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의 사도적 교회 이해와 신사도운동 비판

2021-08-10     정윤석 기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Th.M.)과정(박상봉 지도교수) 3학기 과제로 제출한 소논문입니다. 기술적인 문제로 각주를 달지 않았습니다. 각주가 달린 글을 보기 원하시는 유료회원은 가장 하단에 다운로드 기능을 활용하시면 됩니다(유료회원 전용). 

Ⅰ. 서론/ 1. 연구동기

로마가톨릭의 비성경적 문제와 미신을 개혁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종교개혁가들은 치열하게 고뇌했다. 특히 로마가톨릭의,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깨뜨리고 일치를 훼손하는 이단’이라는 종교개혁가들을 향한 비판은 더욱 개혁가들을 고민하게 했다. 로마 가톨릭의 비난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종교개혁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를 위해 개혁가들은 1500년 동안 교회 역사에 이어져온 사도적 가르침이 무엇인지 천착했다. 이를 바르게 파악하고 계승한 ‘정통신학’을 추구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역점을 뒀다. 특히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불링거(1504-1575)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개혁교회가 분리돼 나온 것은 성경과 보편교회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적 가르침을 계승하고 참되고 바른 보편교회와 전체 성경에 근거한 정통신학으로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전통으로 500여 년간 지속돼온 개신교회들이 21세기에 접어들며 또다시 사도적교회를 지향하며 개혁을 표방하는 운동을 만나게 된다. 미국의 퓰러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 교수로 재직했던 피터 와그너(Charles Peter Wagner, 1930년- 2016년)가 주창한 신사도개혁운동이다. 그는 1970-80년대말까지 오순절 교파를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포도주를 담기 위한 새부대를 준비하셨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교회성장학자로서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 나타난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은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인정되는 교회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현재 세계 각처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이 신사도적 교회들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신사도’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미국과 캐나다 교회 연감에 ‘사도’라는 단어가 들어간 교단이 이미 31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New)’이라는 단어를 붙여, ‘신사도’라고 하며 그들과 구분했다. ‘개혁’이란 이름을 포함시킨 것은 신사도를 통한 개혁 운동이 종교개혁보다 더 위대한 개혁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터 와그너가 주창한 신사도종교개혁운동은 과연 500년 전 신앙의 선조들이 일으켰던 종교개혁보다 더 위대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런 개혁운동에 동참하는 교회들을 신사도적 개혁교회라고 하는데 과연 이들이 사용하는 신사도적 교회는 종교개혁가들이 생각한 ‘사도적교회’와 어떤 개념적 차이가 있을까. 피터와그너의 신사도운동에 영향을 받는 교회가 한국에도 적지 않다. 때로 그들은 개혁교회 전통을 이어받은 장로교회 명칭을 사용한다. 이에 필자는 종교개혁가, 그중에서도 취리히의 종교개혁가 불링거 등이 특히 강조했던 보편교회와 사도적 교회, 개혁에 대한 개념이 무엇인지를 먼저 제시할 것이다. 그 다음 21세기 들어서 한국교회에 밀려 들어온 신사도운동에서 말하는 사도적교회와 그들이 추구하는 개혁이 무엇인지를 밝힐 것이다. 이 양자를 비교하며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참된 개혁과 참된 사도적 교회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도’와 ‘개혁’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신사도운동이 한국교회가 함께 공유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운동인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2. 연구 범위와 방법
우선 필자는 대표적 종교개혁자 중 ‘보편교회’의 개념을 뚜렷하게 설명하며 공을 들인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불링거의 보편교회관, 사도적 교회관을 정리하여 소개할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그가 가졌던 권위와 역할에 비해 불링거는 긴 시간 동안 츠빙글리와 칼뱅의 그늘 아래서 너무 작게 소개됐다. 하지만 불링거는 1530년 이래로 신학적·교회 정치적인 사역을 통해 당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그의 교회관을 중심으로 진행하지만 필요에 따라 대표적 종교개혁가 루터, 쯔빙글리, 칼뱅, 2세대 종교개혁가 빌헬무스 아브라켈의 견해를 덧붙이겠다. 불링거를 중심으로 교회관을 정리한 다음 신사도 개혁운동의 정의와 교회관, 그들이 생각하는 사도적 교회의 개념을 비교하겠다. 특히 필자는 신사도운동의 교회관과 사도관이 낳은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사도적교회와 바른 개혁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여 한국교회 일각에 떠도는 무분별한 개혁운동을 지양하고 보편교회를 존중하고 그 바른 기반 위에 개혁의 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안할 것이다.

