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의 세 가지 핵심 교리의 해체와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의 바른 변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권호 지도교수) 과제로 제출한 소논문입니다. 기술적인 문제로 각주를 달지 않았습니다. 각주가 달린 글을 보기 원하시는 유료회원은 가장 하단에 다운로드 기능을 활용하시면 됩니다(유료회원 전용). 목차/Ⅰ. 서론/Ⅱ. 본론/1. 신천지의 3대 핵심 교리는 무엇인가?/ 1) 신천지는 어떤 곳인가?2) 신천지의 3대 핵심 교리는 무엇인가? 2. 하나님 중심적 설교란 무엇인가? 1)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정의 2) 이만희 중심적 성경해설에서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의 변환 3. 신천지 3대 핵심 교리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변환하기 실제 1) 신천신지의 근거 구절인 계시록 21장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 2) 육체영생의 근거 구절이 되는 계시록 20장 4절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 3) 십사만 사천 교리의 근거 계시록 7장, 14장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 Ⅲ. 결론
Ⅰ. 서론
사람은 모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조연이나 엑스트라는 다른 사람의 몫이길 바란다. 이런 욕망은 심지어 하나님을 조연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이 주연으로 신의 보좌에 앉는 시도로까지 나아간다. 스스로 하나님이 돼 영광 받으려는 인간의 악한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영역까지 오염시킨다. 성경을 펴 놓고 성경을 얘기하고 성경에 있는 단어를 사용하고,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핵심 내용을 곱씹어 보면 영광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다. 설교자, 특정 인간을 영광의 대상으로 한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 나아가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인간을 높이는 우상숭배적 성경강해의 전형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성경 강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매우 참담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193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희가 이 시대의 구원자로 믿어진다. 그러면서도 ‘나는 성경을 매우 잘 알고 말씀대로 배우고 그대로 살고 있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진다. 6개월 동안 신천지 방식의 성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게 아니라 ‘이 시대의 구원자는 이만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불어 이 땅에서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이런 사람 십사만 사천명, 실제 숫자가 채워지면 자신들이 사람들 위에 왕처럼 군림하며 살 것을 믿게 된다. 이는 신천지 성경공부를 한 사람들이 겪는 동일한 현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도대체 어떻게 보기에 전혀 성경에서 의도하지 않은 왜곡된 결과가 나올까? 신천지 연구 및 상담 전문가 진용식은 신천지의 핵심 교리를 3가지로 압축한다. 그것은 육체영생, 14만 4천, 새하늘 새땅 신천신지 교리이다. 진용식에 따르면 이 세 가지를 세뇌시키면 세상 어떤 사람도 이만희가 구원자로, 재림주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할 목자로 믿게 된다. 본고에서는 신천지 연구 및 상담 전문가 진용식의 분석을 따라 신천지의 핵심 교리 세 가지를 압축해서 설명한다. 그 다음 하나님 중심적 설교가 무엇인지 정리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 다음 신천지의 문제적 교리를 어떻게 변환하는 게 바람직한 지 원론을 제시한 다음 신천지 삼대 핵심 교리를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바로잡는 시도를 할 것이다. 특별히 이는 필자가 한 학기 동안 설교학 시간에 배운 하나님 중심적 설교를 응용해서 적용했다. 해당 페이퍼는 분량의 제한상 신천지의 해석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보여주고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바로잡기를 시도할 뿐 이만희의 주장의 비성경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반론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Ⅱ. 본론
1. 신천지의 3대 핵심 교리는 무엇인가? 1) 신천지는 어떤 곳인가?
신천지의 3대 핵심 교리를 설명하기 전 신천지가 어떤 곳인지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신천지는 1984년 설립, 전국 12개의 체인을 가진 한국 최대의 신흥 종교다(신천지 2019년 총회 발표 자료 참고). 신천지의 총회장은 이만희(1931년생)다. 그는 1984년 신천지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38년간 총회장 직함을 가진 후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총회장직을 인계한 적이 없다. 신천지 교인 수는 전국 2020년 기준 23만9353명, 12개 지파의 체인에는 본점과 연계돼서 지점(지사)역할을 하는 지파 교회가 있다. 전국 본부는 경기도 과천에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슈퍼 전파자 역할을 하게 된 대구는 다대오지파라고 한다. 전국 12개 지파가 개별적으로 예수님의 12제자, 베드로(광주), 안드레(부산), 요한(과천)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신천지는 중국·일본·필리핀·캄보디아 등 아시아 16개국,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9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2개국, 남아공 등 아프리카 5개국 등 전 세계 40개국에 33개 교회, 109개 개척지(소규모 조직)를 두고 있다. 전국 교회 및 부속기관은 1100개이고 위장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위장교회는 간판을 ‘대한예수교 장로회’ 등으로 달지만 안에서는 신천지 교리를 주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신천지는 1984년 공식적으로 설립한 후 전국 조직을 이루며 거의 1만배 이상 폭발적으로 급성장했다. 이들의 핵심 교리는 무엇일까?
2) 신천지의 3대 핵심 교리 - 신천신지·육체영생·십사만사천
신천지의 사이비 교리는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말씀의 짝(성경 단어에 서로 짝이 있다는 교리), 구름(예수님이 재림시 구름을 타고 오는데 비유풀이를 통해 구름을 사람으로 곡해하는 교리), 이중아담론(아담은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에 선택받은 첫 사람이라는 교리) 등이다. 모두 이만희를 이 시대의 구원자로 믿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신천지의 사이비 교리가 있지만 본 장에서는 신천지의 핵심 교리를 신천지 상담 및 연구가 진용식의 주장을 따라 세 가지, 신천신지, 육체영생, 십사만사천교리로 압축하고 여기서 나타난 문제점을 요약해서 지적하겠다.
