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11-26 11:26 (목)
성경해석부터 적용까지 오류 범벅,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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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부터 적용까지 오류 범벅,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10.2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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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손선미 선교사편 (3)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강의를 개설한 손선미선교사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강의를 개설한 손선미선교사

1) 손선미 선교사 주장

예수님이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다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떠하신 것처럼 우리도 어떠합니다. 아멘 요한1서 4장 17절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영으로 들어와 계세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떠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어떠하다는 것이에요. 저 하늘나라에는 본체이신 예수님이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까지 가서 예수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이 땅에서는 본체이신 예수님은 안 계셔요. 그런데 예수님은 영으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속에 다 들어와 계세요. 아멘.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서 살아가는 거에요. 예수님의 역할을 하면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거에요. 아멘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죠? 복음을 전하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복음 전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가르치는 거에요. 예수님이 제자를 양육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가르치는 거에요. ···그 다음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병을 고치는 거에요. 예수님이 마귀를 쫒았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마귀를 쫒는 거에요. 이해되십니까? 예수님이 하셨던 것을 여러분이 해 나가는 거에요. 자 마태복음 한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여기서 주님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준 것이에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은 이유가 분명히 우리를 치유하기 위함 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붙드시오. ···이사야서 53장 5절을 붙드시오. ···주님도 우리가 건강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채찍에 자신의 아들을 채찍에 맞게 한 거에요. 안 맞아도 된다니까요. ···말씀드렸잖아요. 엉덩이에서 피가 많이 났을 때, 항문에서 피가 많이 났을 때. ···저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붙들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저는 죄 사함의 복음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주님이 채찍에 맞은 것은 ···십자가 달리시기 전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맞으신 거에요. 이게 주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에 놓으신 계획해 놓으신 것인데 그것을 제가 몰랐어요. 그래서 그동안 치유를 못 받고 살았던 거에요. 알고 나니까 이제 적용하는 거에요. 그래서 치유가 된 거에요.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치유 사역을 했나? 마태복음 10장 1절 열어보세요. ···제자들에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세와 능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자이십니까? 아멘. 우리에게 이미 이 권세와 능력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을 제자들이 했어요. 그러면서 주님이 말합니다. 8절 읽어보세요.

시작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께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내되 너희가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 아멘 이건 명령입니다. 뭐 뭐를 하라 이건 명령입니다. 여러분, 명령은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셔야 합니다. 만약 손선미 혼자 한다면 나는 여러분을 가르치는 것 실패한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이 한다 하면 성공한 거에요. 모두가 해야 합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분 모두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대로 모든 질병과 허약한 것을 치유하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 한번 펼쳐보세요.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른다고 하면서 병든 자들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고 18절에 말씀하시죠. 그리고 19절 20절을 보십시다. ···전도할 때 치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일단 손 얹고 기도해주는 거에요. 보세요. 복음을 증거 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 치유이죠. 기적, 이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해 줍니다(손선미 2019년 7월 8일 설교 “치유강의 1: 치유는 하나님의 듯입니다” https://www.youtube.com).

‘치유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에 대한 손선미 선교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요한일서 4:17은 예수님이 행한 것을 우리도 동일하게 행할 수 있음을 말한다.

* 예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작은 예수로서 예수처럼 병을 치료할 수 있다.

* 이사야 53:5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은 이유는 우리의 질병을 고치기 위함이었다는 것 을 말한다.

* 마태복음 10:1에 의하면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을 주신 예수님이 오늘날 제자인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사를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마태복음 10:8은 모든 성도가 병을 고쳐야 할 것을 명령한다.

* 마가복음 16:18-20은 우리가 환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반드시 치유가 일어남을 보여준다.

