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원 전도사(37, 다니엘공동체)는 인터뷰를 하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남자는 신전도사가 처음이었다. 16년 동안 마약에 중독되어 흑암의 터널을 헤매다가 이제는 빠져나와 삶의 전환을 맞게 하신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 가슴에 겹도록 고마웠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에 거듭나고, 신학을 공부한 지금, 신전도사는 자신과 같이 '약' 때문에 고통당했던 사람을 돕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180。로 탈바꿈한 삶이 된 것이다.
신전도사는 고등학교 때 본드를 시작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6년 동안 안해 본 마약이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한 두 번을 제외하고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이 말을 하며 신전도사의 눈가에 회한이 스며든다. 그러나 결코 이 말은 자랑하고 싶어서 꺼낸 것이 아니다. '마약은 특정대상만 하는 것'이라는 사람들의 착각을 깨고 싶어서다.
"지금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계층, 연령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감호소나 구치소에 가서 강의를 하다보니 필로폰에 중독된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심지어 파주의 한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 17명이 약물에 집단 노출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어요."
이들은 모두 교회의 찬양단 멤버들인데다 중직자 자녀들이었다.
한 사람을 통해 무섭도록 빠르게 전염되는 전염병, 마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신전도사가 내세우는 치유의 첫 출발점은 오직 '은혜'다. 그는 교도소에서 마약사범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야! 예수쟁이들이 은혜라는 것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을 받고 나면 모든 사람이 예뻐 보이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 은혜라는 것을 받아야 해!"
같은 말이지만 마약 중독 경력이 있는 신전도사의 말이기에 더욱 힘이 실린다.
마약을 하게 되면 환청이 들리고, 의심증(의처, 의부증 등)을 갖게 되고 폭력(의심이 폭력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을 일삼게 된다. 그리고 최종 종착역은 무조건 자살이다.
신전도사도 이런 과정을 모두 거쳤다. 16년 간 마약을 달고 살며 눈썹, 머리털 할 것 없이 다 빠지고, 치아가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현재도 열 개 이상의 틀니를 하고 있다. 지금은 회복되었지만 성기능 장애도 있었다. '너 같은게 살면 뭐하냐?'며 '손목을 칼로 그어라!'는 소리도 들었다. 신전도사는 "의학에서는 그것을 환청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악령의 속삼임'"이라고 강조한다.
16년 간 눈물로 배후에서 기도하던 노모와 수배를 피해 도피생활을 하다가 찾아간 기도원에서 신앙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신전도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또한가지 방법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치유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신전도사가 2-3개월 전 구성한 <다니엘 공동체>는 이런 취지에서 사람들을 모아 함께 약물의 중독과 마약의 마수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모임이다. 현재 모인 사람은 15명. 이 중 5명의 손목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깊게 새겨져 있다. 손목의 핏줄과 인대가 끊길 정도로, 자해하라는 환청을 견디지 못하고 그었다가 생긴 자국이다.
"치유 공동체를 만들어야 해요. 우리도 쓰레기가 아니라 보람 있는 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거예요. 그래서 두레마을이나 음성 꽃동네처럼 가족에게까지 버림받고 소외된 마약 중독자들이 다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신전도사는 다니엘 공동체에서도 거침없이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야. 그러니까 우리같은 '똥물'같은 것들도 사랑하신단 말야." 다니엘 공동체는 또 한번 신전도사의 말에 눈물의 공동체 변한다. 신전도사 자신이 '울보 전도사'인데다 예배를 드리다가 누가 울면 15명의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 다 따라서 울기 때문이다. 우는 사람이 왜 우는지, 왜 울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눈물을 안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눈물 샘을 따라 '마약'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영원히 씻겨 나갈 것만 같다(신용원 전도사: 011-9054-7815).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