신사도운동의 범위는 매우 넓다. 신사도운동가에 누구를 넣을 것인가도 매우 고민스런 일이다. 피터 와그너가 신사도운동의 주창자이자 대표적 인물임은 틀림없다. 그 외에 밥존스, 마이크 비클 등이 있다. 한국인 중에는 변승우와 그 교회 부담임 목사인 김옥경 등이 있다. 변승우와 김옥경측은 자신들은 신사도운동을 따르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신사도운동을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신사도운동에 해당하는 비성경적이고 은사주의에 치중하는 일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신사도운동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고 더 극단화된 분파 중 하나일 뿐이다. 분석을 위한 자료로는 ‘하인리히 불링거의 교회론’(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출판부), ‘하인리히 불링거의 교회와 신앙고백’(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출판부), 불링거(취리히 종교개혁을 완성하다)(익투스)를 사용했다. 신사도운동가들과 관련한 책들로는 주로 피터 와그너의 책을 참고했다. Dominion(WLI Korea),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쉐키나), 오늘날의 사도(쉐키나) 등이다. 본고를 통해 개혁을 지향하면서도 우리가 갖춰야 할 보편교회에 대한 존중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왜 신사도운동은 위험한지를 다시한번 되새겼으면 좋겠다. 이 소논문에는 신사도운동의 교회관, 기원, 특징, 문제점에 집중했다. 사도 직분의 존속이 성경적이냐, 아니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Ⅱ. 본론
종교개혁가들은 무엇보다 바른 교회관을 세워야 했다. 이는 종교개혁가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그 이유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돼 나가는 상황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교회상에 대한 제시가 없다면 참된 개혁도, 참된 신앙도 불가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종교개혁가들은 교회관을 정립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베른하르트 로제는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마르틴 루터의 교회론과 관련, “로마가톨릭의 교회론에 반하여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교부들이 정의하고 고대 교회의 유산에 왜곡된 로마가톨릭을 향한 비판이었다”고 했다. 즉 새로운 관점이 아닌 오히려 교부들이 정의한 고대교회의 유산에서 교회의 참 모습을 발견하며 그 기준에 로마가톨릭이 어떻게 벗어났는지 제시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종교개혁가들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그 이유를 박상봉은 불링거를 통해 동일하게 설명한다. 박상봉에 따르면 불링거는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롭게 세워진 개신교를 초대교회 시대의 이단성을 가진 도나투스주의와 같은 ‘분파교회’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불링거는 ‘보편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성경이 말씀하는 보편교회를 통해 개신교의 뿌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는 동시에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원리요 기준이었다. 불링거는 과연 어떤 교회관을 갖고 있었을까?

1. 불링거의 교회관과 사도적 교회의 개념
불링거의 교회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 자신의 백성으로 삼길 원하시는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이 택자들은 모든 시공간 속에서 실존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 집, 나라, 유산, 소유, 모임 그리고 교회로 일컫는다. 불링거는 때로 교회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임과 공동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백성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정의했다. 그에게서 교회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모든 시공간안에서 존재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다. 그는 교회의 특성을 중심으로 몇 가지 세분화해서 설명한다.

1.1. 보편교회(ecclesia catholica)

1) 보편교회의 개념
보편(普넓을 보, 遍두루 편)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함이다. 보편과 교회라는 용어를 합성한 ‘보편교회’는 모든 시공간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의 동질성, 참된 교리, 성례의 올바른 연합 안에서 일치를 이루며 분열됨이 없이 한 가정과 모임처럼 결속되어 하나된 공동체를 의미한다. 보편교회는 공간과 시간과 인종과 나라와 계층과 성별을 뛰어 넘는 보편성을 갖고 시간적으로는 창조 때부터 세상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에 걸쳐 있으며 일치하는 신앙고백을 가진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신자들이다.

