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 목사의 28년 다락방 체험기(1)

그리스도 외쳤지만, 복음 아닌 구호에 붙들렸던 청춘

2025-07-24     박종기 목사
가장 왼쪽에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글쓴 이 박종기 목사이다.

이 글은 다락방에 28년간 몸담았던 박종기 목사(엘림교회)의 지난 과거를 정리한 글입니다. 그는 지난 일을 죄악시하며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막막하던 차에 ‘종말론사무소’에서 상담하며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락방 교리를 분별하여 떼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다락방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그리고 다락방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탈퇴한 뒤 어떤 심리와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의 회고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박 목사의 글을 통해 여전히 다락방에 있는 분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바르게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박 목사는 2024년 7월 16일 100여 명의 다락방 교역자들과 함께 한국교회 앞에서 다락방이 이단임을 천명하며 회개 성명을 발표하고 다락방 탈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현재 국제개혁교단에 가입,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편목 과정을 준비 중입니다[편집자 주].

저는 다락방에 발을 들이기까지 기나긴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1976년 가난한 농부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의 한숨소리와 어머니의 눈물을 위의 형제들 보다 더 오래 겪어야 했어요. 막내인 저를 사랑하셨지만 간간이 ‘너만 낳지 않았다면 이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하는 힘겨운 목소리를 듣고 자랐죠. 빠듯한 가정 환경탓에 형제들은 서둘러 일자리를 구해 떠나고 여기저기 몸이 성한 곳이 없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능을 한탄했어요. 자연히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스스로 뭘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던 때가 많았어요.

제겐 종교성이라는게 있었는지 중학교 땐 외국인들이 검은 정장에 네모 반듯한 명찰을 달고 나눠준 몰몬경에 잠시 마음이 끌렸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리더십 강한 친구를 따라 교회에 2년 정도를 다녔어요. 고등학교 시절 2학년이 그나마 아름다웠던 주일학교의 기억이었던 것 같아요. 여름방학에 시골 교회에 수련회가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던 시절···. 그러다가 같은 반인 ‘구원파’가 껴들어 혼란을 주는 바람에 발길이 뜸해졌고 결정적으로 ‘다미선교회’를 추종하던 하숙집의 룸메이트 형 덕분에 한동안 교회와 담을 쌓아버렸죠. 내 미래에 대한 갈등도 해결되지 않아 힘들게 겨우 살아가는데 교회며 교파며 한가한 소리처럼 들렸거든요.

뭐가 그리 저를 끌어 당기는지 대학 입학식날 ‘JMS’ 누나들이 설문지를 들이미는 바람에 몇 달을 또 좀비처럼 졸졸졸 따라다녔죠. 남포동에서 영화도 보고, 짜장면도 먹고, 교회(?)에 가서 개사한 가요도 부르고…. 재미있거나 좋아서 보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꾸던 시골 소년이 잠깐의 실수로 해양대를 택한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는 당혹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나마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을 하고 만남을 이어갔는데 다행이 교회다니는 선배 덕분에 몇 달 만에 JMS를 빠져나올 수는 있었죠. 나오긴 나왔지만 조금 꺼림칙 했던건 당시 사춘기의 바람이 채 가시지 않아 밤낮 갈등이 많았던 시기라 혹시라도 JMS가 나의 물음에 답을 해 주지 않을까 하고 작게나마 기대를 가졌었는데 그 기대가 꺾이니 혼란한 마음은 더욱 컸던거죠.

고민끝에 수업을 째고 학생회관의 기독교동아리로 발길을 옮겼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주위 만을 맴돌던 기독교. 십자가를 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보니 시끄럽기만 한 기독교. 이젠 내가 찾아가서 답을 얻어내리라 하는 마음으로요. 동아리방 문을 슬며시 열자 대학생들이 여러개의 둥그런 원으로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처음 눈에 들어온 선배에게 다가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어요.

“도대체 기독교가 뭔지 알고 싶어요.”

그 선배는 이런저런 대화도 없이 사영리를 꺼내 읽어주더니 영접기도를 같이 하자더군요. 영접기도 후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죠. CCC모임도 하고, 수련회도 가고, 방학때 거지순례전도도 했죠. 그런데 제 마음속에 가득 들어찬 분노와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용기를 내서 대화할 만한 사람을 찾지도 못하고 그저 하라는 대로만 따라 하다가 몇달만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학교에서 과격하기로 소문난 ‘미식축구’ 동아리에 들어가 버렸어요. 그냥 나를 내 던지듯이…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 갈등과 불안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날까 싶어서….

