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문의 기독교근본원리 연재 4 - 국역(35-40)

후진적 신학을 넘어 내세영생과 금세 구원을 알릴 신령 운동의 복귀를 알리는 것이 근본 의의

2022-01-04     정윤석 기자

이 내용은 건전한 정통 교리가 아니라 한국의 이단 사이비를 태동하고 활동하도록 이론적 토양을 쌓아준 이단 교리이다. 이단 연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연재를 보면서 현재 이단사이비 교리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되길 간절히 바란다. 서론부터 시작해 846페이지에 이르는 기독교근본원리의 국역 연재를 이제 시작한다. 국역은 황의종 목사(부산 이단상담소)가 진행했다. 혹시라도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당사자가 나타난다면 자격 여부를 따져 꼭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겠다. 이 글은 유료회원 전용이라는 점도 양해부탁드린다. [편집자주]

연재 내용 기독교근본원리 원본 35~40페이지. 아래 3가지 사항은 편집자가 기독교 근본원리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기독교의 신령 문제는 구원의 교리에 집중됐으나 실체험적 지식에 있어서는 허무한 지경이다.

2. 신학이 인지적 학문으로만 흘러 후진성을 갖게 됐고 창조적 발전은 없어졌고 보수적 교리에 못 박음 당한 게 오늘날 현실이다.

3. 내세영생의 영혼구원을 말하던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금세구원을 알릴 재선교적 운동과 신령운동의 복귀운동을 알리는 것이 기독교 근본원리의 의의이다. 


원본 p35 × × × ×

여기에서 이제 본서는 그 사명적 의의와 동기문제로부터 그 연역적 사실까지를 말하기에 위선 기독교의 재선교적으로 일어나야 할 본격적 신령운동에 대한 일반적 이해관념으로부터 그 기준인식을 먼저 서론적으로 말하고 보면 비록 기독교의 신령문제는 이미 성서상 구원의 교리문제로 지명되고 있었던 것이나 그 일의 실체험적 신령지식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차이된 허무성을 느끼는 지경인 것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물론 이 문제뿐 아니라 신앙의 신령운동은 언제나 신학적(진리) 발전향상과 더불어 일어나는 까닭에

원본 p36

신앙과 신학의 양각관계로부터 그 신학적 후진성은 오늘날에 와서 인지적 학문으로만 흐르는데서 마침내 기독교의 종교생명이 되는 성신의 신령운동을 잃었고 따라서 아무런 창조적 발전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니 언제나 신학적 발달향상은 신령은총의 체험과 더불어 보게 되는 때문이요. 또한 본격적 신령운동은 완전한 신학(진리)과 더불어 지속되는 까닭에 신령운동의 신학적 무식은 그 은총의 불감당을 의미하는 정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령운동에 있어서 이에 대한 일반적 인식문제는 기독교 신앙술어가 되는 ‘은혜’라는 어회(語懷)로 말해왔던 그 내용의 막연성이나 무구체함은 제2로 하고도 은혜의 기준인식에 있어서 이에 양각되는 진리의 신학적 신령지식이 너무나도 유치한 초보적 지식으로 신령운동을 논하며 또는 주도적 역할을 하는데서 마침내 신령은총의 결과 아닌 인간적 일로 종말을 보게 되는 일도 허다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은혜’라는 신령 운동의 기준시하게 되는 사실은 이를 가르쳐 교회적으로는 ‘부흥’으로 말해오는 데는 그 어떤 대중적 여구 일시적 감격감정의 그 무엇으로 아는가 하면 또한 그 어떤 신우의 은총문제로 신령신비한 순간적 체험문제를 비롯하여 신비적 기사 이적과 같은 사실의 경험문제와 더불어 그 일의 호기심적 욕망을 기독교의 신앙본질 또는 신령운동의 전통시 하게 되는 일도 많이 볼 수 있는 일들인 것이다. 그러면 본격적 신령운동에 있어서 그와 같은 사실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그러므로 그 일의 기준문제를 어떻게 가질 신학적 해명을 말하면 그 일만을 표준시하여 논할 일이 아니라 기독교 신령문제를 근본적으로 말해야 할 문제가 되어 기독교의 근본문제로부터 원리적 해명을 가져야할 성신신학적인 문제였던