2) 성서적 해석

손선미 선교사는 예수님이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신 것처럼 오늘날 성도도 그러한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는 성도도 예수님처럼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주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독특한 전제를 하나 설정한다. 그녀는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는 구절을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일은 그를 믿는 사람도 동일하게 ‘그렇게’ 행할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전제를 바탕으로 예수께서 ‘그렇게’ 병을 고친 것처럼 그를 믿는 모든 자도 ‘그렇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요한일서 4:17이 그녀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을까?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는 문장은 ‘호티’(ὅτι)로 시작한다. 호티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으로, 바로 앞 문장의 진술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이다. 사도요한은 앞 문장에서 어떤 성도가 사랑을 자기 삶속에서 온전히 실천하며 살았다면 그는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담대히 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 성도가 그렇게 담대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이유는 바로 주님처럼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님과 닮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가 주님처럼 되어 있느냐? 주님처럼 사랑을 추구하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가 주님과 닮아 있느냐? 주님처럼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의 그러하심’과 ‘성도의 그러함’은 주님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의 ‘닮음’을 말하고 있고, 그 닮은 내용은 상반절에 나오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17은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을 온전히 이루며 살았던 성도는 예수님과 닮은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두려움 없이 심판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손선미 선교사는 ‘주의 그러하심’과 우리의 ‘그러함’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를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일을 성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그렇게’ 병을 고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의미로 적용한다. 무지한 해석이 낳은 황당한 적용이다. 그녀는 자기의 ‘치유학’(?) 첫 강의, 첫 단추부터 엉터리로 꿰고 있다.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그녀의 ‘치유 강의’가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충분히 짐작된다.

손선미 선교사는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 들어가 있는 성도는 예수님처럼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쫒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영으로 들어와 계세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떠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어떠하다는 것이에요. 저 하늘나라에는 본체이신 예수님이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까지 가서 예수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이 땅에서는 본체이신 예수님은 안 계셔요. 그런데 예수님은 영으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속에 다 들어와 계세요. 아멘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서 살아가는 거에요. 예수님의 역할을 하면서”라며 ‘예수의 영’을 소재로 해서 위와 동일한 주장을 이어간다. 그녀가 말하는 예수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행 16:6-7: 롬8:9-10).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먼저 밝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의 영이 들어간 성도가 왜 예수와 동일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예수의 영이 들어가면 그가 예수가 되는가? 아니면 예수와 비슷해지는가? 하지만 아무리 예수의 영이 충만해도 사람은 사람이며. 아무리 성령이 충만해도 인간은 인간이지 그가 인간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그녀의 논리대로 라면 예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은 죽은 사람도 살리고, 물위도 걷고, 축사하여 음식도 불어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의 영이 들어간 사람은 예수가 행했던 일과 똑같은 일을 행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뿐 아니라 현실에서 조차도 실증될 수 없다.

손선미 선교사는 이사야 53:5을 근거로 들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채찍에 맞은 이유는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전에는 성경에 죄 사함의 복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사야의 글을 읽고 어느 날 ‘병 고치는 복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온갖 질병에 시달렸는데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자기 엉덩이의 고질병까지 치유되었다는 체험까지 곁들이며, 매우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병 고치는 복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 받았다”(사 53:5)는 문장에 주목한다. 그리고 ‘채찍’과 ‘나음’이라는 말을 곧바로 ‘치병’과 직결한다. 말하자면 이 둘을 인과관계로 연결한다. 즉 주님이 채찍에 맞은 이유는 병 나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이러한 주장이 정말 지지받을 수 있을까?

이사야가 ‘채찍에 맞는 메시아’를 말한 이유는 장차오실 메시아가 바로 고난의 종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는 멸시받고, 버림받고, 고통 받고, 병을 앓고. 찔리게 되고, 상하게 되고. 징벌 받게 되고, 채찍질 당하게 된다고 예고한다. ‘찔림’, ‘상함’, ‘징계 받음’, ‘채찍 맞음’은 모두 메시아가 당하는 ‘고난’ 이 하나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가운데 하나인 ‘채찍’을 따로 떼 내어 여기에 자의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 또한 그녀는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에서 ‘나음’을 ‘질병 치료’로 이해한다. 이는 이사야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다. 메시아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는 것은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될 구원의 ‘수혜’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이 죄의 해방 뿐 아니라 질병의 해방까지를 포함한다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죄 문제를 해결 받은 그리스도인이 죄 문제로 사망에 이를 수 없듯이, 질병 문제를 해결 받은 그리스도인이 질병으로 죽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이 죄 해방뿐 아니라 질병의 해방까지 포함한다는 그녀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몸에 있는 당뇨나 혈관 질환을 체크해 보면 된다.

손선미 선교사는 성경이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는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확증하는 버릇이 있다. 그녀는 ‘채찍’과 ‘나음’이라는 두 단어를 임의로 해석해서 ‘병 고침의 복음’이라는 새로운 ‘복음’ 하나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은 성경이 명시한바가 없다. 그녀에게는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주어진 구절에서 ‘구체화된 것만큼만’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원칙이 전혀 없다. 그냥 마구잡이다. 필자는 그녀가 성경을 멋대로 읽고 멋대로 해석해버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손선미 선교사는 마태복음 10:8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오늘날의 성도가 이 은사를 선물로 받았으니 즉시 행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제자들이 “거저 받은 것”과 “거저 주어야 할 것”은 ‘치병의 은사’가 아니라 ‘천국 복음’이다. 그녀는 마태복음 10:8 에서도 오역을 하고 있다.