가) 신천신지교리
신천지란 한마디로 ‘새하늘 새땅’으로서 성경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 끌어온 개념이다. 새하늘 새땅을 한문으로 쓰면 신천신지이고 이걸 줄이면 신천지이다. 이를 이만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본문(계 21:1을 의미함: 편집자주)의 ‘새하늘 새’ 땅 즉 ‘신천지(新天地)’는 ···하나님의 인을 쳐서 창조한 ‘영적 새이스라엘 열두 지파(계 7장)’요 ‘시온산과 알곡 성도(계 14장)’이며 ‘증거장막 성전(계 15:5)과 그 성도’이다. 계시록 13장에서 일곱 금 촛대 장막을 하늘이라 하고 그 성도를 땅이라 하였으므로 그들을 대신하여 창조한 계시록 15장의 증거장막은 새하늘, 다시 택한 증거장막 성도는 새 땅이라 한다.” 이만희의 신천지 개념은 ‘패거리’ 문화를 보여준다. 새하늘은 실제 새롭게 된 피조세계의 하늘이 아니라 ‘증거장막 성전’이라는 소위 이만희를 중심으로 모인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 성전이라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만희에겐 이곳이 새하늘이요 천국이다. 새 땅은 그곳에 속한 신도들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신천지 패거리에 들어간 사람은 새하늘 새 땅, 천국에 들어간 셈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교적부를 생명책이라고까지 한다. “예수님께서는 니골라당과 싸워서 이기는 자 위에 영계의 천국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여 주시고(계 3:12) 보좌를 그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다(계 3:21). 영계의 천국과 예수님의 보좌가 이기는 자에게 임한다면 이기는 자가 이끄는 교회도 천국이 아니겠는가(마 4:17). 그렇다면 천국 호적인 생명 책은 이기는 자가 인도하는 교회의 교적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21장 2절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은 영계에 있는 도성으로 이해하고 그곳에 들어갈 바른 키가 ‘이긴 자’에게 있다고 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예수님과 열두 사도를 비롯한 순교한 영들’이 모여서 이룬 영계 하나님 나라의 도성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이름과 더불어, 니골라당과 싸워 이긴 자 위에 기록해주시고(계 3:12) 그로 하여금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이긴 자를 찾는 것은 새예루살렘 성을 찾는 열쇠임을 알아야 한다.”
그의 주장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 가능하다. 첫째, 새하늘은 증거장막성전이다. 즉 ‘우리 신천지’이다. 둘째, 새 땅은 새하늘, 즉 신천지에 속한 ‘우리 신도’들이다. 셋째, 이긴 자가 이끄는 교회가 천국이고 그곳의 교적부가 천국의 생명책이다. 넷째, 이곳에 들어가는 열쇠는 이긴 자이다. 따라서 이긴 자를 찾아야 한다. 진용식도 “신천지 신도들은 신천지 집단에 입교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긴 자는 곧 약속의 목자, 사도요한격 목자, 대언자, 보혜사로도 불리는데, 신천지는 또다른 보혜사를 ‘이만희’라고 명시하지 않지만 그들의 모든 교리를 배우다 보면 이만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그들의 주요 책자인 천지창조,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은 저자란에 ‘보혜사·이만희’라고 적었다.
나) 육체영생 교리
신천지는 계시록 20장 4절을 근거로 육체 영생을 주장한다. 신천지에 4년 있다가 탈퇴한 후 필자와 인터뷰를 한 신도는 “신천지 강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짐승의 표 받지 아니한 사람들의 육체들이 일체를 이뤄 살아서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 땅에서 14만4천 명의 사람이 채워지면 하늘의 14만4천의 영들과 합체가 된다. 영육합일이 된 신천지 신도들의 육체는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고 영생한다는 의미다. 이만희도 직접 이를 언급한다.
“신천지에는 영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내려온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목베인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신천지 천년성에서 왕노릇한다(계 20:4~6). 그리고 하나님과 장막이 신천지 백성들과 하나가 됨으로 사망과 고통이 없어지고 아픈 것과 곡하는 것이 없어지면 만물까지도 새로워진다(계 21:2~7).”
“거룩한 성령이요 신랑인 십사만 사천의 영들과 이 땅의 거룩한 자 십사만 사천의 육신을 가진 신부들이 각기 한 쌍을 이루어 혼인 일체가 된다. 마침내 이들은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홀연히 변화 받아 사망의 벽을 뛰어넘어 영생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수의 뒤를 좇는 첫 열매로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와 더불어 진리의 말씀으로 씨 뿌려 세상을 가르치는 왕들이다(계 6:9~10, 살전 4:13~16, 고전 15:50~58, 유 1:14). 또한 이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짐승과 싸워서 이기고 그 우상에게 표 받지도 아니하고 경배하지도 아니한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십사만 사천의 영들과 십사만 사천의 육신을 가신 신부들이 한쌍을 이루면 사망을 뛰어 넘어 영생의 반열에 오르고 첫째 부활의 영광을 얻는다.
둘째, 이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지 않고 살아서 신천지 천년성에서 왕노릇한다.
셋째, 이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씨 뿌려 세상을 가르치는 왕들이다
진용식은 신천지의 육체영생 교리를 ‘신천지’ 조직 자체를 천국으로 보는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분석한다. 천국에 들어왔으니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육체 영생교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 안에 있을 때 신천지 신도들은 스스로 육체가 죽지 않고 영생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살아간다. 때로 일천살은 기본이라 여기기까지 한다고 진용식은 지적한다.
다) 십사만사천교리
신천지에서 십사만사천명이라는 숫자는 신천신지에 들어가고 육체영생을 얻고 천년을 살며 왕이 될 제한된 인원을 의미한다. 최근 유행하는 영화 ‘오징어게임’은 사람들이 서로 경쟁해 최종 승자가 된 단 한 명의 사람이 456억원을 갖는다는 설정을 했다. 신천지로 바꿔 말하면, 십사만사천교리는 이 땅을 다스릴 왕같은 제사장이 십사만사천명이라는 의미의 교리이다. 그래서 이 교리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십사만사천 안에 드는 것이 인생 최대의 꿈이요 목표가 된다. 그 안에 들면 456억원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천지 신도 중에는 “전 세계 60억명의 인구가 우리에게 말씀을 배우기 위해 돈을 바치는데 그 중에 십일조 정도만 받아도 얼마가 되겠냐?”며 십사만사천이 됐을 때의 영화를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도대체 십사만사천에 들 수 있을까?
“영적 새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창조하니 인 맞은 자가 모두 십사만 사천이라고 한다. 이 십사만 사천을 많은 목자들은 상징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은 본문에 기록한 대로 각 지파 일만 이천씩 모두 열두 지파를 합한 ‘실제 수’지 상징 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천년 간 존속한 기독교 세계를 끝내시고 7장과 같이 영적 새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새로운 제사장이 될 십사만 사천명을 먼저 인 치신다.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십사만 사천 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새언약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라야 한다. 초림 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만이 참 자녀가 되었듯이, 계시록 성취 때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언약을 지키는 자만이 ‘영적 새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하는 참 선민이 된다. 계시록 성취 때에 성경에 약속한 나라 영적 새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하지 않는 자는 선민도, 정통도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 재림을 앞둔 모든 신앙인은 지금 계시록의 말씀이 실상으로 응하였는지 알아보아야 하며, 응하였다면 자신은 어느 지파에 속하였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만일 이 땅에 영적 새이스라엘이 에언대로 나타났는데도 자신이 속한 지파가 어디인지를 모른다면 이방인이라는 증거이다. 이방인에게는 구원도 영생도 천국도 없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 가능하다.
