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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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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20.05.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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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 집사(신천지 탈퇴자 김은강 자매의 어머니)의 간증

#1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 “판소리하는 딸, 신천지에 빠졌습니다”

저는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김은강의 엄마입니다. 이제야 세상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봅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이비 신천지의 모략포교가 수면위로 떠올라 신천지의 만행을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제 딸 아이는 CBS에서 방영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방송 당시 가명과 모자이크를 해서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딸이 신천지에서 나온 후 다시 직장생활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신천지 출신이라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이 두려웠습니다. 신천지 탈퇴자들에게 신천지측이 위협했던 사례도 있다고 들어서 더더욱 얼굴을 공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족 간의 신뢰를 깨뜨리고 사회와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의 학업, 직장, 결혼까지도 포기하게 만드는 신천지의 악행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 이상 저희와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힘들게 용기를 내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사기조직 신천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더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의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날들을 다시 들춰내 보이려고 합니다. 또 한 번, 영혼의 몸살을 앓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딸이 신천지에 들어갔다가 나오기까지 있었던 지난, 우리의 가족사를 지면에 옮겨 보려고 합니다.

2014년 10월 초 이단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자 계획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희 가족은 딸을 신천지에서 구해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생업을 포기하면서 딸의 구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아이가 도망가게 되면 신천지에서 부모를 고소하게 만들고 가출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처음 딸이 신천지에 빠진 것을 알았던 때는 같은 해 5월 2일 밤이었습니다. 조그만 분식집을 하던 저희는 하루 영업을 마치고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따르르릉!’ 한 밤중에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보통, 영업을 마친 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요. 그런데 밤 열시쯤에 걸려온 전화를 저도 모르게 받았습니다. 중년의 여자가 대뜸 “거기 김은강이 부모님 하시는 가게 맞냐?”고 물었습니다. 연이어 그녀는 “혹시 딸이 판소리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즉각 끊어 버렸습니다.

다시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 여성은 “제 얘길 끝까지 좀 들어주세요!”라며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화기를 계속 들고 있었는데 얘기를 들을수록 청천벽력같은 말들이어서 정말 한마디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주머니의 딸이 신천지에 다니고 있어요. 직장도 그만두고 신천지에서 판소리를 하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딸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그리고 이 사실을 딸에게 절대로 알리지 마세요. 만약 부모님이 신천지에 다니는 걸 알고 신천지를 가지 못하게 막으면 딸이 가출할지도 몰라요. 제 말이 믿기지 않으면 몰래 딸의 동선을 확인해보셔요.”

그리고 그분은 “혹시 지금 딸이 영어학원 다닌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정확히 딸의 행적을 알고 있는 거 같아서 저는 “도대체 전화하시는 분은 누구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아들이 신천지에 빠져 있다가 정말 힘겹게 신천지에서 구해냈는데 그 아들이 신천지에서 탈퇴한 후 저희 딸 얘기를 했다고 하는 겁니다. 판소리하는 누나가 있는데 신천지에서 엄청 열심히 일한다고, 그 부모님이 인천에서 분식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SNS에서 저희 딸 이름으로 찾고 찾아 제 페이스북에 올려 놓은 가게 사진 한 장을 보고 저희 가게 정보를 찾으셨던 거지요. 그날 밤 저희 부부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생길 수 있나, 도무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 신천지 다니냐!!!”라면서 당장 딸에게 전화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우리가 딸의 동선을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신천지가 어떤 곳인지 밤새 인터넷을 뒤져 보기도 하고 몇 분의 지인 목사님께 신천지에 대해 물어봤더니 ‘이단이다’라고 ‘거기 빠지면 나오기 힘들다더라’는 정도만 얘기해 주셨습니다.

