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날짜 계산’의 원조, 시토회의 사제 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 1145-1202)
세상을 유혹한 종말론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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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차 십자군 전쟁을 지휘하던, 사자왕으로 유명한 리차드는 궁금한 게 있었다. 지금 이방인들에게 찬탈당한 예루살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 10절에 나타난 이미 넘어진 다섯왕은 누구이고, 아직 살아 있는 여섯째 왕은 누구이며 마지막 하나가 누구인지였다. 그래서 시토회의 사제이자 ‘아빠스’(라틴어의 아버지, 수도회의 원장, 영적 아버지, 원로, 사부의 의미로 통용된다)로 불리던 피오레의 요아킴을 불러서 물었다. 청산유수같은 답변이 나왔다. 다섯왕은 이미 몰락한 헤롯(Herod), 네로(Nero), 콘스탄티우스아리아누스(ConstantiusArrianus), 마호메트(Mahomet) 또는 페르시아왕 코스드로에(Cosdroe), 그리고 메세모투스(MesemothusorRexBabilon), 지금 있는 왕은 살라딘이고, 마지막 왕은 로마시에서 태어나 본 모습을 숨기다가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사자왕 리차드조차 계시록을 궁금해 할 때 불렀던 사람이 당시 요한계시록의 해석자로 이름을 날린 요아킴이었다.
요아킴은 누구였을까? 그는 공증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가업을 이을 사람으로 기대를 받았었다. 궁정 교육을 받게 했고 라틴어는 물론 당시 지식인들이 익혔던 그리스어도 공부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요아킴의 젊은 시절의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1157년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변화를 체험한 소위 ‘변화산’이 위치한 타볼산에서 요아킴이 환상을 체험한다. 이를 통해 인생을 그리스도께 바치기로 헌신한 요아킴은 수도사 생활을 시작한다. 공증인 아빠는 그를 만류한다.
“아들아, 이것이 내가 너를 교육시켜 궁정에 출사시킨 대가란 말이냐?” 이에 대해 요아킴은 “아버지께서는 저를 궁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찬미하시는 하늘에 계신 왕께 봉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언제인가 제뜻을 이해하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답변한 뒤 간곡히 만류하는 부친의 손을 뿌리치고 떠나갔다.
수도사 생활을 시작한 요아킴에게는 신비체험이 많았다. 오순절날 아침 묵상을 할 때였다. 갑작스레 광명이 비치더니 부활하신 유다지파의 사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눈을 밝혀줬다고 한다. 그러면서 구약과 신약이 일치됐고 더욱이 그동안 봉인됐던 계시록이 열린 책으로 만들어지고 수수께끼가 풀려가기 시작했고 성경의 모든 비밀이 명료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가 얻었다는 깨달음 중 삼시대론이라는 게 있다. 구약은 성부시대, 신약은 성자시대, 그 후는 성령 시대라는 것이었다. 그는 성부시대는 예속과 공포, 율법의 시대, 성자 시대는 복음의 시대, 성령의 시대는 영원한 복음의 시대라고 구분했다. 성자 복음의 시대가 완성된 시대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 성령의 시대는 가장 완벽하고 거룩하고 사람들이 천사처럼 사는 시대로 여겨졌다.
