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백보좌 심판과 어린양의 생명책

2022-11-16     기독교포털뉴스

요한계시록 20:11 이하를 보면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일명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께서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큰 자나 작은 자나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니 그 엄중한 심판대에서 과연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분들이 있다. 성경을 보면서 명확하게 백보좌 심판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생명책은 도대체 무엇인지 성경을 찾아가며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요한계시록과 종말/ 재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때 성도들과 백보좌 심판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이 기사는 유료기사로서 가장 하단에 피피티 다운로드링크가 있습니다). 

1. 백보좌 심판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크고 흰 보좌를 백보좌라고도 칭한다. 그 백보좌 심판, 마지막 최후 심판은 누구를 대상으로 할까?

가) 죽은 자들이 그 대상이다(11).

죽은 자들은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죽은 자’들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정확히 해보자. 20:5를 보면 성도들은 산 자들로, 그 외의 나머지를 ‘죽은 자’들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20장에서 목베임을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들은 죽었음에도 죽은 자라 하지 않고 그 외의 나머지를 ‘죽은 자’들로 표현한다. 따라서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을 자들은 주안에서 죽은 자들(14:13)을 뜻하지 않는다.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오히려 그 죽음이 ‘복되다’고 말한다. 심판대 앞에 서는데 무슨 복이 있을까? 여기서 죽은 자들은 나머지 죽은 자들이다.

나) 죽은 자들은 하늘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들은 바다, 사망과 음부로부터 나온다(13).

이 죽은 자들은 반복하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안의 사람은 이미 보좌에 들어 올려진 존재들이다. 그 때문에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가는 ‘죽은 자’들을 성경은 바다, 사망, 음부가 내준다고 표현한다(20:13). 반면 그리스도인들, 특히 십사만사천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총수는 바다, 사망, 음부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시온산 곧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좌에 있다고 말씀한다(계 14:1~3).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네 생물과 장로들과 함께 새노래를 부른다.

다)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이 있다(계 20:4).

백보좌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서 심판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보좌 앞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증언하다가 목베임을 당하고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들이다. 이들을 그리스도로 인해 핍박받고 신앙을 지킨 모든 신앙인들로 확장해서 적용한다면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보좌에서 함께 심판하는 권세를 나눠 가지는 자들이다. 

라)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데 이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자 둘째 사망에 대한 말씀이다(13~15).

둘째 사망은 성도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20:6). 백보좌 심판은 둘째 사망을 받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지 첫째 부활한 성도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첫째 부활은 계 20:4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순교한 사람들, 즉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을 의미하며 그들은 확장하면 십사만사천, 즉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행위대로 심판 받는 자들이 아니라 생명책에 있는 자들로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위에 대한 모든 심판을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지옥과 같은 형벌을 대신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2) 생명책의 소유주는 누구인가? 

심판의 여부가 내 행위로 결정이 된다면 생명책의 소유주는 ‘나’여야 한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가 불못에 던져지고 반대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행위심판(20:13)에서 면책(20:15)이 되는데 그 생명책의 소유주는 내가 아닌 어린양이시다(계 13:8). 그것도 그냥 어린양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시다. 

가) 어린양은 왜 죽으셨나?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기 위해서다(계 5:9). 소유의 이전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기 위해서다(1:5).

나) 누구를 위해 죽으셨나?

선한 목자로서 당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요 10:14-15).

다) 어린양의 죽으심으로 이뤄진 일은 무엇인가?

영원한 기업을 약속으로 받게 됐다(히 9:15), 우리의 거룩함이다(히 10:10-18).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다(히 10:19-25).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읽을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구나 그것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은 분노가 충만하시고, 이 세상은 마치 핵전쟁이 날 것처럼 박살날 듯한 묘사로 가득하다. 피가 튀고, 지진이 나고, 전쟁이 터지고 하늘에서는 사람 머리 만한 우박이 떨어질 거 같다. 그리고 최후에는 백보좌 심판에서 공포와 두려움의 심판대를 통과할 것같다. 그게 요한계시록의 이미지다. 지구 파괴의 시나리오는 결국 온 세상 사람들이 백보좌 심판대에 서서 심판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진다. 이런 시나리오 앞에서 누가 마음의 평안을 얻겠는가? 그러나 19장 20장에서 보인 계시록의 상징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권세와 짐승 사탄의 영원한 멸망을 그린다. 그리고 어린양의 보혈로 구원받은 사람은 첫째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자들로 묘사된다. 백보좌 심판은 사망과 음부를 불못에 던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이미 앉아 둘째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돼 영원히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대열에 서게 된다. 백보좌 심판대는 어린양의 피로 성도들이 구원얻었다는 것이 가장 기쁜 소식임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하나님께 할렐루야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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