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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미 선교사(인터넷한가족교회)는 건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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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미 선교사(인터넷한가족교회)는 건전한가?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20.10.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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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손선미 선교사편 (1)
인터넷한가족교회 손선미 선교사(유튜브 갈무리)
인터넷한가족교회 손선미 선교사(유튜브 갈무리)

1) 손선미 선교사 주장

요한복음 10장 한번 열어보세요...양들이 주님의 음성을 들어요 안 들어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양이십니까? 네 저도 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목자의 음성을 양이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반드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분명 성경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나와 있어요.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해. 아들이 아버지 음성을 듣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거야. ···성경의 인물들은 다 음성을 듣는데, 바울도 듣고 베드로도 듣고 다 들었는데, 제자들도 다 들었는데 왜 우리들은 동일하신 성령이 있는데 음성을 못 들어야 된다고, 그것이 무슨 신학인양 마냥 그러냐 그 말이에요. 왜 성경과 다르게 주장하고 있느냐 말이에요. ···창세기 3장에 아담에게 주님이 음성을 들려줍니다. 아담이 주님하고 대화를 합니다. ···6장에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얘기 하십니다. ···12장에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또 7절에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15장에 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이제 환상가운데 나타나십니다. ···20장에 아비멜렉에게 꿈속에서 나타나십니다. ···여기 창세기만 잠깐 보더라도 거의 한 장이나 두 장에 걸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음성을 듣고 있어요(손선미, 2019년 4월 10일 설교 “성령의 음성듣기 2” https://www.youtube.com/watch?v=5-p_zlQ9-0c).

주님 이제 A할까요? B할까요? 그러면 A해라 B해라. 여기 회사에 갈까요? 말까요? 가라 가지마라. 이런 것들을 다 얘기해주신다고 했어요(손선미 2019년 7월 22일 설교 “성령의 음성듣기 21” https://www.youtube.com).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대한 손선미 선교사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 성도가 A할지 B 할지를 물으면 하나님은 몇 번이고 정답을 가르쳐주신다.

2) 성경적 해석

최근 손선미 선교사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손선미 선교사는 중국에서 건너와 2015년에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한가족교회’를 개척했다가 2017년에 ‘인터넷한가족교회’를 세웠다. 출신 신학교, 목사안수 여부, 파송 교단은 밝혀진 바가 없고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기에 선교사로 호칭하는듯하다. 인터넷한가족교회라는 명칭은, 그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웹포털을 통해서도 교파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두가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대량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매개적 수단을 통하여 현재 1만 5천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구독자란 그의 방송을 애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매주일 마다 최소한 이 숫자의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 열광하고 있지만, 이들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적극 추천할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그의 영향력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의 설교는 인터넷한가족교회가 운영하는 WFM 선교회를 통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손선미 선교사는 온라인 상에서의 활동뿐 아니라 수원에 개척한 지교회를 통해서도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리스도의 군사훈련 학교’라는 부설기관을 세워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훈련생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13만 명의 그리스도의 군사(?)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일어, 중국어, 영어로 번역하여 각국으로 배포하고 있으며, 키르키스탄, 캄보디아, 우간다, 파푸아뉴기니 등에도 선교사를 피송하고 있으며, 전국에 협력 교회 다수를 두고 있다. 개척한지 약 4년 만에 온·오프라인 상에서 1만 5천을 훨씬 넘는 교인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상상이상의 파급력이다.

필자는 손선미 선교사의 설교 몇 편을 듣고 금방 그의 인기의 비결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소위 가려운 데를 속 시원히 긁어주는 소재들을 매우 잘 활용한다. 즉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려주고, 누구나 궁금히 여기는 한 개인의 미래사도 보여주며, 그리고 성공할 수 있는 대안까지 제시한다. 그의 설교는 일반 교회에서 도무지 들을 수 없는 신비적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는 존재임을 매 설교 때마다 부각하며, 교인들이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조금 전,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다든가, 환상이나 꿈으로 지시했다든가, 성경 몇 장 몇 절을 보라 했다든가, 지금 설교 중에도 세미한 음성으로 지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설교 가운데 이러한 멘트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자기 설교가 보통의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임을 짙게 드러내며, 자신의 목회도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는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이러한 체험을 보편화하고 신학화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자기뿐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는 성경도 분명히 증명하는 바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생에서 어떤 선택의 문제, 혹은 난제 앞에 섰을 때 이 ‘성령의 음성듣기’를 통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이 성령의 음성을 듣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다. 이 뿐 아니라 손선미 선교사는 자기 아들이 체험했다는 천국지옥여행기까지 곁들여 제공한다. 구독자와 교인들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와 같은 주장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속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손선미 선교사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3절),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4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11절)라는 구절들을 제시하며 오늘날 성도는 양인고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요한복음 10장의 ‘음성’을 그렇게 해석해도 괜찮은 것일까?