2) 보편교회의 전제
불링거에게 보편교회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한 공간, 시간, 대상을 통해서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보편교회라는 용어를 쓴 것은 교회-교리사적 이해 속에서 ‘정통’이라는 이해와 동일한 성격에서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깊게 연결돼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가 세워질 때 비로소 교회는 참된 의미에서 보편교회가 된다는 사실을 표명했다. 성경의 권위 아래 있지 않다면 보편교회의 일원이라 할 수 없다.

1.2. 선지자적이고 사도적인 교회

1) 교회의 참된 기초
교회는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다. 그런면에서 교회는 처음부터 선지자적이고 사도적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에베소서 2:19~20). 교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사역으로서 세워졌고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날까지 보존되었으며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확장될 것이다. 불링거의 선지자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는 선지자나 사도의 직분에 따른 것이기 보다, 또 그들이 행한 외형적 표적이나 기적에 의한 것이기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전해준 말씀, 곧 가르침의 진실성에 근거한 것이다.

2) 참된 교회의 기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개신교의 가장 우선된 임무는 두 교회 사이에 신학적 경계선을 세워 당시 사람들에게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신학적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는지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었다. 개신교는 새롭게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도적 가르침을 가장 잘 계승한 정통교회임을 확고히 했다. 불링거가 말하는 사도적교회의 핵심 또한 여기에 담겨 있다. 그가 말하는 사도적 가르침이란 사도라는 직분을 가진 자의 가르침이라기보다 전체 선경에서 유출해낸 정통신학을 의미했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교회인가 아닌가의 기준 또한 사도적 가르침을 잘 지키고 가르치고 전파하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종교개혁가들이 말하는 보편교회와 사도적교회의 개념
불링거 이외에도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보편교회와 사도적교회에 대해 설명했지만 근본적인 내용에 있어서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2.1 쯔빙글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사람은 지체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것이 교회이고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 곧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보편교회다라고 진술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요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특히 쯔빙글리는 보편교회를 곧 신부교회라고 설명하는 특징을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물에 들어가 그분에 의해서 정결하게 되되 완전하게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티도 주름도 없게 되는 교회를 말한다.”

2.2. 중세 교회의 잘못 앞에서 루터는 과감히 ‘모든 믿는 이들의 공동적 제사직’을 들고나와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려 하였다. 처해 있는 영역에서 부름받아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며, 죄를 미워하고, 용서와 화해를 찾아 섬기는 소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도 계승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가 사도직의 계승을 직분의 계승이 아닌 만인제사장과 복음전파와 사랑으로 이해했음을 볼 수 있다.

2.3. 칼뱅은 교회를 가리켜 ‘공교회’(catholic church), 혹은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라고 불렀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여러 갈래로 찢어지지 않으시는 이상 두 개나 세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13 참조). 택한 자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을 이루어(엡1:22-23) 한 머리를 의지하며, 또한 한몸으로 함께 자라나며, 한몸의 각 지체들로서(롬12:5; 고전10:17; 12:12, 27)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엡4:16). 이들은 진정으로 하나로 만들어진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를 보편교회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4.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와 사도들이 기록한 그들이 선포하는 그대로 옳게 설교하는 것.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우리 마음에 인 치시고 확인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를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 끝으로, 교회에 해가 되는 것은 억제하고 덕행은 장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규정하는 대로 권징을 올바르게 시행하는 것 등이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제16조에서는 교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요, 신부로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며 끌어안는다. ···교회는 세속 사람들이 아닌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부른다. ···이 교회 밖에서는 생명도 영원한 복도 없다. ··· 이 교회는 둘로 구분된다. 즉, 택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 즉 승리한 교회와, 아직 살아 있으면서 죄와 사탄을 대항하여 싸우는 성도들과 앞으로 살게 될 성도들의 교회이다.”

