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통계시 시한부 종말의 원조, 이방 사제 출신 몬타너스(156년경~170년경 활동)

세상을 유혹한 종말론 2편

2024-02-14     정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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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갓아납므시레잇스요베, 유르갓아납므시레잇스요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의 페푸자라는 지역에 몬타너스라는 인물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의 방언에는 힘이 넘쳤다. 황홀경, 어떤 영적 존재가 강력하게 임재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했고 예언도 잘 해줬다. 몬타너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우의정 좌의정처럼 프리스킬라와 멕시밀라라는 두 여성이 늘 동행했다. 페푸자 인근의 교인들은 몬타너스를 찾아가 신앙적 고민을 털어 놓았다. 때로 몬타너스가, 때로는 옆에 있던 두 명의 여사제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하나님께 기도를 한 후 음성을 들었다며 예언을 해줬다.

“사랑하는 딸아(혹은 아들아). 네가 너도 다 감당 못할 짐을 지고 가고 있구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의 짐을 내게 맡기고 내 안에서 안식하고 평안을 누려라!”

그의 어법은 간접 화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말을 전달하는 듯한 직접 화법이었다. 듣는 이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경청한 듯 짜릿했을 것이다. 이 신박한 소문이 지역 교회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교회에선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사도들에게서 전달된 서신을 돌려가며 읽었을 것이다. 일부 신도들은 그렇게 서신을 돌려 읽는 교회보다 따끈따끈 막 쪄낸 찐빵같이 따끈따끈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았다는 몬타너스에 호기심이 더 생겼을 법하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몬타너스에게 몰려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아시아의 몇 동네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빼앗기게 됐다고 탄식을 뱉어낼 정도였다. 심지어 테르툴리아누스라는 교부 시대의 유명한 변증가가 207년경 몬타너스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거의 지금 최고의 변증가로 알려진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시한부 사이비 종말론에 빠졌다는 뉴스에 버금가는 일이다.

몬타너스의 말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그는 폭탄선언을 한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언한 진리의 성령 보혜사가 곧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말씀한 새예루살렘은 지구의 복잡한 곳을 피하여 페푸자라는 작은 촌락 가까운 들판에 2세기 후반에 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사람들이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며 몬타너스를 떠나려 하면 저주 의식을 심어줬다.

기존 교회에는 성령이 떠났고 자신들만이 이 시대의 진정한 교회라고 한 것이다. 몬타너스를 떠나려 하다가도 사람들은 기존 교회엔 성령이 떠났다는 그의 말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몬타너스의 페푸자로 재산을 정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며 환상을 보고 예언을 듣거나 받았으며 거룩한 삶을 위해 금식을 하는 등 철저한 금욕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토록 기다리는 재림은 이뤄지지 않고 몬타너스는 물론 프리스킬라, 맥시밀라가 차례대로 죽으면서 이들은 세력을 잃고 역사속에서 사라져간다. 그러나 그 후계자들은 간판과 이름을 바꿔 달며 역사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몬타너스의 과거 이력은 뭐였을까? 그는 이방신 ‘큐렐’(키빌레라고도 한다)의 사제 출신이었다. 교회로 들어왔지만 이방신을 섬길 때 가졌던 접신, 황홀경, 환상, 점치듯 예언하는 관습을 그대로 기독교안으로 끌고 들어왔던 것이다. 문제는 이방신을 섬기던 현상이 교회안에서도 통했다는 것이다. 프리스길라, 멕시밀라 또한 황홀경과 접신 현상에서 예언을 하며 구약의 미리암, 드보라를 잇는 참예언자로 행세했다. 이 여인들은 귀족 가문출신으로서 성령의 선물을 받고 나서 남편을 버리고 출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 종말이 온다며 이 둘은 돈과 선물을 즐겨 받았고 머리를 염색했으며 눈화장을 짙게 하고 사치를 사랑했고 이윤을 목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이자 놀음을 했다고 한다.

