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8 12:38 (목)
"사람 내면 보면서 감싸주는 사역 필요"
상태바
"사람 내면 보면서 감싸주는 사역 필요"
  • 정윤석
  • 승인 2006.03.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적 치유' 사역자 밴쿠버 온누리교회 구자형 목사

캐나다 밴쿠버 교회연합 홍보 담당이자 내적치유 사역 전문가인 구자형 목사(밴쿠버 온누리교회 담임)가 최근 방한해서 ‘내적 치유’의 중요성과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구 목사가 3월 23일 안산 상록교회에서 강연한 내용과 기자와 대화한 내용을 1문 1답 형식으로 꾸몄다.

내적치유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먼저 내가 내적치유를 하며 가장 즐겨 부르는 찬양을 소개하고 싶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붙드시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라는 찬양이다. 우리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찬양이라는 생각 때문에 즐겨 부른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치유를 받을 수 있다.

큰일은 큰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큰 교회가 큰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 그러면서도 크신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큰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큰 사람을 쓰시는 분이라면 모세가 한창 잘 나갈 때 사용해야 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가 광야에서 방황할 때 80세가 돼서야 사용하신다. 요셉도 한참 낮아져서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을 때 사용하셨다. 하나님이 온전히 사용하시는 사람은 온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주님의 생명수가 사람의 마음속에 흐르면 온 세상이 바뀌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파이프가 고장이 난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수를 공급받아서 살아야 할 인간들인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파이프 라인에 ‘동맥경화’가 생긴 핏줄처럼 문제가 생겼다. 이 파이프를 수리하는 과정이 내적치유라고 말하고 싶다.

파이프에 문제가 생겼다니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웰빙’의 유행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의 소위 ‘껍데기’는 좋아지고 있다. 여기에 몸짱, 얼짱 신드롬도 한몫하고 있다. 영적으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건강한 편이다. 영성운동도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서와 감정은 여전히 상처받은 상태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우고 늘 어머니를 폭행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성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마저도 육신의 아버지라는 렌즈를 통해서 바라본다. 하나님 아버지도 언젠가 나를 배신하고 고통을 주실 무서운 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처가 있기 때문에 ‘아멘’을 천번 외쳐도 신앙생활에 발전이 없다.

나에게도 아픔이 있다. 내가 태어난 지 9개월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다. ‘무’ 그 자체다. 아버지란 단어는 나를 그냥 통과해 버린다. 너무도 도움이 필요했던 그 순간에 아버지는 안 계셨다. 아무리 부탁해도 들어주시지 않는 아버지. 그 망령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도 중단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화할 수 없는 하나님, 기도가 안 되니 기도응답도 받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가?
먼저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과거의 기독교는 고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예수를 믿으면 핍박이 닥칠 것을 고스란히 알고 믿었고 믿는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줬다. 인스턴트 사회에서는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가르친다. 그래야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 십자가의 고난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아, 다른 교회 가니까 십자가를 안 져도 되고, 고난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치는데 이 교회는 왜 어려운 얘기만 하냐”며 다른 교회로 떠난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기준을 설정하면 시작부터 잘못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의 마음과 감정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 되는 것만 보면서 달려가기 바쁜 세상이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돈이 안 되는 순위로 따지자면 1순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어야 교회를 유지하고 예배당도 건축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져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바로 갖고 내면세계를 바라보고 감싸주는 사역에 교회가 투자해야 한다.

치유를 위해 90:10의 원칙을 적용해보라. 어떤 관계에서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을 때 그 원인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려운 말, 행동을 해서 겪은 것은 전체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과거의 원인 때문에 비롯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년생들은 욕구 불만이 많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누리기 전에 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5년 동안 딸 넷을 낳은 집안의 여성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집안에서 막내만 빼고 모두 피해의식·열등의식·욕구불만을 갖고 있었다. 부모의 사랑을 동생이 독차지해서 가져갔다는 상처가 어렸을 적부터 내재돼 있는 경우다. 자신이 받았던 과거의 아픔들을 아내나 남편에게 모두 털어 놓으라는 것이다. 그 때 얘기를 듣는 상대는 무조건 맞장구를 치면서 “여보, 그 때 당신 마음은 어땠어?”라며 얘기하고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눈물이 나면 참지말고 울면서 함께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어야 한다. 이렇게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얘기하고 드러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예수님의 치유의 은총이 임하실 것이다.