우리는 이렇듯 종교개혁자들의 모범을 따라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참으로 하나이며 사도와 선지자의 가르침을 일관되게 유지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기준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2.5. 네덜란드의 2세대 종교개혁가 빌헬무스 아브라켈 또한 사도적 교회에 대한 개념을 사도적 가르침에서 찾았다. 그는 “개혁교회는 지난 세기에 새롭게 생겨난 교회에 불과하다. 쯔빙글리와 루터와 칼뱅 이전에 개혁교회가 어디에 존재하였는가?”라는 반론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참된 교회는 요동하지 않는 교회의 영속성으로 인해 변함없이 존재한다. 루터 이전에도 참된 교리가 있는 곳에는 참된 교회가 존재했으며, 이러한 교회는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고 늘 존재했다. 개혁교회는 사도적 가르침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사도적 교회이다. 사도 시대에 교회는 세계 도처로 흩어졌다. 사도 시대 이후에 교회는 이교도 황제가 다스리는 영토 안에 있었다. 박해를 당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이 시기 이후 교회가 존재하는 곳에 적그리스도가 스며 들었다. 교황주의가 침투하면서 점점 더 많은 오류들이 교회에 들어왔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곳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아브라켈은 사도적 가르침을 소유하느냐 아니냐가 사도적교회의 기준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로마 가톨릭은 베드로가 사도 중에 최고이며 그로부터 이어진 교황들이 교회 권력의 정점이라 주장한다. 개신교가 말하는 사도적교회는 가르침의 진실성에 기반해 있는 반면, 로마가톨릭의 사도적교회는 사도권을 계승했다는 교황이 독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교황이 사도권을 계승한 것으로 봤기 때문에 가톨릭의 사도적교회 개념은 철저히 교황중심적 성격을 띠고 있다. 앞으로 살펴볼 신사도운동은 그런 면에서 개신교적 전통보다 로마 가톨릭적 전통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신사도운동의 시작, 특징, 주요 인사, 문제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신사도운동이라는 새로운 movemont가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이들의 특징은 종교개혁을 비롯한 이전의 전통적 교회관을 낡은 부대, 신사도운동을 새부대, 새 포도주로 여긴다는 점이다. 신사도운동의 교회관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일반적 교회관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의 주창자 피터 와그너는 하나님의 백성이 집회로 모이기도 하고 사회로 흩어지기도 하는데 신약에서 두 경우 모두에 거의 반반씩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썼다며 “하나의 참된 교회는 두가지의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와그너는 이를 핵교회와 확대교회라고 일컫는다. 핵교회는 교회건물이든 가정이든 회중 가운데 모여 있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확대교회는 일터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신사도운동은 교회론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신사도운동에서 관심을 갖고 강조하는 것은 초대교회에 한정해서 사역했던 사도 직임의 회복을 통해 새롭게 구축하는 교회 질서에 있다.

3.1. 신사도운동의 시작
피더 와그너가 주창한 신사도운동의 원래 명칭은 신사도개혁운동이다. 그가 ‘개혁’이라 이름한 이유는 전반적인 영향력이 종교개혁에 필적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신사도’라고 한 이유는 미국내 교단 중에 ‘사도적’이라는 이름을 붙인 교단들이 있지만 전통적 교회와 차별화된 특징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신사도와 개혁이란 단어를 합쳐 신사도개혁운동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필자는 줄여서 ‘신사도운동’이라고 편의상 사용하겠다.

피터 와그너는 이 운동의 공식적인 시작을 21세기의 문이 열린 2001년도라고 못 박아서 말한다. 사도의 직임이 초대교회 당시 1, 2백년 동안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몸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완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완충의 과정을 피터 와그너는 구체적 명칭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연대별로 1940년대(윌리엄 브랜험의 ‘늦은비운동’), 1970년대(오순절 운동), 1980~90년대(빈야드운동)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을 지난 후 비로소 현시대는 ‘신사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과정을 세분화해 와그너는 1970년대는 중보자의 인정, 1980-1990년대는 선지자의 인정, 2000년도에 드디어 사도적 직임을 인정하게 된 것으로 설명한다. 신사도운동은 이처럼 피터 와그너에 의해 사도의 직임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질서를 재편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3.2 신사도운동의 특징

1) 현존 사도직임의 인정
신사도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특징은 사도의 직임이 오늘날 있음을 인정하는데 있다. 그래서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이 시작된 2001년을 ‘제 2의 사도시대’라고도 부른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교회를 위해 새로운 가죽부대를 만들어 오셨는데 오늘날 제 2의 사도시대가 새로운 가죽부대라는 것이다.

