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가는 요한계시록 6강(6장, 8~9장, 16장)

‘짐승’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참교육 인·나팔·대접심판

2021-05-26     정윤석 기자

가장 하단에 PPT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도록 첨부했습니다(유료회원 전용)

참교육이란 말이 있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했을 때를 일컫는다. 인·나팔·대접 심판은 요즘 말로 하면 사탄, 짐승,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 하나님의 백성의 피를 흘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참교육이 실행되는 심판의 삼중주다.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을 모독(9:20~21)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를 죽인 자들이다(6:11, 16:5~6, 9, 11, 21). 진노의 3중주는 너무도 엄중하다(6:17). 인·나팔·대접심판의 장에서 상징적 용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일일이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오히려 인·나팔·대접 심판에서 우리가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1. 하나님은 왜 이토록 분노하고 계실까?

1) 계시록을 읽다보면 왜 이토록 하나님의 분노는 활화산 같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의 이유는 무엇일지부터 알아보자.

6:9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신원의 기도가 이유의 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8:3~4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합하여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10:20~21 회개하지 않음과 우상숭배 때문이다.

우상 숭배가 어떤 죄인지 신명기 32:16~17절을 통해 확인해 보자.

16:6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16:9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치 않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16:11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치 않았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하나님의 분노는 그분을 향한 신성모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피흘림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내 자식을 누군가 못 살게 구는 모습을 목도했다면, 공정하게 대하지 않고 차별을 한다면, 어느 부모인들 분노하지 않겠는가?

맹렬히 타는 불꽃같은 하나님의 분노를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보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훼방에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참 자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에 대한 짐승과 그의 선지자, 그의 표를 받은 자들의 처절한 학대에서 오는 분노다. 하나님의 이런 분노 표출은 계시록이 기록되던 시대를 살아가던 인류 역사상 가장 핍박받는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오늘날 짐승의 권세에 눌려 있는 핍박받는 세계의 성도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준다.

2) 모든 인·나팔·대접 심판의 최종 심판권자와 결제자는 하나님이시다.

인 심판의 근본은 어린양이시다(6:1). 나팔 심판의 근원지도 하나님 앞의 일곱 천사에 의해서 시작된다(8:2). 마지막 심판인 대접심판도 네 생물에 의해 시작한다(15:7). 모두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마무리하신다.

2. 인·나팔·대접 심판을 받는 대상과 제외되는 대상은 누구인가?

2-1. 심판 대상을 먼저 찾아보자.

6:15 땅의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자들, 모든 종과 자유인.

8:7 땅, 수목

8:8~10 큰 산, 바다, 생명 가진 피조물, 배들

8:10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

8:12 해·달·별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어두워짐.

9:4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

16:2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16:6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자들

16:10 짐승의 왕좌

16:17 큰 성, 만국의 성, 큰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다.

2-2. 제외되는 대상:

9:4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

2-3. 심판 대상과 제외 대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장기판을 마무리하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를 완전히 외통수로 몰아 넣어 장을 부르는 방법, 또 하나는 서로 비기기로 합의하는 방법, 셋째는 장기판을 뒤집어 엎어 버려 소위 ‘파토’를 내는 방법이다. 종종 요한계시록의 인·나팔·대접 심판에 대해 우리는 장기판을 뒤집어 엎는 하나님을 연상할 때가 많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런 하나님을 그리지 않는다(톰라이트. 요한계시록. 100 참고). 어쩌면 요한계시록의 모습은 첫 번째에 해당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1) 하나님의 심판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16:2)을 대상으로 한다.

2)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사람들이다(16:6).

3)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돌리지 않은 사람들이다(16:9).

4)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다(16:11).

인·나팔·대접 심판의 성격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훼방하고 모독하는 자들을 향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많은 기회를 주셨음에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그분을 따르지 않기로 마지막까지 작심하고 결단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뿐 아니라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그것에 취한 자들이다. 이에 그대로 보응하신다. 성도들은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계 16:5절을 읽어보자.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2-4. 나 대신 싸워준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나 대신 싸움을 막아선 사람을 아는가? 하나님의 인·나팔·대접 심판은 대리전의 모습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권세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항하는 약해 보이는 그리스도인들, 그들에게 순교를 당하며 피를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시는 모습이 인·나팔·대접 심판에 담겨 있다.

2-5.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지 않고 더뎌 보이기도 한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6:10~11).

인·나팔·대접심판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싸울 대상의 심판이 결국 하나님께 있음을,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그 원수 갚음은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뤄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시간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다. 사람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다.

2-6. 그렇다면 성도들은 이런 인·나팔·대접의 심판의 때에 제외가 되니 늘 꿀을 빨고 있을까?
아니다. 또다른 측면의 환난과 고난이 우리에게 있다. 이미 일곱교회에서 그 장면을 봤다. 서머나교회에 하신 말씀 2:10을 보자.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2:13절도 보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크리스천들이 인·나팔·대접 재앙에서 예외가 되는 이유는 그들은 이미 인·나팔·대접 재앙과 같은 엄혹한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재앙에서 제외된다고 재앙으로 보이는 사건, 사고가 완전히 없는 세상에서 사는 건 아니다. 이미 그런 재앙과 심판이 있었음에도, 순교의 아픔과 고난을 처절하게 당했음에도 성경은 그것을 인나팔대접 심판에 넣지 않고 짐승으로부터 받는 고난과 핍박으로 보며 그것을 ‘진정한 안식’으로 가는 과정으로 본다. 성도에게는 성도 몫의 고난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은 결코 ‘심판’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건 성도들을 견고케하고 더 발돋음하게 하는 시험 또는 징계이다.

약 1:2~8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요 5:24절도 읽어보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인·나팔·대접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과 훈련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에 빠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교정과 훈련의 과정이다. 종말적 관점에서 기독교 신자는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간다. 이 신앙을 갖고 있다면 인·나팔·대접 심판을 대하며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참고도서
톰라이트. 요한계시록(IVP)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이레서원)
김추성.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이레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