저도 교회는 다녔지만 신천지에 대해선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제가 믿음이 없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저희 가게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습니다. 남편과 저는 딸이 다닌다는 영어학원, 공연하고 있다는 단체에 확인을 해 봤습니다. 어느곳에도 딸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딸이 말했던 모든 게 사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떻게 부모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희 부부는 딸을 더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딸의 뭔가 이상했던 행동들의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내내 혼자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던 애였지만 그래도 집에 자주 연락하고 주말엔 집에 와서 가게 일도 도와줬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늘 바쁘다고 집에도 오지도 않고 가족모임은 항상 핑계를 대며 빠졌고 전화를 하면 받지 않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시 연락을 하곤 했습니다. 반찬이라도 해서 주말에 자취방에 가겠다고 하면 “일이 있다”며 오지 말라 했고 친한 친구와 함께 신학대 교수님과 성경으로 상담심리공부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신천지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아예 시작도 못하게 막았을 걸···’이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산에 있는 한 교회에 친구와 함께 다닌다고 했습니다. 전 이제 딸이 신앙생활을 하려나보다 싶어서 오히려 칭찬을 해주기도 했었지요.

또 어느 날은 아주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와서 성대 결절이 와서 20년 넘게 하던 판소리를 못하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자기가 서울에서 병원을 몇 군데나 다녀봤다는 겁니다. 모두 판소리 계속하면 안 된다고 했다며 막 울면서 너무나 불쌍하게 말하며 몸이 너무 아프니 당분간 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은강아, 그러면 엄마랑 같이 병원 가서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고 치료도 받고 판소리를 그만두는 건 그 후에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딸은 제 말에 막 화를 내면서 자기가 다 알아봤다며 울며불며 몸과 맘이 너무 힘들다고 떼를 썼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러면 당분간 쉬어 보렴”이라고 했더니 딸은 영어학원을 다니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은강이는 그때 한 말은 모두 신천지에서 짜준 거짓말이었다는 걸 신천지를 탈퇴한 이후에 실토했습니다. 세상에 남의 금쪽같은 자식들을 불러다 놓고 거짓말 교육을 시키는 사기 집단이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종교인 척 행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자다가고 소름이 돋곤 합니다.

#2 “신천지에 빠지기 전 딸은 거짓말을 모르는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딸은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경북 경산에서 운영하던 삼계탕 집을 운영하다가 조류독감으로 인해 폐업하고 딸의 판소리 공부를 위해 서울에서 그래도 가까운 인천으로 이사를 온 후 노점상을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결국 경제적 지원이 어려워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갔고, 남편과 딸은 한국에서 아이들 교육만은 끝까지 시켜야겠다고 맘먹고 4년간 가족이 헤어져 지내기도 했습니다. 초등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딸의 판소리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우리 네 식구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만큼 딸은 판소리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국내 유수의 판소리대회에서 큰 상도 여러 번 받았고 삼성재단에서 꿈 장학생으로 한국스카우트연맹에서 자랑스런 청소년 대상도 받았던 제 딸은 이렇게 신천지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고 저희 부부는 그 노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실력과 학벌을 겸비한 판소리 국악과 교수가 되겠다던 딸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저희 부부는 완전 돌변한 딸을 보는 것이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인천에서 대구까지 주말마다 오고가며 판소리 공부를 했던 딸,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청소년기에 친구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포기하고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이겨내고 대학 졸업하던 날 아빠를 부둥켜안고 감사의 말을 전하며 눈물 흘리던 딸, 부모 뜻 한번 거역하지 않았던 착하디착했던 우리 부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딸이 한순간에 부모를 속이고 신천지에 빠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청춘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결국 숨 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이었음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과 충격이 너무 커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동안의 고생과 보람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고 한숨과 눈물만 나왔습니다. 내가 낳은 딸 자식이 무서워서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어미의 마음은 늘 지옥의 한복판을 걷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편해 보여 식음을 전폐하고 있던 제게 남편이 다가왔습니다. 남편은 “여보, 우리라도 기운 차려 신천지에 빠진 딸을 구해내야지요! 딸도 거짓말에 미혹되어 자기도 모르게 신천지에 빠졌을 텐데 부모가 책임을 다해 딸의 손을 잡아 줘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부부는 인터넷에서 허무맹랑한 신천지교리도 보고 미리 상담을 통해 신천지에서 나온 청년들과 부모님들의 사례를 듣고 보면서 상담소의 도움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오개월 동안 딸에겐 평상시처럼 대하면서 철저하게 상담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남편은 이단상담을 받으면 딸이 도망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오개월간 비가 와도 운동장을 하루 삼십 바퀴씩 돌며 체력을 길렀고 전 기운을 차리기 위해 눈물과 함께 겨우 밥알을 삼켰습니다. 그 기간 동안 딸은 점점 변해갔습니다. 평소 모습과는 달리 염색도 하지 않고 남루하고 초라한 모습에 신발조차도 너덜거릴 정도가 되도록 신고 다녔습니다. 피부도 점점 새까맣게 변하며 핏기없이 말라가는 딸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속울음을 흘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딸만 보면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남편은 딸에게 “당분간 집에 오지 말라”며 반찬이며 먹을 것들을 직접 가져다주었는데 그때마다 딸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딸이 하는 말들과 행동이 다 거짓말이고 우릴 속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받아주고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추석에도 부침개를 잔뜩 해놓고 “우린 시골 갈 테니 집에 와서 가지고 가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딸은 부침개를 잔뜩 갖고 가 그걸로 신천지 청년들끼리 나눠 먹고 지파장과 특전대장 밥상까지 차려줬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땐, 정말 분통이 터지고 기가 막혔습니다.

