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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 건강 위협하는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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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 건강 위협하는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20.11.0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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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죄와 사망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 - 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손선미 선교사편 (4)
인터넷한가족교회의 손선미 선교사.
인터넷한가족교회의 손선미 선교사.

1) 손선미 선교사 주장

여러분 질병이 걸리는 이유가 있어요. ···호세야 4장 6절 한번 보세요.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거에요. ···여러분은 이 질병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되요. 백 아홉 가지가 있더라구요. 이 치유에 대한 말씀이. 진짜 많아요. 그 중에 하나만 붙들어도 얼마든지 나을 수 있습니다. ···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붙들고 마태복음 8장 17절, 이 두 구절만 붙들어도 다 치유 받을 수 있고요(손선미 2019년 10월 9일 설교 “치유강의 10: 질병에 걸리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MBZuaUXwEmo)

갈라디아서 3장 13절~14절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가 건짐 받았는데 신명기 28장에 보면 율법의 저주가 나옵니다. 율법의 저주가 나오는데 무슨 폐병, 온병, 무슨 피부병, 정신병, 임신 못하는 병, 좌우지간 모든 것들이 율법의 저주가 되어 있어요. 그 율법의 저주는 왜 오냐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율법의 저주가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질병이 율법의 저주로부터 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건저 내려고, 율법의 저주를 당하면 반드시 질병에 걸려서 죽어야 되는데 그런데 그 질병에서 우리를 건저 내려고 주님이 친히 저주를 받아버린 거예요.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그분이 속량해내셨습니다. 속량해내셨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에 해당되는 그 질병을 우리가 아파해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다 처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치유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손선미 2019년 8월 6일 설교 “치유강의 4: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Lgp1JfDfKDE).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생명의 성령님이 우리 속으로 들어옵니다. 성령님이 내 영과 연합이 되면서 이제부터 우리에게 어떤 법이 우리에게 딱 적용이 되어 버리냐면 4차원의 법이 적용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버립니다. 아멘! ···여러분 질병은 최종적인 목표가 뭐죠? 사망이에요.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는 이 한 구절을 갖고도 암에서 해방된 사람이 여럿이에요(손선미 2019년 7월 6일 설교 “치유강의 3: 질병을 이기는 생명의 성령의 법” https://www.youtube.com/watch?v=_cPrCVgZ4NE).

‘죄와 사망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한 손선미 선교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병에 걸리는 이유는 호세아 4:6에 의하면 ‘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 베드로전서 2:24과 마태복음 8:17을 붙들고 기도하면 병이 치료된다.

* 갈라디아서 3:13과 신명기 28장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질병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음을 증명한다.

* 로마서 8:2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고 하는 것은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2) 성서적 해석

손선미 선교사는 호세아 4:6을 근거로 제시하며 성경에 109개나 되는 질병에 대한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에 병에 걸리며, 이 말씀 중에 하나만 붙들어도 병이 낫는다고 가르친다. 그녀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붙들고 마태복음 8장 17절, 이 두 구절만 붙들어도 다 치유 받을 수 있고요···”라며 이 중에서 가장 효험(?)이 뛰어난 구절들까지 일러준다.

과연 호세아 4:6이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까?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탄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게 된 이유는 제사장들이 율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이 ‘지식’이 무엇에 관한 지식인지 분명히 명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이 구절이 질병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는 사실은 본문 자체가 간단히 밝혀준다. 이 ‘지식’이 ‘질병’과 연관될 수 있는 그 어떠한 가능성도 열려있지 않고, 그 어떠한 암시도 찾을 수 없다. 그녀는 호세아 4:6에 등장하는 ‘지식’과 ‘망하다’라는 두 단어를 임의로 활용해서 그녀가 하고 싶은 말, “하나님이 질병에 관해 일러주신 지식(가르침)을 모르면 망한다.” 즉 “병이 든다.”는 의미로 가장해버린다. 호세아 4:6은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 하지 않는다.

손선미 선교사는 치병과 관련된 109개의 ‘성경 구절’을 붙들면 병이 낫는다고 주장한다. ‘붙든다.’는 말은 이 구절을 암송하거나 이 구절을 선포하면서 기도한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이 도대체 성경 몇 장 몇 절에 근간을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베드로전서 2:24, 마태복음 8:17을 활용한다. 과연 그녀가 강조하는대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라는 구절을 붙들면 병이 치료될 수 있을까? 먼저 이 구절이 치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하여 보자.

베드로는 이사야 53장을 인용해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의 그 결과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다.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라고 하며 그분이 나무에 달리신 결과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신 결과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나음’은 무엇으로 부터의 나음인가? 바로 ‘죄 병!’ 곧 죄라는 병으로부터의 나음이다.

