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성경적인 베리칩과 666 바로알기

[칼럼]그리스도의 재림은 불안·공포 아닌 기쁨과 소망

2013-10-31     이정훈

글. 이정훈 전도사(대전종교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수십 년 전 처음 상품에 바코드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666이 바로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3장 17-18절에 나오는 짐승의 표라 하여 거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92년 당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다미선교회)라는 책의 영향으로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이 벌어졌고 Y2K라는 20세기말에도 시대적인 불안과 희망의 시대상이 반영된 종말론이 기승을 부렸다.

▲ 이정훈 전도사(대전종교문제연구소 사무총장)

당시 일부 교회에서는 짐승의 표인 ‘바코드’를 받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가르치기도 하여 실제로 어떤 이는 신용카드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주변을 살펴보면 모든 물건에 바코드가 없는 것이 없다. 처음 염려와는 다르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기우(杞憂)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바코드는 애초부터 문명의 이기이지 짐승의 표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도 바코드 신드롬의 연장 선상에서 베리칩(식별용 반도체, verification + chip = Verichip)의 문제가 교회 성도나 일반 사람들의 사회적 이슈로 크게 대두되고 있다. ‘베리칩=666’이라는 소문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막연한 염려로 불안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베리칩 논란은 몇 달 전 카카오톡 문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회자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건강보험개혁법' 관련하여 인체에 삽입 가능한 무선식별장치(RFID)를 시술한다는 소문에서 연유한 듯하다. 이 칩은 사람 몸속에 심을 수 있도록 쌀알 만한 크기의 캡슐 정도로 주사기를 통해 간단하게 인체에 주입하여 신용카드, 신분증 여권 등을 대신하여 다용도로 사용될 것이라 한다.

사실 베리칩이 문제가 된다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역시 사용하면 안 된다. 스마트폰은 인체에 삽입만 하지 않을 뿐 한 개인의 위치 정보는 물론 훌륭한 매매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베리칩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보아야 할 것을, 잘못된 신앙의 눈으로 왜곡해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예를 들어 애완견의 분실을 우려해서 베리칩을 삽입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도 이는 동물병원에서 실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완견이 짐승의 표 666을 받은 건가?

그러나 유튜브나 인터넷 상에는 ‘짐승의 표=베리칩’이라고 왜곡하는 수많은 영상이나 자료들에 기독교인들의 눈과 귀가 더 쏠리는 현상을 부인하지 못한다.

계시록의 짐승의 표 666은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바로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를 믿고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신앙을 이어오는데 박해와 핍박으로 배도의 상황에 처한 당시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도 요한이 쓴 서신으로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바코드와 베리칩이 계시록의 짐승의 표인 666으로 확대하여 적용하기 어렵다. 예장 합동측은 2013년 98회 총회에서 “베리칩을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표’로 간주하고 그것을 받는 자는 구원에서 끊어진다는 주장은 해당 본문에 대한 오해와 광신 이데올로기, 그리고 주관적인 상상력에 지배를 받은 억지스러운 해석의 결과”라며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는 주장은 허황된 주장이며 개인이나 단체는 배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 사진제공 대전종교문제연구소

그러나 지금도 대전지역에는 무차별적으로 종말론과 관련한 베리칩 관련 전단지가 뿌려지고 있다. 주로 이단 사이비 단체들이 종말과 시대 징조를 강조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삼아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다라고 강조해오기도 했다. 베리칩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근본적 의도들을 성도들은 경계하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금도 베리칩을 주장하는 종말론 단체에 빠져 가출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날짜만 정하지 않을 뿐 시한부종말론과 다를바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기독교는 항상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종말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성실하게 살아가며 선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믿는 이로 하여금 불안과 공포가 아닌 기쁨과 소망이다. 참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