몬타너스가 섬겼던 큐렐(혹은 키빌레, Κυβέλη, Cybele)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이름의 뜻은 '높은 산의 어머니'. 아나톨리아 중부 프리기아 지방에서 숭배받던 지모신이자 죽음과 재생의 여신으로, 프리기아에서 숭배받던 신격들 중 후대에까지 명확하게 이름을 남긴 유일한 신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아우구스투스 등의 지원에 힘입어 키벨레에 대한 숭배가 크게 확산되었다. 로마의 시인 카탈루스가 지은 시 중에 이 키벨레의 교단에 들어가고 싶어하던 그리스인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교단에 들어가면서 입단 의식으로 무슨 최면에 취해서 난동을 부리며 놀다가 돌로 자신의 성기를 찍어버렸다는 내용이다. 히에로니무스는 자신의 『서간집』에서 몬타너스를 ‘거세한 반인’이었다고 편지에 적고 있다. 프리기아 지방의 큐렐 신을 섬기는 사제들은 모두 거세를 했다. 큐렐 신을 섬기는 제의 형식은 황홀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몬타너스는 이 방식을 버리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몬타너스와 시대배경?

몬타너스가 활동하던 150년~170년 경은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집권 시기였다. 그는 철인황제(哲人皇帝)로 불렸다. ‘명상록’을 후대에 남기며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로도 분류된다. 선정을 베푼 현제로서 동시대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철인황제의 집권시에도 제국은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역병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은 천연두 홍역으로 추측되는 역병이 돌며 400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메소포타미아에 주둔하던 파르티아 군대와도 161년부터 165년, 4년 동안 격전을 치러야 했다. 파르티아 전쟁을 위해 군사력이 동방에 집중되던 중 대규모의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을 침략해 왔다. 이를 1차 마르코만니전쟁(166-180년)이라고 한다. 그들은 잔인한 약탈을 하며 이탈리아 북부까지 쳐들어왔다. 161년 가을 혹은 162년 봄에 테베레강이 범람하여 제방을 덮쳤고, 로마의 대부분을 침수시켰다.

제국엔 홍수, 기근, 야만족의 침입으로 혼란이 가중됐다. 특히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적 가난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중요한 행사를 치를 때에는 이방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드렸다. 통치 시기에 전쟁, 홍수, 전염병 등 여러 재해가 뒤따르자 그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신들이 노하여 이런 재앙이 로마에 임했다고 믿고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였고, 심한 고문을 가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때 몬타너스의 종말론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몬타너스 이후 1000년여 간 종말론으로 세상을 공포에 빠지게 한 인물, 사건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윌리엄 번스타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공으로 돌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의 남은 나날을 계산하고 준비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며 그것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해석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중세시대 종말론자를 몇몇만 정리하고 다음편으로 넘어가보자.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주교는 인류가 숨쉬고 기도할 것을 허락 받은 날은 799년에서 806년 사이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989년에는 헬리혜성이 하늘에 나타나 종말이 시작된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992년에는 세상 종말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 회자됐다. 수도사 라울 글라베르는 1000년,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다시 1033년을 종말의 때로 계산하기도 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종말론에 철학과 신학, 신비적 체험을 결합시키고 1260년,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예언한 매우 중요한 인물, 피오레의 요아킴이 등장한다.

참고문헌
임경근, 『109편의 스토리를 따라 세계교회사 걷기』, 라이온사 편, 『교회사핸드북』, John William Charles Wand, 『교회사』 T.D. Barnes, Tertullian: A Historical and Literary Study, Eugen Weber, 『세계사에 나타난 종말의 역사』, Norman Rufus Colin Cohn, 『천년왕국운동사』,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W.M. Green, “Glossolalia in the Second Century”, Gregory S. Aldrete, Floods of the Tiber in ancient Rome, William Bernstein, 『군중의 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