첫째, 십사만 사천은 영적 새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될 사람들로서 실제 숫자이다.
둘째, 십사만 사천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계시록 성취의 때에 새언약의 말씀으로 인을 맞고 새언약을 지키고 어떤 지파에 속했는지 확인해서 알아야 한다.
셋째, 계시록 성취의 때에 영적 새이스라엘 열두지파에 속하지 않는 자는 선민도, 정통도 아니고, 이방인이며 이들에게는 구원도 영생도 천국도 없다.
신천지 신도들은 십사만사천에 들지 못하면 왕같은 제사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 들기 위해 실적을 쌓아야 한다. 때로 십사만사천 인맞음 시험을 쳤다. 90점을 넘어야 인을 맞을 수 있었는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현장에서 쓰러져 병원 이송이 됐다가 사망한 신도도 있었다. 십사만사천 안에 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동방 땅끝인 한국으로 와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십사만사천 제사장 앞에 무릎 꿇고 빌 것이고 그러면 그 돈을 갖고 롤스 로이스를 타고 다니며 떵떵 거리고 살 거라는 신도도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신천지의 이만희의 핵심교리 세 가지, 신천신지, 육체영생, 십사만사천교리의 요점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이들의 핵심 교리는 한마디로 신천지라는 조직체 중심이며 육체영생을 하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려면 십사만사천에 들어야 하는데 그 안에 들어야 하는 조건으로 계시록 성취 때의 이긴 자, 곧 이만희를 만나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핵심 교리에 특정 조직·특정 인간·특정 숫자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전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이방인 취급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록 성취의 때에 사용하는 ‘약속의 목자’라는 사람과 그가 설립한 ‘증거장막성전’ 임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살펴볼 내용은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정의를 내리고 이를 토대로 신천지의 핵심 교리 세 가지를 교정해서 설교를 작성하는 것이다.
2. 하나님 중심적 설교란 무엇인가?
1)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정의
20세기 초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유행했던 구속사적 설교는 구원의 주체로서 하나님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던 반면 인간의 역할을 설교에서 잘 드러내지 않는 약점이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며 태동한 모범적 설교는 성경 인물이 보였던 믿음의 반응과 응답을 통해 실천적 교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자간의 논쟁의 해결점을 제시한 인물이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이다. 그는 구속사와 삶이 균형잡힌 하나님 중심적 접근을 해야 한다며 특히 성경의 역사적 본문 설교에 필요한 세가지 원리를 제시했다. 첫째, 역사적 본문 설교는 하나님 중심적 목표를 가져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행동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목표로 선포되는 것이다. 셋째, 역사적 본문 자체가 구체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선포임으로 처음 선포되었던 그 시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다누스의 하나님중심적 설교의 원리는 비단 역사적 본문에서만 아니라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이기도 하다.
김창훈은 하나님 중심적 설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삼위)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다양한 의미로 쓰일 수 있는데, 필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본문을 주해하여, 적용으로 연결하고, 효과적이고 능력 있게 전달하는 모든 과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하나님 중심적 주해’, ‘하나님 중심적 적용’, 그리고 ‘하나님 중심적 전달’을 포함한다.”
John Piper도 ‘하나님 중심적 설교’를 강조했다. 그는 설교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설교의 시작이요, 중간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삼위 하나님 관점에서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설교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설교의 은사는 성령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권호는 “설교자는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 텍스트 앞에 자신의 개인적 전제와 의도를 내려 놓고 겸손히 엎드려야 한다”며 “성경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의도를 정확하게 이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종합하면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의 진의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에게 영광 돌리며 그분을 높이는 설교이다. 권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성경 본문을 통해 보여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 주고 그 반응으로서의 적용, 실제 설교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품고 역사하시는지를 보여 주고 난 다음 그 믿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몰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중심적 설교는 그분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인간 삶으로 연결하고 적용하며 확장돼야 한다. 권호는 구속사적 설교와 모범적 설교의 보완으로서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방향을 정확히 제시했다. 이제 그 대척점에 있는 신천지의 성경해설, 즉 이만희 중심적 성경해설을 어떻게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변환할 것인지 제안해보자.
2) 이만희 중심적 성경해설를 해체하고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의 바로잡기
가) 관점의 변환 - 이만희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신천지식 성경공부는 이만희 중심이다. 이만희가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절대적 Key이고 구원의 방법이다. 그가 이끄는 조직이 천국이고 그곳의 교적부가 생명책이다. 따라서 신천지를 나가면 구원받을 수 없고 이만희를 알지 못하고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이만희를 믿고 따르는 자의 실제 수 십사만사천에 들어가면 세상을 다스릴 왕이 된다. 이만희를 믿고 따르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천지에서 요구하는 내부 실적(전도, 헌금 등)을 쌓으면 그 실제 숫자 안에 들어가는 영적 새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하나님중심적 설교는 구원의 주체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주인공이고 왕이다. 동일한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만이 구원의 열쇠이고 구원의 방법이다. 그분을 높이고 영광 돌리는 방법으로서의 성경해설만이 그분의 백성을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셀 수 없이 많은 충만한 숫자인 십사만 사천에 들 수 없다. 어린양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 여기서 왕은 이 땅을 실제로 다스리는 세속적 왕이 아니라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 상황을 의미한다.