2) 옛가죽 부대vs 새가죽부대
와그너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급진적 변화로 옛언약과 새언약을 언급한다. 그는 옛언약과 새언약을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입하다가 새포도주를 언급하고는 현대의 새포도주, 새로운 가죽부대를 제 2의 사도시대에 적용한다. 자연스레 전통교회는 옛포도주처럼 여겨진다.

3) 새로운 사도중심의 교회 정치
와그너에 따르면 목사적 사고방식이 지금까지의 지역교회의 질서를 유지해온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지역교회를 넘어서는, 즉 옛 가죽부대의 목사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새 가죽부대인 사도적 사고방식에로의 교회 정치의 변화가 필요한 시대다. 신사도운동, 새가죽부대안에서도 목사가 맡은 영역이 있지만 옛날의 가죽부대에서 갖던 목사의 역할과는 다르다고 하며 비교한다. 이를 통해 신사도운동에서의 목회직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 신사도운동의 주요 인사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이 주창한 제 2의 사도시대를 새포도주, 새가죽부대인 것처럼 주장하고 새가죽부대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사도들로 언급했다. 우선 과거 역사속에 유명인사들도 거론한다. 캔터베리의 안셀름, 존 위클리프, 마틴 루터, 존 녹스 등을 참된 사도들이라고도 칭한다. 그러나 피터 와그너의 기준에 따르면 신사도운동의 공식 출발은 2001년이다. 따라서 21세기를 살며 그가 직접 사도로 부르거나 아니면 신사도운동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을 여기서 소개하는 게 적절하다. 이 중에는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며 자신은 신사도운동가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

3.3.1. 국외 신사도운동의 주요 인물들과 단체들

피터 와그너는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말한다. ‘하이픈 사도’라고 구분해놨는데 가르치는 은사와 사도의 은사를 함께 받았다는 의미이다. 와그너는 이를 teacher-(하이픈)apostle로 표기했다. 자신 외에도 특정인물을 직접적으로 사도로 칭한다. 그리고 종류도 세분화했다.

1) 교회의 사도들: 사도바울처럼 많은 교회들과 특정 선교단체들을 포함하는 영역까지 영적 책임감을 갖고 사역하는 사도.
국제추수선교회(Harvest International Ministries)의 체안(Che Ahn), 펜실베이니아의 DOVE 국제 크리스천협회의 레리 크라이더, 크리스천 인터내셔널(Christian International)의 빌해몬, 싱가포르 글로벌 리더십 네트워크(Global Leadership Network)의 나오미 다우디, 나이지리아의 에녹 아디보이(Enoch Adeboye) 등이다.

2) 기능적 사도들
어떤 형태의 특수한 사역을 행하고 있는 개인이나 그룹들위에 권위가 주어진 사도들. 어글로 인터내셔널의 제인 한센, Cleansing Stream의 크리스 헤이워드, 예수 전도단의 로렌 커닝햄, Every Home for Christ의 딕 이스트먼, Global Apostolic prayer Network의 척 피어스 등이다.

와그너는 사도의 종류를 계속 세분화해 모으는 사도, 대사적 사도, 동원하는 사도(와그너는 대표적 인물로 신디제이콥스를 소개한다), 지역적 사도(바트 피어스, 존 베네피엘) 등으로 분류했고 그가 관여하는 국제사도협회에는 500명이 넘는 사도들이 있다고 한다. 와그너로부터 사도로 불린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사도로 임명하기도 했다. 온 몸이 타투로 가득한 타드 벤틀리가 와그너 - 체안으로 이어진 족보를 이어 2008년도에 사도로 임명받는다. 여기에는 와그너 체안은 물론 존윔버의 제자 빌 존슨, 캐나다 토론토교회의 존 아놋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외에 캔자스 시티의 마이크 비클(국제기도의 집 IHOP), 밥존스, 하이디베이커, 릭 조이너, 척 피어스, 케네스 해긴, 폴 케인 등 다수가 있고 여기 언급하지 않은 사람 중에도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사도라고 하거나 학위 받듯이 사도직분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3.3.2. 국내 신사도운동의 주요 인물들과 단체들
피터 와그너가 설립해 세계 7개국으로 확산시킨 WLI(Wagner Leadership Institute)의 한국지부 WLI Korea(2004년 설립, 총장 홍정식 목사), 체안이 설립한 HIM(Harvest International Ministries)의 한국지부 ‘한국 HIM선교회’(1998년 설립, 대표 홍정식 목사), 영동제일교회(1995년 개척, 담임 김혜자 목사), 큰믿음교회(1995년 개척, 변승우 목사), CI Korea의 아가페신학연구원(김태진 학장) 등이 있다. 이들의 신학교육기관과 교회들을 통해 국내의 신사도운동이 급성장하고 있으며 수많은 집회와 출판물을 통해 영향력을 대중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면서 강력한 반격을 가한다.

