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의 ‘기독교 성례론 비판’에 대한 반증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중심으로-

2021-12-27     정윤석 기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지도 박상봉 교수) 과제로 제출한 소논문입니다.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각주를 달지 않았습니다. 각주가 달린 글을 보기 원하시는 유료회원은 가장 하단에 다운로드 기능을 활용하시면 됩니다(유료회원 전용).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이만희의 성만찬 이해 2. 이만희의 세례 이해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성례와 신천지 성례론 비판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성례 2) 신천지의 기독교 성례론 비판에 대한 반증 Ⅲ. 결론

Ⅰ. 서론
교회의 외적 표지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선포, 둘째, 성례전의 올바른 실행, 두 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선포와 더불어 성례전은 초대교회로부터 2천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기까지 퀘이커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교파들이 실행해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신천지측 또한 모든 보편교회가 성실하게 준행하는 성례전을 준행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고 폄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이 성례를 준행하지 않는 이유는 비유 풀이와 계시록의 실상 풀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천지에 따르면 ‘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에서 ‘물’은 비유 풀이를 하면 ‘말씀’이다. 따라서 참된 세례는 계시록 성취의 시대에 나타나는 약속의 목자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증거하는 것이 된다. 이긴 자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이 곧 어린양의 피로 승리하는 것(계 12:11)이라며 진정한 성만찬도 이긴 자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천지는 기독교에서 준행하는 성례를 하지 않는다. 과연 신천지의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있을까? 본고에서는 먼저 신천지가 기독교의 성례를 왜 비판하고 왜 부정하는지 그들의 주장을 나열하고 그들의 핵심 주장을 3가지로 요약할 것이다. 그 다음 장로교의 대표적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웨민)가 말하는 성례전을 설명하고 웨민에서 근거로 제시한 성경구절을 기준으로 신천지측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신천지 신도들의 성례를 폄하하고 조롱하는 듯한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 드러내고 성례의 바른 의미를 제시할 것이다. 본고에서 붉은 벽돌색 문단은 이만희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Ⅱ. 본론
신천지 성경해석의 본질은 극단적인 영육이원론이라 할 수 있다. 이만희에게 성경의 문자, 또는 문장이 갖는 의미는 ‘육’에 해당한다. 성경의 문자 이면에 영적인 의미를 찾아야 참된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이 이만희가 성경을 대하는 기본 자세이다. 문자는 육, 내면의 뜻은 영인 셈이다. 영이란 언어, 참된 진리라는 말 자체는 좋다. 그러나 그들의 성경 해석의 초점은 이만희를 믿게 하는데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악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만희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그것이 과학적, 상식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면서 내밀한 영적 뜻을 찾아내야 한다고 유도한다.

창세기 1장을 표면적인 문자에 매여 육적인 창조라고 고집하는 주장은 과학적, 논리적, 현실적, 상식적으로 모순투성이며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하나님의 대한 불신과 그릇된 성경관을 갖게 되는 요인만 될 뿐이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의 모든 내용이 일관된 시각과 동일한 내용에서 풀어지고 답을 구해야만 비로소 성서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으며 또 그 뜻대로 행할 때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에 감추인 속뜻을 외면한 채 껍데기만을 고집하고 가르친다면 이는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훼방하며 망치는 결과가 될 뿐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해를 빙자하여 사람을 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 뜻을 모르고 문자에 매여 자연계의 태양만을 생각하고 고집한다면 도리어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자만 될 것이다.

창세기 1장을 해설하며 나온 말이지만 이만희의 이런 성경관은 성경 전체로 확장된다. 이만희는 성경의 문자 내면에 감춰진 속뜻을 파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훼방하고 망친다고 말한다. 이는 성례에까지 적용된다. 보편교회는 성례의 제정자를 하나님으로 본다. 성례는 성도가 은혜언약 안에 있다는 거룩한 표이자 인침이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 이만희의 성례에 대한 이해를 살펴본 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기초로 반증하겠다.