요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유대 팔레스틴의 목가적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사역을 알기 쉽게 전한 강화이다. 3절에서 문지기가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는 표현은 밤 동안 양 우리의 문을 굳게 닫았다가 아침이 밝아오면 목자는 우리의 문을 열고 양들을 부르고, 양들은 그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팔레스틴의 일상의 목축 환경을 실제로 반영한다. 근동 지역 목자들에 의하면 다른 가축에 비해 청각이 발달한 양은 주인의 음성을 기억하고 있으며, 늘 듣던 그 음성에만 귀 기울이고 반응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당시 목축 환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소재 즉 타인의 음성에는 무 반응하지만 자기 주인의 음성만은 알아듣고 따르는 양의 속성을 통해 유대인 무리들이 ‘참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참 양’이 될 것을 촉구하셨다. 왜냐하면 강도(1절)와 삯군(12절)으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성을 듣고 따라갔다가는 결국 멸망당하고 유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0절, 12절).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든지,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안다든지 라는 표현은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16절에서 그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 이 구절에서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장차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그들도 ‘하나의 무리가’ 된다고 하심으로 이방인들도 장차 자기를 따르는 양 무리에 포함될 것을 예고하셨다.

손선미 선교사는 정작 요한복음 10장의 핵심은 제쳐두고 부가적인 단어 ‘음성’에 집착해 본질을 흐린다. 그는 ’선한목자의 비유’의 본질은 뒤로하고 예수님을 목자로 두고 있는 오늘날의 양도 목자의 실질적인 음성을 귀로든, 마음으로든 들어야 하고 또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요한복음 10장의 ‘음성’은 그런 의도를 전혀 내포하고 있지 않다.

손선미 선교사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바울, 베드로 같은 성경의 인물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오늘날 성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또 들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해석과 적용이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의 인물들 앞에 현현하신 수많은 실례를 들어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성도들 앞에 나타내 보이시고 또 성도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특별한 임무를 위해서 성서의 여러 인물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특별한 교제를 가지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그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오늘날의 성도와도 직접 말하고, 직접 듣는 일을 행하신다고 단언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행여나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선택되는 대상은 지극히 선별적이지 보편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발탁된 성서 속 인물들도 개별적으로 선택된 소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극소수의 인물들을 실례로 들어 오늘날의 모든 성도도 하나님의 음성을 그들처럼 듣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바울, 베드로 같은 성경의 인물들이 겪었던 그 실례들은 오늘날 보편적인 성도의 행동이나 체험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판단해야 한다. 손선미 선교사 식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오늘날의 성도도 교회에서 거룩한 입맞춤을 나누어야만 한다(고전 16:20). 주의 일에 부르심을 받을 때는 반드시 하늘로부터 빛과 음성이 들려와야 한다고 해야 한다(행 9:3-4). 하나님께서 당나귀를 통해 발람에게 말씀하셨기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당나귀를 한 마리 길러야 한다고 지도해야 한다(민 22:28-30). 양털뭉치 표적을 구했던 기드온처럼 오늘날 성도도 당당히 하나님께 표적을 요구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삿 6:36-40). 이는 성경 인물들의 모든 실례들은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손선미 선교사는 “주님 이제 A할까요? B할까요? 그러면 A해라 B해라. 여기 회사에 갈까요 말까요? 가라. 가지마라. 이런 것들을 다 얘기해주신다”고 하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도의 그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그 계획을 질문자에게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 음성을 내가 진짜 잘 모를 것 같으면 다시 여쭈어 봐도 들립니다. 여러분! 보통 다섯 번을 물어봐도 될까요? 다섯 번 물어도 되요. 다시 알려주셔요. ···주님의 음성이 A라는 것 알아. 몇 번을 물어도 A야”(손선미, 2019년 4월 10일 설교 “성령의 음성듣기6” https://www.youtube.com)라고 하며 하나님은 한 개인의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일까지 음성으로 알려주고, 몇 번을 물어도 동일한 대답을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들을 성경이 실증하고 있을까? 과연 하나님이 사람의 매순간을 도로의 안내 표지판처럼 “좌회전하라”, “우회전 하라” 등과 같이 지시하시는 분일까? 과연 하나님은 성도의 개별적인 일상에 대해서도 자신의 뜻과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세부적인 지침을 내리시는 분일까? 물론 성경은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자신의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일까?