베드로는 그 다음 25절에서 독자들의 과거의 모습 즉 구원받기 이전의 죄의 노예상태에 머물러 있던 그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이를 ‘길을 잃은 양’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 곧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생명을 얻은 독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둘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리신 결과, 채찍에 맞으신 결과 죄의 노예에 불과했던 독자들이 그 신분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새로운 목자와 감독에게 돌아와 있다고 한다. 이런 문맥의 흐름 가운데 베드로가 이사야 53:5을 인용해 느닷없이 건강 문제나 병 고침 이슈를 사이에 끼워 넣었다고 볼 수 없다. 베드로는 자기의 편지,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그 어디에도 건강 문제나 질병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있지 않다. 베드로가 인용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문장은 치병과 무관하다. 베드로는 본 절에서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그 어떠한 정보도 전하지 않는다. 치병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붙들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소리는 도대체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녀는 성경 어디에 그러한 것이 있다는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 말만 되풀이 한다.

또한 손선미 선교사는 마태복음 8:17을 붙들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라는 이 구절에 그 정도의 치병의 권능이 있는가? 마태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백부장의 하인, 베드로의 장모, 무리의 병을 고치신 기사 다음에 마태복음 8:17을 배치한다. 마태는 이사야 53장을 인용해서 예수께서 치유 사역을 행하신 일은 단순한 구제 행위가 아닌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임을 밝힌다. 이사야는 앞으로 오실 그 메시아는 ‘질고’(사 53:4) 즉 인간이 당하는 병과 고난을 짊어지실 분이라 예고했고, 마태는 유대 땅에서 행한 예수님의 그 치유 행위는 그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손선미 선교사는 이러한 마태의 의도를 뛰어 넘어 마태복음 8:17을 아주 간단히 오늘날의 상황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이 구절을 붙들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해석과 적용이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일까? 과연 마태가 오늘날 한국에 온다면 성경을 그렇게 적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성경을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하는 문제는 성경의 세계와 현대 세계와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므로 상당한 신중을 요한다. 왜냐하면 성경과 우리 사이에 최소한 2천년 이상의 시간적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관건은 과연 이사야 53:4의 예언을 성취했다고 기록하는 마태복음 8:17을 오늘날의 ‘규범’이나 ‘원리’로 적용할 수 있는가이다.

성경에서 주요 인물이 등장하여 만들어내는 사건을 서술하는 본문은 그 자체로는 ‘규범’이 되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로 역사적 전례 즉 과거의 사건에 대한 묘사나 서술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셨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다. 예수께서 폭풍을 잠잠케 하셨다. 예수께서 약한 자들의 병을 짊어지셨다 등등은 과거의 정황에 대한 보고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단지 과거 유대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그것에 해당하는 교훈과 규범을 찾으려는 시도는 불합리하다. 이와같은 사실은 마태복음 8:17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마태는 예수께서 병을 고친 사건은 이사야의 예언을 충족한 것이라는 사실만을 전달한다. 마태는 이를 통해 규범이나 교훈을 전하고 있지 않다. 예수의 역사적 전례를 다루고 있는 이 구절에서 역사적 정황에 대한 정보 이상의 의미와 적용을 추구하는 시도는 불합당하다. 그것은 저자가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처럼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고리대업과 노예 제도를 멸하러 오셨으며, 우리도 이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은혜의 해’(희년)를 선포하기 위해서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눅 4:19). 희년에는 모든 빚진 자와 노예들을 해방한다. 만약 성경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 시대를 막론하고 이 세상의 모든 연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이 회복되고 치유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이 세상의 현인들로 하여금 수많은 병의 원인들을 발견하도록 하셨고, 그것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셨다. 이 역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베드로전서 2:24과 마태복음 8:17을 포함한 109개의 성경 구절을 붙잡으면 병이 낫는다는 그녀의 주장은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109개의 성경 구절 전부를 날마다 외치며 기도해도 면역 기능이 취약하면 병에 걸리게 된다. 성경을 마치 부적이나 주문 정도로 이해하는 그녀가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우려스럽다.

손선미 선교사는 갈라디아서 3:13과 신명기 28:61을 근거로 제시하며 예수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한 것은 병으로부터의 해방까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 두 구절을 활용하여 하나님이 율법의 저주인 각종 질병을 자신의 아들에게 옮겨 처리했으므로 그를 믿는 자들이 아파야할 이유가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 한다. 그녀는 갈라디아서 3:13의 ‘율법의 저주를 질병으로 이해한다. 과연 그러한가?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우리 대신 받으신 것을 가리켜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라는 이 문장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율법을 실행해야 하는 그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였음을 의미한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야만 하는 그 강박으로부터 인간을 해제시켰음을 의미한다. 구약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 철저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각종 사회 규범, 도덕 규범, 신앙 규범(출 21:1~31:18)과 각종 제사법, 각종 성결법, 각종 서원법, 그리고 절기에 관련된 모든 규례들 즉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에 관한 규례(레위기1:1~27:34) 등등을 생활 속에서 온전히 준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율법에 억압받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 곧 그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속량하니”로 번역된 엑세고라센(ἐξηγόρασεν)은 ‘몸 값을 지불하고 되찾다’의 뜻으로 예수님께서 몸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그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다시는 종의 멍에 즉 율법의 저주를 짊어질 필요가 없다(갈 5:1). 다시 말해 율법의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갈라디아서 3:13의 율법의 저주는 질병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속박이다.

