 성령(πνεῦμα, 프뉴마)과 귀신의 영(πνεύματα δαιμονίων, 프뉴마타 다이모니온)

2025-11-26     정윤석 기자

[가장 하단에 유료 독자를 위한 피피티가 첨부됐습니다. 초안 피피티이기 때문에 수정해서 쓰셔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영분별’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뿐만 아니라 요한일서 4장 1-4절에서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권면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사도 요한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7번 반복해서 말하고, 동시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 2:11, 2:17, 2:29, 3:6, 3:13, 3:22)라고 일곱 번을 반복합니다. 끊임없이 성령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저는 성령님께서 요한계시록에서 하신 말씀에 집중하기보다 말씀하신 성령님께서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또, 성령님과 다르게 사람들을 미혹하는 귀신의 영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초점을 맞춰서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성령님은 땅에 사는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늘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1) 성령님은 주도적으로 요한을 이끌어 환상을 보여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1:10, 4:2, 17:3, 21:10은 각각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에 이끌려’, ‘성령 안에서’ 등으로 번역됐지만, 헬라어 원어에서는 ‘엔 푸뉴마티’(ἐν πνεύματι)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령 안에서(ἐν πνεύματι) 예수께서 쥐고 계신 일곱 교회의 참된 모습(1:10)을 보게 하십니다. 당시 교회는 이 땅에서 핍박받고 보잘것없는 공동체였지만,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눈을 뜨고 보니 장차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을 존귀한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령 안에서(ἐν πνεύματι) 천상의 예배(4:2)를 보게 하십니다.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도미누스 엣 데우스’(주님이요 하나님)로 불리며 영광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신이라고 한 샘이지요. 그러나 성령안에서 바라보니 그는 짐승의 실체였을 뿐 실제로 영광 받을 분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심을 보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ἐν πνεύματι) 세속 권력의 비참한 결말(17:3)을 보게 하십니다. 그들은 지금 금은보화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온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취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결국 처절히 몰락할 운명을 가졌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실체를 보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안에서(ἐν πνεύματι) 우리는 이 세상의 마지막뿐 아니라 새 예루살렘(21:10)의 영광을 맛보게 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롭게 변모할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는 겁니다.

2) 요한은 성령 안에서 이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때 요한은 노년이었습니다. 사도들과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연사하거나 순교하는 소식을 계속해서 들었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도미티안의 신격화를 따르지 않고 숭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자신도 밧모섬으로 유배당하다시피 갇히게 됩니다. 당시 90세 정도가 됐을 거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밧모섬은 신화적 전설에 따르면 바다속에 가라 앉아 보이지도 않는 섬이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밧모섬이 불쌍했던 달의 여신 셀레나가 제우스의 딸 아르테미스에게 간청해서 결국 바다위로 살짝 올라오게 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잊혀진 섬, 사라진 것만 같은 작은 섬, 죄수를 유배해서 당시 채석장에서 노역을 시켰던 섬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도 요한을 가뒀다는 것은 “황제인 나를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요한, 너는 저 외딴 섬으로 가서 잊혀지고 사라지고 소멸돼서 없어져야 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은 노년에 사랑하는 성도들을 떠나온 밧모라고 작은 섬에 갇힌 자가 됩니다. 채석장에서 고된 노역을 합니다. 노년에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세상은 그냥 죽고 사라져 버리라는 의미를 던진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말하고 봤지만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성령님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눈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한 모습과 천상의 세계, 영의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십니다.

“내가 죽었으나 살았고, 세세토록 살아 있는 자다. 도미티안이 아니라 내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황제가 아니라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이 90이 다돼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노 사도의 신음소리 속에서 성령님은 사명까지 주십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내가 끝내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끝이라고 말하느냐라는 추상 같은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1: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90이 넘어서도, 노역장에서도, 잊혀진 외딴 섬에서도, 사명은 불타오릅니다.

3) 현재 핍박받는 성도들은 성령님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칭송받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 속에서 성도들은 소망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전통은 황제가 죽은 후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신’으로 추대됐는데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현신처럼 칭송하길 바랐던 황제였습니다. 그런 핍박의 때,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사라지신 분이 아니라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계 1:8)라고 말씀합니다. 도미티안을 칭송, 찬양할 때 쓰던 그 용어를 사용하여, 지금 너희들의 삶의 자리에서 황제보다 더 위대하고 영원한 ‘주,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귀신의 영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영적 사기꾼입니다.

성령(πνεῦμα, 프뉴마)와 달리, 요한계시록에는 '더러운 영'(πνεύματα ἀκάθαρτα, 프뉴마타 아카다르타)이자 ‘귀신의 영’(πνεύματα δαιμονίων, 프뉴마타 다이모니온, 계 16:13-14)이 등장합니다. 이 영은 용(사탄)과 짐승(세상 권력), 그리고 거짓 선지자(종교 권력)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 ‘귀신의 영’은 ‘거짓 선지자’(ψευδοπροφήτης, 프시도프로페테스)를 통해 역사하며, 그는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합니다(계 13:11).

또한 '짐승'(θηρίον, 테리온)은 치명상을 입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을 행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 냅니다(계 13:3). 온 땅이 이를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계 13:4)라고 칭송하게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 자신이 받으며, 자신을 따르는 자들까지 속여 결국 짐승과 거짓 선지자처럼 산 채로 불못에 들어가게(계 19:20) 만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반항하고 땅에 속한 자들을 끝까지 속이는 게 더러운 영, 귀신의 영의 특징입니다.

이 기준을 갖고 이단들의 주장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여전히 붙드시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곧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믿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체를 의미하죠. 성령께서는 바로 이 ‘불러내신 무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계 2-3장), 그런데도 교회를 마치 ‘진리가 없는 바벨론’이라 정죄하고 그 교회를 빠져나와 ‘특정 인물’, ‘약속의 목자’에게로 다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이단입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Βαβυλών, 바뷜론)은 ‘음녀’(πόρνη, 뽀르네)로 상징되는 세상의 타락한 권세와 체제입니다(계 17:5). 오늘날 교회를 바벨론이라 칭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와 ‘바벨론’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2. 거짓 영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챕니다. ‘귀신의 영’은 짐승을 향해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는 칭송을 유도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영광 받고 있는 그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읽으면서 드리는 기도
주님, 오늘 제 귀가 열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소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들었던 그 음성, 지금도 살아서 나를 부르시는 성령의 프뉴마, 생명의 숨결로 내게 말씀하소서. 도미티안 황제가 아니라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 영원한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권세가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고, 거짓 영이 사람의 찬양을 도둑질할 때에도 나는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이게 하소서. 주님, 저의 마음에도 거짓 영(프쇠데̄스 퓌뉴마)이 도사릴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내 이름이 높아지기를 바랄 때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내가 취하려 한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진리의 영 대신 세상의 영에 귀를 기울인 제 마음을 깨뜨리소서. 성령님, 지금 내 인생의 밧모섬, 잊힌 자리와 고된 현실 속에서도 하늘 문을 여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제가 갇힌 그곳이 오히려 주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의 장소가 되게 하소서. 진리의 프뉴마,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