   ▲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내적치유세미나를 진행하는 구자형 목사
모든 사람에게 내적치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다 치유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나는 상처가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모든 사람이 다 치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과거의 상처가 있고 그 아픔과 상처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있다. 치유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가 건강한 파이프 라인을 통해 인생 속에 스며 들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내적치유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예수 믿으면, 갈수록 기뻐지고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서 그 반대현상이 나타났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쉬기보다는 점점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했다. 둘의 사이가 너무 날카로워졌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부부에게서 도대체 왜 기쁨이 사라지고 서로에 대해 반목하는지 너무 힘들었다. 치유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내적 치유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녀가 우상이 돼 있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으면 부모를 먼저 공경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크리스천들도 무지하다. 성경에는 부모님을 통해서만 주기로 작정하신 복이 있다. 부모 공경이 뭔가? 그것은 ‘부모님과 옛날 얘기하면서 그분들의 얘기를 듣고 대화하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 의사소통하듯이 대화하라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속 썩일 때 많이 힘들었지?”, “엄마, 젊었을 때 인기 많았을 거 같아!” 아들·딸들이 부모가 과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속삭여야 한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렸을 때 얘기를 물어보면 된다. 대화하는 가정,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조부모와 부모의 끈끈한 모습을 보면서 ‘이 가정에 태어난 것이 행복해’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사랑의 전 단계는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의 평범한 행동에도 화를 내면 그 사람만이 겪은 과거의 독특한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줘야 한다.

우리들의 상처가 클까, 부모님들의 상처가 클까? 부모 대에 비하면 우리들의 상처는 '새발의 피'다. 부모들은 일제 치하를 지나서 6·25를 겪은 세대들이 많다. 1960년대에는 초근목피하며 어렵게 살았다. 1970년대에 군사정권에 의해 억압됐던 시대를 보냈다. 시어머니에게 가서, 장인·장모에게 가서 ‘우리 남편, 아내를 이렇게까지 길러 주신 것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라. 그리고 부모 세대들을 불쌍히 여기면 치유는 이때부터 일어나게 된다.

어떤 여 집사의 외동딸이 시집을 갔다. 장군같은 시어머니를 만났다. 국회의원 선거운동도 나가는 분이었다. 외동딸이 시집에서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그런데도 내적치유를 받으면서 시어머니가 받았을 고난의 과거가 이해가 됐다.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제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요.” 그 한마디에 시어머니가 속된 말로 ‘뿅’ 갔다.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달라져 보였다고 한다. 온 동네를 다니며 며느리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 말한마디에 가정은 천국이 된 것이다.

   ▲ 연변 과기대에서의 내적치유세미나
한국사회의 이혼률이 무척이나 높다. 부부가 서로 화목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여자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남자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에게도 사랑한다는 고백이 필요한 줄 알고 “사랑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그보다 “당신이 믿음직스러워!” 이 말 한마디에 남자는 힘을 얻는다. 남편에게 이 말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으면 눈을 보지 않고 돌아서서 말해도 통한다. 남자는 그렇게 단순하다.

반면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여자는 하루가 행복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얘기할 때 반드시 눈을 여자에게 맞추며 얼굴 표정까지 ‘사랑스럽게’ 해서 말해야 한다. 남녀는 그렇게 다르다.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배워야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그릇에 비유하면 남자들은 길가에 내놓은 장독대 같고 여자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내 놓는 ‘본 차이나’ 같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많이 가르쳐 줘야 한다. 앞만 보고 가는 게 남자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말해줘야 안다.