 

원본 p37

까닭에 여기서는 다만 그 서해적문제만이 논할 것이요. 본서내용으로 말할 이와 같은 신령문제의 근본적 연구없이 그 어떤 지엽적 과도문제를 두고 이 문제를 논하는 데서 그리스도인은 자타의 신앙생명을 해케 되는 영계에 무한한 혼란과 참사를 보게 되는 일들이 오늘의 본서를 이루게 한 하나의 사명적 동기와도 같이 되어 일찍이 성신문제에 있어서는 ‘성신신학’이란 서적을 발간했던 것이나 본서에는 좀더 기독교 근본문제로부터 전반적 사실을 들어 해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령운동의 기본문제는 서해적으로 논하기에도 이는 다분한 형이상학적 체험문제로 말미암아 극히 난한 신비적 사실이 되었던 것이나 여기서는 다만 사람으로 가질 바 그 일에 대한 인식문제로부터 주도적 필요문제만을 논하고 보면 이상 논조에서 계속되는 문제인 신령운동의 초기적 현상문제와 또한 그 본격적 결과문제를 두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은혜’론에 있어서 그와 같은 신비적 체험문제나 감정적 흥분(興奮)문제를 신령운동의 기준인식을 거기에만 두는 것은 극히 유치하고도 마침내 그것만으로는 환멸을 느낄 문제임을 알아야 했고 또한 그같은 일을 전적 부인할 수 없는 신령운동의 초기적 현상으로 딿게 되는 필연적 사실임도 알아야 했던 것이니 본격적 신령운동은 신앙의 어떠한 기간에나 또는 그 어떤 신비적 체험조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그 운동의 초창기가 있어서 거기에서 영생을 두고 나아가는 원칙적 신앙노정에 수양과정이 있다는 것과 그 은사의 성과를 위하여 나아가야 할 본격적 신앙수업은 그제부터 시작되는 그 일이 중하고 난한 사실임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초창기의 신비적 체험문제는 그 어떤 기사 이적이나 감흥문제뿐만 아니라 천태만종의 체험문

원본 p38

제가 있어서 혹은 방언, 예언, 기사, 묵시, 몽시, 진동, 열동, 입류, 입신 등등의 신비신령한 영험을 보게 되는 것이나 이는 어느 것도 인간의 소득권적 문제가 아니라 다만 저의 겪은 신앙내용으로 깊이 간직할 것뿐이오 그것만이 기독교 신앙본질로나 신령운동의 전통시할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신의 은사이면서 그 일은 인간으로 처음 저가 믿던 신을 영험하는 초창기의 현상인 것이니 그로부터 본격적 신령은총의 성과문제만은 오직 기독교의 신앙본질을 바로 알고 가져가야 할 문제에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간은 그 모두가 처음 겪는 창조적 기이사가 되는데서 부작용적 신앙괴태를 보기도 하는 이을 종교 생활의 전통시 하는데서 불원에 스스로 느낄 환위로 말미암아 신앙중폐를 보이는 일과 그를 보고 따르던 후진들은 기독교 신앙 세계를 그것만으로 아는 데서 실망을 느끼게 되며 또한 그러한 체험에 무경험한자로 하여금은 마침내 그것으로 신령은총의 근원마저 부인케 되는 인간판단에 긍정적 자료가 되어주고마는 이와 같은 신앙의 원인 문제는 지금까지 지도자 없는 영계가 된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초기현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기독교신령운동은 마침내 보수적 교리 문제에 못(釘) 박음을 당하였고 그 신학적 후진성은 시대적 유물과도 같이 발전 없는 윤곽에서 정지되고만 거기에서 바야흐로 신앙(신령운동)은 더 나아갈 길을 몰랐고 신학(진리)은 인지적 학문으로 흐르고만 인위적 종교운동! 이것이 오늘날의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한 일 만은 알아야 할 것이 기독교 신령 운동은 기독교 종교 생명과 같이하는 인격적 신의 은사요 구원 역사가 되어 타락의 인간근성으로 말미암아 죄에 매인 무능력한 인간으로 하여금 이제 성신의