휴대폰으로는 우리 가족끼리 한 얘기라든지 부모가 자기를 의심하고 있는지를 윗선에 보고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은강아, 요즘 신천지라는 이단들이 젊은이들을 미혹한다는데 조심해야 해!”라고 슬쩍 말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것까지 녹음해서 신천지 관리자들에게 다 보고를 하고 행동지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자기 휴대폰은 손에서 떼 놓질 않았습니다. 잠을 잘 땐 아예 휴대폰을 가슴에 품고 자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부부 휴대폰을 번갈아가며 확인하고 뭔가를 찾는다고 뒤지는 걸 보면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이 힘겨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가 터널 속 같던 오 개월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상담을 받으면 무조건 내 딸이 예전처럼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지요.

상담소와 조율 끝에 10월 2일 상담 날짜를 잡았습니다. 계획된 날이 다가올수록 딸은 신천지의 지시를 받고 ‘이제 인천 집엔 못 갈 것 같아요. 임용공부에만 전념할 게요’라며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학원 가까이 고시원으로 옮기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만 해왔습니다. 처음엔 주소도 안 가르쳐줬습니다. 결국 “부모가 딸자식이 어디 사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니냐!”고 눈물로 애원했더니 어느 날 저녁 “아빠만 오세요”라고 해서 서울 충무로 쪽에 있는 고시원으로 딱 한번 갔을 뿐입니다.

그곳 역시 부모를 속이기 위한 장소로 활용했습니다.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시원에는 임용고시 관련 책과 영어공부하는 책을 미리 빌려다 꽂아 놓으며 그곳에 같이 있는 신천지 청년들과 함께 모두 다 남편을 속였던 겁니다. 탈퇴 후에 은강이는 그 때 남편이 찾아갔던 고시원은 신천지 청년들의 숙소였고 이층은 남자, 삼층은 여자 열 명이 함께 지내며 전도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딸이 신천지에서 탈퇴한 후 짐을 가지러 갔더니 딸이 집에 오지 않는 다음 날 갑자기 거기 있던 애들이 모두 한꺼번에 방을 빼고 나가는 바람에 주인이 이상했다고 했습니다. 이미 딸의 방에 있던 신천지 관련 자료들은 이미 다 뒤져 가버리고 없는 상태였습니다.

