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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교리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한창덕 목사  |  kportaln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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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4  07: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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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덕 목사
사이비종교피해대책위원회 연구소장
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회 전문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개혁)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신천지에서 나와 상담사역을 하고 있는 k 전도사는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정통교회는 참 이상해요. 왜 교리공부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실상 그들의 교리로 비록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죽어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 그들은 거기에 대해 확신을 갖고 목숨을 걸게 되는데, 정통교회에서는 옳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자기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리 공부에 소홀한 이유
정통교회에서 교리를 잘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많은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면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모이지 않으니 가르치기 어렵다고 한다. 어느 정도 참석하다 모이지 않으면 가르치는 방법이나 강사에 문제가 있다 하겠지만 아예 처음부터 모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정통교회가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딱딱하여 재미없고 복잡하기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선입견이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화 되어가고 있다. 라면을 비롯하여 햄버거와 즉석 밥 등이 그렇고, 걸레와 진공청소기가 결합되어 한 방에 청소문제를 해결하는 등 ‘즉석’과 ‘간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는 이런 시대정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인식되는 교리는 별로 공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더 치명적인 이유도 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교리’와 ‘성경’을 별개로 생각한다. 성경이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교리는 여러 교파가 존재하는 것과 같이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만 알면 됐지 교리까지 알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사실, 엄격하게 말해서 성경과 교리는 다를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틀릴 수 없다. 그러나 교리는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형성된 것이라 하더라도 인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서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리는 잘못될 가능성이 있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리와 성경은 권위에 있어서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믿음에 대한 수많은 도전을 극복하고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채택된 것이 교리라는 사실을 안다면 교리와 성경이 별개라고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교리 공부에 소홀한 결과
교리 공부에 소홀한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이유야 어떻건 교리 공부에 소홀한 결과는 참담하다.

한국에 있는 이단자들은 최소 100만에서 최대 250만 정도로 추산한다. 많게는 교회 다닌다는 사람 중 네 명 가운데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이단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이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공적 신앙고백이자 ‘믿음의 도리’인 교리 공부에 소홀한 결과이다. 교리를 통해 신앙의 개념정리가 되어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이단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월경잉태설 논쟁’은 교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은 결과가 어떠한 지에 대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간단한 교리적 문제로 인해 한국교회는 두 패로 나누어져 10년 이상 격렬하게 이단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월경잉태설 논쟁은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진 기독론 논쟁이었다. 한 쪽이 살아남으면 한 쪽이 죽고, 한 쪽이 정통이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이단일 수밖에 없는 치킨게임과 같은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 논쟁은 말이 좋아 기독론 논쟁이지 사실은 ‘피가름의 원리’ 혹은 ‘혈대 교환’이라고 불리는 통일교와 전도관의 사상과 정통교회와의 처절한 혈투였다.

월경잉태설 논쟁은 사실 내용과 상관없는 ‘월경잉태와 성령잉태’라는 프레임 전쟁이었다. 누구든지 ‘월경잉태설이 옳으냐? 성령잉태가 옳으냐?’ 하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두 말 하지 않고 성령잉태가 옳다고 할 것이다. 월경잉태라는 용어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역겹게 느껴져 거부감이 있는 반면, 성령잉태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언급하는 것으로 익숙하며 거룩하게 느껴져 부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껍질을 까놓고 보면 전혀 다르다. 월경잉태라는 이름으로 공격당하고 있는 입장이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과 같은 것으로 정통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성령잉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은 ‘혈통유전설’을 기반 한 통일교와 전도관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고 가현설의 변형으로 종교개혁 당시 이단으로 정죄된 것이었다.

