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사이비 종교, 이제는 법으로 막아야
[오피니언]“사이비 종교 규제법”제정이 왜 필요한가?
글: 진용식 목사(유대연 이사장/ 한국기독교 이단상담소 협회 대표회장)
서론 : “사이비 종교 규제법 제정”추진을 비판하는 자들을 보고.
필자가 ‘이단 상담’ 사역을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부터다. 당시 국내외에 이단 상담 사역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자가 이단 상담을 하여 이단 신도를 회심(개종)시키는 사역을 한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은 격려하고 찬성하기보다 반대 의견을 많이 폈다.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사역이다”, “이단에 빠진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이단에 빠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이니 돌아오게 하면 안 된다”, “유명한 이단 전문가들도 개종시키는 것은 못했는데 당신이 할 수 있겠느냐?”, “예방만 가능하고 치료는 불가능하다” 등의 부정적 반응을 많이 보였다. 그것도 이런 비판을 이단 전문가, 이단 연구가라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들었을 때 정말 힘이 빠지고 의욕이 상실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이단 상담 사역을 시작하여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2000여 명의 이단에 빠진 자들을 정통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자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 이단 전문가라고 하면 누구나 이단 상담 사역을 한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믿어주고 후원해준 분들 덕에 여기까지 왔고 비록 시기 질투심으로 비판한 분들마저 감사할 뿐이다.
<사이비 종교 규제법 제정>은 필자가 오랫동안 이단 문제를 대처하고 수많은 상담을 하면 할수록 그 필요를 더 강렬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수차례 기자회견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하나님 은혜로 이 문제의 중차대함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도 함께 하게 되어 국회에서 “사이비 종교 피해사례 발표 및 규제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문제는 이번에도 외부인이 아닌 기독교 내부인, 그것도 이단 연구를 한다는 사람들조차 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부의 힘을 빌리거나 법의 힘을 빌려 이단을 척결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칼에 정통교회가 무너진다”, “교회가 복음에 바로 서면 된다”,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도록 맡겨야 한다.” 등등의 주장을 하였다.
그들의 주장이 비록 시기나 질투 또는 무지로부터 나온 말이라고 해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히려 더 좋은 “사이비 종교 규제법”이 만들어지는 동기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믿는 바이다. “왜 이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란다.
본론 : 왜 한국교회는 사이비 종교 규제법 제정을 필요로 하는가?
첫째, 대한민국의 사이비 종교는‘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11조, 제19조 등에는 종교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헌법 제20조) 이러한 종교 자유법은 민주 국민으로서 귀중한 권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법을 사이비 종교들이 악용한다는 점이며, 그렇지만 그들에게 미혹된 자들은 오히려 종교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 최대의 피해자라는 점이다. 사이비 종교의 비도덕적,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악행들이 종교의 자유란 법의 사각지대 뒤에 숨겨져 더 극대화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사이비 종교의 천국이라고 일컫게 되어버렸다. 비록 종교 자유법은 있지만 사이비 종교 규제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거리를 마음대로 종횡하며 주위를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격으로, 이단들은 가족을 해체 시키고, 가정과 사회에 큰 폐해를 끼쳐 결국 국가적인 큰 손실과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종자연’(종교자유 연합)이란 단체는 사이비 종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종교 자유법 외에 사이비 종교를 규제하는 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필수인 것과 같은 이치다.
1978년 미국에서 인민사원의 집단 자살 및 학살 사건으로 인하여 무려 918명이 사망했던 끔찍한 사건을 보라. 이 사건 이후에 종교자유가 있는 민주 국가들에서도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입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시행하게 되었다. 민주국가인 프랑스에서도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입법하여 현재 시행하고 있는 바, 1995년 총리 산하에 감시기구를 설립해 170개 단체를 사이비 종교로 분류하고, 심리적 지배, 경제적 착취, 가족 해체 등의 폐해를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싱가폴은 종교화합 유지법을 통해 사회 분열이나 정치개입을 시도하는 종교단체에 대해 즉각적인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유럽 각국 역시 사이비 종교를 사회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법적, 제도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한국이 사이비로부터 입은 피해는 이보다 더 하다. 1950-60년대의 전도관(박태선)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재산 헌납 강요와 공금 횡령 등의 사건, 1987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1999년 5월 11일의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MBC 방송사 점거 폭력 사건, 1992년 10월 28일의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1993년 3월의 할렐루야기도원 방송(MBC PD수첩)의 “안수자 매독 사건”과 그 다음날 신도들의 방송국 난입 사건, 1994년 2월 18일의 박윤식 씨의 운전수의 탁명환 피살 사건, 2000년 12월 16일의 SBS <그것이알고싶다>의 “할렐루야기도원의 실체” 방송으로 17일 방송국 난입 사건, 2003년 7월의 JMS의 홍콩 성추문사건, 2020년 2월 중순부터 말경에 걸쳐 발생한 코로나19의 신천지 대구 집단감염과 방역 방해 사건, 2023년 정명석 징역 23년 선고 사건, 최근(2025년) 모 정당의 신천지와 통일교의 정당 가입 사건 등등이다.