1. 이만희의 성만찬 이해
이만희는 교회의 성만찬이 형식에 치우쳤으며 하나님의 생명과 무관하다고 지적한다. 이만희는 “기독교회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새언약을 떡과 포도주로 기념하고 있다”며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념 행사일 뿐 참된 유월절을 지키는 게 아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참된 성찬은 무엇일까? 그는 “예수님께서 피 흘려 세우신 새언약 곧 신약 성경의 말씀을 깨달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Saussure는 기표를 물리적인 지지물, 즉 외관, 기의는 기표가 나타내는 개념, 즉 기호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기표라고 할 수 있다. 떡은 기의라고 할 수 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을, 포도주는 곧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만희는 이런 기표와 기의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떡과 포도주(기표)가 예수님의 살과 피(기의)를 상징하고 이를 기념하는 기독교회의 행위를 ‘형식적인 것’이라고 비난한다. 반면 기표, 즉 외적 형식이 전혀 없더라도 예수님이 세우신 새언약 곧 신약성경의 말씀을 깨달아 지킨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참된 의미의 성만찬이라고 주장한다. 이만희의 주장을 조금 더 살펴보자. 그는 요한복음 6장 53절을 해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말하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영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곧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기표를 떡과 포도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서 예수님의 살과 피는 오로지 영적인 의미로만 존재한다. 기표는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오히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지키는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 주장의 노림수는 이만희의 가르침만이 진리의 말씀이니 그 말씀을 들어야 생명을 얻는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신천지 강사도 동일하게 가르친다.

예수님의 피에 효력이 나타나 어린 양의 피와 살을 먹을 수 있을 때는 초림 때도 아니요, 기념했던 때도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계시록이 성취되는 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계시록 12장 9절에서 11절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9절을 보면 배도자를 멸망시킨 멸망자 용이 하늘 장막에서 내어 쫓기게 되고 11절에서는 이긴 자와 함께한 형제들이 용과 싸워 이기게 되니 이때에 사용한 무기가 바로 어린 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데 어린 양의 피는 배도자도 아니고 멸망자도 아니고 오늘날 구원받은 백성인 이긴 자와 함께한 형제들에게 역사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성만찬의 참 의미는 2천년전의 그리스도의 피와 그분의 영적 임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로지 이긴 자와의 관계속에서만 의미를 둔다. 특히 이긴 자는 계시록 성취의 때에 나타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은 물론 진정한 의미의 어린양의 피와 살을 먹는 행위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신천지의 참된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참된 피와 살은 예수를 기념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멸망자를 이기고 나타난 ‘이긴 자’를 통해서만 효력이 발생하고 체험될 수 있다는 게 신천지이다. 그들의 세례 이해는 또 어떨까?

2. 이만희의 세례 이해

이만희의 세례관도 성만찬 이해와 큰 차이가 없다. 떡과 포도주가 아닌, 말씀을 듣고 깨닫고 지키는 것이 참된 성만찬인 것처럼 주장했던 이만희는 세례 또한 물이라는 기표 없이 말씀을 듣고 증거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의 제자들에게 모두 주셨고 이 말씀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서 증거하였다. 즉 세례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베풀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믿게 된다. 이것이 인 맞는 행위이다. 오늘날에도 예수로부터 말씀(책)을 받아 먹는 자(요한)가 다시 그의 제자들에게 일러주고 그의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증거할 때 이를 듣고 그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인을 맞는 것이다.

세례 또한 말씀을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증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이유는 신천지측의 ‘비유풀이’에서 비롯한다. 즉, 물은 곧 실제 물이 아니라 ‘말씀’이라고 보는 그들의 관점 때문이다. 그래서 물로 세례를 줄 당위성을 없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깐 그들의 ‘물’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자.