한눈에 봐도 물과 기름 같이 엇갈린 신천지·이만희 중심적 성경해설은 이처럼 구원의 모든 주권자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리는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나) 설교자의 각성 - 이단 대응을 위한 설교 프로젝트 가동
1931년 이만희를 믿고 따르는 신천지 신도들은 코로나 직전인 2020년 연초 기준 30만여 명에 이르렀다. 그들 중 대다수가 교회 출석 신도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가장 반성해야 할 것은 바로 설교자라는 게 정창균의 지적이다. 그는 신천지에 빠지는 현상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개인의 무책임이나 무지함보다 설교 강단에서 목회자가 신자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어떤 가르침이나 주장에 대한 신학적·성경적 분별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성장하게 하는 설교를 하지 못한 점이라고 비판한다. 신천지 신드롬은 전적으로 교회의 설교와 설교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정창균은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강단이 변화돼야 한다며 6가지를 제안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설교의 회복이다. 본문을 이탈해 성경과 멀어져도 성도들이 재미있어 하고 편안해 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며 그에 초점을 맞추는 설교를 지양해야 한다. 둘째, 이단 문제를 다루는 설교의 수행이다. 신천지측이 불특정 교인을 상대로 암약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한두번 이단 특강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에서 전체 성도들을 향해 이단 대응을 위한 설교를 해야 한다. 셋째, 교리 설교의 회복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설교하며 신자와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넷째, 요한계시록 설교의 수행이다. 이단사이비들은 하나같이 요한계시록을 악용한다. 이단의 전유물처럼 방치하지 말고 미리 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성경의 난제들을 미리 당당하게 설교하기이다. 신천지의 특징은 말도 안되는 터무니 없는 해석을 성경 구절을 짚어주며 자신감을 갖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확실한 답이 어려운 난해 구절이 분명히 있지만 얼버무리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도 일종의 확실한 답이라 생각하고 담대하게 설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신천지 교리의 해체와 바른 구성 - 참된 구속사의 이해
“하나님이 시대별로 빛의 역할(구원자)의 역할을 목자를 세우신 다음에 그를 중심으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고 주장하는 신천지의 접근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왜곡하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속은 그분이 주도권을 가지며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은혜’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신천지는 하나님이 구속에 중심이 될 ‘자격이 있는’ 인간을 구원자로 택할 뿐만 아니라 시대별로 그들이 계속하여 배도함으로써 그때마다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되어 새로운 목자를 택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타락 전에 맺어진 ‘구속 언약’을 간과한 해석이며 그리스도 중심의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불완전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분의 속성(자존성, 독립성, 전지전능함 등)을 왜곡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천지의 구속사의 특징은 시대별로 구원을 담당하는 핵심 인물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그 순서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예수이다. 예수를 구약의 주요 인물과 동일선상에 놓고 예수 후에 택함 받은 시대의 목자로 이만희를 배치한다. 이를 신천지의 ‘노정교리’라고도 한다. 창세기 1장에서 요한계시록 22장까지 긴 노정 안에 일정한 패턴으로 목자 선택, 나라 창조, 선민의 배도, 새목자 선택이라는 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노정교리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송지섭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새 언약의 실체, 구원자는 이만희이고 예수는 이만희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이자 단계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모든 언약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언약 곧 새 언약으로 향해 있으며,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는 ‘지식’이 아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죄 문제의 해결’이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 속에 죄를 용납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새 언약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서 분명하게 시작되었다”(눅 22:20; 고전 11:25; 고후 3장; 히 8-10장).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완전하고 온전하고 최종적인 중재자이자 구원자임을 각인시키는 변환 작업이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
3. 신천지 3대 핵심 교리의 해체와 하나님 중심적 설교 작성법과 실제
이제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개념을 중심으로 신천지 3대 핵심 교리를 해체하고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바르게 변환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의 변환은 2021년 11월 16일의 수업을 통해 권호가 제시한 “왕을 통해 깨닫는 것”(대하 11:1-3)이란 설교의 해설 방식을 따랐다. 그는 이 설교를 첫 번째는 스토리텔링, 두 번째는 스피치텔링이라는 두가지 구조로 나눴다. 스토리텔링에서는 성경의 스토리를 들려주고 스피치텔링에서 일반적 삶으로 연관성을 설명한 후 청중들의 삶과의 직접적 적용으로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이를 적용, 신천지의 핵심 교리의 근거가 되는 구절들을 제시하고 그것을 스토리텔링으로 푼 다음 성도들과 연관한 적용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대입했다. 그 과정에서 신천지의 이만희 중심적 해설을 조금씩 비평했다.
이는 정창균의 제안대로 ‘이단에 대응하기 위한 설교’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신천지는 직접 교회로 신도들을 파송한다. 코로나로 위축됐으나 이제 서서히 그들의 추수꾼 전략은 다시 가동될 전망이다. 그 신도들이 듣고 회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신천지’에 대한 변증이 시도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교회안 활동은 위축된다. 더불어 성도들도 ‘신천지의 핵심 교리’를 미리 듣고 예방과 경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증 설교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1) 신천신지의 근거 구절인 계시록 21장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
신천지의 신천신지 교리는 요한계시록 21장을 근거로 한다. 여기서 핵심 주제를 ‘성전되시는 주 하나님과 어린양’으로 뽑았다.
설교문: 성전되시는 주 하나님과 어린양
부부의 날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정의 달이 5월이죠. 둘(2)이 하나(1)된 날이라고 해서 5월 21일이 부부의 날입니다. 계시록 21장을 그렇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21장은 둘(2)이 하나(1)되는 장입니다. 이전까지 짐승의 세력으로 대변되는 음녀의 도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마지막까지 대적하며 처절한 전투를 벌이다가 결국 멸망당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나자 새하늘새땅, 신천신지가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세력을 찾아볼 수가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이 평안함 가운데 새하늘새땅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참된 연합의 아름다운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새하늘새땅의 주인이자 근원이십니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근원지는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도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21:2)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은 새하늘 새땅으로 만물이 새로워진 이후에 거룩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시작도 끝도 없는 그분으로부터 근원합니다. 이것이 쿠션을 맞고 누군가를 통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특정 대상을 통해 임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합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성에는 ‘성전’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21:22). 따라서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이방인 취급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했는데도 그것은 옛언약으로서 실효가 사라진 것으로 폐기 처분하듯이 취급하고 계시록 성취의 때에는 모든 과거의 조건이 무효화되고 특정 인간을 통해 신구약 성경이 모두다 재구성된다고 하는 사람은 그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주인이신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KEY'라고 그곳으로 이끌어줄 중개인이라고 자신을 묘사했던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재록은 그 단체내에서 자신의 교인들을 새예루살렘으로 이끌어줄 사람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그 자신이 여신도 성추행으로 감옥에 가 있습니다. 징역 16년인데 70세에 학교에 가셨으니 연령상 죽어야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이만희도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KEY로 자신을 소개한 사람입니다. 그런 이만희도 본부인을 놔두고 김남희란 사람과 내연 관계에 있었고, 코로나 확산 문제로 감염병 예방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나와 지금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1심에서 신천지 돈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까지 받았습니다. 진정 이런 범죄자들이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열쇠이자 근원이 될 수 있을까요? 특정인을 새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해줄 KEY로 여기는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그 인간을 믿고 따르는 우상숭배인데,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범죄자들을 새예루살렘의 입구를 여는 열쇠로 여기는 게 바른 신앙이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은 특정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근원합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를 보고 계십니까? 새하늘 새땅의 참 주인,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안에는 성전되신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데 지금 여러분의 시선은 누구를 향해 있습니까? 누군가 그 천국 문의 열쇠를 틀어쥐고 여러분의 생사여탈, 구원의 문제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내 생명의 근원됨을 맡기고 있지 않으십니까? 또는 내 거룩한 행위 여부에 그곳에 들어가는 결정권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새하늘새땅,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근원, 아니 나아가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지 않으면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새하늘 새땅이 펼쳐집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보입니다. 그곳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18절에도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보석들이 언급됩니다. 정금, 맑은 유리, 벽옥, 남보석, 녹보석, 옥수,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입니다. 문도 진주, 길도 유리같은 정금입니다. 세상에 가장 가치있고 값진 것들이 새하늘 새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하늘 새땅에서,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서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계시록 21장은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을 묘사할 때 고귀한 보석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새하늘 새땅은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같이 아름답다(2)고 한 다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3)는 설명을 먼저 합니다. 하나님이 펼쳐서 보여 주시는 새하늘 새땅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성의 외관을 보배롭게 감싸는 황홀한 보석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당신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모든 눈에서 흐르는 눈물입니다. 그 백성이 흘리는 눈물을 씻어주시는 위로와 격려에 있습니다. 그분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에 있습니다.