# 3 “네가 신천지에 다니는 거 다 알고 있다”고 하자 벌어진 일

아무튼 자꾸만 당분간 연락을 하지 못한다는 아이에게 매달려야만 하는 저희의 마음은 피가 마르고 가슴이 새까맣게 다 타는 듯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희 부부는 그 당시 군대 가있는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딸의 상황을 설명하고 10월 1일 특박을 나와서 넷이 같이 외식을 하고 딸을 상담소로 데려가기로 했는데 딸이 또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같이 밥도 함께 못 먹겠다는 겁니다.

저희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미리 약속을 하면 또 무슨 핑계를 대며 안 나올 것 같아서 일부러 교육 마치는 시간쯤에 밤 열시 지나서 충무로로 무작정 가서 전화를 했습니다. 동생이 “오랫만에 특박 나왔는데 얼굴 한번 보여줘 누나!”라고 했더니 다행히 잠깐 나오겠다고 해서 저희 가족은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곱창을 먹고 카페 가서 차도 마시고 열두시가 넘었을 쯤 차에 태우고 나서 본격적인 설득의 시간과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가족과 같이 있는 동안도 딸은 초조한 얼굴로 계속 휴대폰으로 뭔가를 적어 내려가며 보고를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저는 드디어 떨리는 목소리로 딸에게 말했습니다.

“은강아, 우린 네가 신천지에 다니는 거 다 알고 있다. 거기가 이단이라고 하는데 상담소에 가서 상담 한번 받아 보자!” 이 말을 들은 딸은 갑자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며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내가 그런 사이비에 왜 가냐고!!” 오히려 반문하며 “정말 아니다”라며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막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너 임용공부하고 성대결절이라고 한 거, 공연에도 불참한 거, 우리 가족들에게 모두 거짓말했다는 거, 다 알고 있어!”라고 했더니 순간 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눈빛이 변했습니다. 무섭게 눈을 흘기며 말하는 딸의 얼굴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딸은 그때 “이게 뭐에요!! 그럼 나도 이제 감금·폭행·핍박이 시작 되는 건가!!”라면서 그 때부터 괴성을 지르고 울고 발작이 지나쳐 완전 미쳐가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들과 저를 물어 뜯고 아빠의 무릎을 걷어 차는 등 난동을 부렸지만 그래도 미동도 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딸은 지쳐서 집에 도착할 때쯤엔 포기한 듯 울기만 했습니다. 딸이 집 주소며 신변보호서, 차량번호, 가까운 친척들의 인적사항까지 모두 신천지에 보고해 놓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인천 집으로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내 착하고 순하던 딸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정말 상상도 할 수가 없었는데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자의로 상담 받으러 간다고 설득을 하기까지 원룸에서 딸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변했습니다.