신천지의 역사를 담은 신천지 발전사는 신천지 도서목록 1호로 신탄을 올려 놓았다. 신탄은 창세기 1장 6절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라는 구절의 ‘물’을 해설하면서 실제 물이라는 의미의 용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실제의 사물을 빙자하여 고도의 영적 의미를 내포하여 교훈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일 5:7-8, 암 8:11을 근거로 제시하며 “물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물을 키우는 물로 상징하였음을 명심해주기 바란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결국 물로 세례를 준다는 의미 또한 실제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 세상에 증거하는 행위라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물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신천지의 주장을 유심히 봐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보편교회가 이해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만희가 말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2천년 동안 봉함됐다가 계시록 시대인 마지막 때에 이긴 자를 통해 비밀이 풀어진 성경해석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천지의 구원자는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가 아니라 이만희이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이긴 자, 또다른 보혜사, 약속의 목자를 모두 이만희라며 믿고 따르고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사들도 이긴 자와 함께 하시며 영생과 구원 천국과 진리도 이긴 자를 통해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영생에 소망을 둔 성도는 계시록에서 이긴 자를 찾아야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이름과 더불어, 니골라당과 싸워 이긴 자 위에 기록해주시고(계 3:12) 그로 하여금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이긴 자를 찾는 것은 새예루살렘 성을 찾는 열쇠임을 알아야 한다.

이만희에게 성경은 예수를 증거하는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구원의 열쇠이자 구원자라는 이긴 자를 찾기 위한 도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약 39권이 예수님 한분을 증거한 책이라면(요 5:39) 신약 27권은 이기는 자 한 사람을 알리는 말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상고하여도 이기는 자를 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기는 자가 중심이 되어 이룬 교회는 만국이 가서 소성받고 주께 경배하며 영광을 돌릴 증거장막성전이며 어린양의 혼인 잔칫집이다

이기는 자가 중심이 되어 이룬 교회가 증거장막성전이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의 총회장이 이만희이다. 명시적으로 이기는 자, 이긴 자는 이만희다라고 말하지 않을 뿐 이들의 성경공부의 결론은 ‘구원자=이긴 자=이만희’이다. 따라서 이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이만희를 통해 해석된 말씀을 의미하지 보편교회와 성도들이 알고 믿고 받아들이는 의미에서의 하나님 진리의 말씀이 아니다.

이들은 니고데모가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예수께 질문했을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의 말씀을 ‘물세례·성령세례’라고 해석한 목회자의 설교를 비판하면서 성경과 맞지 않는 거짓말이라고 비난한다. 참된 뜻은 “물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씨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라며 신천지의 약속의 목자, 그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시니 그가 증거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나는 게 거듭남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물 세례가 ‘물’을 의미하면 ‘불’ 세례는 불로 줘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불 세례가 불로 주는 게 아니듯 물 세례도 물로 주는 게 아니라고 유도해 간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천지가 생각하는 참된 성만찬과 세례는 물·떡·포도주라는 외형적 형식이 전혀 필요치 않다. 이만희의 성경해석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증언하는 신도가 참된 성례에 참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긴 자라는 이만희와의 관계이다. 그를 알고 믿고 따르면 구원이고, 그를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를 죽인 바리새인·서기관·대제사장에 불과하다. 물·떡·포도주는 모두 이긴 자라는 마지막 때의 구원자라는 이만희와의 관계로 갈음할 수 있는 것이지 실제적 행위를 하고 안 하고는 이들에게 완전히 무의미하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이만희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이만희의 선배격 재림주들도 성례론과 관련 이만희와 유사한 주장을 이미 해왔다. 이만희와 동일하게 박태선 전도관 출신으로 알려진 김풍일은 생명나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세례들은(물세례, 성령의 세례) 말씀의 초보, 도의 초보에 지나지 않으니 장성한 자는 이 세례를 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기 때문이다. 또한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렸으니 죄를 씻는 세례 의식이 필요없는 것이다.

이만희와 동일하게 장막성전 출신으로 유명한 오평호도 세례를 부정할 뿐 아니라 죄악시한다.

물세례의 목적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을 찾는데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다면 그 때부터 물세례는 끝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세례를 주고 있는 교회들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곳에 없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물세례를 주면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에 무슨 하나님의 구원이 있겠습니까?

이만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봉함하고 비밀을 풀어줬다지만 사실상 이만희의 주장은 박태선 계열이나 장막성전 계열 선배 재림주들이 이미 써먹었던 주장의 재활용이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살펴본 이만희의 성례전을 세가지로 요약해 봤다.