새하늘새땅의 가장 귀한 가치는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고 소유하는 것도, 내가 왕이 돼서 군림하고 떵떵거리고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분이 친히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가 핵심입니다. 그분께서 다른 무엇보다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하늘새땅에 들어가는 열쇠가 되는 삼위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을 찾고 만날 하등의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주하나님과 어린양이 새하늘새땅의 주인이시고, 그분이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분을 직접 만나십시오. 이것이 새하늘 새땅의 본질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남몰래 흘렸던, 가슴 졸이며 베갯머리를 적셨던 그 흐르는 눈물, 불면의 밤을 보내며 숨죽이며 흘렸던 그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베갯머리 맡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저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늦은 나이로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38살은 매우 부담스런 나이였습니다.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얼마나 서러움이 많았겠습니까? 한 여성을 만났는데 너무나 마음에 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성과 잘 안되는 분위기가 되니 가슴이 아픈 겁니다. 그래 당신도 내 곁을 떠나겠구나. 밤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 있는데 정말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러 베갯머리를 적셨습니다. 물론 그 여성과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 아픔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이 알고 있는 고통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 답답함의 눈물, 아픔의 눈물,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주셔서 그 백성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는 데 새하늘새땅의 본질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거룩한 성에 들여보내 주십니다.
새하늘새땅으로도 표현된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속된 것, 가증한 것,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들어갈 수 있는 존재는 거룩한 것, 사랑스러운 것, 진실한 자들이 새하늘 새땅에 들어간다고 기록돼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새하늘새땅에 들어가는 조건은 단 하나로 압축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27). 누구의 생명책입니까? 어린양이 함께 하는 사람의 생명책입니까? 아닙니다. 어린양이 인정한 자의 생명책입니까? 아닙니다. 어린양이 영으로 임재한 자의 생명책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긴 자를 찾는 게 새예루살렘이고, 그가 이끄는 교회를 다니는 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 교회의 교적부가 생명책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새예루살렘에는 성전이 따로 없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성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만들어 놓은 조직이 새하늘이고, 자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새 땅이고, 자기 말이 곧 새하늘새땅에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고 하면 자기가 곧 주 하나님이고 자신이 곧 어린양이고, 자신이 곧 성령이라는 말과 뭐가 다른 겁니까?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은 물론 그런 인간을 따르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계시록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양은 새예루살렘은 물론 생명책의 주인이시고 그 주인됨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이 생명책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 보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역사속에서 무수히 많이 나왔습니다. 이들의 특기는 자신들의 회원 명부를 생명책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단체의 명부를 생명책이라고 했던 자들은 지금 거의 모두가 무덤에 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도 어쩌지 못하는 자가 무슨 생명책의 소유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명책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의 앞에 펴져 있는 것입니다(20:11, 12).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함부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패거리처럼 몰려 다닙니다. ‘라인’, ‘계’라는 말도 많이 나옵니다. 연예인들은 ‘유재석 라인’, ‘사단’이라고 사람들을 분류하기도 합니다. ‘문재인계’, ‘윤석열계’ 등 정치에서도 계파가 있습니다. 그 라인을 잘 타면 빨리 출세하고, 라인을 잘못 탔다가 썩은 동아줄을 잡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계파입니까? 혹시 잘못 라인을 타서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혹시 라인을 잘 타서 줄을 잘 서서 승승장구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행히도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라인’은 조직에 있지 않습니다. 패거리에 있지 않습니다. 계파를 잘 타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구원자나 이긴자를 만나야 얻을 수 있는 세계도 아닙니다. 오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참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그분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키가 있습니다. 정말 새하늘새땅에 들어가고 싶다면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 라인을 타야지 엉뚱한 걸 타면 안됩니다. 이는 정말 다행입니다.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는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그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은 2천년 전에 나귀를 타고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나, 로켓을 타고 우주 여행을 하는 이 시대나 그 주인이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열쇠도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신앙에는 참 평안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의 휴대폰이 울리더랍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성도가 그냥 뚝 끊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목사님이 불안했겠습니까? 나중에 그 성도에게 물었답니다. ‘전화했다가 뚝 끊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새벽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쳐서 정말 두려운 마음에 주님이 재림할 때가 다가온 건 아닌지, 그리고 사람들이 휴거가 된다는데 나만 이 땅에 남고 다른 사람은 다 올라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서 잠이 안 오더랍니다. 그래서 혹시 목사님께 전화드렸는데 전화를 받는 걸 보고 ‘나만 이 땅에 남은 건 아니구나’라고 안심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미래는 알지 못해서 불안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고 분명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하늘 새 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남 몰래 흘렸던 눈물을 닦아 주고 위로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변덕 많은 인생이 아닌,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그분이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주인입니다. 내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위해 거룩한 성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른 대행자의 손이 아니라 그분의 손을, 성령님을 의지해서 직접 맞아들이고 붙잡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육체영생의 근거 구절이 되는 계시록 20장 4절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
신천지의 육체영생 교리는 계시록 20장 4절을 근거로 한다. 신천지는 이 구절에서 하늘에 이미 목 베임을 당한 순교자의 영혼들 십사만 사천이 대기하고 이 땅에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십사만 사천인의 육체가 채워지면 하늘과 땅의 존재들이 서로 합일해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왕노릇한다는 육체영생 교리를 끌어낸다. 20장 4절을 본문으로 하나님 중심적 설교 샘플을 만들었다. 이 구절의 제목은 인생을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잡았다.