사이비 종교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제멋대로 종횡무진하며 우리 국민들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사이비 종교 규제법”이란 브레이크를 신속히 장착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 우리 사회와 국가를 지켜야 할 것이다.
둘째,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만들면 오히려 정통교회가 다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그 칼에 정통교회가 무너진다.”라고 하는 자들에게.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만들면 그 법에 정통교회가 당할 수 있다. 이런 비판은 사이비종교 규제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 주장하는 내용이다(인터넷 사이트 포함). 법이란 공정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에 최소한의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통교회라고 해도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형태의 종교 행위를 종교 자유법 아래 숨기려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갈수록 사이비 종교의 피해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극대화되어 가고, 한국은 전 세계에 사이비종교들이 수출되어 우리나라의 국 격을 떨어뜨려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큰 정당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등을 볼 때, 기독교가 나서지 않더라도 언젠가 사이비종교 규제법은 반드시 입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무관심하고 구경만 하고 있다 보면, 결국 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법안이 만들어 지게 되고, 그러면 정통 기독교는 오히려 더 큰 이중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 교회가 사이비 종교 규제법 제정을 누구보다 앞장서 만들고 이단을 최대한 규제한다면 정통교회는 혹 잃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사이비 종교 규제법이 정통교회를 다치게 하는 것이 두렵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사이비종교 규제법을 주도적으로 제정해야 옳을 것이다.
셋째, 사이비 종교 대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법의 문제이다.
“법의 힘을 빌려 이단을 척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자들에 대한 답변.
물론 사이비 종교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방, 상담, 탈퇴자 지원, 연구 및 학술 활동 등이다. 그래서 각 교단마다 총회에 이단 대책 위원회를 두고 연구하고 이단을 규정하고 책을 출판하고 이단상담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법적인 대처다. 사이비 종교 문제는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해결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합법적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대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은 정부 차원의 공권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만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단 대처를 법으로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그 교단에서도 이단을 규정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법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교회법으로 하면 되고 세상 법으로 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사이비 종교의 심각한 문제 앞에서, 교회는 교회가 할 일을 다 하고, 국가 정부는 국가법을 통하여 대처할 때 최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넷째, 사이비 종교 대처 중에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점이 있다.
“정부의 힘을 빌려 이단을 대처를 하면 안 된다.” ,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교회가 바로 서면 된다.” 고 하는 자들에 대한 답변.
사이비 종교 문제는 이제 교회를 넘어서 심각한 사회문제 내지 국가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단 집단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사용하여 정부의 입법, 사법, 행정 기관들까지도 장악하여 활동하는 것이 최근 뉴스에도 밝혀진 바이다. 지난 정권들마다 이단들이 얼마나 깊이 활동하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 전 정권에서 통일교와 신천지 집단이 깊이 간여하며 정부가 그들을 지원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힘을 빌리면 안 된다.”, “교회가 바로 서고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라는 주장은 형식적으로 옳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단들이 좋아할 논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는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 병역거부를 할 때 사용하는 논리란 점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군대를 만들면 안 된다고 한다. 군대를 없애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인명을 살상하는 군대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을 앞세워 병역 거부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제 국가는, 우리 사회를 교란시키고 좀먹어 들어가는 사이비 이단 종교를 방어하고 선량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제정해야 한다. 정통교회가 교리적 대처를 잘 하지도 못하였지만 그러나 잘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서 반사회적, 비윤리적 사이비 종교를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법의 영역이고 정부의 영역이다.
결론 : 사이비 종교 규제법 제정을 비판하는 자들은 더 이상 사이비 이단들을 이롭게 하는 위의 주장을 하지 않기 바란다.
사이비 이단을 막겠다고 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물론 결과적으로 사이비 이단들을 이롭게 하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사이비 종교들의 가정 파괴, 경제 파산, 이혼, 가출, 학교 자퇴, 자살, 살인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어도 법이 만들어질지 모를 일인데도,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이단의 방법으로 이단을 물리치자는 모순된 논리임을 알고 다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교회 전체가 나서 교단은 교단대로, 이단연구가는 이단연구가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한목소리로 사이비 종교 규제법 제청을 요구하여 교회는 물론 사회와 국가까지 이롭게 하기를 간곡하게 주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