협박에 자해까지 시도하면서 앵무새처럼 신천지 교리를 막힘없이 들려주고 책 한 권에다 또그 걸 적으면서까지 밤새 잠을 안자고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참 진리인 신천지교리를 듣고 깨달아야 한다며 오히려 저희 셋에게 전도를 하려 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제가 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군대서 삼박 사일 특박을 받아 나온 아들은 어이없고 기막힌 누나의 모습에 정신 차리라고 왜 이렇게 됐냐고 울면서 설득했지만 단단한 돌문처럼 굳어진 딸의 맘은 우리가 설득하면 할 수록 더 무겁게 잠겨 있었습니다. 동생도 이제 복귀해야 되니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한 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 적이 언제 있었냐면서 일단 동생이 갈 때까진 신천지 얘기는 하지 말고 다른 얘기만 하자고 딸을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어릴 적 얘기부터 너희들이 있어서 엄마 아빠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고. 우리의 속내를 털어 놓으며 지난 시절을 추억했더니 두 아이는 그 때부터 울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돌이 될 무렵부터 장사를 시작했기에 할머니께 두 아이들을 보낸 적도 있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항상 딸이 동생을 돌보며 어릴 적부터 어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부족한 부모 탓에 일찍부터 참는 법도 알았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던 딸, 오직 부모의 기쁨이 되고자 애썼던 딸의 어린 날들의 추억이 다 눈물로 고여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누나에 대한 열등감에 늘 기가 죽어있었고 누나의 뒷바라지에 집중하는 그늘에 가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했다는 이야기도 결국 눈물로 쌓여 있었습니다. 둘 다 가슴속에 쌓아 놓기만 하고 한 번도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토로하는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우리 부부는 내 자식에게만은 맛있는 거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좋은 대학 보내고 남들에게 기 안 죽이려고 잘 살아 보려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잘 키워보려고 했던 아이들이 꺼억꺼억 짐승 같은 소리로 울며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얘기를 끄집어 내놓는데 정말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고 소중했던 내 자식들이 저렇게 아파하고 상처 받고 힘들어 했는데도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돌덩이만 가슴에 던져 주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부모의 잣대에 맞추어 잘 따라 주면 기뻐하고 정작 자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모른 채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욕심을 부렸던 거 같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상처 줬던 일들과 자녀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면서 딸의 맘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아 보여 또 상담을 받아 보자고 설득하기 시작하면 상담은 절대 받지 않겠다고 악을 써대며 무조건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더 강하게 억지를 부리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신 나간 듯한 누나의 모습만 보고 복귀한 아들은 아들대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불면증에 시달리며 약을 먹으면서 병원치료도 받았다는 건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자기 손을 가스 불에 지져 병원 치료를 시도했던 딸, 잠도 자지 않고 우리 부부가 잠들 때까지 자는 척하기도 하고 컴퓨터 연결선으로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발악을 해대며 도망칠 궁리만 하던 딸은 남편의 다리와 현관문에 연결된 쇠사슬을 보더니 그제서야 포기하는 마음을 가졌던 거 같습니다. 흐느껴 울다가 지쳐 잠들어 있는 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딸을 이렇게 만든 게 다 내 잘못이고 부모 탓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불쌍했습니다.

엄마가 옆에 있어 줘야 할 가장 예민하고 힘들었을 시기에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고 혼자 내버려뒀는데도 우리가 속상할까 봐 원망한 적 없던 딸은 부모의 위로와 사랑이 필요한 때 신천지 사람들이 따듯하게 손잡아 주고 아프고 상처 받은 부분을 사랑으로 감싸주니 분명 거기에 위로를 받고 더 쉽게 더 깊이 빠져 든 것 같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맞춰 놓은 사각 틀 안에 딸을 집어 넣으려고만 했으니 얼마나 부담스럽고 숨 막혔을까?’ 신천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딸에게 정말 미안했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어느날은 엄마인 저에게 악한 영이라며 자기 몸에 손도 못 대게 하던 딸이 제 손을 잡으며 눈물로 매달리며 사정을 했습니다.

“엄마, 제발 신천지에 보내 주세요. 저는 신천지에 있을 때가 정말 행복했어요. 가족과 있을 때보다 거기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러니 거기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애원을 하더군요. 솔직히 그때 제 맘이 약간 흔들리긴 했습니다만 그 순간 제 눈에 컴퓨터 연결선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 선을 제 목에 감으며 말했습니다. “은강아, 우린 절대 널 한시라도 신천지에 보낼 수가 없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나 죽으면 가라!” 이 말과 함께 힘껏 줄을 목에 감고 당겼습니다. 그때 제가 실신을 했답니다.