또한 손선미 선교사는 신명기 28장에 등장하는 각종 질병을 ‘율법의 저주’와 동일시한다. 과연 이 또한 그러한가? 신명기 28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할 경우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저주 목록을 나열한다. 그것은 ‘각종 질병’(21-22절, 27-28절)을 포함하여 먹는 음식과 자식과 가축과 생업에 내리는 저주(16-21절), 가뭄과 먼지와 모래 폭풍 저주(23-24절), 전쟁에서의 참패(25-26절), 압제와 노략질 당하는 저주(29절),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저주(36절), 모든 민족에게 조롱과 비방거리가 되는 저주(36-37절), 메뚜기와 벌레 재앙(38-39절) 등등이다. 불순종시에 이스라엘이 받게 될 각종 질병 곧 폐병, 열병, 염증, 한발, 열풍, 종기, 궤양, 괴혈병, 미침, 눈멂, 정신착란 등은 이 여러 저주의 목록 가운데 하나이다. 이 목록은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할 경우에 하나님이 내리는 징벌이다. 만약 신명기 28장의 이 질병들이 ‘율법의 저주’에 해당된다면 신명기 28장에 나열된 그 밖의 수많은 저주들도 이 ‘율법의 저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과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신명기 28장의 모든 저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셨을까? 갈라디아서 3:13의 율법의 저주는 질병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속박이다.

손선미 선교사는 로마서 8:2을 해석하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고 하는 것은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질병은 최종적인 목표가 뭐죠? 사망이에요.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는 이 한 구절을 갖고도 암에서 해방된 사람이 여럿이에요” 라고 하며 ‘죄와 사망의 법’을 ‘질병’과 동일시한다. 과연 그러한가?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의 원래적 기능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롬 7:10) 역할이었지만, 율법이 이러한 기능을 완수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계명의 역할만 담당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로마서 8:2에서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규정한다. 반면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이 율법(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게 된 존재라고 선언한다.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은 질병과 아무 관련이 없다.

손선미 선교사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참으로 느닷없다.’라는 생각이 매번 든다. 그녀의 로마서 8:2의 해석을 들을 때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녀는 질병의 최종 목적이 사망이라 하며 로마서 8:2의 ‘사망’을 느닷없이 질병과 동일시한다. 세상에 이러한 논증 방식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 하나를 설정한 뒤, 이와 동일한 단어 혹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단어가 포함되어있는 구절의 의미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석해버리는 것은 대다수 사이비 교주들에게서 발견되는 매우 저급한 해석의 한 유형이다. 그녀에게서 그들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필자가 오래 동안 사역을 했고 현재는 협동 목사로 있는 안산제일교회는 예장 통합 교단에서 열 번째 안에 드는 초대형교회이다. 오래 동안 이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 각양각색의 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손선미 선교사와 유사한 ‘치유론’에 심취해 있는 성도들이 있다. 그 중에 기억나는 한 사람은 안수 기도로 병을 많이 고친다는 기도원에 병든 남편을 데리고 다니다가 결국 치료시기를 허비하여 남편을 먼저 보내야만 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안수 기도나 안찰에 의존하다 아까운 치료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는 경우를 본다. 손선미 선교사는 자신의 ‘치유 강의 10’에서는 말씀으로 치유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아스피린을 먹는 사람, 두통약을 먹는 사람, 수술 받는 사람들을 꾸짖는다.

그녀는 자신의 ‘치유 강의 14’에서는 ‘아픈 증상’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라고 까지 가르친다. 그녀는 “기침이 왔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기침이 나았어. 그런데 2, 3주가 흘렀는데 갑자기 기침의 증상이 또 있는 거에요.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거에요. 그러면 거절을 하라고 그랬죠.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 나는 아주 건강해.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이것보다 더 발전된 생각이 어떤 건지 아세요? 어떤 증상이 있어도 완전히 개무시하라고 했죠. 완전히 개무시를 해버리는 거에요. 왜요? 나는 건강하니까? 하하하하 웃어요. 마귀를 보면서”라고 가르친다. 매우 우려스러운 설교이다. 필자는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성도들의 소중한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이러한 치유설이 더 이상 유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 「안상홍 대해부」(기독교문서선교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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