“여보, 당신이 쓰레기 버려주면 나는 무척 행복해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그러면 남자는 그 제서야 당신이 행복해 하는 것을 알고 쓰레기를 버린다. 알아서 해 주는 남자는 그리 흔치 않다.

생리 중일 때는 생리 날짜도 달력에 표시하라. “이 날에는 건드리지 말것, 무조건 내 말을 들을 것”이라고 쓰고 완경기(일명 폐경기)가 가까운 사람들은 그 날이 오면 “접근 금지”라고 써 놓아라. 대화를 해서 남자들에게 여자들의 기분이 어떤지를 가르쳐 줘야 한다. 그러면 남자들은 그 제서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때 지혜로운 남자들은 점수를 딸 수 있다. “얘들아 오늘은 엄마가 좀 힘든 날이야. 나랑 산책하고 올까?”라며 그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아빠가 되라.

자녀들의 치유와 관련해서도 한 말씀해 달라.
인간 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잠재의식이다. 치유 방법의 첫 번째는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은 100% 자기 때문에 부모가 싸운다는 죄책감을 갖는다. 부모가 이혼하면 ‘나도 언젠가는 이혼을 할 것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부모도 통과를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견뎌내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이혼을 쉽게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는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이런 낮은 자존감은 뱃속에서부터 생기기도 한다. 뱃속의 아이가 부모의 다툼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할 수 있을까? 여자들은 이해할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면 뱃속의 아이가 뭉치는 느낌을 받는다. 기분이 좋아지면 아기가 뱃속에서 뛰어논다. 우리 조상들은 스승이 10년을 가르치는 것이 엄마가 뱃속의 아기를 열 달 가르치느니만 못하고 엄마가 열 달 가르치는 것이 부부가 하루 행복하게 교합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했다. 엄마의 감정을 뱃속의 아이가 다 받아들인다는 것을 크리스천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뱃속에서 부부싸움을 많이 겪고 나온 아이는 부모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 낙태도 마찬가지다. 낙태를 하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태어난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하고 기대야 하고 의지해야 할 대상인 자신의 엄마로부터 버림 받을 뻔한 아이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에 상처가 생긴다. 이것은 그 사람이 성공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성공을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내면세계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뜻이다.

딸이 줄줄이 태어난 집의 여자들은 남성적인 성향이 강하다. 엄마가 아이를 잉태했을 때 생각한다. ‘이번에는 남자아이였으면···.’ 이 마음을 알아차린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은 남자로 살아야 겠다고 작정하고 태어난다. 이런 여자아이들은 굉장히 거칠고 결단력있고 과단성이 있다. 다른 여성이 못 갖는 남성다운 강함을 보인다. 엄마의 마음이 이런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이런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부부와 자녀간에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교환해야 한다. 여기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국내에서의 일정을 소개해 달라.
2월 23일 입국해서 여러 교회에서 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리고 3월 23일은 대전의 한 여성들의 쉼터에서 강연했고 3월 26일부터 29일까지는 목포의 새순교회에서 내적치유 세미나를 진행한다. 그 후에 잠시 출국했다가 5월에 다시 입국해서 국내에 내적치유 사역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문의 jhkoo929@yahoo.com ).

구 목사의 강의를 듣던 상록교회의 한 여 집사가 그녀의 딸 예섬(가명, 7)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예섬아 엄마가 미안해. 언니를 낳고 나서 둘째인 너를 뱄을 때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었어.” 예섬이가 때론 남자같이 과격한 언동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터였는데 구 목사의 강의를 듣다보니 그럴만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예섬이도 태중에서부터 '남자이기를 작정하고 태어난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여 집사가 7살 난 예섬이의 손을 끌어 품에 안았다. 예섬이가 엄마의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예섬이 눈에서 눈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엄마 지금은 어때? 지금도 아들이길 바래?” 예섬이가 품에 안기며 묻는다.

엄마가 눈물을 끌썽이며 대답했다. “아냐 예섬아. 엄마는 예섬이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예섬이는 엄마에게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딸이야.”

구 목사의 강의를 듣는 순간 모녀간에 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지며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