손선미 선교사는 마태복음 10:1을 근거로 제시하며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병 고치는 능력을 주었듯이 오늘날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능력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러분은 제자이십니까? 아멘. 우리에게 이미 이 권세와 능력이 들어와 있습니다. ···8절 읽어보세요.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내되 너희가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 아멘 이건 명령입니다. ···여러분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며 오늘날의 모든 제자들에게도 이미 병 고치는 은사가 들어와 있음으로 반드시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마가복음 16:18-20에서 발견되는 그러한 표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도 어디까지 사실일까? 과연 오늘날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그녀의 가르침 중에 일부는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 중에 병 고치는 은사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고전 12:9). 하나님은 고린도교회 내 어떤 이에게는 병을 고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을 허락하셨다. 필자는 이 신유은사가 아직 유효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이나 선교지에서 간혹 그런 소식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 고치는 능력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와 있다는 그녀의 주장은 사실일까?

사도행전은 이러한 ‘치병’의 역사가 매우 활발하게 그리고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이 병 고침의 역사는 빌립(행 8:5-8), 베드로(행 3:6-8: 9:33-34), 바울(행 19:11-12) 이 세 사람에 의해 일어났다. 심지어 베드로와 바울은 죽은 사람도 살렸다(행 9:39-40, 20:9-12). 그렇지만 사도행전은 모든 사도가 병을 고쳤다고 증거 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신 그 생생한 육성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 즐비했던 사도행전의 사람들조차도 모두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보다 훨씬 후 세대의 사람들인 오늘날의 성도는 과연 어떠할까라는 물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의 말대로 오늘날의 모든 제자들에게도 병 고치는 은사가 주어졌는가? 특수한 몇 사람이 아닌 오늘날의 보편적인 제자들에게도 이 치병의 은사가 와 있는가? 바울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병 고치는 은사와”(고전 12:28)라고 하며 병 고치는 은사를 포함한 모든 은사는 “교회 중에 몇(명)”에게만 주어졌다고 밝힌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8-10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혹은 “다른 사람에게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다양한 은사를 받은 다양한 은사자들을 열거한다. 당연히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자도 교회 구성원의 일부임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사람에게는”(고전 12:9)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바울은 모든 성도가 병 고치는 은사를 독점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치병 은사는 초대교회 가운데 가장 은사 활동이 왕성했던 고린도교회에서 조차도 일부 구성원에게만 주어졌다.

병 고치는 은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모든 성도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 은사를 자신의 뜻에 따라 나누어주시기 때문이다(고전 12:11). 즉 은사는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주시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은 이 부분에서도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손선미 선교사는 마가복음 16:18-20을 근거로 제시하며 오늘날 제자들이 환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반드시 표적과 치유가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바울 같은 사도도 기도로 모든 병을 고치지 못했다. 그는 병든 에바브로디도를 치료하지 못했고(빌 2:25-27) 병든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남겨 두었다(딤후 4:20). 바울은 심지어 자기 병도 고치지 못했다(고후 12:7-10).

바울은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디모데에게는 다른 처방을 주기도 했다(딤전 5:23). 바울은 직업이 의사인 ‘누가’를 자신의 선교팀에 합류시키기도 했다(행 16:8-10). 사도행전 16:9의 “우리”라는 표현은 의사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일행을 가리킨다. 의술은 중요한 선교 수단이므로 바울은 누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실례들은 오늘날의 제자들이 환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반드시’ 표적이 따른다는 그녀의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필자가 시무한 안산제일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필자가 11교구와 4교구를 담당했을 때, 암환자, 달팽이관 파열환자, 담석 환자, 불임 부부를 위해 기도한 적 있었다. 그 때 일어났던 기적 일화가 바로 그것이다. 관건은 그러한 역사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가이다. 공교롭게도 필자는 그 이후로는 그런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치병 역사가 매번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는 치병 역사는 하나님이 원하실 때만 일어남을 가르쳐 준다. 치병은 제자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첫 강의는 성경 해석에서부터 적용에 이르기까지 온통 오류로 범벅 되어있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 「안상홍 대해부」(기독교문서선교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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