1) 기독교의 성례는 형식에 치우쳐 육에 머물러 있다.

2) 참된 의미의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지키고 증거하는 것이다.

3) 물·떡·포도주 등 형식에 얽매이는 것은 육이고 이긴 자, 약속의 목자를 아는 것이 영이요 생명이다.

위에 요약한 이만희의 주장 3가지는 어떤 점에서 문제일까? 한국 장로교가 거의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신앙고백서가 있다. 웨민이다. 먼저 웨민이 말하는 성례론을 짧고 간결하게 소개한 후 이를 기준·근거로 신천지측 성례론을 비판하겠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성례와 신천지 성례론 비판

웨민은 1647년 영국에서 작성돼 스코틀랜드장로교회는 물론 미국과 한국의 장로교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웨민은 철저하게 성경을 근거로 작성됐다. 웨민 27장에는 성례론 일반, 28장에는 세례, 29장에는 성례를 다룬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성례

가. 성례 일반(27장)

웨민은 성례를 첫째, 은혜언약에 대한 거룩한 표와 인치심이다. 둘째,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셨다. 셋째,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혜택, 유익을 성도가 누리며 받을 수 있음을 확증한다. 넷째, 교회에 속한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을 눈에 보이게 구분한다. 다섯째,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엄숙하게 참예하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나. 세례(28장)

28장은 세례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성례로서 준행돼야 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웨민은 어디에서도 사람이 세례를 통해 중생한다고 진술하지 않는다. 이는 웨민이 개혁파의 견해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신천지는 장로교의 대표적 견해를 근거로 세례관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1.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성례로서 세례받는 대상을 유형교회에 엄숙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은혜언약과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된 것과 중생과 죄사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생명 가운데로 행하기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와 인침이 된다. 이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명하신 것이기에 세상 끝날까지 그분의 교회 안에서 계속 집행되어야 한다.

웨민은 세례 의식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커다란 죄가 된다고 엄하게 경고한다. 그러나 웨민은 세례의식이 은혜와 구원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속한 것은 아니라며 세례를 안 받았다고 그 사람이 중생할 수 없다거나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아니라고 정리한다.

5. 이 의식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커다란 죄가 된다. 하지만 세례 의식에 은혜와 구원이 불가분하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세례를 안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생할 수 없다거나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

다. 성찬(29장)

제정자는 그리스도이시다. 성찬의 준행 기간은 세상 끝날까지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으심, 그분의 희생 제사를 영원토록 기념하기 위해서다. 참 신자들은 주의 만찬으로 그분의 희생이 주는 모든 은혜들을 영적으로 공급받고 성장하며 그분과의 교통과 그분의 신비한 몸의 지체로서 보증을 받게 하신다(1-2항 요약).

웨민이 말하는 성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례의 제정자는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끝날까지 이를 준행해야 한다. 둘째, 성례는 구원과 중생을 가져다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중생했음을 표하거나 인치고 세상사람들과 구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반드시 참예해야 한다. 셋째, 성례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오는 모든 혜택을 성도가 영적으로 누리게 한다.

2) 신천지의 기독교 성례론 비판에 대한 반증

신천지의 성례론을 다시 정리해 보겠다. 그들은 물·떡·포도주라는 어떤 형식도 취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계시록 성취의 때 약속의 목자이자 이긴 자라는 이만희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을 알고 믿고 증거하면 설령 외형적 기표가 없다 해도 참 성례에 참예하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기독교회의 성례론을 형식에 치우쳐 육에 머물러 있고 초보적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반증해보겠다. 신천지에 대한 반증 성경구절은 웨민의 성례론에서 참고했다.