딸은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너희 엄마 제발 살려달라”고 울면서 사정하는 모습을 보고 맘이 변했는지 둘이 같이 저를 주무르고 울면서 제가 정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한참 만에 제가 눈을 떴을 땐 부녀가 눈물범벅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결심을 한 듯 딸은 “엄마, 상담 받을게요. 하지만 내가 상담을 받으면 엄마 아빠도 신천지에 가서 내가 받은 시간만큼 꼭 거기 가서도 들어봐야 해요!”라며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제부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하며 손을 굳게 맞잡았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은 원룸 온 지 일주일 만에 휴전이 되었고 딸은 우리도 꼭 신천지에 가서 상담을 받는다는 약속을 재확인한 후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상담소와 처음 약속한 날짜에서 일주일이 지난 후 딸은 드디어 자기 발로 걸어서 자기가 배운 신천지 교리를 증명해보이겠다며 당당히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딸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상담사님을 째려보며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상담소 내부를 쭉 둘러보더니 “여기가 ‘진뱀의 소굴이냐’”며 상담사들을 벌레 보듯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상담사를 향해 욕하고 달려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딸을 제지하면서 어른한테 그 태도가 뭐냐고 혼을 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는데 딸은 기가 막힌 말들만 늘어 놓았습니다. 딸이 “이만희 선생님은 죽지 않아요. 가족들과 이십사 년 산 세월보다 신천지가 더 행복하고 좋았어요. 거기 다시 갈거예요.”라고 할 땐 가슴을 도려내는 듯이 아팠습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고 아예 들을 준비가 안 된 딸을 보고 상담사께서 “이런 상태론 상담을 할 수 없다”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할 땐 제가 안 가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제발 집중해서 한번만 들어봐. 만약 너가 계속 이렇게 건성으로 들으면 우리도 신천지에 가서 너처럼 강사에게 침뱉고, 욕하고, 째려보고, 온갖 못된 짓하면서 똑같이 행동할거야”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조금 듣는 척은 했습니다.

그렇게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삼일 째 강의를 듣는 중 딸의 눈빛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하는 게 보였습니다. 신천지에서 보던 개역한글 성경만 고집하며 말꼬리를 잡고 모든 질문에 부정만 하던 딸이 스스로 묻기도 하고 상담소에 있던 현대인의 성경을 비롯 다른 성경과도 비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만희가 쓴 책이 말만 바꿔 새로 나오고 참 진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신천지교리가 점점 모순 덩어리라는 걸 알아가면서 딸의 어깨는 축 늘어졌습니다. 어느날은 한숨만 쉬더니 자신은 신천지도 안 가고 여기도 있지 않고 둘 다 싫다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면서 울기만 했습니다.

한참 동안 소리 내어 울던 딸이 드디어 흐느끼며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십사만사천명에 들어가면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이 구원받을 거라고 믿고 신천지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어요. 나 때문에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효도하는 방법은 내가 신천지에서 구원받아 십사만사천 안에 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만희 교주 앞에서 신천지 모든 행사에서 판소리를 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부모님과 모든 사람들에게 모략을 짜주는 대로 했는데, 상담사님들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잘못 알고 속은 게 사실이었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신천지에서는 상담소에 가면 너의 영이 죽으니까 무조건 도망쳐 나와야 하고, 거기는 감금. 폭행하니까 부모님한테 끌려가면 안 된다고, 상담소에 가서는 기물파손하고, 침뱉고 욕해도 된다며 드라마로 제작된 영상을 보여 주며 끊임없이 반복 세뇌를 시켰기 때문에 도망치려 했는데 짐승처럼 굴었던 자신이 싫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고도 말했습니다.

