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 목사의 28년 다락방 체험기(2)
다락방, 만사형통 신앙의 그림자···그리고 예수 안의 참 평안
이 글은 다락방에 28년간 몸담았던 박종기 목사(엘림교회)의 지난 과거를 정리한 글입니다. 그는 지난 일을 죄악시하며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막막하던 차에 ‘종말론사무소’에서 상담하며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락방 교리를 분별하여 떼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다락방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그리고 다락방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탈퇴한 뒤 어떤 심리와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의 회고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박 목사의 글을 통해 여전히 다락방에 있는 분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바르게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박 목사는 2024년 7월 16일 100여 명의 다락방 교역자들과 함께 한국교회 앞에서 다락방이 이단임을 천명하며 회개 성명을 발표하고 다락방 탈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현재 국제개혁교단에 가입,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편목 과정을 준비 중입니다[편집자 주].
빈 강의실에서 시작된 다락방 첫 시간의 기억이에요.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왔다. 사탄에게 속아 죄인이 되었고, 우리는 사탄의 권세에 묶여 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제사장 직분을, 부활하심으로 왕의 직분을, 그리고 승천 후 성령을 보내심으로 선지자 직분을 완성하셨다는 설명이 이어졌어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받고,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한다는 메시지는 제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듯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축복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매력적이었죠.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 특히 기도할 때 천사가 동원되고, 사탄이 결박되며, 천국 시민권을 이 땅에서 누리며 세계 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 저를 강하게 이끌었어요. 구원, 인도, 승리, 사죄, 기도 응답의 확신이라는 다섯 가지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은, 불안정한 제 삶에 굳건한 발판을 놓아줄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는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지요.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나서 온 것이라면,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그야말로 '만사형통'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품었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는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주변 환경은 사탄과 직결되어 있으니,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그저 주변 환경이 사탄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가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를 영접하여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이제 왕이신 그리스도께 겸손히 무릎 꿇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왕이신 그리스도는 그저 사탄을 꺾는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이 가끔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뿐이었어요. 그 누구도 동의나 반박이 없어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던 것 같아요.
다락방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복음을 누리면 전도는 저절로 ‘되어진다’고 가르쳤어요. 즉, 성경을 예로 들며 기도하고 있으면 구원을 받을 사람이 보이거나 누군가가 다가와서 구원을 요청한다는 거예요. 가끔 간증자로 나선 분들이 그런 비슷한 예화를 나누면 그대로 되리라고 굳게 믿었던 거죠. 내가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봉사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으로 취급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지요. 생각만큼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아요. ‘영적 싸움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나의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신자로서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불신자와 같은 상태가 남아있는 이 현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과도한 확신의 강조가 오히려 자만, 교만, 타락, 방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은 없는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어요.
하지만 다락방을 시작하며 들은 내용대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 신앙이라 생각했어요. 설교나 성경공부 중에 ‘이걸 고민해 보자’, ‘이걸 연구해보자’,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등의 자세는 전혀 없었어요. 누구든 메가폰을 쥔 자는 의심, 고민, 갈등은 금기시 되었고 구원받은 자에겐 탄탄대로가 예비되어 있다는 식의 설교, 강의, 성경공부가 범람했어요. 신앙이 약한 사람의 고민이나 성장형의 질문은 전혀 받아들여지질 못했어요. 나를 괴롭혔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마침내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지요. 사탄을 꺾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고, 정시로, 무시로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주일 예배를 드리거나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잠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전도를 잘하기 위해, 혹은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의 매일 모임에 참여하고 설교를 듣고 훈련에 참여했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잘 될 거야”라는 희망적인 메시지에 막연한 안도감만 있을 뿐 삶은 변화가 없었어요.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갈등도 어느새 내성이 생겨버렸고, 그 문제들은 그대로 둔 채 어느 순간부터 ‘전도’만이 삶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렸지요. 내적 갈등과 고민은 접어둔 채 전도를 잘하기 위해 더욱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현장을 열심히 다녔지만, 그들이 제시했던 청사진, 즉 다락방 전도 운동은 도무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복음을 누리라는 ‘당근’과 ‘되는 전도’에 도전하라는 ‘채찍’도 어느 순간부터는 먹히지 않았고 새로운 용어를 이해하고 정리하여 전달하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언제부턴가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방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도 여기저기서 들려왔어요. 복음을 누린다는 명목으로 교회에서 봉사하거나 헌신하는 것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어요. 그 사이 성도들 특히 정통교회를 경험한 성도들 사이에서 ‘왜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을까?’라는 질문들이 오갔어요. 오로지 설교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좋은 신앙 같지만 성도 간의 건전하고 따뜻한 교제가 부족한 걸 느끼는 분들이 늘어갔던 거죠. 인간관계는 차갑고 냉랭했으며, 교회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다락방 메시지대로라면 ‘사랑이 없다’보다는 ‘사랑이 (필요)없다’가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락방의 전도는 현장에서 다락방을 통해 충분히 양육되고 훈련되어 온 사람이므로 교회에서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에요. 다락방을 통하지 않고 교회에 온 사람은 제자가 아니므로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헛심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 대신 나의 영적 상태를 위해 예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다락방 전도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마당에 사랑의 섬김도 없으니, 당연히 건전하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예수를 제대로 영접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확실하니 별다른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새신자나 성도를 위해 할 것이 있다면 사탄 결박 기도만 해주면 잘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분위기였지요.