나는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신기한 것이 있었다. 월경잉태라는 역겨운 이름으로 굴레 씌워진 것은 사실 우리가 믿고 있는 성령잉태와 같은 것이었는데도 어떻게 신성모독과 역사상 나타난 가장 사악한 이단으로 정죄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비록 엉터리 연구보고서이기는 하지만 그 보고서를 통해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질서확립대책위원회에서 정통적인 입장을 정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장로교 가운데에서는 대형 교단인 한 교단에서도 연구보고서조차 없이 정죄 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동의하거나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면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월경잉태와 성령잉태의 프레임 전쟁에서의 성령잉태는 어떤가? 그것은 우리가 믿는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것이었는가? 아니었다. 그 프레임에서 말하는 성령잉태는 우리가 믿는 신앙고백과 일치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예 정면에서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교리사적으로 명백하게 이단으로 정죄된 주장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이단으로 정죄된 것들만 그렇게 골라서 주장을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에 이단으로 정죄했던 그 교단이 슬그머니 그것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정통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정통교회의 절반쯤도 그들을 지지하였으며, 그런 주장이 장장 10년 이상이나 한국교회를 어지럽혔으니 신기하기만 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내가 쓴 『월경잉태설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봤으면 좋겠다. 이제는 이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 논쟁이 정리된 것 같아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파장이 컸던 만큼 소수만 알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다 개념정리를 해야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단 연구가들이 모일 때마다 노래를 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리사」를 공부하라는 것이다. 이단 연구는 용어 하나에 죽고 사는 문제가 생긴다. 교리 자체는 물론 용어 하나하나에 함축적인 교리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교리사가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리사를 공부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고백이나 교리의 형성과정을 잘 이해할 수가 있어서 정통적인 신앙을 확립할 수 있다. 더구나 교리사는 사실상 이단 논쟁사이기 때문에 역사상 등장했던 수많은 이단들의 주장과 그들이 사용했던 용어까지도 확인할 수가 있어서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어떤 주장들을 검증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이단 연구가라면 반드시 교리사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

최근 나는 가슴 아픈 사건을 보았다. 이제는 평범한 성도나 목회자들이 아니라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이단 연구가들끼리 서로 이단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전부터 여러 연구 보고서들을 보면서 ‘어이할까’ 하고 한숨을 쉬기는 했었다. 거기에는 옳은 지적도 많지만 옳지 않은 지적도 다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자문자답 하면서 공론화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며 비겁하다 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에 관해 침묵해야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침묵하지 않고 공론화 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심하다 공론화 하면 순기능보다는 이단자나 이단옹호자들에 의해 이용당할 역기능의 가능성이 더 커 라고 자위하면서 언젠가는 정리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야 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문제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

기독교의 근본인 교리와 교리사
지금까지 교리 공부에 소홀한 결과 한국교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교리 공부를 해야 할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는 교리가 무엇이며 교회에서 갖는 위치와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교회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란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자기의 존립에 필수적인 진리로 여기는 것과 신자들이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내용에 대해 공의회에서 합의한 결정사항을 의미한다. 그래서 서철원 교수는 그의 『교리사』 서언에서 “기독교는 교리를 갖는다. 교리는 기독교의 근본진리이다. 이 교리를 교회가 받아들이면 기독교가 되고 거부하면 기독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리는 기독교의 생명이다. 루터는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삼았다. 교리는 바로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신앙 조항이다.” 라고 했다.

서철원 교수는 교회에서 교리의 위치와 관계에 대해 ‘교회가 교리를 받아드리면 기독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가 되지 않는다.’ 고까지 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교리는 기독교의 핵심이자 심장이다. 생명과 같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교리를 모르거나 부정하고서는 신자가 될 수 없고 교회도 성립될 수 없다.

그렇다면 「교리사」는 무엇인가? 교리사는 기독교 교리들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각각 그 교리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공의회에서 공식적인 교리로 결정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교리사를 공부하게 되면 단순히 교리를 믿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치열하게 어떠한 논쟁의 과정을 거쳐 그런 결론이 나와 공식화 되었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개념정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리의 부재 시대를 맞고 있다. 그래서 그 결과 교회들이 이단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이단적인 주장을 골라서만 하는데도 그걸 성령잉태로 믿고 정작 성령잉태를 월경잉태라 하면서 배척하는 기가 막힌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믿어야할 믿음의 도리인 교리를 알자. 그 교리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교회에서 공식화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다루는 교리사를 공부하여 확실하게 개념정리를 하자.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교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창덕 목사의 교리사 강의 순서

