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영 목사의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을 주의하라-마지막회-

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유튜브 채널 ‘영원한 복음’ 최호영 목사(5편) - 비밀 휴거

2021-04-21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유튜브 채널 영원한복음의 썸네일

1. 최호영 목사에 대한 성서적 비평

최호형 목사는 2027년 9월 23일에 공중 재림과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자이다. 여기에 나팔절 휴거설까지 도입하여 9월 23일이라는 날짜를 ‘그 날’로 굳힌다. 2027년 나팔절 날짜(유대력 7월 1일)는 현대인이 사용하는 달력상 2027년 9월 23일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재림의 날짜를 못 박는 이러한 시도는 성경적 명분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날에 휴거 일어난다고 결정하고 그 휴거를 ‘비밀 휴거’라고까지 이름 지어 명명한다. 더 나아가 그 비밀 휴거에 두 가지 단서까지 곁들인다. 그 단서는 휴거 날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휴거가 비밀 휴거이며, 반대로 휴거 날짜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 휴거가 비밀 휴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2027년 9월 23일이 그 휴거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휴거는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이 날짜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갑작스러운 휴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이 성경적이라며 데살로니가전서 5:2, 마태복음 24:27, 요한계시록 3:3을 제시한다. 과연 이 구절들이 최호영 목사의 휴거론을 입증할 수 있을까?

데살로니가전서 5:2의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에서 ‘도둑같이 이르다’는 표현은 도둑이 사람들이 방심하는 밤에 예고도 없이 침입하는 것처럼, 주의 날도 이와 유사하게 불시에 도래한다는 의미를 전해준다. 바울은 재림의 이러한 성격 곧 재림의 ‘불예측성’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잘 알고 있다고 전한다. 바울은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하여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고 한 이유(살전 5:1)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 들을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히 주지시켰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휴거와 무관하며, 휴거 날짜의 인지 여부에 따라 비밀 휴거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는 그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은 재림 날짜를 특정 연도와 날짜로 한정하는 시한부 종말론을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4:27의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에서 인자의 임함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시에 번쩍이는 번개에 비유한 이유는 공개적으로 임하는 재림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 재림 주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며 몰려다닐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마 24:26).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재림할 때에는 순식간에 모든 인류가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즉 번개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이 자신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재림의 성격이 ‘비밀’이 아닌 ‘공개’에 있음을 보여준다. 최호영 목사가 인용한 마태복음 24:27은 자신이 가르친 예언의 말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따라 재림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그 어떠한 단서도 찾을 길이 없다.

요한계시록 3:3의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에서 ‘도둑같이 이르다’의 표현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평가받은 사데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재림의 돌발성’이 강조된 묘사이다. 주의 재림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돌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하는 사데교회에게는 비할 수 없는 적절한 선포이다. 요한계시록 3:3은 그렇게 임하는 재림에 처하지 않을 방법으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한 후 ‘회개’할 것을 제시한다. 재림의 날짜를 아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는 것이 안정적으로 재림을 맞이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최호영 목사의 휴거론에 그 어떠한 응답도 주지 않는다. 그가 인용한 세 구절은 비밀 휴거에 대한 그 어떠한 서술도 하고 있지 않다. 이 구절들은 재림의 ‘불예측성’, ‘돌발성’, ‘공개성’을 나타낼 뿐, 재림의 날짜를 인지하는 수준에 따라 정해지는 휴거의 성격을 결코 가르치고 있지 않다.