다락방식 전도의 특징은 전도를 적극적으로 하기보다는 전도는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점이에요. 이것이 기존의 전도방식에 지친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어요. 전도대상자보다 나의 영적상태와 내가 잘되는 데에만 더 관심을 갖게 되는 형태이죠. 일단 내가 잘 되어야 보여 줄 것이 있고 내 영적상태가 좋아야 상대방을 잘 분별하여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다는 발상이니까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 이 복음을 누리며 증거할 사명이 있으니 혼자서 정시 기도로 복음을 누리는 곳이 바로 다락방이다. 개인 정시기도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왔어요. 초기엔 주일 설교를 메모한 노트를 평일에 다시 펼쳐서 성경과 함께 읽고 개인적인 기도와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었어요. 기도수첩이 나온 후부터는 그 색깔이 달라졌어요. 총재의 설교를 한달 동안 보고 들을 수 있게 정리된 것이 기도수첩인데 유튜브에 공유된 영상을 매일 보고 정리하고 개인의 삶에 연관지어 기도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어요. 심지어는 주일 설교를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녹취하여 출력한 것을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정시기도를 변형하는 곳도 생겨났어요.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빈 시간에 공개된 장소에서 성경책이나 기도 수첩을 묵상하다 보면 관심 있는 기독교인들이 모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기도회를 하며 전도할 대상을 물색(조장)하다가 갈급한 자, 충성된 자, 사명자를 찾아 복음을 전하여 영접하면 그들을 잘 양육(EBS 요원)하여 말씀 운동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다락방을 하다가 다락방을 할 만한 사람이 발굴되면 그 사람을 훈련(팀사역)하여 다락방을 맡기거나 새로운 다락방의 문을 연다. 다락방이 확산되면 다락방 요원들을 집에 모아 삶을 치유(미션홈)해주고, 전문인들의 현장에서, 중요한 지역에서 말씀 운동을 하면 직장 복음화와 지역 복음화의 문이 열린다.’
목회자든 누구든, 다락방 전도가 “하는 전도”가 아니라 “되어지는 전도”라고 주장한 점이 많은 이들의 구미를 당겼을 거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러한 전도를 성공적으로 이룩했다는 간증은 들어본 적도,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다락방의 전도는 유난히도 무속인, 정신질환자 등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힘’이 필요한 부분에 집착하는 면이 있어요. 아마도 사도행전에서 큰 부흥의 이면에 등장하는 무속인과 귀신 들린 자들의 회개장면이 영향을 준 듯해요.
그런 전도를 해야 성공한 것 같아 그런 전도 사례에 열광했지요. 그런데 그 결과들은 오히려 그런 사례에 매몰되어 편협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 것 같아요. 모든 문제를 영적문제, 사탄문제로 몰아갔으니까요. 스스로는 물론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무분별한 영적대화가 지배를 해버렸어요. 인간적 갈등이나 사소한 문제에도 의식적으로 사탄이나 영적문제를 개입시키는 사례가 일상이었어요. 이 세계관은 오히려 사람의 시야를 좁히고 소극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승승장구, 부귀영화 스토리를 창 1:27~28에 결부시킨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감만 키우고 이른바 ‘정신승리’자들만 양산해낸 것 같아요.
타락과 방종이 극소수 남의 이야기 같지만 이미 모든 다락방에 다른 모양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유일한 복음이라는 교만, 유일한 전도, 선교단체라는 교만, 영적사실을 유일하게 정확히 안다는 교만이 하늘을 찔렀으니까요. 교만은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거짓된 삶으로 포장하여 속사람은 점점 피폐해졌지요. 반면 이웃은 물론 성도간에도 작은 섬김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다락방이에요.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다락방이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가 돌 정도이니 과언 전도가 가능했을까요? ‘내가 더 깨달았다’. ‘너는 덜 깨달았다’. ‘네가 문제가 있는 것은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종교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의식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곳이 다락방이었어요.
이렇게 내적 갈등을 겪으며 수십년 간 다락방에서 들어왔어도 풀리지 않았던 창세기 3장, 인간의 타락 문제가 현실적인 나의 이야기로 다가온 사건이 있었어요. 성경을 보니 구원을 받고도 환경 탓, 남 탓을 일삼는 것은 창세기 3장의 죄성이 여전히 내게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죠. 내가 원했던 마음의 참된 평안과 기쁨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는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이나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얻고자 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나의 존재감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만끽함으로 비로소 회복되는데 끝없이 목마르게 하는 메신저의 메시지가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으로 착각했었던 거예요.
주의 은혜로 내가 죄인이고 그 죄로 오염된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어요. 구원을 받고도 나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 겸손히 날마다 은혜와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이 행복하고 안전한 삶임을 알게 되었던 거죠.
혹시 여러분도 다락방에서의 갈등을 ‘복음을 누린다’는 명목으로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오지는 않으셨나요? 신앙은 보이지 않는 감시자에게 나의 악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것은 아니더군요. 저는 지금은,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부끄럼 없이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님께 올려 드리고 간절히 은혜를 구하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한 길이라 생각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