1. 교리와 교리사
⑴ 교리란 무엇인가?
⑵ 교리사란?
⑶ 교리사의 정립순서

2. 초대교회의 신앙고백과 신앙의 규준
⑴ 신앙고백의 형태
⑵ 신앙의 규준과 신경
⑶ 한국에서의 신앙고백 논쟁

3. 에비온파와 영지주의
⑴ 에비온파
① 기독교의 유대화
② 에비온파의 세 분파
③ 에비온파의 특징

⑵ 영지주의
① 영지주의의 기원
② 발렌티누스
③ 케린투스
④ 마르키온

4. 몬타누스주의
⑴ 몬타누스의 생애
⑵ 몬타누스의 사역
⑶ 몬타누스가 끼친 영향

5. 단일신론 논쟁
⑴ 양자론
① 알로그파
② 무두장이 데오도토스
③ 멜기세덱파
④ 아르테몬파
⑤ 베륄로스
⑥ 사모사타의 바울

⑵ 양태론
① 노에토스
② 프락세아스
③ 칼리스트
④ 사벨리우스
⑤ 휩폴리투스
⑥ 지방교회와 삼위일체 논쟁

6. 플라톤주의와 오리겐
⑴ 플라톤주의
⑵ 신플라톤주의
⑶ 오리겐

① 오리겐의 생애
② 오리겐의 삼위일체론
③ 오리겐의 종속설
④ 오리겐의 기독론
⑤ 오리겐 좌파와 우파
⑥ 사모사타의 바울과 루키안

7. 교부 터툴리안
⑴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
⑵ 터툴리안의 기독론

8. 니케아종교회의
⑴ 니케아종교회의의 배경
⑵ 아리우스

① 멜레티오스 논쟁
② 아리우스의 이단정죄
③ 탈레이아

⑶ 삼위일체 논쟁의 시작
① 알렉산드리아회의(318년)
② 니코메디아회의(319년)
③ 가이사랴회의(320년)
④ 안디옥회의(325년)

⑷ 니케아회의(325년)
① 니케아회의 전의 정치적 상황
② 니케아종교회의의 전개과정
③ 니케아신조

9. 니케아 후의 아리우스 논쟁 변화
⑴ 콘스탄틴 황제의 남은 치세
① 아리우스의 신앙고백
② 아리우스일파의 정적 제거

⑵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치세
① 아타나시우스와 마르켈의 수난
② 로마회의(341년)
③ 헌당회의((341년)
④ 사르디카회의(342년)
⑤ 장행신조(344년)
⑥ 아델라테회의(353년)
⑦ 시르미움 제2신조(357년)
⑧ 시르미움 제3신조(358년)
⑨ 시르미움 제4신조(359년)
⑩ 아리미눔회의(359년)
⑪ 셀레우케이아회의(359년)
⑫ 콘스탄티노플회의(359, 360년)

⑶ 율리안 황제의 치세
① 율리안 황제의 종교정책
② 성령훼손파의 등장
③ 안디옥교회의 분열
④ 알렉산드리아회의(362년)

⑷ 요비안 황제의 치세
① 요비안 황제의 종교정책
② 안디옥회의(363년)

⑸ 발렌스 황제의 치세
① 발렌스 황제의 종교정책
② 람프사코스회의(364년)
③ 튀아나회의(367년)

10.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381년)
⑴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등장
⑵ 데살로니가 칙령(380년 2월)
⑶ 캅바도키아의 세 교부

① 캅바도키아 신학의 교리사적 배경
② 캅바도키아 교부들의 위격과 실체 이해

⑷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⑸ 데살로니가 칙령(381년 1월)
⑹ 콘스탄티노플회의의 진행과정
⑺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11. 기독론 논쟁
⑴ 아폴리나리우스 논쟁
⑵ 네스토리우스 논쟁
⑶ 유티케스 논쟁
⑷ 칼케돈종교회의(451년)
⑸ 단성론 논쟁
⑹ 일의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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