3.4 신사도운동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몇 가지 기준
신사도운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신사도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몇 가지 기준을 정리해 봤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교회라면 신사도운동을 하는 곳으로 봐도 무방하다.

1) 현시대에도 사도가 존재한다며 누군가를 그렇게 부르도록 가르치거나 그런 사람을 초청해 집회한 적이 있다.
2) 교회에 중보자·선지자·사도로 세분화된 직분이 있고 실제 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3) 예언·하나님의 음성이라며 하나님의 뜻을 직접 받아서 전달하는 자가 있다.
3) 종말이 임박했다며 전통적 교회들을 무시하고 ‘늦은 비’ 성령을 받아서 누리고 사역하는 새로운 교회를 하나님이 쓰신다고 과장한다.
4) 임파테이션이라는 것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전이시키고 전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
5) 회복된 사도와 선지자들이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이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일명 통치신학, Kingdom now Dominionism).
6) 마지막 시대의 영적 인침을 받은 무적의 집단이 이 땅위의 교회를 지배하게 되리라고 본다.
7) 경건한 번영의 영이 가난의 영을 파괴하고 상상을 초월한 부의 대이동이 일터 사도들을 통해 일어난다고 한다.
8) 마지막 시대의 신부 수업 또는 신부 단장을 하자며 에로틱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한다. 또는 그런 체험담을 간증한다.
9) 반대하는 자들의 배후에는 사탄의 세력이 있다며 정죄하고 교회를 떠난다고 하면 쉽게 하나님이 죽이실 거라는 등 저주를 내린다.

3.5. 신사도운동이 추구하는 사도적교회와 문제점
사도란, 예수께서 직접 선택한 제자들을 의미하며 교회 역사 속에서 단회적으로 나왔던 특별한 직분이다. 신약성경의 반을 기록한 바울조차도 당시 사도성 문제로 논란이 됐을 정도로 사도 직분은 아주 특별하다. 사도 시대 이후에 등장한 신앙의 선진들조차도 ‘사도’가 아닌 ‘속사도’나 ‘교부’로 분류한다. 교회사적으로 사도 시대 이후에 사도로 불린 사람이 없는데도 지금 이 시대에 자신을 사도라고 하거나 특정인을 사도라고 추종하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성을 외면하는 행위다. 신사도운동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3.5.1. 보편교회에 대한 존중 부재.
우리는 불링거 등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그리스도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하나의 교회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를 보편교회라 하고 모든 신앙은 보편교회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은 보편교회의 전통을 ‘낡은 가죽부대’로 보고 신사도운동을 새 가죽부대로 대조하며 양자의 극단적 갈등을 부추긴다. 이는 보편교회를 헤치고 파괴하는 움직임이다. 이들에겐 보편교회에 대한 존중이 없다. 신사도운동을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의 기준만 존재한다. 와그너가 신사도운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만 봐도 당장 확인된다. 와그너는 새가죽부대인 신사도운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낡은 가죽부대의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가 아니라 ‘낡은 가죽부대의 기름부음 받지 못한 지도자들로부터 온다’고 선을 그어 놓았다. 그 배후에는 사탄의 책략이 있고, 집단적인 종교의 영들의 무리가 있다. 전통교회안에 속해서 신사도운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미 나쁜 프레임을 씌어 놓은 것이다.