원본 p39

신령은총으로 다시금 재창조의 인간 완성을 보게 하기 위하여 입히시는 그 은사의 목적이요 역사였으니 그 어떤 신비적 체험도 이적적능도 그는 오-직 수천 년 타락세계에서 헤매던 인간 영이 그와 같은 신의 부르심의 산소리를 처음으로 감각하는 영험의 순간이요 그 영험의 기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신비적 체험 그것이 귀한 것보다 거기에서 그 신의 소리를 감각하는 것이 귀한 ‘인간완성’의 그 소리요 길이니 그 은사의 다만 어떠한 모양으로도 그 신의 소리를 감각 못하는 그 일만이 비참할 뿐 그 소리의 응한 그 신앙은 오직 자기완성의 길을 가야 했던 것이니 보라! 그리스도 당시 예루살렘 거리마다 신비적 기이사로 당신을 알리시려 그 얼마나 은사를 베푸셨던가? 그러나 그를 바로 알지 못한 그들은 예수를 팔고 멸망에 이르렀건만! 그들의 비소꺼리였던 사마리아 여인은 그들과 같은 아무런 이적도 신비도 보지 못했건만 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인생’(罪)을 알았고 또한 ‘종교’(하나님)를 바로 깨달은 그 여인은 그리스도의 최대 만족하신 구원의 결과가 되지 않았던가? 이것이 인간 완성의 길이요 신령운동의 본격적 결과였으니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 그 구속의 성과를 무책임한 구원의 방임신앙 그것으로 인간을 구할 바 못 되는 그로부터 임마누엘의 신령은총으로 인간 완성의 재창조를 보아야 할 거기 영생이 있고 그 구원의 효과는 내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세 인간의 절실한 구원이요 그 효과의 세계가 될 인간문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 완성’의 길은 인위적인 종교수양으로부터 인간이 그 죄를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과 조물주와의 그 천륜관계를 해결(회복恢復)하는 신령은총에 있었으니 이와같은 구원의

원본 p40

길을 베푸신 그 구원의 효과적 최후 목적은 영혼구원과 내세영생에만 있지 않고 인간구원의 금세로부터 그 세계의 이루움을 목적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는 기독교 구원도리의 근본적 문제를 말하는 사실이 되어 내세영생의 영혼구원을 말하던 기독교 선교역사는 이제 인간완성의 금세구원을 알릴 재선교적 운동과 더불어 신령운동의 임마누엘적 역사가 일어나야 할 이것이 곧 창조의 신으로부터 실낙원의 복귀운동을 하고 있는 기독교 근본원리의 의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모-든 문제는 기독교의 근본원리로부터 다시 밝혀져야 했고 완전히 밝혀져야 했던 것이 거기만이 본격적 신령운동의 원칙적 노정이 있고 기독교 신앙인격의 최후적 완성 세계를 가르치는 원인 원리로 말미암아 만인종교의 도(道)다운 영들의 시대적 요청이나 기독교의 재선교적 사명문제에 영원한 해결과 지침의 길이 되어 줄 이와 같은 기독교의 근본원리가 지금까지 신학적으로 미해결되고 있는 많은 문제로 말미암아 그것이 곧 삼령들의 혼란과 침체를 가져온 원인문제를 말하는 신학적 후진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서 기독교는 먼저는 삼위신의 시대적 역사성을 의미한 이 시대적 섭리에 호응하여 기독교 근본원리의 재천명을 의미하는 재선교적 신령운동이 신우의 은혜로서 일어나야 하겠고 그러므로 신령운동의 본격적 결과문제가 무엇인 것을 기독교 근본원리로부터 기독교의 종교생명과 그 구원도리의 최후 이상을 밝혀야 할 신학적 발전과정을 가져야 했던 이것만이 이 시대의 사명문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