최호영 목사는 이번에는 누가복음 17:26-28을 제시하며 하나님이 노아와 롯에게 하신 것처럼 자신의 종들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미리 알았던 노아의 가족과 룻의 가족이 구원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자신의 계획을 자신의 종에게 미리 알려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갑작스러운 심판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분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의 그 종은 누구일까? 당연히 최호영 목사이다. 이름은 명시하지 않지만 암암리에 그가 자기임을 매우 교묘히 암시한다. 최호영 목사는 ‘라스트 타임라인’, ‘10년 프로젝트’, ‘휴거와 함께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 날과 그 때’, ‘세상을 향한 경고’, ‘하나님의 시간표 마지막 10년’ 등의 제목의 방송에서 2027년 9월 23일에 재림과 휴거가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바탕 위에 또 다른 종말설들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의 멸망 계획을 들었던 노아를 활용한다. 그리고 소돔성의 심판 계획을 천사로부터 전달받은 롯까지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예를 하나의 규약이나 원리로 간주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이 마지막에 이루실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는 종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경과 오늘날 사이에 존재하는 2천년 이상의 시간적 간격을 이를 이렇게 간단히 뛰어 넘어버리는 해석과 적용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누가복음 17:26에서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노아의 때에 된 것이 무엇이 길래 인자의 때와 비교되고 있는가? 노아의 때의 된 일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눅 17:27)이었다. 여기서 먹다, 마시다, 장가가다, 시집가다는 동사는 모두 미완료 과거시제이다. 이는 그들의 삶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듣고도 안일하고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고 계속 이전과 동일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롯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롯을 통해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도 그들은 육욕적인 일상에만 취해 있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다시 올 때에도 그러한 현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고 그것을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이 은밀히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누누이 성경을 통해 경고하고 있지만 인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일상에 취해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며 지낼 것이라는 것이다. 즉 노아의 때에 ‘된 일’이 인자의 때에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호영 목사는 이러한 의미를 가진 본문을 자기 입맛대로 왜곡하여 초점을 흐린다. 즉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고 전한 노아와 롯을 부각하여 이를 하나님을 계획을 미리 알고 전파할, 마지막 시대에 등장할 메신저로 연결한다. 의도된 오역이다. 그 메신저를 암암리에 누구와 동일시하는 지를 살피면 어렵지 않게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성경을 호도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최호영 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데살로니가전서 5:3을 요한계시록 12:2에 연결하여 자신의 종말설을 계속 전개해 나간다. 그는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는 비밀 휴거를 말하는 것이며,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계 12:2)를 마지막 때의 교회가 휴거되기 전에 해산의 고통을 당하는 시기가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다며 이 두 구절을 연관 짓는다. 과연 이 두 구절이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데살로니가전서 5:3은 심판은 불신자들에게 예기치 못하는 순간, 매우 고통스럽게, 그리고 피할 수 없게 임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바울은 이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자가 겪는 산통을 비유로 든다. 바울은 임신한 여자라면 누구라도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듯이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어느 누구 예외 없이 심판의 그날에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구절은 휴거와 무관하다. 이어서 최호영 목사는 데살로니가 5:3의 상황을 옮겨 놓은 말씀이 요한계시록 12:2이며 이 구절에서 ‘아이’는 이방교회이며, 이 구절이 이방교회가 휴거되기 전, 해산의 고통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 구절이 휴거 전에 있을 ‘고난’을 다루고 있는가?

사도 요한은 아이를 배고 있는 한 여자가 해산의 진통으로 울고 있는 장면을 본다. 여기서 ‘아이’로 번역된 ‘가스트리’(γαστρὶ)는 자궁이란 뜻으로, 여자가 자궁 속에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는 이 아이가 뱃속에 있는 실제 아이 이며, 이 아이를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는 여자가 낳은 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계 12:5)라는 표현에서 드러난다. 이는 전 세계와 우주를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표현이다. 또 하나의 단서는 이 아이가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라가고 붉은 용이 땅으로 내어 쫒긴 후 하늘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는 송영이 울려 퍼졌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가 보좌 앞에 올라갔다는 묘사는 이 아이가 무사히 탄생되고, 하늘로 승천함을 나타낸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 승천 사건을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탄생과 연결시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 속에, 모든 승리적인 역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지상의 사명을 완수하고 승천하셨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 하늘의 송영은 지상의 사역을 완수하고 승천한 아이를 향한 송영이다. 이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방교회가 아니다.

사도 요한은 붉은 용이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고 하는 장면(계 12:3-4)을 통해 아기 예수 탄생 시에 그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의 흉계를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사도 요한은 이 장면을 통해서 초기교회가 당하고 있는 고난의 배후에 예수의 출생 때부터 그를 저지하려 했던 붉은 용이 있음을 보여 준다. 붉은 용은 곧 사탄이다(계 12:9; 20:2). 고난 받는 초대교회는 이 장면을 통해 자신들이 받는 박해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계 12:5)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로 자신들이 결국 이 박해를 이겨내고 승리하게 될 것을 조망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12장은 휴거와 무관하며, 휴거 전 환란 기간과도 상관없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12:2은 데살로니가 5:3과도 아무 연관이 없다. 이 두 구절에 등장하는 ‘산모의 산통’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최호영 목사는 성경에서 ‘해산의 고통’을 표현하는 구절들을 찾아서 나란히 놓은 뒤, 그 이미지를 지렛대 삼아 각 구절들이 마치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이 가장한다. 그리고 그 구절의 의미를 비약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바꾸어버린다. 사이비의 전형이다.

그러한 최호영 목사가 한국교회를 비웃고 조롱한다. 종종 목회자들을 싸잡아 조롱하기도 한다. 그는 요한계시록 12:2의 아이를 설명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날린다. “이 아이가 이방교회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아이를 누구로 믿어요? 다 예수님이라고 알고 있다는 말이에요. ···누가 가르쳤어요? 목사님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쏙 빼 놓고 뭘 믿는 거야. ···그래서 예언을 공부하는거고. 그렇게 연구했더니 하나님이 답을 주셨어요. ···이것이 어려우면 말을 안 해. 정말 초등학생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야.”

심지어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를 마귀 새끼이며, 세속화된 에굽 교회이므로, 죽지 않고 살기 위해 탈출하라고까지 촉구한다. “계시록만큼 쉽고 재미있는 책이 없단 말이에요. ···누가 이렇게 금서를 만들어 놓았을까요? 계시록을. 당연히 사탄 마귀죠. 누구 새끼에요? 여러분 정신 차리셔야 되요 ···거기에서 나오셔야 되는 거에요” “교회가 세속화 된 거죠. 그래서 에굽 교회라고 얘기 하는 거에요. 영적인 에굽 교회. 그래서 거기에서 출애굽하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거기 계속 있으면 죽으니까.”