3.5.2. 사도적 교회에 대한 몰이해와 혼란
불링거는 사도적교회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한다. 새로운 사도를 세워 그를 통한 교회 질서와 가르침을 펴는 게 아니다. 불링거에게 있어서 사도적교회는 사도라는 직분을 가진 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전체 선경에서 바르게 유출해낸 정통신학을 의미했다. 불링거 외에도 개혁교회의 루터와 칼뱅과 쯔빙글리, 그리고 2세대 종교개혁가인 빌헬무스 아브라켈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선조들이 사도적 가르침을 강조한 것은 초대교회가 가진 신앙과 교부들로부터 전승된 바른 교리로 돌아가자는 의미였고 이를 기준으로 잘못된 로마 가톨릭의 구습을 개혁하자는 것이었지 이전에 없었던 것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구축하자는 개혁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은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신사도를 통해 완전히 새판을 짜자는 시도이다. 따라서 신사도를 통한 교회 질서 재편은 많은 혼란과 시비를 자초하는 행위다. 고인이 된 피터 와그너의 국제사도협회에는 생전에 500명이 넘는 사도가 있었다고 한다. 사도의 종류도 세분화해 하이픈 사도, 교회의 사도, 기능적 사도, 모으는 사도, 대사적 사도 등을 만들어 놓은 것은 사도신앙의 전통을 무시한 심각한 오류다. 보편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에베소서 2:19)을 받았다.

그런데 21세기에 새로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난립하면 보편교회가 세워진 터전과 기초를 다시 새워야 한다는 말까지도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이승구는 이에 대해 “1세기의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 또 다른 사도들이 주어질 것이라는 시사를 성경은 우리에게 주고 있지 않다”며 “오히려 성경은 1세기의 사도와 선지자의 터 외의 다른 터를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사도적 가르침이란 성경의 가르침에 무엇이라도 더 하지 않으며, 성경에 등장하는 사도적 가르침에 자신들을 겸손히 복속시키는 일이다”며 “이러한 가르침에 순복하는 것이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고 교회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도를 임명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21세기판 사도들은 피터 와그너와 그 계보를 탄 자들을 통해 임명된다. 이는 피터 와그너에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3.5.3. 자칭 사도의 난립
추종자들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비상식적 맹종을 강요하는 자칭 사도들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피해 또한 급증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신사도운동이 낳은 심각한 문제점이다. 자칭 사도라며 자신을 말세의 영적 사령관이라며 재산을 바치라고 한 사람, 사도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며 자신의 집과 추종자의 집을 교환해서 살았던 사람, 사도라며 노예처럼 추종자를 부려먹고 돈을 뜯어내는 사람 등 사도의 권위를 자신에게 수렴함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문제적 인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짓 예언도 남발해 기독교의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리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사도적 예언운동으로 유명한 밥존스는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의 예언을 불신하는 캔자스 시티에 3년 동안 임할 것이라고 했고 도시 전체가 3년 동안 건조하게 마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밥존스는 성적 방탕을 드러내며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 드러났다. 마이크 비클과 함께 활동하며 ‘수퍼 선지자’로 불렸던 폴 케인은 호모 섹스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술 중독에 빠지게 된다. 박호종은 한때 신사도운동에 참여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신사도운동하는 사람들이 학위를 주듯 사도직을 주는 모습, 청빈한 삶조차 가난의 저주라며 ‘부의 이동’을 강요하며 부를 축적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신사도운동에서 뒤돌아 나왔다고 고백한다.

3.5.4. 극단적 신비 체험과 개인 우상화의 문제
신사도운동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무엇보다 극단적 신비주의 형태로 나가고 있는 사랑하는교회 담임 변승우는 타인의 간증을 통해 특수한 존재처럼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마지막 때에 쓰시는 선지자’라고 하셨어요. ‘사도’라고도 하셨고요.” “목사님 말씀 전하실 때 예수님이 목사님과 겹쳐지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연회를 베푸신다는 그 장면을 그대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운데 앉으시고 양쪽에는 열두 제자가 앉아 계시고 예수님 맞은 편에 변 목사님이 앉아계셨습니다.”

사랑하는교회 부담임 김옥경도 극단적 체험을 공개하고 있다. 꿈에 자신의 목이 사라지고 남자 목이 붙었는데 그게 주님의 목이고, 하늘나라의 전략회의에 참여하고, 태풍의 진로 변경을 시키고, 부분적이지만 노화 방지의 은혜가 임하고, 자연계를 다스리는 권세가 증가하고, 주님이 자신과 이중표현되고 있다고 하고, 자신이 주님이 되어 아파하고 탄식하며, 안수하는 자신의 손이 못자국난 주님의 손이라고 하고,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북한을 다니고, 영적정부의 대통령을 세우는 권세가 임한다고 한다.

