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바울 저 '시대의 표적' 비판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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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1~3).
이 본문에서 제목을 뽑아서 쓴 책이 있습니다. 최바울 본부장의 ‘시대의 표적’(펴내기 출판사)입니다. 초판은 2007년 나왔지만 제가 갖고 있는 것은 2020년 개정 2판입니다. 시대의 표적 최신 버전인 셈입니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부각시키는 키워드는 ‘이 시대는 역사시대의 종말’, ‘임박한 마지막 시대’(21, 29), ‘종말론적 현상’ 등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임박한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왜 저자는 지금이 임박한 마지막 때라는 걸까요? 그 이유를 세가지로 제시합니다.
먼저는 성경적 근거입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 1948년 이스라엘 국가건설이 임박한 마지막 시대를 지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적이라고 제시합니다(52, 215, 264). 이외에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리니 그때에 끝이 오리라(52)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도 근거로 제시합니다(52, 57, 59, 238).
다음은 시대 상황입니다. 저자는 주로 첨단 과학, 세계화, 수의 체제 등을 종말론적 현상으로 봅니다. 세계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이는 ‘세계화’(31). 인공지능, 전자인간과 사이버 세계의 출현(33, 34), 사악한 천재들이 개발한 생체인식 시스템(37), 사악한 천재 과학자들이 수의 체제를 몸에 삽입하는 것(38, 41), 적그리스도 한 존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글로벌 시스템 구축(41), 사악한 과학자들의 인간복제기술(48), 9.11테러사태 이후 이삭과 이스마엘의 형제 갈등의 세계적 팽창(56)이 근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안티기독교 천재들의 이념이 전사회를 지배한 것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저자는 지적 엘리트의 3대장을 막스베버, 칼 마르크스, 프리디리히 니체로 꼽습니다(79~109까지 30여 페이지에 걸쳐 이 얘기를 합니다), 반기독교적 차가운 지성을 강조한 베버, 사회비판 의식과 투쟁을 강조한 마르크스, 긍정적 사고와 철저한 인본주의·세속주의를 강조한 니체 3인 모두가 안티기독교인이지만 이 3인이 세상을 이념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관점입니다(103). 저자는 세상을 장악한 3대장 엘리트의 사상이 초중고대학교는 물론 교회안으로까지 침투해 그리스도인 중에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이 3대장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합니다(104). 이것도 저자에게는 종말의 징조입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엘리트들이 세상을 장악하는 시대 말입니다.
저자의 책은 독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시대를 맞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앞에서 믿음으로 사는(113)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 것(104), 영원한 복음의 능력으로 살 것(162), 세계선교와 세계복음화에 관심없는 죽은 신학, 죽은 신앙이 교회를 죽어가게 하는 때(58, 59), 종교매커니즘을 넘어 세계선교에 앞장설 것(165, 244)을 강조합니다.
세상은 ‘악’으로 치닫습니다. 적그리스도의 통치체제로 치달아간다고 전제합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자는 그의 메시지는 일견 중요한 가치를 지니기도 합니다. 아마 최바울 본부장이 이끄는 인터콥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헌신한 이유도, 최바울 본부장 개인이 가진 단점보다 그것을 능가하고 넘어서는 이런 복음전도, 해외선교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입니다. 이게 시대의 표적이 가진 매력이라고 한다면 이제 문제점을 설명해야겠습니다. 문제점은 장점이 가진 것보다 조금더 무겁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문제점은 첫째, 시대의 표적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말하기 보다 시대 ‘상황’에 눈을 돌린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표적을 요구하자 ‘시대의 표적’을 모르냐고 책망하신 다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게 없다'라고 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 뭔가요? 마 12:40에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는 말씀대로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예수님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큰 표적이고 너희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시대의 표적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 자체보다 ‘그리스도’ 자체라는 것이 문맥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대의 표적’을 말씀한 다음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고 묻고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라는 대답을 칭찬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사도들은 이 요나의 표적,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자들로 살아갑니다. 행 1:22에 제자를 새로 세우면서 ‘부활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리라’고 합니다. 행 4: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행 24: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사도 바울은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뭔가요?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요나의 표적에 충실함을 보여줍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로마 정권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당시 지중해 연안의 패권국들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전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도 팍스 로마나로 설명되는 힘에 의한 세계평화와 균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설명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다녔습니다.
시대의 표적이 만일 인터콥 최바울 식의 시대의 표적이라면 팍스 로마나로 표현되는 로마의 세계 지배가 어떻고, 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지배해서 어떻게 세계 체제를 구축하고, 어떻게 하나로 뭉쳐서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할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 말씀한 바가 없습니다. 사도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시대의 표적’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사용해 그야 말로 예수님도 사도도 하지 않은 시대 상황 분석과 예측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보다 마지막 ‘때’, ‘시기’, ‘시대’, ‘징조’, ‘세상 흐름’ 분석에 집중하도록 눈을 돌리도록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관측의 결과를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임박했다’는 근거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첨언한다면 사도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말세, 마지막 시대, 종말의 때로 알았습니다. 요엘서 2:28~29의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는 말씀을 베드로는 인용하며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로 설교합니다. 자신이 살던 시대를 말세로 본 겁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메시지에서 가장 핵심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는 초림때나 재림때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점이나 마치는 지점에서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전하는 자들에게 변하지 않는, 일관된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바울은 마지막 때의 징조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마치 시대의 표적인 것처럼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자의 문제는 시대상황을 설명하면서 과학기술의 진보, 생체인식, 인공지능, 사이버 세계, 세계화 등등을 악마적, 사악한 과학자들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매우 사탄시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막스베버, 칼 마르크스, 니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세상, 과학, 문명, 이념 자체를 사탄시하는 접근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역과 사탄의 영역으로 구획화해 이원론화한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사도들의 시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며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에 꽂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역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엡 2:2)이라고 제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엡 2:5-6)며 우리의 시선을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정체성에 더욱 집중합니다.