심지어 그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신학교에까지 덮어씌운다. “문제가 아주 심각한 거에요. ···신학교에서부터 아예 안 가르쳐요. 제가 신학교에서 다니엘서, 계시록을 배워 본적이 없어요.” 그는 자기의 경험을 활용하여 재림의 날짜를 알 수 있는 책인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를 의도적으로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다고 불평한다. 과연 그가 수많은 신학대학 및 신학교의 커리큘럼을 일일이 확인해 봤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를 가르치지 않는 신학교가 있을까? 도대체 그는 어디에서 공부를 하였을까? 도대체 그는 정상적인 신학 과정을 밟은 사람일까? 이러한 멘트에 댓글을 남긴 수많은 구독자들은 하나같이 아멘과 감사를 연발한다. 매우 정직하지 못하고, 너무나 속이 보이고, 충분히 의도적인 이러한 사설들에 주입되어 있을 그의 방송 구독자들이 교회로 돌아가 무슨 폐를 끼칠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교회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그러나 교회의 근본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골 1:18)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다음은 유튜브 영원한 복음 채널에 ‘비밀휴거’란 제목으로 2020년 7월 6일 올라간 최호영 목사의 주장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 5:2). ···도둑같이 온다는 자체가 비밀이에요. ···그래서 비밀휴거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이 말씀은 번개가 언제 칠지 모른다. 그래서 비밀 휴거가 맞는 거에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마 24:36) ···예수님이 오는 날을 아무도 모르게 해 놓은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비밀 휴거가 맞는 거에요.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계 3:3). 아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은 비밀 휴거죠. ···하지만 일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도둑같이 안 오니까 비밀 휴거가 아니죠.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들을, 진리의 말씀들을, 이 마지막 시대의 말씀들을 다 알고 있다는 얘기에요. ···이 마지막 때의 예언의 말씀들을 깨닫지 않고서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어요. ···이 예언의 말씀을 쏙 빼 놓고 뭘 믿는 거야. ···그래서 예언을 공부하는 거고. 그렇게 연구했더니 하나님이 답을 주셨어요. ···이것이 어려우면 말을 안 해. 정말 초등학생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야. 문제가 아주 심각한 거에요. ···신학교에서부터 아예 안 가르쳐요. 제가 신학교에서 다니엘서, 계시록을 배워 본적이 없어요. ···“너희는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한 즉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리라”(살전 5:4). ···여기서 믿지 않은 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포함되는 거에요. ···마지막 때 어떤 일이 진행될 거를 알아야 된다는 거에요. 이걸 모르면 믿을 수 없잖아요. ···계시록 만큼 쉽고 재미있는 책이 없단 말이에요. ···누가 이렇게 금서를 만들어 놓았을까요 계시록을? 당연히 사탄 마귀죠. 누구 새끼에요? 여러분 정신 차리셔야 되요 ···거기에서 나오셔야 되는 거에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니라”(눅 17:26).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갑자기 오는 거에요. 하지만 노아처럼 준비하고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올 수 없죠. ···롯의 때도 갑자기 왔죠?(눅 17:28) 누구만 알았어요. 롯과 롯의 가족만 알았어요.

···불과 유황이 쏟아져서 망할 거니까 빨리 도망쳐야 된다 알려 주었어요.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 예수님 오실 때에 하나님의 종들에게 안 알려주실까요? ···교회가 세속화 된거죠. 그래서 에굽 교회라고 얘기 하는 거에요. 영적인 에굽 교회. 그래서 거기에서 출애굽하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거기 계속 있으면 죽으니까.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평안하고 안전할 때에 갑자기 온다는 말이에요. 해산의 고통처럼, 그러기 때문에 비밀 휴거라고 말씀드리는 거에요. ···그런데 계시록 12장에 이 때 상황을 아주 옮겨 놓은 말씀이 있죠. ···“그녀가 아이를 베어 해산의 고통을 겪는 중에 울부 짖으며 출산하려고 진통을 겪더라”(계 12:2). ···우리가 휴거되기 전에 이런 해산의 고통의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에요. ···이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당하다가 출산을 하죠. 그래서 그 아이가 채여 올라가죠. 이 사건이 마지막 때 휴거 사건이란 말이에요. ···이 아이가 이방교회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아이를 누구로 믿어요? 다 예수님이라고 알고 있다는 말이에요. ···누가 가르쳤어요? 목사님들이(최호영, 2020년 7월 6일 설교, “비밀 휴거” https://www .youtube. com).

‘비밀 휴거’에 대한 최호영 목사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데살로니가전서 5:2, 마태복음 24:27, 요한계시록 3:3은 비밀 휴거에 대해 말한다.

* 깨어 있지 못한 자에게는 비밀 휴거지만 깨어있는 성도에게는 비밀 휴거가 아니다.

* 누가복음 17:26-28은 마지막 때의 일을 하나님의 종들에게 알려주심을 말한다.

* 데살로니가전서 5:3과 요한계시록 12:2은 휴거되기 전 해산의 고통이 있음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