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5 15:18 (월)
‘다단계’가 교회 망친다
상태바
‘다단계’가 교회 망친다
  • 정윤석
  • 승인 2003.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원확보·선교” 명목 급속히 확산

 

‘다단계’가 교회에 깊숙이 침투, 공동체에 갈등요소로 작용하며 심각한 폐단을 낳고 있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교회의 재원 확보나 선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목회자들까지 다단계 판매에 나서는가 하면 교회의 임직을 맡은 중직자들이 구역조직을 다단계 사업에 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서울의 A교회는 K목사(44)가 다단계 업체의 사기행각과 연루돼 불구속 입건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다. K목사는 컴퓨터 화면으로 원어민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화상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다단계 방식의 영어화상교육업체와 관계를 맺으며 교인들과 동료 목회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돈도 벌고 하나님의 사업에 헌금도 하자며 교인들을 끌어들였다. 영어화상교육에 투자하면 원금의 두 배 가까운 수익은 물론이거니와 회원을 유치할 경우 실적에 따라 주당 최고 400만원의 배당금과 회사 매출 3%를 보장받는다고 구슬렸다. 이에 솔깃한 교인들은 너도나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주변의 동료 목회자들에게도 수시로 설득해서 다단계 어학업체에 끌어들였다. 이런 식으로 관여된 목사만 30명이고 1천여 명의 회원 중 반 수 이상이 교인들이었다.

결국 이 업체는 올 3월 시작해 5개월만에 투자비 명목으로 75억원을 챙겼지만 원어민과 대화할 수 있는 화상시스템 개발이 사기라는 것이 들통나면서 회장이 구속되고 K목사를 비롯한 9명이 사법처리되고 말았다.

제주도의 B교회는 교인들이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여러 다단계에 골고루 가입하면서 교회안에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다단계에 다니는 사람들이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네트워크 마케팅으로 돈을 많이 벌어 잘 사는데 우리는 너무 뒤떨어졌다”고 자극하자 돈을 벌겠다는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구역 조직은 다단계사업 설명회로 전락했고, 다단계간의 계파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구역예배가 시작되면 10분 정도는 기도회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구역안에서 어떤 다단계회사가 낫다느니, 어떤 사람은 얼마를 벌었다느니 하며 ‘돈 문제’가 교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어느 구역장이 어떤 다단계업체에 있는가도 영향을 미쳤다. 구역원들은 구역장들의 말을 듣고 A업체에 들어갔다가 다시 B업체가 낫다는 말을 들으면 다시 B업체로 옮겼다. 다단계 업체를 따라 ‘교인들 갈라먹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 C 목사는 다단계에 빠진 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고 다단계의 폐해에 대해 설명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빠가 내 꿈을 방해한다”는 원망의 소리뿐이었다. 자신의 성공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C목사는 “딸이 다단계에 빠져 동년배의 청년들이 꿈꾸는 정상적인 꿈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는 상태”라며 “건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허황한 꿈을 좇으며 교회 청년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마음 아파했다.

김희경 간사(YMCA 시민중계실)는 “교회는 이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단계가 빨리 침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다단계가 들어간 곳은 예외없이 교회가 순수성을 잃고 공동체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처음에는 ‘선교를 위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등 소박한 꿈으로 다단계를 시작하는 사람도 시간이 흐를수록 PV(포인트 벨류)를 높여 일정 레벨에 이르기 위해 ‘사람장사’를 하니 문제라는 얘기다.

저가의 생필품은 PV가 낮기 때문에 회원들은 일부러라도 다단계업체가 내세우는 고가의 주력 상품을 구입하게 된다. 고가의 상품을 다량으로 구매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게 되고 복음으로 신뢰구조가 형성된 교회를 사업의 ‘황금어장’으로 보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강원돈 소장(아시아경제윤리연구소)은 “다단계판매의 허구성은 그것이 소비의 무한한 팽창을 논리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데 있다”며 “생명체들 사이의 공생관계를 살리면서 경제활동을 통하여 자족의 경제를 구축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암세포의 무한증식 같은 소비의 무한확장을 전제하는 다단계판매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안티 피라미드 사이트를 운영하는 전철 씨는 △ 타인을 수단화하는 반신앙적이고 반인간적인 정신 △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잘 살아보자는 취지 배후에 깔린 무의식적인 물신주의 △ 수평관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수직적인 상하구조로 작동하는 이윤 구조가 다단계에 깔려 있다며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신앙과 소망에 위배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전문가가 보는 다단계판매의 문제점

김홍섭 교수 / 인천시립전문대학 경영학박사

 

다단계 왜 비신앙적인가?


