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25 12:03 (토)
너희들이 쓰는 복음이란 글자가 아깝다
상태바
너희들이 쓰는 복음이란 글자가 아깝다
  • 정윤석
  • 승인 2009.01.01 2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장실을 사찰에서는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근심을 푸는 곳이란 의미다. 그러나 화장실은 영화에서는 근심을 푸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 화장실은 협박과 살생과 공포의 장소로 곧잘 애용된다. 영화 <카피켓>에서는 연쇄살인범이 여형사를 상대로 화장실에서 살인 게임을 벌인다. <위트니스>에서는 한 어린이가 화장실에서 살인 장면을 목격하면서 숨죽이고 숨어 있었다. <친구>에서 거대한 패싸움이 시작되던 장소도 화장실이다.

영화속에서 화장실은 광기의 살인이 벌어지거나 그것을 유일하게 목격한 목격자가 숨죽이며 숨어 있는 장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난 사실 화장실에 가면 약간 긴장한다. 영화의 영향도 없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가장 자세가 안 나오는 곳이 화장실이란 생각도 있어서다. 큰일을 보든 작은 일을 보든 자세가 안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이단 사이비 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한 사람의 증인으로서 법정에 출석했던 적이 있다. 법정에서 나는 피고를 위해 30여 분간 증언을 했다. 증언을 마치자 판사는 법정에서의 퇴정을 요구했다. 재판이 속개되는 가운데 나는 법정 바깥으로 나왔다. 이 때 이단사이비 단체의 신도 두 명이 따라 나왔다. 검은 색 잠바 차림에 양복 바지를 입고 있었고 덩치도 좋아 보였다.

법정에서 긴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볼일이 급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따라나왔던 사람 중 하나가 화장실로까지 같이 들어왔다. ‘쉬’를 하는데 옆에서 ‘쉬’하는 척을 하던 그가 갑자기 ‘칵! 퉤!!’하고 큰 소리를 내며 변기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데 조심해서 살아야지?”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마치 혼잣말하듯 뇌까렸다. 어이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 하십니까?” 그랬더니 그는 “너한테 얘기 안했다!”고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리고는 “밤길 조심해라!”는 말을 이어갔다. 그 말을 뒤로 흘리고 화장실을 나가려고 하자 그는 내 앞을 가로 막아서며 “이걸 그냥!”하며 주먹을 휘두를 듯이 얼굴에 대고 협박했다. “또 증언하면 죽는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사실 그 순간에도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그 사람이 법원 화장실에서 나를 어떻게야 하겠는가? 제발 그래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이러지 마세요!”라는 말만하고 화장실을 나와 버렸다. 더 이상 그 사람은 뒤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리 권력많고 오만한 사람이라도 화장실에 가면 돈없고 힘없고 백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엉덩이를 까고 배설해야 한다. 그래서 화장실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배설의 욕구 본색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소가 되는 걸까? 명색이 종교인이라던 그 사람.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조폭처럼 돌변하더라. ㅋㅋㅋ 그리고 ‘너는 목숨이 여러 개가 되느냐?’며 주먹을 들이대고 협박을 하더라. 이단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 그게 너희들의 본 모습이야! 땡큐~!’ 그들 단체 명에 들어간 ‘복음’이라는 글자가 진심으로 아깝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