또한 사도들은 당시의 세계화와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복음전도에 활용했지 그 기술 문명 세계화를 사탄시하며 악마적 과학자라면서 배격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서 지중해를 제패하게 된 로마는, 계속 동방으로 세력을 펴 마케도니아와 그리이스를 정벌하고 오리엔트까지 세력을 뻗쳤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2세기 중엽까지는 지중해가 로마의 호수로 되고, 도시 국가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세계화’를 이룩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서유럽, 동유럽,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언어가 ‘헬라어’ 하나로 통일됐습니다. 그때 세계가 단일 체제로 변해간다며 적그리스도의 통치체제라며 사탄시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헬라어 하나로 세계화되는 현실을 보면서 당시 성경을 히브리어가 아닌 이방 민족의 언어인 헬라어, 그것도 시장바닥에서 통용되는 가장 하층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해 당시 로마 중심의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런 태도를 보인 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바울의 언어 속에서는 문명에 대한 배타적 시각, 사탄시하는 편협함, 악마화하는 혐오가 있지 결코 현대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에 대한 포괄적 관점은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면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그는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처럼 사탄도 이 땅에서 한 사람의 몸에 들어가 역사한다는 성육신 모방 이론을 주장합니다. 사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는 게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겁니다(시대의 표적 3). 이 적그리스도가 세계문명을 주도한다는 게 최바울의 시각인데 이런 시각은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관점입니다. 오히려 이교사상이나 이원론적 사상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시대상황과 악마적 과학자는 말하지만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이 세상이 유지되고 돌아가며 첨단 과학을 통해 회복과 치유와 편리함이 극대화되며 그것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최바울 본부장에게 이 세상은 악마적 세상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최바울 본부장이 말하는 것처럼 글로벌디지털통제시스템이나 적그리스도세계체제, 생체시스템, 세계 지배 체제나 통치 체제가 본질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한 사도요한이 처음 썼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1서 2:22에서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라고 합니다. 즉, 적그리스도는 세상 통치체제, 권력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이 본질입니다. 따라서 최바울 본부장 스스로 말했지만 중립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문명에 대해 그 이면에 적그리스도 체제가 있다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2022년에 인기 베스트셀러 중 김영하 씨의 '작별인사'가 있었습니다(설명에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목은 서정적인데 소설 스토리는 SF(Science Fiction)입니다. 인공지능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인간이 대중화된 시대, 자신을 진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결국 나중에 자신이 AI가 탑재된 고성능 로봇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영생하는 방법이 뭔지 압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지능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가상 공간에 올려 놓고 노쇠한 로봇 몸체는 처분하고 다른 로봇 몸체에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것이 그들의 영생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은 또다른 로봇 몸체에 자신을 이식하는 것을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김영하 씨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교로 알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 소설가도, 비록 로봇이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삶(?)의 한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마무리합니다.
즉 구글이 영생이라고 생각하는 그 행위가 매우 반성경적이고 비성경적이지만 세상 속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필터링하는 수많은 목소리들,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그 적응 과정 중에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생각이 통합돼 간다는 것입니다. 구글이 그렇게 영생을 정의한다고, 설령 빌게이츠가 신체접속 생체 시스템을 연구해 DNA를 조작해 모든 인간을 노예화한다는 음모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들을 ‘사악한 엘리트’로 규정할 게 아니라 그 과정중에 이 세상 사람들조차 인본주의자들인 그들조차 세상 돌아가는 현상이 인도적인 일인지, 논의하며 인도적인 결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뜻대로 섭리대로 돌아가지 사탄의 계획대로 모두가 착착 진행되는, 그렇게 사탄에게도 만만한 세상이 아닙니다.
저는 비그리스도인의 소설에서 그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런데 '시대의 표적'에 나타난 저자의 시각은 이원론적 구도로 세상을 악한 사탄이 지배하는, 하나님께 저항하는 악마적 세력으로 보려는 매우 편협하고 배타적 시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설정을 통해 이 세상 자체가 적그리스도적 체제로만 흘러갈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의 참된 왕들의 왕이시며, 그가 세상의 진정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선포합니다. 그분을 바라도록 하는 그 본질적 시각이 약화된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1~3).
시대의 표적을 얘기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본질을 찾기보다 ‘시대 상황’을 설명하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튀르키예 대지진을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벗어난 자들이라는 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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