로마서 12:2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에 대해 선한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뜻을 분별하라고 한다. 분별해야 할 하나님의 뜻의 목록은 12:3부터 등장한다. 그것은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6-8절), 사랑을 실천하는 것(9절), 다른 성도들에게 헌신하는 것(10절),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11절), 즐거워하는 것(12절),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13절) 등등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과 계획은 내가 세상을 본받지 말고 일러준 목록대로 삶을 사는 것이다. 로마서 12:2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개인의 일신상의 문제와 연관되지 않는다.

에베소서 2:10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으며, 이 선한 일을 향해 나아가도록 예정되어있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예정해 놓으신 우리의 그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 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이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선한 일’(엡 2:10)이다. 그 일은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계획은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5:15-17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때가 악함으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을 명령한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을 요구하신다. 에베소서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는 명령을 준 후 곧 이어 그 실례들을 열거한다. 그것은 성령 충만 받는 것(18절), 신령한 노래로 찬송을 드리는 것(19절), 감사드리는 것(20절), 피차 복종하는 것(21절), 믿음의 가정에서 적용해야 될 여러 인간관계에 관한 것(21-33절) 등등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별해야 할 주의 뜻은 모두 윤리적인 삶과 관련 되어있다. 성경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도의 일신상의 문제와 연결하지 않는다.

골로새서 1:9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뜻은 9절 이후에 여러 가지 합당한 행위로 정의한다. 그것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 맺는 것(10절),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는 것(11절), 기쁨으로 견디고 오래 참는 것(11절) 등등이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열거되어진 이 모든 행동들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도의 개인적인 일상의 문제, 예를 들면 누구와 결혼할지, 누구를 직원으로 쓸지, 무슨 요일에 약속을 잡을지, 어느 부지에 집을 지을지, 얼마에 계약할지 등등과 같은 부류로 상술하고 있지 않다.

물론 구약에는 손선미 선교사 식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세미하게 인도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예를 들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길’은 사람의 운명을 묘사한다(참고, 잠 4:18-19; 15:19). ‘지도하다’는 ‘곧게 하다’의 의미이다. 이 ‘곧게 하다’라는 문장이 ‘길'이라는 명사와 연결되면,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사람은 그의 운명이 곧아지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형통케 만든다는 것이다. 잠언 3:6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도로표지판처럼 인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시편 32:8은 손선미 선교사의 주장에 훨씬 더 가깝게 보인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에서 ‘길’(דרך)은 생활 양식 혹은 삶의 방식을 뜻한다. 하나님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깨닫게 해서 바른 길로 돌이키는 분이라는 것이다. 시편 32:8은 결혼, 직장, 사업, 계약 등과 같은 일상의 일에서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귀로든, 눈으로든, 영감으로든 들려주고, 보여주고, 알려준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한 개인의 일상문제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구체적이고 상세한 지시를, 계시해주는 사건들이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이 보내신 빛과 음성을 보고 듣고 사도로 부름 받았다(갈 1:1; 고전 1:1; 행 9장). 그는 선교사역을 수행하는 동안 어떤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어떤 지역으로부터 떠나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다(행 16:6-10; 18:9-10; 22:17-21; 23:11). 고넬료도 베드로를 찾아가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고(행 10:5) 베드로도 고넬료 집으로 가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다(행 10:17-20). 빌립도 광야로 가서 어떤 병거에 다가가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고(행 8:29) 아나니아도 바울을 찾아가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다(행 9:10-16). 그렇다면 이러한 실례들이 하나님께서 오늘날 각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행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러한 특별한 인도를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데 있어 특별한 위치를 점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러한 실례들은 복음이 이스라엘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온 땅에 전파되는 중요한 분기점에서 발생했다. 하나님은 바울과 베드로와 빌립과 고넬료와 아나니아를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중요한 시기에 부르셨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특별한 인도를 받은 계시사건의 실례를 들어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인도를 받는 일이 보편적으로 발생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이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도를 받은 사람들은 일반 대중이 아닌 선지자, 사사, 왕, 그 밖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근거로 들어 오늘날 모든 성도들도 이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매우 몰상식한 주장이다.

‘A할까요? B할까요? 그러면 A해라 B해라’고 가르쳐 준다고 말하는 손선미 선교사의 가르침은 그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 살며, 어떤 집을 구입하고, 어느 회사에 다니며, 어느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 등등의 문제는 우리들 자신의 자유와 책임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인도하듯이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 인도는 인격적인 인도이다. 하나님은 아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아들을 훈련시키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지혜의 빛을 주심으로 아들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알도록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성경적인 가치관과 원리들을 가르쳐주셔서 아들로 하여금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올바른 적용을 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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