설교문: 인생을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20장 본문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가장 흉측한 존재, 무서운 옛뱀, 마귀, 사탄으로 묘사된 존재가 천년동안 결박당하는 장면을 봅니다(20:2). 그런 천사를 결박한 존재가 1절에 이미 등장합니다. 무서운 사탄보다 더 강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결박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사탄은 요한계시록에서 짐승과 함께 성도들을 핍박하고 쫓고 죽이고 학대하는 공포스런 존재로 묘사되지만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놓이는 날도 있어서 그 사탄은 우리 곁에 없는 것 같지만 어느샌가 우리를 유혹하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과시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가지 희망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그들이 결국 살아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역전의 영광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됨이 기록된 계시록 20장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죽음을 무릅쓴 성도들의 삶과 죽음 모두를 책임져 주십니다.
계시록이 기록되던 당시 사도요한은 핍박을 받아 밧모섬에 갇혔습니다.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많이 보던 장면이 연상됩니다. 로마 황제가 보좌에 앉아 콜로세움 경기장 안에 자신을 경배하지 않고 거절한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한다며 몰아 넣고 사자밥이 되는 것을 즐겁게 바라봅니다. 사자밥이 돼며 처참하고 처절하고 참혹하게 죽어갔던 사람들이 하늘 보좌에 앉으며 그 상황은 역전됩니다. 하늘 보좌에는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승리자가 하나님과 함께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갖게 됩니다. 구절을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어나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목이 베어나간 사람과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또’를 넣다보니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신천지는 그래서 이들을 존재론적으로 이원화합니다. 하늘에는 목이 떨어져 나간 영혼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육체를 원하는데 이 땅에는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육체들, 즉 신천지 신도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의 순교자의 영과 이 땅의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은 신천지 신도들의 육체가 합일되면 신령체로 바뀌어 자신들이 왕노릇한다는 것인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봐도 이들은 두 존재가 아니라 한 존재에 대한 두 가지 설명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처형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과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이 되어 다스릴 사람들입니다.”
영어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they라는 지시대명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목이 베인 사람들을 지시합니다. 그들이 곧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And I saw the souls of those who had been beheaded because of their testimony for Jesus and because of the word of God. They had not worshiped the beast or his image and had not received his mark on their foreheads or their hands.”
이 장면은 영육이 ‘영이 철이 크로스’하는 것처럼 혼합되고 합일돼서 영생에 이른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 땅에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살다가 순교했던 자들의 참혹한 죽음이 천상 세계에서는 부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역전을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영육이 합일되는 장면이 되는지, 영어 성경보다가 신천지 탈퇴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복되고 거룩한 첫째 부활을 약속하십니다
목이 떨어져나가는 것만큼 참혹한 죽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자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 권력에 이토록 처참하게 죽는 사람들이 과연 복되고 거룩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언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은 복되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첫째 부활’을 약속하십니다. 첫째 부활이 복된 이유는 둘째 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죽지만, 두 번째 죽음은 없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를 드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다시 목 베이고 죽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게 됩니다. 로마 황제를 따르지 않아 처절하게 학대받고 고통받던 자들이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니 인생 역전의 은혜를 맞게 되는 겁니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핍박받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이 되는 역전입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자신들 말고는 아무도 첫째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부정합니다. 이들의 첫째 부활의 자격은 ‘영육 합일체’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계 20:4을 오인해서 발생한 착각입니다. 첫단추를 잘못 꿰니 마지막 단추가 잘 꿰어 질 리가 없습니다. 신천지는 아래 도표에서 보다시피 ‘사망’만 경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순 아닙니까? ‘부활’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하단 다운로드 파일 참고).
하나님께서 고난 당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결과를 약속해주시는 게 첫째 부활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하늘의 순교자의 영이 들어와서 첫째 부활한다는 게 아닙니다. 내 영혼은 어떻게 하고 하늘나라의 순교자의 영이 들어온다는 겁니까? 이건 영육 합일이 아니라 빙의나 접신과 다를 바가 없는 주장입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의 교인 이야기입니다. 교인이 암에 걸렸습니다. 늘 얼굴이 검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간암 말기였습니다. 의사는 그 교인이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어요. 그때 그에게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는 안 죽는다. 하나님이 살려 주실 것이다’였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죽더라도 천국에 간다’였습니다. 간암 진단을 받고 일년 뒤 초등학교 아들 둘, 그리고 젊은 아내를 두고 그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에 그 집사님은 교회를 가면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그분의 얼굴이 눈에 생생합니다. 우리에겐 첫째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사망을 받지 않는다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뿐 아니라 죽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저주가 아니라 복입니다. 우리가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 죽음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 인생을 부활의 그날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에 성도들을 앉히시고 심판 권세를 나눠 주십니다.
진시황과 그를 암살하려는 무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웅’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진시황에게 다가가려면 거쳐야 할 단계가 너무도 많습니다. 신뢰를 얻으면 얻을수록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무명’이란 인물의 단계는 황제의 보좌에 가까워집니다. 신뢰를 완전히 얻기 전에는 단 한보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의 보좌란 그렇게 두렵고 범접하기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보좌는 매우 특수한 자리입니다. 보좌는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며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곳에 유일하게 앉은 존재가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성부 하나님, 5장에서는 어린양으로 표현되는 성자 하나님, 1장에서 보좌 앞에 일곱영으로 표현되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새예루살렘성에서 가장 중심되는 그 자리에 있는 보좌, 하나님과 어린양과 성령께서 계시는 그 보좌가 허락된 사람이 있습니다. 20장에도 나오는데 그 보좌는 성도들에게 허락된 보좌입니다. 3장 21절에 이미 이기는 자에게 하늘의 보좌를 약속하셨습니다. 이들은 자기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입니다. 심판 권세는 하늘 보좌에 앉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에게 자연스레 따라오는 권리입니다.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축복이 약속됐습니다.