1. 다단계마케팅의 개념과 판매방식

다단계마케팅은 1945년 ‘뉴트릴라이트’라는 한 영양보급식품 제조회사가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이 시스템을 고안해 낸 사람은 리 마이팅거라는 세일즈맨과 심리학자 윌리엄켓 셀버리이다. 이 두 사람은 세일즈맨에게 자신의 판매액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집한 사람들의 매출에서도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큰 자극제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내어 마케팅에 적용하였다. 오늘날 네트워크(network)마케팅으로 더 많이 불리는 다단계마케팅의 핵심적인 특징은 소비자가 판매자가 된다는 점이며, 이런 소비자=판매자인 사람을 가리켜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라고 칭하는 것이다.

현행법(방문판매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다단계마케팅이 피라미드(판매)와 주요 차이점은 회원의 가입, 탈퇴가 자유이며, 상품구입시의 반품이 자유롭고,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100만원이하)는 점이다.
다단계마케팅의 형태는 최초에 한 사람의 소비자가 판매원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몇 사람의 소비자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비자들이 또 판매원으로 전환되어 다른 소비자들을 만들어 가는 기하급수적 구조이다.

2. 다단계 마케팅은 성경에 부합된 활동인가?

우리 사회에서 의구심과 불안의 눈으로 다단계를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논의를 할 때 먼저 우리는 그것의 목적, 과정, 방법, 그 수행자의 태도 등을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목적이 다른 나머지를 모두 정당화할 수 없으며, 다른 것들이 목적을 다시 정당화할 수도 없다. 이들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다단계마케팅이 실정법에 준거하고 성경에 모순되지 않는 목적을 갖는다 하더라도 과정, 방법이 온당하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의 태도가 바를 때 제도전체를 바르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전파와 복음을 세계에 선교함을 핵심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목표가 개인과 기업 이익의 창출과 경제적 풍요, 현세에서의 삶의 풍부를 지향하는 경제적 활동체와 목적이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며 수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공공집회의 왜곡, 혼재가 우려된다.

교회는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그리고 속회(구역회, 순모임) 등 다양한 공공집회가 있게 마련인데, 이런 모임이 때로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다단계마케팅의 교육이나 상품설명, 사업설명회 등으로 왜곡된다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는 양자 모두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다른 문제를 파생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경우는 교회차원에서도 강력한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디스트리뷰터가 공공집회에서는 아니지만 교회목적의 임의적인 모임이나 심방 등에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도 중요한 요소다.
교회 공예배 이외의 모임에서 다단계마케팅 상품의 설명, 교육, 시연 등이 진행되는 경우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며 이는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와 양심에 기초하여 판단할 문제라고 본다. 이런 일이 자행될 경우 교회 커뮤니티의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

교회는 코이노니아를 통해 성도가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돕고, 섬기는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이 등한시되고 개인적 이익과 경제적 욕구 충족이 우선된다면 이는 심대한 교회 커뮤니티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교인들 모두가 자기휘하의 ‘디스트리뷰터=금전적 이익’으로 과대 망상적인 생각을 해서 교회 커뮤니티를 현저히 혼란케 된다.

이렇게 다단계마케팅에 참여한 교인들이 교회와 비즈니스 사이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해 나름대로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일상의 사업영역에서는 열심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당연하나, 교회공동체에서는 교회 본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단계를 하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이 가능하고 ‘평생 가만히 앉아도 먹고 산다’, ‘자손에게 상속해줄 수 있다’ 등의 표현 등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고 얻는 부와 재물은 성경적이지도 않거니와(창 3:17), 하나님과 무관한 재물은 오히려 시험과 재앙이 되었던 것을 성경은 말해 주고있다(눅 12:13~21). 다단계에서 돈을 버는 경우는 일부 디스트리뷰터들이 피나는 노력과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유지되는, 매우 드문 일임을 확인하고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아래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피조물은 주어진 사명을 이 땅에서 다하고 하나님 나라를 고대한다. 만물과 모든 제도도 같은 원리라면 그것을 개인의 욕심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신앙적으로 판단하여 참여하고, 지도하고, 비판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