가. 세례에 대한 반증

①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물’로 세례를 받으셨다(마 3:15-16)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세례를 주는 요한을 향해 ‘초보적이다, 육적이다’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요단‘강’으로 가서 친히 세례를 받으신다. 따라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모범 그대로 주고 받으며 지켜야 한다. ‘물’이라는 외적 형식도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이걸 그대로 따라한다고 ‘형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그리스도께서도 ‘물’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세례를 인정하고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물이 말씀’이라며 외형적 형식을 모두 제거해야 참 세례라고 하신 바도 전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그대로 준행해야 한다. 물이 말씀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해도 이를 그리스도께서 세례에 대입하신 바도 없고 제자들이 물을 말씀으로 대입해 세례를 폐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

②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마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셨다. 세례의 형식과 내용의 기한은 ‘세상 끝날’까지이다. 세상 끝날에는 기표 없이 ‘진리의 말씀’으로만 해도 된다고 지시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계시록 성취의 때나, 세상 끝 날에 세례의 제정, 세례의 의식, 세례의 내용이 바뀌어도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그대로 준행해야 한다.

③ 제자들도 그대로 행했다(행 2:41)

베드로가 삼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줬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직후에 성령을 받은 이들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을 폐기하는 모습은 성경에 없다. 에디오피아 네시(행 8:36), 바울(행 9:18), 고넬료(행 10:47), 루디아(행 16:15) 모두 성령이 임하거나 충만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세례를 주거나 받았다.

④ 세례론 소결: 세례는 예수님도 직접 받으셨을 뿐 아니라 줄 것도 명하셨다. 이에 따라 제자들도 직접 세례를 받고 주고 행한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바이다. 이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데 따라오는 외적 형식이 ‘육’이라면, 예수님도 ‘육’인가? 신천지측은 ‘물은 말씀’이라는 비유풀이를 통해 기표를 모두 제거하는 행위는 이 의식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커다란 죄가 된다.

나. 성만찬에 대한 반증

신천지는 교회의 성만찬이 형식에 치우친 기념행사이고 참된 성찬은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은 성만찬 때가 아니라 계시록 성취의 때 이긴 자와 함께 하는 자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반증하겠다.

① 떡과 포도주로 그리스도를 기념하라는 성만찬의 제정자는 그리스도이시다(고전 11:25)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성만찬을 준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주의 만찬을 폐기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고 그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고 항거하겠다는 의미를 담는다.

②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눅 22:19-20)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자신을 친히 피와 살이 찢기시며 희생 제물로 바쳐진 것을 영원토록 기념하라는 의미로 주셨다. 주의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진실로 그들은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서 오는 모든 혜택을 받아 자신들에게 적용한다. 성만찬을 통해 성도들은 희생 제사의 반복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영원한 제사를 기념하고 기억한다.

③ 세례와 마찬가지로 성만찬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합당하게 준행했다(고전 11:24-29).

초대교회 성도들은 실제로 떡과 포도주를 마셨다. 이를 행하며 그리스도를 기념했다. 자기를 살피고 주의하며 떡을 먹고 잔을 들어 마셨다. 성만찬의 외형적 요소들(떡과 포도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결하지 않은 피, 그리스도와 연결하지 않는 몸은 참된 성만찬이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④ 성찬의 효력은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누린다

ⓐ 신천지는 성찬, 즉 그리스도의 피와 살의 효력은 계시록 성취의 때, 이긴 자가 나타나 배도자와 멸망자들을 내어 쫓을 때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바울은 이미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할 때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한다고 기록한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의 죄 때문임을 기억한다. 또한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받는 징벌로서 하나님의 정의가 만족됨을 되새긴다. 이 효력은 그때는 물론 현재, 나아가 영원히 지속됨을 일깨워주는 의식이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이 계시록 성취의 때가 아닌 이미 2천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을 시작으로 주의 만찬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주의 백성에게 나타난다고 말씀하는데 그걸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2천년 동안 아무 효력을 발휘 못한 그리스도의 피가 이긴 자라는 이만희가 1984년 신천지를 설립한 때에나 효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신천지측이 계시록 성취의 때에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계 12:11 때문이다. 이 말씀을 신천지는 “이긴 자와 함께한 형제들이 용과 싸워 이기게 되니 이때에 사용한 무기가 바로 어린 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해설한다. 그런데 성경은 신천지 강사의 주장과는 다르다. 이긴 자와 함께 한 형제들이 아니라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라고 기록했다. ‘이긴 자와 함께한’ 형제들이 이긴다는 표현이 없다. 그런데도 신천지는 여기에 ‘이긴 자’와 함께 한 형제들이 이겼다고 어린 양 대신 이긴 자를 끼워 넣는다. 명백한 오역, 오독, 오용이다. 계 12:11의 본 뜻은 “고난 받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이를 증거하는 복음의 말씀으로 승리했다는 뜻”이다.