또한 그에 의하면 구약은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까지이고 예수의 시대는 1260년까지이다. 그는 42라는 숫자에 집착해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42대이고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 기원 후 1260년을 성자의 시대가 끝나고 성령의 시대가 열리며 영원한 복음의 시대로 접어들어가는 날로서 예언했다. 그리고 요아킴은 성경은 영적인 사람에 의해 해석돼야 하는데 자신이 바로 그런 사명을 가진 엘리야 같은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요아킴은 자신이 주장한 영원한 복음의 시대를 보지 못하고 1202년 사망한다. 1260년을 성령의 시대가 열리는 때로 예언했으나 그것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요아킴파에게 그의 죽음은 곧 구세주의 상실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요아킴과 시대적 분위기
전쟁, 역병, 천재지변은 세상 끝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가 요아킴의 시대에도 함께 했다. 이슬람이 힘을 확산하는 시기였다. 시아파 수니파를 결속하며 위대한 지도자로 떠오른 살라딘(1137~1193)이 1187년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서방세계는 십자군 전쟁(1095~1291)을 통해 예루살렘을 되찾아야 하고 그곳을 지원하는 사람마다 모든 죄에서 속죄함을 얻고 조상들도 구원얻는다며 십자군 지원을 선동하던 시대였다.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한 예루살렘과 그곳의 회복을 명분으로 일으킨 십자군 전쟁은 요아킴의 임박한 종말 의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십자군 3차 전쟁은 중세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한 가장 거대한 전쟁으로 남았다. 십자군 전쟁은 요아킴 사후 거의 90년간 더 진행되다가 막을 내린다.
요아킴이 성령의 시대, 영원한 복음의 시대로 예언한 1260년이 오기까지 세계에는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이슬람의 중흥과 더불어 몽골의 칭기스칸(1162~1227)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대제국을 건설하며 세계의 패권자로 급부상했다. 북아프리카의 노예들로 구성된 이슬람 정예군 맘루크와 몽골군은 지금의 이스라엘과 시리아 지역에서 1260년 9월~12월까지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맘루크와의 전쟁에서 몽골이 패하며 서방 세계로의 세력 확장에 제동이 걸린다.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도 심각했다.
“기근은 일시적으로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했었다. 그런데 중세 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전역에 영구적인 현상으로 기아가 처음 발생한 것이 바로 중세였다. 영국에도, 독일에도, 프랑스에도 거리마다 온통 야윈 얼굴들뿐이었다. 동유럽 사람들은 거의 굶다시피 했다. 한곳에서 기아가 물어갔나 싶으면,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 한동안 지옥불처럼 활활 타올랐다가 본래의 지역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독일은 12세기에 길고도 끔찍한 기근을 다섯 차례나 겪었으며 13세기에는 영국에서 눈깜짝한 사이의 평화에 이어 백년에 걸친 기아와의 전쟁을 치렀다. 유럽의 삶은 병든 육체처럼 연속적으로 심한 발작을 한 뒤 회복의 기미가 보이는가 싶으면 다시 재발하곤 했다.”
요아킴이 영원한 복음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그때도 전쟁과 기근과 난리와 난리 소문, 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사라졌지만 삼시대론과 종말 계산법, 진보적 역사관,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해석법은 후대의 종말론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의 사후 특히 14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인구의 1/3을 사망하게 하고, 7천 5백만 명에서 2억명이 사망한 흑사병이 대창궐한다.
역병, 전쟁, 기근이 끊이지 않자 자신이 사는 시대를 종말의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산상수훈의 교훈들을 타협없이 실현해야 한다는 과격파 종말론자들, ‘요아킴은 세례요한, 성프란체스코는 새그리스도’라고까지 봤던 13-14세기의 일부 프란체스코주의자들, 신곡을 쓴 단테, 급진적이고 폭력적 종말론으로 농민전쟁을 일으킨 토마스 뮌처와 멜키오르 호프만, 18-19세기 복음주의 부흥운동 전통의 천년왕국론으로 이어지기까지 요아킴이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요아킴의 예언 중 하나는 인류 구원 역사의 마지막 단계를 주도할 인물이 스페인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를 충실히 실행하며 종말론의 계보를 이어간 사람이 ‘대항해의 시대’의 대명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김영한, “서양의 종말론적 예언과 현실정치”, 명형진, “구원역사와 종말이해: 피오레의 요아킴 사상을 중심으로, 정홍열, “요아킴의 성령론적 종말론 연구”, 김장진, “종교개혁자들의 사색적 종말론과 다른 칼빈의 종말론”, 노만 콘, 『천년왕국운동사』, 이형기, 『역사속의 종말론』, 하인리히 E, 야곱, 『빵의 역사』, 주경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형기, 『역사속의 종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