잠깐의 일탈도 오래가지 않더군요. 6개월만에 CCC로 다시 돌아와보니 뭔가 휑한 것이 분위기가 작년과 같지가 않았어요. 그러든 말든 CCC에 ‘열심’히 다녔어요. 당시엔 정말 CCC에 오로지 깊이 빠져들길 바랐었죠. 그런 열심이 앞서선지 CCC에선 목마름이 채워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CCC를 이탈한 다락방 선배의 눈에 제가 포착이 된 거죠. 미식축구 동아리를 그만두고 공부와 신앙생활에만 집중하겠다는 일념으로 도서관을 드나드는데 도서관 테이블 하나를 점령하고 있던 다락방 멤버들에게 쉽게 낚여버린거죠.

그땐 참 다락방 멤버들이 매력이 있었어요. 모여서 공부하며 뜨겁게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전도하고…. 심지어는 다른 학교에까지 원정가서 기도회를 주도하는 열심을 보였었죠. 반면 약한 자는 견뎌내기 힘든 강하고도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어요. ‘오직 예수’, ‘오직 그리스도’,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 구호가 선명하고 확실했죠. 아직 ‘답이 안난’ 저에게는 이질감이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대체할 만한 뭔가가 없어서 다락방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 이 구호가 허무맹랑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끌어당겼나봐요. 교회에 가자마자 설교에 빠져들 듯 몰입했죠. 불신자 상태를 씻어내기라도 할 기세로 적고 또 적고. 그 메시지를 듣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이상하게 동기생들이 마치 마귀들 집단처럼 보여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ㅎㅎ.

듣고 배운 메시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현실인 학업과는 점점 멀어졌어요. 학업은 적당히 하는 거라는 대학선교국장의 메시지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 공부보다는 대학복음화의 사명만 불타올랐죠. 그렇다고 교회에서든 모임에서든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던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뭘 가르칠만한 인물이 못되었기 때문이겠죠? 아직 그리스도로 결론(?)을 못 내리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니까요. 얼굴만 봐도 영적상태가 어떤지 분별해 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소리높여 외치는 사람들 틈에서 입모양만 뻥끗하는 제가 어떻게 보였겠어요?

당시엔 교회에서든 소그룹모임에서든 깨달은 자와 못 깨달은 자, 누리는 자와 눌리는자로 구성원을 암암리에 구분을 지었었죠. 대학 시절 저는 졸업을 코앞어 둘 때까지 못 깨달은 자였고 눌리는 자로 분류가 되었던것 같아요. 선배든 후배든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한 수 가르치는데 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본인 스트레스 해소하듯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팀사역이라는 명목으로 메시지를 쏟아냈었죠. 그렇다고 열심을 내지 않지는 않았죠. 주일마다 교사에 성가대원 그리고 매주 주일마다 부산역 전도까지···. 미련스럽게 교회에서 다섯번의 설교를 듣고도 기숙사로 돌아가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고민과 갈등에 빠져들고 또 다시 그걸 들으러 갔죠. 수요일도 금요일도, 심지어는 방학때는 새벽에도 그것도 시원치 않아 한동안은 평일에 교회에 찾아가 기도도 했었죠….

그러다가 대학 졸업 1년을 앞두고 큰 결단을 했어요. 일년 후 세상에 나가서 헤매느니 졸업을 1년 미루고 ‘확실히’ 훈련받고 치유받아 ‘제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러고도 졸업해서 헤매기는 매한가지였는데 ㅎㅎ. 휴학 포함 5년의 대학생활은 다락방과 접착된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락방을 빼고는 설명이 안되는 대학생활. 다행히 1년의 방황기가 있어서 다락방과 관련이 없는 추억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죠. 차이가 있다면 다락방을 모르고 방황했냐 다락방 안에서 방황했냐 그것 뿐인것 같아요. 필연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적갈등이 많을 대학생들에게 마땅히 건전하고 성숙한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지는 못할망정 몇년 지나지 않아 들통날 거짓 구호들을 가르치고 대학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청춘을 소모시킨 다락방.

그러고는 다락방의 그분은 설교할 때 청년들의 현실이 마치 남의 일인 양 “목회자의 오른팔 왼팔이 되겠다는 ‘렘넌트’들이 이상하게 대학을 졸업만 하면 나를 슬슬 피하더라”는 우스갯소리를 심심찮게 했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사람들을 몰아가더니 결국 취업이라는 현실은 각자의 몫이었던 거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