신천지 이만희가 자택 외에 자주 거주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경기도 가평의 평화의 궁전이라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갔던 저희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사진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이만희가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흰돌을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이만희 교주가 용포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먼저 왼손입니다. 저울이 달려 있죠. 계시라는 한자어가 있는대요. 무릎 꿇은 한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계시의 말씀으로 저울을 달아 부족하면 당장이라도 심판을 내리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흰돌을 들고 있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신천지는 여기서 흰돌이 ‘심판권세’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만희는 자신이 스스로 심판 권세를 독식합니다. 신천지 신도들에게 최고의 절대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심판권세를 이만희에게 준다고 했습니까? 이긴 자가 이 세상에 한사람 뿐이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보좌‘들’이 있고, 거기에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계 20:4). 그 권세는 내가 스스로 맘대로 심판할 수 있는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심판 권세입니다. 신천지를 탈퇴한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저주 받고 심판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신천지를 나오신 건 잘 하신 겁니다. 이만희를 떠나고 신천지를 탈퇴한 것이지 하나님을 떠난 게 아닙니다. 심판 권세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척, 자신이 심판의 대행자인척 하는 이만희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기면 오히려 심판을 피하는 게 아니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런 용단을 내린 분들이 계시다면 축복하고 싶습니다. 계시록 20:4는 영과 육이 뭉쳐야 부활한다는 이상한 접신이나 혼합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고 놓치 않은 신앙의 승리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만희를 떠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붙들겠다고 다짐하셨다면 잘하신 겁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첫째부활을 맞을 수 있는 영광과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내십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을 왕의 보좌에 앉히시고 심판 권세를 갖는 왕같은 인생이 되도록 역전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며 오늘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가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3) 십사만 사천 교리의 근거 계시록 7장, 14장의 하나님 중심적 설교
신천지의 십사만 사천교리는 이만희 중심적입니다. 이만희의 말을 믿고 따르는 실제 숫자 십사만 사천이 육체로 영생을 얻고 신천신지에 들어가 이 땅을 다스릴 왕이 된다는 교리입니다. 이를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변환하며 제목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 십사만 사천”으로 정했습니다.
설교문: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 십사만 사천’
데일 카네기라는 작가는 명연설의 방법론을 설명하면서 종종 ‘침묵’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연단에서 속사포처럼 말하는 것도 효과가 있지만 때로 강단에서 침묵하면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십사만 사천이라는 아주 독특한 숫자가 등장하는 장이 딱 두 곳 있습니다. 십사만사천이라는 숫자는 계시록 7장과 14장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사천이 등장하기 전 후에 그런 현상, 침묵하는 듯한 모습이 잠깐 나타납니다. 7장에서 십사만사천이 등장하기 전에는 잠시 바람이 잦아듭니다. 더불어 8장 나팔 심판이 시작되기 전 일곱째 인을 뗄 때(8:1)는 반시쯤 고요해집니다. 7장과 8장의 사이에 뭔가 집중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들이 십사만 사천명입니다. 이들을 통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의 인 받을 사람을 한명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챙기십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만 등장하는 유일한 수 십사만 사천은 그 의미와 관련 논란이 많습니다. 우선 십사만 사천이 왜 만들어지는지 숫자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숫자를 만들 때 더하기를 합니다. 하늘의 수로 여겨지는 3과 땅의 수로 일컬어지는 4를 더하면 7입니다. 요한계시록에 7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일곱 교회, 일곱 금촛대, 일곱 별, 일곱 영, 일곱 인, 일곱 천사,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머리, 일곱 산, 일곱 왕 등입니다. 7은 매우 거룩한 선택의 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곱하기도 합니다. 3과 4를 곱하면 12가 나옵니다. 3, 4의 곱도 완전, 전체를 의미합니다. 12도 여러번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12지파, 12사도, 12000(12x1000)스다디온, 이스라엘 각지파 12000(12x1000)명, 완전, 전체란 의미로 계시록에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수를 다시 더하면 12+12=24입니다. 12는 완전수라고 했죠. 이스라엘이 12지파이고 예수님도 사도들을 택할 때 12명을 택했습니다. 24는 완전에 완전을 더한 것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24장로(계 4:4)가 대표적입니다. 12를 12와 곱하기도 한다. 144입니다. 완전수, 충만한 수를 상징하는 12를 곱절했으니 144는 그 완전성을 더욱 강조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144가 등장하는 구절이 어디에 나올까요? 계 21:16, 17입니다. 1만2천스다디온, 144규빗, 예루살렘 성곽의 치수입니다. 이 방식은 십사만사천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천이 많다는 것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천천이요, 만만이라는 반복적 표현이 성경에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완전한 수의 제곱 144에 많다는 의미의 1천을 곱한 숫자로서 십사만 사천은 그야말로 측량이 불가능한 충만한 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전체 숫자라고 보는 게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충만한 숫자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충만한 수이고 이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숫자이니 우리가 십사만사천에 들까 못들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교회에서 했던 게임 중에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게임이 있습니다. 짝짓기 게임입니다. 20~30여명이 돌다가 사회자가 ‘다섯명!’이라고 외치면 그 숫자를 맞춰야 하고 그것에 들지 못하는 사람은 탈락해서 벌칙을 받아야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느린데다 눈치도 인기도 없어서 짝짓기 게임하면 탈락하기 일쑤였고 그래서 이 게임을 할 때면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았습니다.
십사만 사천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자인 하나님이 십사만사천!이라고 외쳤으니 그 안에 죽기 살기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십사만 사천이 실제 수이면 이거만큼 잔인한 경우가 있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남자 외에 여자는 십사만사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14:4). 그리고 반드시 이스라엘 한 지파당 12,000명을 넘어서는 안됩니다(7:5-8).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써 있어야 해요(14:1). 총 수 십사만사천을 넘어서도 안됩니다(7:4). 총합이 딱 십사만 사천이니 일만 이천명 중 누군가 자녀를 낳았다면 그 자녀는 못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토록 잔인한 십사만 사천을 만들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신천지식 십사만 사천은 또 얼마나 잔인합니까? 제사장이 될 특수부대 같은 숫자가 십사만 사천인데 실제 숫자에 들려면 이만희의 말을 들어야 해요. 이만희가 만든 조직안에 들어가야 해요. 이만희가 만든 조직 안에 다른 사람을 거짓말 사기를 쳐서라도 데리고 와야 해요. 시험을 쳐서 90점 이상을 맞아야 해요. 천국내자리마련 헌금이라는 걸 해야 해요. 얼마나 비열하고 조잡합니까.
그러나 십사만 사천은 그런 이상한 숫자가 아닙니다. 숫자 계수법을 말씀 드렸다시피 이 숫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당신에 속한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실 그리스도를 믿는 충만한 무리들의 숫자입니다. 그 하나도 하나님은 빼놓지 않고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종종 음료수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내가 뭐하러 냉장고에 왔지’라며 까먹고 닫아버리는 건망증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이성의 한계로 하나님의 숫자를 판단하면 안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십사만 사천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응원하십니다.
6장에서 여호와의 날, 그분의 진노가 불같이 일어나는 모습을 봅니다. 세상을 향한 참교육이 시작됩니다. 그분의 참교육 앞에서 누가 과연 설 수 있을까요? 계 6장 17절은 그렇게 묻는 듯합니다.
“그들의 큰 진노의 날이 닥쳐왔다.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공동번역).