이렇듯 신사도계열 교회들이 보이는 문제는 신앙인조차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심각하고 비상식적 양태를 띄고 있다. 톰 스타이프는 빈야드 운동에 동참하던 시절 신사도운동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신사도운동이 ‘예언가’와 ‘사도’ 직임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신선했다. 자신의 교회에는 이미 목사, 복음전도자, 교사가 있었지만 예언가·사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과 접촉하며 그곳의 예언가·사도들로부터 예언 받기를 수차례, 점점 이들은 예언가들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과거와 행적을 알아맞히는 모습에 진정한 하나님의 예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도 점점 예언가에 의존하며 그가 시키는 일은 모두 복종하는 식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꿈 얘기, 몸에 진동이 오고 떨리는 얘기, 어디가 떨리면 무슨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등의 온갖 잡다한 체험담으로 가득했다. 작은 노트에는 꿈에 나타난 현상이 빼곡이 기록돼 있었다. 그 꿈에 대한 해석과 예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이리저리 몰려 다녔다. 교회가 체험중심의 카오스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예언가들은 꿈이나 환상과 음성을 통해 교회 직원을 하루 아침에 퇴사시키는 등 깊숙이 관여하기 했다. 톰 스타이프는 뭔가 교회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회개하기 시작한다. 그는 1517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에 반박문을 올린 것처럼 거짓 사도 운동에서 벗어나 복음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성도들 중 일부는 떠났고 일부는 남았다. 그리고 공격이 시작됐다. 이 운동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죽이실 것이라는 저주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짓된 곳을 떠나 복음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전통적 목회를 추구하며 신실하게 목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빈야드와 신사도는 가짜 부흥운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Ⅲ. 결론
우리는 종교개혁가들의 보편교회에 대한 진술을 통해 특수하고 특별하게 선택받았으면서도 개별적 선택에 머물지 않고 공교회적 일치를 추구하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시대의, 모든 공간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특수하고 특별한 존재들이면서도 보편교회의 일원이라는 양면성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보편교회는 하나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져 있으며 보편교회의 사도성은 가톨릭처럼 특정 직분을 가진 특정 인물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성경적 가르침과 사도들과 초대교회와 교부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참된 교리적 전통에 있음을 불링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점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새것을 좋아한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성경과 초대교회의 사도와 그들이 전해준 바른 신앙을 토대로 정립한 정통신학과 교리를 따르는 것 자체가 언제나 새 것이고 가장 새로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런 전통을 구사도의 것으로, 2001년도부터 제2의 사도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제 신사도를 중심으로 교회가 재편돼야 한다는 신사도운동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신사도운동은 새로운 사도를 강조해 사실상 성경을 통해 세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둘째, 신사도운동은 새로운 사도를 세우고 그를 통해 교회 질서를 재편한다. 교회의 권력을 사도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됨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건강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전통적 교회질서를 파괴한다.

셋째, 청빈조차 ‘가난의 영’에 의한 것이라고 물리치고 대적해야 할 것으로 매도한다. 일터 사도를 통해 교회 안으로 부의 대이동이 온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헛된 한탕주의의 바람을 일으킨다.

넷째, 신사도운동은 직통계시·신비주의·표적에 치중해 교회 안에 성령의 은사를 빙자한 외적 표적 중심의 무질서와 혼돈을 일으킨다.

진정으로 사도적교회를 추구하려면 사도들이 보여준 외형적 기적·이적·표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세운 참 진리의 기둥과 터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고 그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참된 개혁이고 참된 사도적교회이다. 사도들이 가르쳤던 가장 중요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받은 교훈을 이어온 바르고 성경적인 정통신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사도적교회다.

이런 기준과 기초도 없이 전통적 교회관과 교회 질서를 ‘낡은 가죽부대’라고 폄하하며 신사도운동을 새가죽부대라고 하는 한 신사도운동은 새롭고 신선한 운동이 아니라 보편교회를 허무는 심각한 대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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