딸은 신천지에서 배도자가 되면 영이 죽는다고 했는데 강사님 중에는 신천지에서 나온 분들이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버릇없이 불손하게 대했는데도 다 받아주고 겸손하신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모습은 영이 죽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 모습에 사실 당황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신천지 교리가 결국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며 울먹이며 속울음을 내뱉는 딸이 불쌍하고 안쓰러워 상담사님도 안아 주고 우리도 꼭 안아줬더니 딸은 더 큰소리로 울면서 제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원룸으로 돌아와 셋이 함께 부둥켜안고 우린 우리대로 딸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딸은 자기를 상담 받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그동안 미안했다고 또 울고, 우리에게 흘릴 눈물이 그 때까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상담 받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딸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딸 입에서 이만희는 종교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기꾼에 불과한 아주 못된 사람이라고 말하며 거기에 있는 청년들이 불쌍하다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데려올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을 속여 신천지로 전도한 동아리 친구 집과 전화를 수소문해서 통화를 수차례 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딸을 더 믿고 우리 말은 믿지도 않고 다시는 이런 전화 하지 말라고 화까지 내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신천지 안에서 딸과 함께 전도하고 같이 활동하던 몇몇 청년들은 딸의 정보로 다니던 교회를 통해 부모님이 알게 되어 상담 받고 탈퇴한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신천지에는 상담소 오는 과정에 도망쳐 다시 신천지로 간 청년도 있고 부모를 고소하고 가출하고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사는 친구도 있고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딸과 함께 웃으며 한 밥상에 밥 먹고 한방에서 같이 자고 같이 후속 교육을 받으며 지낸 3개월의 시간이 우리에겐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고 그간 들어 보지 못한 딸의 속내도 들어보며 부모가 아이들의 아픔을 몰라주고 힘들고 외롭게 만들었고 사랑으로 안아주지 못했던 것에 미안해 했고, 서로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딸과 함께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또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누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론 두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우리도 변하겠으니 서로 노력하자고 다짐도 했고 함께 울고 웃으며 딸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아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기만을 바랐습니다.

꿈만 같던 시간이 가고 상담소 가까이에 원룸을 일년을 더 계약하고 딸을 혼자 지내게 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일상생활을 잘할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과 바람과는 달리 이번엔 딸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찾아와 또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미리 탈퇴한 청년들의 부모님으로부터 또 상담소에서도 후유증이 있을 거라고 미리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우리 딸은 잘 이겨낼 것이라 믿었는데 어김없이 찾아 온 후유증은 상담 준비 과정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일 년을 신천지에 있었으면 다시 회복되기까지 두 배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말이 정말 뼈저리게 공감이 됐습니다. 따로 지냈어도 매일 통화도 했고 주말엔 우리가 원룸으로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딸의 상태를 살피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은 상담소에서 걱정 어린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계속해도 받지를 않고 후속교육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고 그렇게 딸에게 찾아 온 심한 우울증은 또 다시 어둠속으로 딸을 몰고 가려 했습니다. 방안에만 있으려 했고 폭식을 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자책을 하고 눈물만 흘리고 무기력하게 있으면서 아무도 만나려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상담소의 도움으로 일반 치유상담소를 소개 받아 6개월 간 치유상담도 받고 딸은 점점 회복되어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런 딸을 보면서 제가 우울증이 오는 듯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딸의 귀가가 늦어지고 연락이 안 되면 수시로 확인 전화를 하고 결국 딸에 대한 의심이 저의 불안으로 연결되어 아이를 다그치고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맘이 힘든 딸은 더 힘들어 하고 있었던 겁니다.

서로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한 집에 살면서도 말 한마디 않은 채 데면데면했을 때도 있었고

딸과는 또 금이 가고 뭔가 어긋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니 우리 부부도 별일 아닌 것 가지고 날카로운 송곳으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다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가족은 주일에 교회는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힘들면 하나님께 울며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 앞으로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상처받은 마음 자리를 어루만져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한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 가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딸이 신천지에서 탈퇴한지 5년이 된 지금도 ‘신천지 출신’이라는 글자는 주홍글씨처럼 우리 가족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의 실체를 더 많이 알게 돼 정말 다행입니다. 단 한사람도 신천지같은 사이비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목소리를 내어 봅니다. 더불어, 신천지에서 나온 사람들을 향해 비난하고 질책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고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신천지에 빠진 자녀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실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그분들게 너무 절망하지 말고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기다리시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자식은 꼭 돌아올 겁니다. 힘내십시오, 늘 응원하겠습니다.

김은강 자매(사진 왼쪽)와 어머니 임성순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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