⑤ 소결: 성만찬의 근본적인 목적은 십자가에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그분의 피를 기념하며 하나님의 전체적 구속사에 참여하는 자가 외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실제적으로 경험하며 참여함을 뜻한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전통을 통해 이 의식은 거룩하게 집행되고 세상 끝날까지 그러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이런 행위를 의도적으로 형식이요, 육이라고 배제하고 조롱하는 자들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밖에 있는 외인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성경, 웨민, 신천지측의 성례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비교해 봤다.

신천지는 이처럼 ‘말씀’ ‘말씀!’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보편교회의 성경 말씀이 아니라 193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희가 풀어준 말씀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계시록 성취의 때에 나타난 그가 약속의 목자이고 이긴 자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고 따라야 구원받을 수 있고 구원자인 그의 말이 곧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례를 당연히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게 신천지이다. 그러나 성례에는 의식과 의례의 성격을 넘어서는 신비가 있다. 특히 신천지 신도들은 수개월에서 수십년을 이만희식 성경해석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 줄 착각하며 세뇌돼 왔다. 새하늘 새 땅에서는 영과 육이 참된 구원을 얻고 어차피 신령한 육체를 새롭게 받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들은 건강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매일을 수고하고 애쓰며 살아간다. 신천지에서 탈퇴한 이들에게 성례의 참 의미와 건전한 종교적 체험과 신비를 알려 주고 준행하게 한다면 신천지 탈퇴에 따른 충격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Ⅲ. 결론

처음부터 신천지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이만희가 이긴 자다’라고 하면 아무도 믿고 따르지 않는다. 처음부터 ‘기독교의 성례는 형식적이고 육에 속한 것이다’라고 비난하면 경계심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신천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오는 ‘미끼’들이 적지 않다. 물 세례가 물로 주는 것이면 불세례는 불로 주는 것이냐, 불이 실제 불이 아니듯, 물도 실제 물이 아니다는 방식으로 물 세례를 부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유도해 가는 게 그들의 수법이다. 따라서 기독교회는 그들의 교묘한 수법을 미리 알려 주고 바른 성례론이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도록 잘 가르쳐 줘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례론 일반에서 성례가 주어진 목적을 정리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례는 은혜언약에 대한 거룩한 표와 인치심이다. 롬 4:11은 구약의 할례를 언급하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인치는 것이지, 의롭다 하기 위해 할례의 인을 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성례도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얻은 백성이 됐다는 표시로서 주는 것이지 성례를 통해 의로워지거나 거듭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셨다.

예수님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임했다(요 3:13-16). 마 28:19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를 따라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줬다.

셋째, 성례는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혜택, 유익을 성도가 누리며 받을 수 있음을 확증한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를 살리시고 새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언약을 기념하는 것이다. 성례의 가장 중요한 용도와 목적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축복을 나타내고 신자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축복 안에서 누리는 권리를 확증한다.

성례에는 이렇듯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도 신천지가 이를 부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완전히 차단해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막고자 함 아니겠는가.

현재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비대면 예배의 범람에 떠밀리고 있다. 교회 사역자를 구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영상 촬영·편집 능력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이러한 때 참된 교회관은 물론 성례론을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시행하는 것은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이다. 성례는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명하신 2천년 전통의 고유하고도 특징적인 예식이다. 특히 성례전을 가르칠 때 신천지의 비성경적 성례론을 함께 보여주는 게 유용한 이유는 가짜를 통해 진짜의 진가를 알려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신천지식 성경공부와 해석에 노출된 신자들이 성례와 관련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다. 그리스도인은 책의 사람들로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고유한 예전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비한 예전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이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다면 코로나 팬데믹의 두려움은 용기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각주 달린 주석 다운로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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