“그들이 진노를 받을 큰 날이 이르렀다. 누가 이것을 버티어 낼 수 있겠느냐?”(새번역). 하나님이 진노하시는데 버텨낼 재간이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7장이 이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7장의 십사만 사천은 아무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시대에 그걸 버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충만하게, 넘치도록 있다는 위로와 격려와 응원이 되는 장입니다. 7장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 사람들(7:1-8)과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 이유(7:9-17)를 밝혀줍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뭐라고 합니까? 신천지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계시록 성취의 때에 새언약의 말씀으로 인을 맞아야 십사만 사천에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새언약의 말씀은 이만희가 말해주는 것이니 1931년생 이만희의 말을 들으면 인을 맞는 것이요, 그의 말을 거부하면 인을 맞지 못하고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니 십사만사천은 한편으로는 공포의 숫자인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는 소용없고 어떤 지파에 속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그걸 알지 못하면 이방인으로서 영생도 천국도 없다고 하니 십사만 사천 교리는 예수를 믿게 하는 교리가 아니라 인간 이만희를 믿게 만드는 우상숭배의 교리입니다. 이래서 신천지는 예수교가 아니라 ‘이만희교’입니다. 예수교는 예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구원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십사만 사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십사만 사천은 어린양이 서 있는 곳에 함께 섭니다(14:1).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습니다(14:1).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14:3). 성경에서 새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것이지 예전에 없던 새롭게 탄생한 노래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입니다(14:3).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입니다(14:4).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갑니다(14:4).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14:4).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14:5).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게 십사만 사천입니다. 그런데도 어린양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십사만 사천이 얼마나 우리 주변에 많습니까? 정말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공평하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십사만 사천, 구원받은 충만한 숫자이고 상징수이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이 숨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아주 공평하게 12,000이라는 숫자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베냐민 지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삿 19-20장에 보면 이들의 잔인함이 나옵니다. 다른 지파들과 내전을 치러 멸절될 상황까지 갔으나 이들은 위기를 모면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 망령된 죄를 지어서 멸망 직전까지 갔던 막내 베냐민 지파도 1만2천명, 장남 르우벤 지파도 1만 2천명, 유다의 사자 다윗의 가문인 유다 자손도 1만 2천명입니다.
이를 한국식으로 말하면 강원도 1만 2천, 경상도 1만2천, 전라도 1만2천명, 서울 1만 2천입니다. 차별을 두지 않고 동일하게 뽑은 숫자입니다. 중국, 미국사람도 1만2천명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공평하게 보이지 않지만 여기서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차별없는 공평함입니다. 그 공평함을 기초로 뽑은 숫자가 십사만 사천입니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자가 소수라는 말씀도 있지만 셀 수 없이 많은 큰 무리라는 말씀도 함께 존재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려는 아합 왕에게서 피신하며 너무도 서글퍼하며 용기를 잃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며 엘리야 외에도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많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로 외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의로운 일로 핍박 받는 때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얻는 십사만사천의 용사들, 그리스도의 대군이 우리 곁에 함께 있습니다. 어떤가요. 마음속이 다시 한번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십사만사천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인을 맞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숫자이고 그분들과 관계된 숫자이지 계시록 성취의 때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상한 인물과 관계된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단·사이비 단체들이 십사만사천을 특정단체, 특정인종에 한정해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십사만사천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얻는 구원을 더 상위 개념으로 승격하고 종교 피라미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악용돼 왔습니다. 이런 사이비세력에 속지 않으려면 그리스도를 믿는 보편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Ⅲ. 결론
신천지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이 사이비 단체는 한국 사회에서 30여년 만에 1만배 정도로 급성장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기에 이만희라는 91세된 노인을 이 시대의 구원자로 믿는지, 누가 빠지는지, 왜 빠지는 궁금해한다. 신천지 성경공부는 이만희라는 사람을 믿게 하기 위한 장치로 짜여져 있다. 그래서 일반 크리스천과 같은 성경을 보고, 믿음, 재림, 구원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신천지식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특정 인간에 깊게 빠져든다. 그래서 신천지에서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학벌, 성별, 연령, 지역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물들 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아내가 신천지에 빠졌다고 내가 가서 빼내오겠다고 당당하게 들어갔다가 신천지로 미혹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분별력 있든 없든 오랜 시간 공부만 하면 그렇게 된다. 왜냐하면 다시 강조하지만 신천지의 성경공부의 공식, 장치, 루트가 모두 이만희를 믿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핵심 교리는 신천신지, 육체영생, 십사만사천교리라고 압축했다.
이 핵심 교리를 하나하나 분쇄하듯 분석하는 일은 이단 연구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설교 강단의 목회자가 신천지 교리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설교의 청중들은 신천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관심 없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일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신천지를 비평하면 성도들과 연관성 없는 설교가 돼 식상해질 가능성이 높다. 목회자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하나님 중심적 설교이다. 하나님 중심적 설교는 구원의 주체가 오직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구원자이신 그분을 평생 주인공이자 왕으로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적용으로 연결해 본문의 의미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인간 삶의 성화를 진작하도록 하는 게 하나님 중심적 설교이다. 이것을 제대로 전하는 것은 강단을 지키는 목회자의 사명이다.
신천지의 핵심 교리 세 가지를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변환한다면 강단에서 어느 정도 변증 설교로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작업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자료가 부족해서이다. 신천지를 분석 비판한 글은 시중에 넘치지만 이를 하나님 중심적 설교로 변환해서 변증을 곁들이는 작업은 아직 시도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런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코로나 19이후 위축했던 신천지가 슬슬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 시기에 이들은 가장 쉬운 장소를 찾아서 공략 지점으로 삼고 있다. 그곳이 어디일까? 교회이다. 이들의 포섭활동은 코로나 직전만 해도 문화센터, 길거리 설문조사, 동아리 활동, 카페 등에서 다양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 어떤 장소도 활동하기가 용이한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가장 쉬운 선택으로 집 근처의 교회를 찾아다닌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강단에서 하나님 중심적 설교를 통해 신천지의 허점들을 조금씩 곁들인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물론 신천지의 활동 또한 위축시키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건 검은색이야!’라고 할 때보다 옆에 흰색을 두고 검은 색을 설명하면 더 쉽게 이해한다. 이단 변증을 곁들인 하나님 중심적 설교도 이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말하면 악한 본성을 가진 인간 교주와 비교가 된다. 그래서 참된 하나님을 찾는 여정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질 것이다. 또한 이단에 미혹됐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지!’라고 수긍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강단의 설교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중심이라면 성령님께서 능히 그렇게 역사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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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98
신천지 총회 보고서, 2020년 2월 22일 발표 자료.
유튜브 종말론사무소 2018.4.23 144,000(십사만사천)의 실상!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5viyk690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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